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계정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
2 == 2 ok!
지팡이 같은 갈대
1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도 요한입니다. 힘센 천사(10:1)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말씀이라고 하면 되지 왜 지팡이 같은 갈대라고 했을까요? 1장, 5장, 6장에서는 말씀을 두루마리라고 했는데 11장에서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두루마리라고 하다가 왜 여기서는 갈대라고 했을까요?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자가 없던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갈대를 자로 사용했습니다. 요단강에서 자라는 갈대는 5m까지 자라는데 당시 갈대는 어디서든지 쉽게 구할 수 있고, 건조하고, 마디가 곧고 길며, 변형이 적어서 자로 사용하기에 좋았습니다. 갈대는 측량 도구였습니다. 히브리어로 갈대를 카네라고 하는데 라틴어 카논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카논에는 척도, 기준, 표준, 측정,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갈대를 주셨다는 말은 자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측량하는 도구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입니다. 말씀은 영혼의 자입니다. 말씀은 삶의 자입니다. 성경은 캐논, 자, 기준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에 자이고, 십자가가 우리 신앙의 자입니다. 예수님으로 인생의 기준, 자를 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영혼의 자를 주신 이유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라고 했습니다. 측량의 목적은 부수든지 아니면 새로 짓든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측량은 보호, 바르게 함, 교정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일어서다는 말이 헬라어로 에게이로입니다. 에게이로는 ‘일으키다’, ‘깨우다’, ‘살리다’, ‘부활하다’는 뜻입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죽은 영혼을 살리고, 삐뚤어진 인생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영적 측정 도구인 말씀으로 판단해서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 된 것은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사가 하는 일은 말씀이란 자를 가지고 성도를 바르게 하고, 살리고, 세워주는 것입니다. 갈대가 지팡이 같다고 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 갈대는 줄기가 빳빳하고 곧았지만 잘 꺾입니다. 막대기 같다는 말은 부러지지 않고 단단하다는 의미입니다. 부러지지 않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은 결코 변형되거나 부러지지 않는 자입니다. 목자가 양을 지킬 때 사용하는 도구가 지팡이와 막대기입니다.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맹수를 물리치고 양무리를 보호했습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을 측량하는 자이면서, 우리 영혼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목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이면서 하나님의 지팡이인 말씀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살리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말씀 사역, 복음 전파 사역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목사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것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와 성도에게는 복음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유다서 1:7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말씀 거울로 내 영혼을 살펴야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말씀의 거울에 우리를 계속 비춰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비추십시오. 말씀으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비추십시오. 신앙생활을 옳게 하는지 옳지 않게 하는지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말씀만이 내 영혼을 지키는 막대기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의지하지만 돈이 지켜주지 못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잠언 4:6에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고 했고 잠언 6:22에 “이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훈계의 말씀을 뜻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힘센 천사는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2절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전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이 바깥뜰(바깥마당)입니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이방인의 뜰이라고도 합니다. 천사는 이곳을 이방인에게 주었는데 이방인이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짓밟는다는 말은 박해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깥마당에 있는 사람들은 보호를 받지 못하고 내버려질 것입니다. 바깥마당이 상징하는 것은 외적으로는 믿는 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십시오. 믿음으로 참 신자가 되십시오. 성전 마당만 밟고 가지 마십시오.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제자, 성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경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경배를 강조했습니다. 예배를 강조했습니다. 이 경배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말세에 어떤 환란이 있어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짓밟는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마구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큰 환란을 말합니다. 교회에 큰 환란이 있을 때 예배자들을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성도들에게는 환란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도, 교회에서 환란이 있습니다. 목사에게도, 권사에게도 환란이 있고, 불신자에게도 환란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도 환란이 있고, 믿음이 없는 자에게도 환란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하나님은 경배자들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은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아끼십니다. 예배자가 되십시오.
이방인의 뜰, 바깥마당에서 문을 하나 더 열고 들어가면 여인의 뜰이 나옵니다. 여인의 뜰에는 이스라엘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문을 하나 더 열고 들어가면 이스라엘의 뜰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남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 있지 마시고, 이스라엘 뜰로 들어오십시오. 바깥마당에 있지 마시고 안마당으로 들어오십시오. 이방인이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이스라엘의 뜰을 지나면, 제사장의 뜰이 있고,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 차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무 때나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었지만 모세는 특별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때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성소로 들어오십시오. 성전 마당만 밟다가 돌아가지 마시고, 진정한 경배자가 되십시오.
두 증인
3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두 증인은 마지막 때에 모세와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예수님의 십자가의 증인된 교회와 사역자들의 표상입니다. 누가복음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을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사역자라고 했습니다. 2는 성경에서 증인의 숫자입니다.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교회와 하나님의 모든 종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두 증인을 “나의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증인입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 속한 순전한 종들이 있습니다.
