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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운동의 예루살렘 회복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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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전체관리자
2021-01-20 17:06:33

신사도 운동의 예루살렘 회복 [스크랩]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신사도 운동은 단순 은사운동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처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사도 운동은 기독교의 모든 중요한 요소를 전방위적으로 공격하여 변질시켜려는 마귀의 운동이다. 선교에 있어서도 신사도 운동은 성경적 선교를 희석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한 선교운동의 골격을 갖추고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신사도 운동의 선교브랜드는 유대인 부흥과 예루살렘 회복이다>    

그것은 바로 신사도 운동의 고유한 선교 브랜드인 유대인의 신앙부흥 운동, 그리고 예루살렘 회복 운동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부흥과 예루살렘 회복을 선교의 완성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여전히 구약시대와 같은 관점에서 중요한 성지이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장차 도래할 천년왕국과 관련되 중요한 장소라고 믿는다    

  • "예루살렘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태도를 회개합니다!"
  • "예루살렘은 세계를 보는 영적지도이다!"
  • "하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일어서게 하소서!"
  • "요엘의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여 주옵소서!“
  • "마지막 결전지 예루살렘!"

그들의 소식지와 기도제목, 집회들의 홍보지에서는 이러한 문구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이처럼 예루살렘을 가장 중요하게 곳으로 여기고 있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먼저 주변의 죽은 바리새교회들을 먼저 개혁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는 교회로 변화시켜놓고 종국에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까지 그들의 신앙을 확산시킬 것을 갈망한다.    

<신사도 운동의 예루살렘 운동은 신구약의 전체적 조망이 결여된 선교운동이다  

유대인들의 신앙부흥 운동과 예루살렘 회복은 누구든지 듣기에 매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가 경배되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그들의 신념은 정말 성경적일까? 그렇지 않다. 그 일이 좋고 아름다운 일이라고는 우리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재림이 일어나므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 힘을 쏟는 선교사상은 거부되어야 한다.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루살렘 회복 운동은 결코 성경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분히 신구약 전체를 조망하는 구속사적 관점이 결여된 선교운동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사람들을 쉽게 흥분시키는 그 현란한 예루살렘 운동에 쉬이 휩쓸리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예루살렘이라는 한 도시가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예루살렘이 그렇게 중요했던 이유는 솔로몬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과 그 후손들이 왕국을 세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 성전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완성되었다. 다윗과 그 후대의 임금들의 존재의 의미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 성취되었다. 구약의 모든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인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고 통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그의 십자가와 피로 세우신 교회와 성도들 속에 그 분은 살아계신다. 교회를 통하여 온 세상에 편만하게 퍼진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과 모든 믿음의 활동의 중심지는 어디이겠는가? 바로 교회이다. 또 무엇을 목표로 하는 선교이어야 하겠는가? 그것도 교회이다.      

분주하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가는 신사도 운동가들의 열정은 참 가상하다. 그러나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은 예루살렘을 목표로 하는 선교의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예루살렘과 유대인 중심의 세계가 아니다. 지금 교회의 시대이다. 어디에든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섬겨야 할 시대이다. 교회는 완벽하게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계승한 하나님의 새로운 영적 선민이요 새로운 인류이다.      

중동의 예루살렘을 특별히 사랑하는 분들은 이 개념을 매우 싫어한다. "예루살렘을 축복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예루살렘을 미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미워하신다!"라는 다 맞지도 다 틀리지도 않는 사고를 여전히 고집한다. 그것은 열정일 수는 있어도 객관적 진리는 아니다.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 세대주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가들이 이스라엘의 부흥과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이런 특이한 자세를 가지게 되었을까? 먼저 그들의 역사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는 사상에서 그들의 독특한 예루살렘 사상이 유래되었다. 그 사상은 유대인들의 신앙부흥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종말의 해석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간주한다. 무천년설이나 역사적 전천년설에서 말하지 않는 휴거의 개념도 바로 이 세대주의 사상에서만 나타나는 개념이다.  

