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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명장면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수업 중에 소리를 지르게 하는 장면입니다. 수업 중 키팅 선생님은 반에서 가장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어서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토드 앤더슨을 교단 앞으로 불러냅니다. 선생님은 토드에게 억눌린 감정을 터뜨리게 하려고 "야만적인 포효(Barbaric YAWP)를 질러보라"고 합니다. 토드가 망설이다가 아주 작게 소리를 지릅니다. 선생님은 만족하지 않고 더 크게 지르라고 합니다. 토드가 온 힘을 다해 크게 소리를 지르는 순간 내면에서 꽉 봉인되었던 감정이 밖으로 분출됩니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야성을 밖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기세를 몰아서 토드가 눈을 감게 하고 즉흥적으로 시를 읊도록 유도합니다. 토드의 입에서 시가 줄줄 나옵니다. 토드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천재적인 예술성과 억눌린 창조성을 폭발시키며 반 친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습니다. 토드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을 때 속에 억눌려 있던 재능이 표출되었습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시편 18: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환난 속에서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부르짖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생각지 못한 은밀한 일과 구원을 베푸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부르짖으십시오. 크게 소리 지르는 행위는 아주 강력한 감정 정화의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새벽에 일찍 기도하러 나올 때가 있습니다. 밑에 노래방에서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소리 지르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소리를 지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다윗이 소리쳐 기도하지 않았다면 너무 힘들어서 미쳤든지 우울증에 걸렸든지 자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역사상 가장 탁월한 신앙인 중에 하나가 됐습니다. 소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발 하나님을 소리쳐 불러보십시오. 교회 다니면 목사 말 좀 들어 보세요.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말씀을 좀 들으세요. 손해 안 납니다. 부르짖으세요.
예레미야서에는 유다를 포함한 주변 10개 나라에 대한 멸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집트, 블레셋, 모압, 시리아, 바벨론 등. 유다를 포함한 이 나라들의 멸망 이유는 딱 하나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9개국은 망해도 다시 회복된다는 예언이 없는데 유다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선지자는 오직 유다에만 회복을 예언합니다. 이것이 선민이 가지고 있는 특별 은혜입니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고통이 멸망으로 끝날 수 있지만 선택받은 사람들은 고통이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회복이 있습니다. 혹시 건강 문제, 자녀문제, 물질문제, 사람문제, 직장문제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그 고난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복을 소망하십시오. 회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회복은 어떻게 올까요? 말씀으로 옵니다.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1절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 때는 BC 588년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을 때입니다. 유다가 망하기 직전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감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망하는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소통 전문가인 김창옥 씨가 대학을 떨어졌습니다. 전문대를 지원했는대 전문대도 떨어졌습니다. 엄마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막둥이는 데굴박에 똥만 찼다. 똥 멍청이다.” ‘그러면 나는 살 가치가 없지.’ 이렇게 생각한 김창옥은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하던 대로 해.” 이 말이 김창옥을 살렸습니다. 절망에서 사람들을 건져주고 성공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에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또 회복은 기도를 통해 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라입니다. 카라는 목청이 터질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며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유다가 처한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고, 유다 백성들은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아질 어떤 기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장차 있을 회복을 소망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은밀한 일이 히브리어로 바차르입니다. 바차르는 ‘차단하다’, ‘가까이 하기 어렵게 만들다’, ‘도달하기 어렵게 만들다’는 뜻입니다. 은밀한 일은 인간에게 차단된 일,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일,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일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은밀한 일은 사람에게 속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부르짖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밀한 일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께만 속한 은밀한 일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부르짖으십시오.
교회 건너 편에 노래방이 있습니다. 봄가을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노래를 하는데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몰라요. 궁금해서 내려다봤더니 난리가 났어요. 어떤 때는 새벽 3-4시까지 노래를 해요. 세상에서 소리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나오셔서 소리를 지르세요.
초기 한국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기도에 있습니다. 새벽기도, 산기도, 통성기도 등 한국교회만의 아주 독특한 기도 모습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회에서 산 기도를 많이 갔습니다. 어른들이 산 기도를 가면 소나무 뿌리를 하나 뽑고 와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무가 뽑힐 정도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또 통성기도가 유명합니다. 통성기도를 시작할 때 주여 삼창을 합니다. 왜 3창을 할까요? 한국 사람은 3이라는 숫자를 많이 씁니다. 만세 3창이라고 합니다. 삼 세 번이라고 합니다. 삼고초려, 삼복더위, 단군신화의 삼신(三神, 환인, 환웅, 단군) 이야기, 삼짓날(음력 3월 3일, 봄이 시작되는 길일), 삼신할머니 등등. 그래서 주여 삼창을 미신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너무 광신적이다”, “하나님이 귀를 먹었느냐? 그래야 하나님이 들으시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여 삼창이 기도에 집중할 뿐만 아니라 깊은 기도의 세계에 들어가는데 매우 효과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합심 기도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전심으로 기도하는 일에도 아주 효과적입니다.