요즘 교회도 목사도 성도도 세속화되었다고 말합니다. 목회자가 세속화되면서 교회에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목회자들에게 상처를 얼마나 많이 입었는지 목회자 없는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또 목사가 설교를 얼마나 엉터리로 했는지 설교 없는 예배를 만들었습니다. 19세기 말 일본의 기독교 지성이었던 우치무라 간조는 무교회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서구의 제도화된 교회 조직과 교회의 권위에 반발하고, 성경중심의 교회를 주장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이 세속화되고 있고, 많은 교회가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목사 무용론, 교회무용론은 옳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있어야 하고, 목사가 있어야 합니다. 구약 아합 왕 시대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엘리야가 하나님께 나만 남았다고 한탄했을 때 하나님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순결한 종들 7천 명을 남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순결한 교회와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엘리야의 심령을 가진 종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베옷은 상복입니다. 상복은 눈물과 회개, 애통과 겸손을 상징합니다. 베옷은 회개의 옷, 애통의 옷입니다. 그런데 그냥 베옷이 아니라 굵은 베옷이라고 했습니다. 굵은 베옷은 큰 회개, 큰 애통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세속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세와 엘리야의 심령으로 애통해하며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있습니다. 1260일은 환란기간입니다. 두 증인은 이방인에 의해 교회가 마구 짓밟히는 박해에도 무릎 꿇지 않고 회개의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과 무능과 죄악을 통감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성전에 올라간 세리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누가복음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의 기도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굵은 베옷의 기도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여러분! 참회합시다. 마음을 찢고 애통해 합시다. 죄가 관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 목회자, 성도가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모세와 엘리야의 심정을 가진 교회와 성도가 됩시다. 우리 교회가 크게 부르짖는 교회가 됩시다.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습니다. 4절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스가랴 선지자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제 2년 11월 24일 밤에 8개의 환상을 봅니다. 그 중에 다섯 번째 환상이 두 감람나무 환상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께 여쭙니다. “두 감람나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 제가 알지 못합니다.”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두 감람나무를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둘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말을 개역 성경은 “기름 발리운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기름이 발라져 넘쳐흐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말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기름의 아들들”입니다. 교회와 목사와 성도는 기름의 아들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성령님에 의해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에 의해서 거듭 낳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삽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의 아들들입니다. 기름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기름이 발라진 자들입니다.
요즘 안구 건조증이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안구 건조증은 물이 부족하면 생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구 건조증은 물만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물이 감싸고 있는데 물 표면에 기름막이 있다고 합니다. 그 기름막이 얇아지면 물이 빨리 마른다고 합니다. 눈물 층을 수성층이라고 하고, 이 기름 층을 지질층이라고 합니다. 눈물 막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합니다. 눈꺼풀 가장자리에 있는 마이봄선이라는 기름샘에서 분비되며, 눈물이 공기 중으로 쉽게 증발하는 것을 막아주는 코팅 역할을 합니다. 제가 안과 의사가 아니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안구 건조증은 기름이 부족할 때도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눈의 물을 기름막이 보호해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성도 건조증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기름의 아들인데 기름이 부족합니다.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기름을 채우십시오.
또 두 촛대라고 했습니다. 촛대는 교회의 상징입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등(잔)대가 있습니다. 성소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빛이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캄캄합니다. 오직 하나의 빛만이 빛납니다. 바로 등대의 빛입니다. 등대는 이 세상을 비추는 유일한 진리의 빛입니다. 그런데 이 빛은 등대 자체의 빛이 아닙니다. 기름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성령의 기름에 의해서 빛나는 빛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기름의 아들이고, 목사도 기름의 아들이며, 성도도 기름의 아들입니다. 교회도 목사도 성도도 성령님께 붙잡힐 때 빛이 납니다. 뜨겁게 부르짖읍시다. 부르짖을 때 우리 영혼에 기름이 발라집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기름을 바르십시오. 기름의 아들이라는 말씀은 성령님께 붙잡힌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기름의 아들이 됩시다. 기름의 아들이 돼서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진리의 빛이 되십시오. 철학의 빛, 사상의 빛, 지식의 빛, 돈의 빛이 아니라 진리의 빛이 됩시다. 세상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진리의 빛이 되십시오.