동시에 지상에서는 휴거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7년간의 대환난이 시작되고, 세계적인 권세를 가진 적그리스도가 출현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허공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들이 천국으로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예식을 올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후 다시 그리스도가 지상으로 다시 재림하여 천 년 간의 왕국을 펼치신다고 믿는다. 이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천년왕국 사상이다    

1900 중반까지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교단들이 바로 이 사상을 신봉하였다. 오순절 교단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사상을 가장 열심히 신봉하는 교단이다. 신사도 운동이 오순절 교단에 뿌리를 두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왜 이런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 금방 이해가 된다. 신사도 운동의 뿌리는 1949년 오순절 교단의 씨애틀 총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은 한 그룹에서 시작되었다. 오순절 교단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오순절 교단에서 몸에 익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나왔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독특한 색체를 더욱 발전시켰다.       

신사도 운동과 세대주의는 결코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다시 말하자면, 세대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이 신사도 운동에 더 빨리 흡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선교사들이 신사도 운동에 쉽게 합류하는 이유는 한때 한국 교회가 세대주의를 강하게 신봉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세대주의를 믿었던 이유는 한국에 복음을 전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개혁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종말론에 있어서는 세대주의 사상을 가진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유대인들이 부흥과 예루살렘의 신앙회복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시켜서 선교운동을 추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신사도 운동과 연관이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유대인들의 신앙부흥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소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성도들의 들림(휴거)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곧 이어 지상에서는 7년 환난과 적그리스도의 등장, 공중에서는 휴거된 성도들과 어린양이신 예수님과의 혼인예식 ...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직 믿지 않아 휴거되지 못하고 지상에서 7년 동안 대환난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이스라엘이 거국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도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회심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천년 동안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믿는다. 세대주의의 천년왕국은 회복된 유대인들의 왕국이다. 그들의 문제는 이처럼 여전히 이스라엘과 이방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복음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만들어 오직 새 인류(교회)게 되게 한다>      

그러나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3:28-29)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오직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6:15-16)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오직 은혜를 입어 구원 받은 새로운 인류, 성도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제는 새로운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것이다    

세대주의 사상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이 그들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을 통하여 성취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종말까지 장자 민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이 위치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비성경적인 사상이다. 사실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 이후에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 대상이 되는 많은 민족 중의 하나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 그럼에도 세대주의 사상에서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선택받아 특권을 가진 영원한 복음의 장자인 것처럼 말한다. 그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은혜로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종말의 때에 되찾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사실이다(11:25-27). 그러나 이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차원이지 여전히 육적 이스라엘에게 특권이나 다른 의미가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세대주의 사상은 큰 우를 범하고 있고, 그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신앙부흥과 예루살렘 회복 운동에 매진하는 신사도 운동가들의 선교는 참 어이없는 광경일 뿐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동안 가장 많은 교회들에게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에서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대한 특이한 내용들이 없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부흥과 예루살렘 회복을 매우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시나리오를 전개하는 사상은 오직 세대주의 뿐이고, 신사도 사상은 바로 여기에서 태동한 것이다. 우리는 신사도 운동의 이스라엘 부흥운동과 예루살렘 회복운동이 성경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선교운동은 종말에 관한 하나의 가설이며 특히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사상인 세대주의에서 직접 유래한 것이다    

<성경적 모티프가 없는 선교운동은 건강하지 못하다>      

이러나저러나 선교하면 됐지요!” ... 라고 말할 문제가 아니다. 그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근거한 선교운동은 십자가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 이방인과 유대인의 일체성, 그리고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의 유기적 연관성도 부정하는 한심한 신학이다. 근본적으로 교회가 이스라엘을 계승하고 대체하였다는 진리를 부인한다.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스라엘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선교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신사도 운동가들이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선교하면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까?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그릇된 선교운동에 가담하는 교회는 건강을 잃게 된다.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교회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신사도 운동의 선교는 거부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그들을 보면서 성경을 폼으로 들고 다니나?” ... 라며 한숨을 짓는다.      

이것이 그들의 선교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사항이다. 아무리 선교라는 모양을 취하고 대단한 열심을 내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선교는 건강하지 못하다. 성경적이지 못한 그들의 찌그러진 선교운동에 어찌 우리들이 힘을 보태고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많은 목회자들이 생각하지 않고 함께 들썩거리며 성도들을 동원해주는 현실이 답답하다.       

<다양한 불건전한 주장이 세대주의의 지원을 받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종말에 관한 거의 모든 불건전한 주장들이 세대주의 때문에 더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92년에 예수님이 공중재림하고 믿는 자들이 휴거된다!" ... 하면서 한국 교회에 망신을 주었던 그들도 세대주의 때문에 큰 호흥을 얻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에 곧 전쟁난다! ... 회개하라!" 하는 그 아프리카 수염장이 선지자(?)의 행태도 만연한 세대주의 사상 때문에 더 쉽게 받아드려졌었다.       