미국 풀러 신학교에 피터 와그너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2016년에 별세했습니다. 와그너 교수는 <교회 성장학>으로 아주 유명한 세계적인 교수였고 풀러 신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신학교입니다. 피터 와그너 교수는 한국교회 부흥을 연구하면서 한국교회의 기도 양식에 주목했습니다. 와그너 교수는 한국 교회 부흥의 원인 중에 하나를 주여 삼창을 통한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는 주여 삼창에 '코리안 프레어(Korean Prayer)'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교회성장과 기도>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주여 삼창을 실습시켰습니다. 주여 삼창을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하도록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또 교회에도 '주여 삼창'을 보급했습니다. 주여 삼창은 한국교회에만 있습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한국교회에 각종 프로그램의 붐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한국교회에 산기도, 통성기도, 주여 삼창이 사라졌습니다. 기도원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주여 삼창이 사라졌을까요? 머리는 커졌는데 뜨거운 가슴, 열렬한 기도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간절함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1990년대 와그너 교수는 한국교회의 부흥이 끝났다고 진단하고 한국교회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한국 교회 부흥에는 새벽기도, 산기도, 통성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여 삼창이 있었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외치며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실 때 길에 앉아있던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하자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짖었을 때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고쳐주셨습니다. 시편 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라고 했고, 시편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부르짖으십시오. 기도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목청을 높여 외쳐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회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회복을 소망하신다면 부르짖으십시오. ‘주여’를 외치십시오. 고통에 억눌려 있지 마십시오. 부르짖으면 고통이 축복이 됩니다. 부르짖지 않으면 고통이 고통으로 끝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체면은 내려놓고 외쳐보십시오. 애통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터트리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면 고쳐서 낫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절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제가 복도에 앉아서 책을 봅니다. 복도에 앉으면 아파트와 이 건물 사이에 있는 공원이 보입니다. 뷰가 괜찮습니다. 공원에 메타세쿼이아 나무 여러 그루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유독 큽니다. 제가 12-3년 전에 여기 왔을 때 아주 작았는데 지금은 6층 높이까지 올라왔습니다. 아파트가 약간 언덕에 있으니까 7층 높이 정도 되는 것입니다. 제 작년에는 4층 바닥에서 4층 천정까지 자랐습니다. 2m 20cm 정도 자란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4층 천정에서 5층 바닥까지 자랐습니다. 40cm 정도 자란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왜 적게 자랐는지는 모릅니다. 나무 꼭대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관층 생태학자(Canopy Ecologist)라고 합니다. 수관은 나무의 윗부분을 말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나무 꼭대기에 신비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로프 하나로 100m 높이의 나무를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를 관찰합니다. 저는 여기 앉아서 꼭대기를 관찰했습니다. 이 나무 꼭대기에 까치를 비롯한 새들이 와서 앉았다 가곤 했습니다. 앉을 때마다 가지가 꺾일 정도로 많이 휘었습니다. 지난겨울 어느 날에 보니까 가운데 가지가 꺾였습니다. 가지가 꺾여 45도 이상 기울어졌습니다. 가운데 줄기가 꺾이면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봄이 됐습니다. 꺾인 가지 바로 밑에서 가지들이 무성하게 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운데 가지가 꺾었으니까 그 가지들 중에 하나가 위로 치고 올라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꺾인 가운데 가지가 조금씩 세워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밑에 가지가 무성하게 나서 부러져서 쓰러진 나무를 조금씩 밀어서 세워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50도 60도 정도까지 세워지더니 60도 70도까지 세워졌습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는 70도 이상 세워졌습니다. 화요일에 나무가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문득 ‘옆에 있는 가지들이 밀어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부러진 가지가 다시 회복이 되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자연계에 주신 회복능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에는 하나님이 주신 회복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넘어가면 스스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고쳐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고쳐주셔서 처음처럼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7절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샬롬이라는 말은 평안이라는 뜻입니다. 샬롬이라는 말에 처음 상태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 왼쪽 어깨에 50견이 왔습니다. 지금은 많이 회복돼서 불편함이 많이 없어졌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씻을 때도 아프고, 머리 감을 때도 아프고, 옷을 입을 때 아프고, 화장실 갈 때도 아프고, 물건을 들 때도 아프고, 순간순간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아파서 악 하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90프로 정도 회복됐는데 아직도 아플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 어깨가 100프로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샬롬입니다. 샬롬은 80프로 회복도 아니고 90프로 회복도 아닙니다. 100프로 회복입니다.