두 증인의 권세
두 증인에게는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5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두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불은 물리적인 불이 아닙니다. 불을 뿜는 용처럼 증인이 입으로 불을 뿜어서 원수를 불로 태워서 죽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불은 영적인 불입니다. 이 불은 진리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불은 악을 소멸하는 진리의 힘과 영적 권세를 뜻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한 심판과 권능을 상징합니다. 교회가 가진 권세는 말씀의 권세입니다. 교회의 권세는 칼의 권세나 돈의 권세가 아닙니다. 교회는 약하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말씀의 권세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로 보호를 받고 있고, 말씀의 권세로 세상을 압도합니다. 성도는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성도의 권세는 말씀의 권세입니다.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는 9,000곡 이상의 찬송시와 복음성가를 저술했습니다. 크로스비는 미국에서 찬송가의 여왕 알려져 있습니다. 크로스비의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인애하신 구세주여” 등입니다. 교회에서 참 많이 부르는 찬송가입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1820년 3월 24일에 뉴욕 주 남동부의 조그만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생후 한 달 정도 됐을 때 눈에 고름 같은 것이 끼어 있었습니다. 패니가 태어난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병원도 의사도 없었습니다. 머시 크로스비(엄마)의 오빠 조셉이 의사라고 하는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의사는 패니의 눈에 겨자습포제를 떨어뜨렸습니다. 아기는 팔과 다리를 심하게 떨면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처음엔 다 이렇게 운다고 하면서 하루 이틀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남기곤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기의 검은 눈동자가 거의 사라지고 흰색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눈동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패니는 생후 6주 만에 맹인이 되었습니다.
1년 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크리스비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패니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고 패니의 친구와 선생님이 되어주셨습니다. 특히 성경 교사가 되어주셨습니다. 패니는 두 살 때부터 성경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10살 무렵에 모세오경과 사복음서와 신약의 여러 곳, 그리고 여러 시편과 잠언을 통째로 암송했습니다. 패니는 맹인이었고 너무 불우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말씀이 체질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패니는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암송했는지 물건을 서랍에서 꺼내듯 언제든지 말씀을 꺼내 썼습니다. 패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성경책이여, 난 경외함으로 경배하네, 각 구절마다 얼마나 큰 기쁨을 보는지! 루비보다 더 내게 소중한, 내 어린 시절 신앙의 책이여!” 패니는 1915년에 96세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 평균 연령은 25세 정도였습니다. 그때 96세를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두 배 이상을 살았습니다. 말씀이 우리 인생을 보호합니다.
두 증인에게 세 가지 권세가 있습니다. 6절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여기 ‘권능’이 헬라어로 엑수시아입니다. 엑수시아는 에크와 우시아의 합성어입니다. 에크는 ‘~로부터’라는 뜻이고, 우시아는 본질, 본체라는 뜻입니다. 엑수시아은 본질로부터 나오는 힘이나 권위입니다. 힘의 본질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의 본질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세가 진짜 권세입니다. 두 증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세가 있습니다. 교회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 나오는 힘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진짜 힘이 있습니다.
첫째 권세가 하늘을 닫는 권세입니다.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일은 하늘을 닫는 일입니다. 지금 보면 코로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 정부와 언론이 교회가 코로나 숙주인 것처럼 욕했습니다. 전철, 버스, 마트, 백화점 문 닫은 곳 없습니다.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더니 목사님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을 닫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8: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일은 하늘을 매는 일입니다. 학교 다닐 때 학교에 이명박 대통령이 강연을 왔습니다. 서울 시장하기 전입니다. 기업가로 강연을 왔습니다. 이 대통령이 소련에 갔을 때 고르바초프가 만나자고 하더래요. 고르바초프는 소련에 시장 경제를 도입했던 인물입니다. 구소련을 해체하는데 일조한 사람입니다. 이야기 중에 왜 소련이 이렇게 못사는 나라가 된 줄 아느냐고 묻더래요. 이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고르바초프가 가만히 있더니 하는 말이 예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더래요. 이명박 대통령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고르바초프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구소련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일은 하늘 문을 닫는 행위입니다. 공산국가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교회 문을 닫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전 세계 공산국가가 다 무너지고 이제 다섯 개 남았습니다. 중국, 베트남, 라오스, 쿠바, 그리고 북한까지. 이 나라들 중에 잘 사는 나라 있습니까? 교회를 매는 일은 하늘을 닫는 것입니다.
둘째,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입니다.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의 70프로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물이 피로 변한다는 것은 생명이 파괴됨을 뜻합니다. 은혜는 물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혜로 삽니다. 교회를 치는 일은 은혜를 피로 만드는 일입니다.
셋째, 재앙으로 땅을 치는 권세입니다.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땅은 이 세상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아비는 마귀라고 했습니다. 친다는 말은 때려눕힌다는 뜻입니다. 두 증인에게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악의 세력을 멸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말씀에 있습니다. 진짜 권세는 복음에 있습니다. 이 세상 칼의 권세는 진짜 힘이 아닙니다. 돈은 가짜 힘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압도하며 사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 이전글 | 우리 시대의 유두고 |
|---|---|
| 다음글 | 코리안 프레어, 부르짖으라 |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