그는 언젠가 하늘에서 두 개의 거대한 반지가 나타나는 혼인 예식의 반지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예수님과 성도들의 천상의 혼인예식이 곧 임박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환상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이것도 역시 요한계시록 199절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소수의 세대주의 자들의 종말 시나리오의 일부이다. 무천년설과 다른 가설을 믿는 학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성도)가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영원한 교제에 들어가는 천국의 행복에 대한 비유이고 상징으로 해석하지 실제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    

<땅 끝으로 가는 선교가 성경적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야 어찌되건 신경쓰지 말고 선교해야 할까? 그러자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도 소중한 선교지이다. 그리로도 선교사들이 가야하고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예루살렘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말자는 것이다. 여전히 예루살렘을 구약시대처럼 특이하게 생각하는 사상은 신구약의 역사적 연관성과 다른 중요한 부분에 대해 치명적 약점을 내포하고 있는 한 이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오직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세계선교와 종말에 있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강조하신 적이 없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하셨다. 건강한 선교운동은 신사도 운동가들이 그러는 것처럼 예루살렘이나 어느 한 지역을 최종적 목표로 삼지 않고 온 세상을 품는 선교이어야 한다. 땅 끝을 향하는 선교여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선교방향과 전략은 바로 이것이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회복이 가장 중요한 최종적인 선교목표라는 발상은 도대체 성경의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그들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을 향한 그렇게 뜨거운 사랑과 열심은 성경의 어는 부분에서 타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각자가 자신의 땅 끝을 향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옆집이 땅 끝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학교가 땅 끝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해외의 어느 나라의 어느 작은 마을이 땅 끝이다. 예루살렘만을 땅 끝이라고 우기는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루살렘을 향한 자세는 절대로 건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백투 예루살렘!”이라는 구호에 대해서 우리는 냉철하고도 복음적인 마인드로 분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예 예루살렘을 무시하자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곳으로도 장.단기 선교사들이 가야 한다. 그곳도 하나의 땅 끝이다    

어디에나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자세가 성경적 선교이다. 온 세상에 교회를 널리 전파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루살렘 회복이다. 각자가 자신의 땅 끝으로 가서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 위대한 세계선교의 물결 속에서 예루살렘에도 그리스도가 경배를 받으시는 날은 꼭 온다. 그리고 언젠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예루살렘을 특별하게 지목하여 선교적 역량을 인위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성경적인 선교가 아니다. 그것은 신사도 운동가들의 보이는 망상이다. 성경 어디에서 그런 선교를 장려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도통 모르겠다.     

<신사도 운동의 예루살렘 회복운동의 중심에 IHOP이 있다>      

지금 누가 이와 같은 예루살렘 회복 운동에 앞장서고 있을까? 이미 다 알려진 사람을 함께 다시 점검해 보도록 하자! 유대인 부흥과 예루살렘 회복 운동을 말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역시 IHOP이다. IHOP의 마이크 비클은 예전부터 유대인들의 부흥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관심을 기울였고 기도운동을 전개하였다.      

요즘 마이크 비클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부흥 운동에 한국 교회의 자원을 동참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금년 10월에 한국에서 두 번의 대형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위해 일어나야 할 내가지 매우 중요한 성경적 조건(significant biblical requirement)을 강조한다. 그 중의 중요한 것이 유대부흥 운동과 예루살렘 회복이다.      

나는 그들이 제작하여 베포한 어떤 선교집회의 홍보영상에서 세대주의에서 근원하여 오늘 날 신사도 운동의 뜨거운 예루살렘 사상으로 발전된 그 모든 내용들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신앙부흥과 예루살렘 회복을 위해 한국 교회가 협력해야 하고, 장차 한국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선교군대가 서쪽의 중동을 거쳐서 예루살렘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예루살렘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하였다. 전형적인 신사도 운동가들 유대부흥 운동과 예루살렘 회복 운동이 IHOP의 선교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로서 IHOP의 기도와 예언운동, 최근의 친밀한 신부운동, 그리고 유대인 선교 운동까지 ... 그들이 열심을 내는 모든 것이 건강하지 못하는 것을 또 확인하게 되었다    