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 어깨는 지금 샬롬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삶이든, 건강이든, 관계이든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의 처음 상태는 하나님 앞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샬롬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떠났기 때문에 샬롬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길이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르짖으세요. 부르짖어야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부르짖으면 죄악을 사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8절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정하게 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타헤르입니다. 타헤르는 한 점 어두운 구석도 없이 완전히 밝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 점 그늘도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목사다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한쪽에 항상 그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 좋아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그늘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대부분 종교 의식적으로 불결한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례로 사용되었습니다, 방송인 홍진경 씨가 어떤 프로에 나와서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이란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홍진경 씨는 이 말을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쓴 것 같습니다. 저는 홍진경 씨의 이 말이 전혀 거리낌이 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거리낌이 없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천국에 가야지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땅에서 내 죄를 사해주셔서 전혀 거리낌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죄를 한 점도 없이 깨끗하게 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게 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한 점도 없이 깨끗하게 씻어버리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완전히 깨끗하게 씻깁니다. 한 점도 없습니다. 클리어 클리어 완전 클리어 해집니다. 이것이 진정한 샬롬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처음 상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십시오. 예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그 분은 우리 마음을 완전 깨끗하게 하십니다.
부르짖으면 나의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9절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기쁜’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사손입니다. 사손은 펄쩍펄쩍 뛰며 소리치며 기뻐한다는 의미입니다. 미소 짓는 정도 기쁨이 아닙니다. 껄껄 웃는 정도의 기쁨이 아닙니다. 너무 좋아서 소리치고 환호하며 뛰는 기쁨입니다. 감출 수 없는 기쁨입니다. 넘치는 기쁨입니다. 폭발하는 기쁨입니다. 잔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사손은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서만 유일하게 한번 사용된 말입니다. 부르짖으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부르짖으면 펄쩍펄쩍 뛰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10-11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심판으로 적막하고 황폐했던 거리에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다시 난다고 했습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쁨과 웃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처음 같이 고쳐주시고, 죄를 사해주시고, 마지막으로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것이 진짜 웃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마지막에 꼭 웃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중학생 때 미국에 칼 루이스라는 전설적인 육상선수가 있었습니다. 1984년 로스엔젤리스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땄습니다. 단거리 육상의 신기록 제조기라 불렸던 칼 루이스에게는 잘 알려진 일화가 하나가 있습니다. 그는 100미터 경주에서 80미터 지점에 오면 항상 씨익 웃었습니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나머지 20미터는 웃기 때문에 더 잘 달릴 수 있다.” 100m 선수는 처음 30m까지는 속도를 끌어올리는데 온 힘을 다 쏟습니다. 30~60m 구간에서는 가속이 붙어 속도가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마지막 60~100m 구간은 떨어지는 속도를 체력과 정신력으로 버팁니다. 정말 힘든 구간입니다. 나머지 20m은 이를 악물고 죽어라 뛰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구간입니다. 너무 힘들어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칼 루이스는 이때 웃는 것입니다. 도저히 웃을 수 없을 때 웃는 것입니다. 칼 루이스는 80미터지점까지는 3-4위 정도로 달리다가 마지막 20미터를 남겨놓고 1위로 올라갑니다. 이때 치고 올라가는 힘이 웃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80미터 지점에서 싱긋 웃으면 파워가 생겨 1위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잔뜩 찡그리기 쉬운 고통의 순간을 오히려 웃으며 달리면 더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힘들 때 웃으면 결국에는 웃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복이 와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복이 오는 것입니다.
미국 37대 대통령인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에 보도된 자신의 얼굴을 보니 어느 사진에도 웃음이 없었습니다. 항상 무표정했습니다. 그 후 닉슨은 매일 웃는 얼굴을 만드는 연습을 했습니다. 당선될 당시의 닉슨은 어디에서든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돼서 웃은 것이 아니라 웃어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끝은 희락, 기쁨, 환희, 승리입니다. 크리스천은 끝에 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웃으세요. 웃게 될 것을 믿고 지금 웃으세요.
회복도 하나님, 사죄도 하나님,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것도 하나님입니다. 경제 회복, 건강 회복, 가정 회복,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내가 지은 죄도 하나님이 용서해 주셔야 합니다. 잃어버리고 빼앗긴 모든 것들의 회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옵니다. 그리고 부르짖으십시오. 있는 힘을 다해 간절히 부르짖으십시오. 부르짖을 때 회복이 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2-3절) 부르짖을 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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