<인터콥의 예루살렘 운동은 건강한가?>      

같은 맥락에서 예루살렘 회복 운동을 뜨겁게 전개하는 한국 선교단체가 있다. 인터콥이다. 나는 인터콥 선교회와 최바울 대표에게 어떠한 손해를 끼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지금은 미국과 한국과 전 세계를 향한 무슬림의 강력한 약진에 대항하여 교회들의 힘을 모아 연합전선이 펼쳐야 할 때이다. 무슬림에 대해 많은 경험과 탁월한 식견을 가진 한 사람의 장수가 아쉬운 상황이다. 최바울 대표는 누구보다 무슬림을 잘 알고 있고, 무슬림을 상대하기에 누구보다 적합한 능력 있는 장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은 성경적 세계선교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하기 위해 이미 여러 사람들이 인터콥의 사역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는 부분을 잠시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다.      

나는 직접 인터콥의 비젼스쿨에 두 달 동안 다 참여하면서 들었고, 또한 최바울 대표의 책 <왕의대로>와 다른 책들을 읽었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인터콥의 백투 예루살렘사상도 멀게는 세대주의, 가깝게는 신사도 운동의 예루살렘 회복 사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왜 그 구호가 신사도 운동의 정신과 일치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중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전도 종족이 밀집해있다. 그곳과 선교학자들이 말하는 10/40지역이 거의 겹친다. 이곳을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취지에서 백투 예루살렘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욱 우리는 인터콥의 구호에 힘을 실어야 한다.       

그러나 인터콥의 백투 예루살렘!”에는 그것 외에 다른 더 강력한 의미가 추가되어 있다. “복음은 항상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예루살렘에 도달하는 것이 역사의 완성이다. 지금 탈레반과 사탄의 무슬림 종교의 영들이 장악하는 이 지역의 국가들로 인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다. 이 지역을 향한 투쟁적인 중보기도와 용맹스러운 단기선교 ... 등의 전략으로 선교의 길을 열어 예루살렘에 이르면 역사는 완성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한다!”.      

이것이 내가 두 달간의 비젼스쿨을 경험하면서 이해한 백투 예루살렘!”이다. 내가 잘못 이해하였다면, 기꺼이 다시 배우도록 하겠다. 그러나 내가 파악하기로는 이 구호의 핵심은 예루살렘까지 선교의 길을 열고 들어가면 ... 선교가 완성되고 재림하신다!”라는 것이다.  

마이크 비클이나 다른 신사도 운동가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나기 위한 Biblical Requirement로서의 그렇게 강조하는 유대인들의 신앙부흥과 예루살렘의 회복”, 그리고 그들의 중보기도에서 자주 등장하는 최후의 결전지 예루살렘!” ... 이런 개념들과 인터콥의 백투 예루살렘!”은 사실상 동일하다. 꼭 같은 개념이 선교적 술어로 달리 표현되었을 뿐이다. 예루살렘을 향한 열정과 기도와 선교는 쉽게 사람들을 자극한다.      

마치 중세의 십자군 전쟁을 도모하기 위한 군대를 모집하는 것과 같은 흥분과 긴장감을 주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흥분되어서 동참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과연 이러한 예루살렘 회복사상의 선교가 과연 성경적인 선교인지? 과연 선교의 최고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는 선교인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정말 인터콥이 신사도 운동에 편승했는지는 최바울 대표께서 말하지 전에는 모를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염려스럽다    

조금 더 염려되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다. 비젼스쿨의 후반부에서 최바울 대표의 은사와 사역이라는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최바울 대표는 비젼스쿨의 수강생들이 선교지에 나가 교회를 개척하면 오중직이 유기적으로 일하는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목자, 교사에 대해서 신사도 운동의 핵심 사상을 그대로 강의를 하셨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자, 교사 이 모든 은사가 교회에 있을 때에 성도가 온전케 됩니다. 여러분의 교회에 이 5개의 은사가 다 있습니까? 그러면 온전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하나가 없으면 1/5이 빈 것이고, 또 하나가 없으면 2/5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끝 부분에서는 신사도 운동권에서 대예언자로 추앙하는 폴 케인의 예언사역을 대해여 시간을 할애하여 소개하셨다. “미국에서도 예언자들은 교회에서 핍박을 받는다. 폴 케인도 두 번이나 자기가 섬기던 교회에서 쫓겨났다. 폴 케인이 자기를 이해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존 윔버에게 상담을 요청하였다. 존 윔버가 캘리포니아로 오라고 하자, 폴 케인은 내가 가는 날 캘리포니아에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예언했고, 그 날짜는 존 윔버가 정하였는데, 실제로 폴 케인이 캘리포니아에 가는 날 큰 지진이 있었다. 그리고 폴 케인은 존 윔버에게 그의 건강에 대한 예언을 하였고, 그리고 늘 여러 가지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그의 아들에 대한 예언을 했는데, 결국 다 그대로 이루어졌다” ... 라는 내용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최대표께서는 지금까지는 소수의 영웅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끄셨지만, 이제부터는 허다한 구름같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실 것이다!”라는 폴 케인의 예언을 소개하시면서 앞으로의 선교의 방향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 두 수퍼스타들의 선교의 시대는 갔고,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주역이 되는 선교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라며 강의를 마치셨다. 내가 그 강의를 듣기 최소 3,4년 전부터 한국과 미국의 각 지역의 모든 비젼스쿨 코스에는 이 강의가 어김없이 들어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영향이 흘러들어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강의를 듣고 더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은 최바울 대표께서 이 강의를 더 이상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최대표께서 정말 그런 사상과 운동에 대한 관심을 정말 버렸는가? 이것이다. 사실 그 강의를 들은 직후부터 나는 최 대표와 인터콥이 신사도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강하게 의심했었다. 그래서 여러 목회자들에게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최대표의 말을 들어 보아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들에게는 전도와 어려운 선교현장에서의 승리가 어쩔 수 없는 최대의 관심사이다. 그래서 사역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나 사상이 발견되면 먼저 수용하여 활용하는 분들이 선교사들이고 선교지도자들이다. 교회 목회자들은 교단의 신학적 입장에 더 강하게 묶이지만, 선교사들과 선교지도자들은 좀 다르다. 아직 신사도 운동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최바울 대표께서 잠시 영향을 받으실 뻔 했으나 이제는 상황을 파악하고 신사도 운동에 대해 경계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들었던 강의에 대해서는 더 염려할 일이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더 이상 인터콥을 신사도 운동과 연관시켜서 의심의 눈으로 보아서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백투 예루살렘 운동도 신사도 운동과 맥을 같이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인터콥의 고유한 성경적 선교운동의 기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루살렘까지 선교의 길을 뚫어서 선교역사를 완성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한다!”에 강조를 두면 이는 세대주의적 발상이고 또한 신사도 운동의 선교구호이다. 그렇다면 나를 비롯한 많은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끊임없는 저항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터콥의 그 구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상의 많은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의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고자 한다!”라는 처음 중국 교회에서 시작한 그 정신만을 그대로 이어간다면 이는 분명히 건강한 성경적 선교구호이다. 그러면 모든 교회들이 망설임 없이 더욱 인터콥의 선교운동에 힘을 합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내가 이러자! 저러자! 할 입장은 아니지만, 많은 목회자들의 마음에 있는 의구심을 풀어줄 수 있는 어떤 조치가 최바울 대표로부터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루살렘 회복운동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루살렘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안다. 너무 심해서 혀를 내 두를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히 인정할 만한 성경적 모티브가 없다. 최근에 IHOP의 마이크 비클이 예루살렘 회복운동에 한국 교회들이 적극 참여하여 주기를 당부하는 영상 메시지를 들었다. 그는 성경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것으로 예언하는 4가지에 대해서 말했다. 첫째는 예수님의 재림, 둘째는 온 세상에 복음이 증거되는 것, 셋째는 예루살렘의 회복과 부흥, 넷째는 전 세계적인 기도운동이라고 하였다. 다 신앙적이고 좋은 말인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성경의 어디를 근거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요소는 좋은 말이지만 도대체 성경 어디를 근거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마이크 비클은 세 번째의 예루살렘의 회복와 부흥을 위해 한국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그 또한 IHOP의 선지자들이 직통으로 하나님께 받은 계신 인 모양이다. 그는 성령의 권능을 입은 선교사 군대가 아시아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을 향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성경의 어디를 근거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거대한 선교군대가 아시아에서 일어나 중동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중요한 리더쉽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특히 예수님이 예루살렘 땅에서 경배 받으시는 일이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이를 위해 아시아 교회들에게 권능과 리더쉽이 주어진다고 한다. 다 좋은 말이고 특히 한국 교회가 듣기에는 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무슨 근거로 그런 엄청난 계시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마이크 비클은 그 근거로서 이사야 5919절을 들었다.“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이라”. 그러나 이도 참 우스운 일이다. 이사야 59장은 범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에 처한 이스라엘의 실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임을 말하는 내용이다. 19절의 서방”(서쪽)해 돋는 편”(동쪽)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은혜가 놀라울 정도로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해드는 곳으로부터 해 지는 곳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마이크 비클은 해 돋는 편을 아시아로 해석하였다. 그것을 근거로 한국 교회에서 거대한 선교군대가 일어나 중동을 거쳐 예루살렘에 도달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쪽은 어디라는 말인가? 오늘 날 이스라엘의 서쪽에 일어날 수 있는 선교군대가 또 있을까?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심을 내고 부지런을 떠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을 근거로 납득이 되는 말 한 마디를 내 놓아야 한다.      

성령이 모든 교회와 성도에게 보편적으로 내주하시는 성령시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케케묵은 다윗의 장막이라는 구약 법궤 시대의 모티프를 가지고 “24시간 기도와 찬양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어서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제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 모티프부터 불건전이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은 또 다른 해괴한 논리로 미친 예루살렘 운동을 선동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 교회를 그 망상의 중심으로 유인하기 위해 괴변을 늘어놓고 있다. 여기에 말려들면 이것은 훗날 또 한국 교회가 남긴 또 하나의 수치로 교회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전에 보지 못한 성령의 역사가 한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00년 동안 있었던 성령의 역사와는 비교되지 않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전형적인 IHOP의 선지자 예언이다. 예루살렘 회복와 부흥을 위한 한국 교회의 동참을 권하는 그의 그럴싸한 긴 말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성경적 모티프는 하나도 없다. 이것이 신사도 운동가들의 예루살렘 부흥운동의 실상이다.       

최바울 대표도 아시아의 교회, 특히 중국 교회에서 하나님의 선교사 군대가 일어나 중동을 서쪽으로 진군하여 다시 복음으로 예루살렘을 해방시키는 마지막 시대의 종말론적 선교가 사역과업이 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파함으로 선교가 완성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왕의대로>라는 그 분의 책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가 한국과 중국 교회의 선교사 군대가 중동을 거쳐 예루살렘까지 도달하는 그 길이 곧 재림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시는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이 어이가 없다.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49:11-12). 이 구절이다. 그는 시님을 중국으로 해석하고서 하나님께서 시님의 군대, 즉 중국교회를 통해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가는 왕의 대로를 구축하실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사야 49장은 아직 출현하지 않으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아 도처(12: “원방”, “북방”, “서방”, “시님”)에서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부르심을 받아 나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핵심은 사방 도처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민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교회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당시 도처에 흩어진 이스라엘이 그런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원방”, “북방”, “서방”, “시님으로 표현된 곳이 어디인지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시님을 중국으로 해석할 만한 마땅한 근거도 없다.

그런데 최대표는 이 내용을 가지고 무슬림과 구약 유대종교와 세속종교에 의해 점령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해방하는 하나님의 선교군대가 시님(한국과 중국 교회)으로부터 일어나서 서진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교회와 중국 교회의 예루살렘 운동의 최대의 성경적 근거라고 한다. 신사도 운동 성향을 가지고 예루살렘 회복운동에 매진하시는 분들은 이론은 이처럼 성경적 기초가 빈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부흥과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그들의 열심과 열정은 가히 태산을 녹이고 대양을 메울 기세다. 그러니 더욱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회복운동을 주창하는 분들은 우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성경적 토대를 제시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동원하여 가는 신사도 운동가들의 문제는 아직도 구약적 관점으로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여전이 복음의 성지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영적 예루살렘이 되었고, 교회를 중심으로 땅 끝으로 선교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성경적 선교관점을 거절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새로 조성된 신인류인 하나님의 교회가 복음으로 섬기고 구원해 야 할 많은 척박한 땅들과 영적 이방인민족들 중에 이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도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부인한다.

하나님은 로마서에서 종말의 때에 그들도 다시 불러서 구원의 대열에 합류시키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스라엘도 다른 민족들과 동일하게 귀히 여기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사실은 다만 신사도 운동가들이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가 서기 이전에 제작된 지도와 나침반으로 예루살렘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점일 뿐이다.

[출처] 신사도 운동의 예루살렘 회복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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