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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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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사기 7:19~23
주일오전예배 | 2026-07-26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가 지난 주간에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다가 300명이 135,000명을 선제공격해서 이길수 있는 수학적 확률이 몇 프로 정도 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AI에게 물었더니 이길 확률이 0%에 수렴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5% 혹은 10%는 나올 줄 알았습니다. AI는 특수부대가 지형을 이용해 야간 기습 작전으로 적의 지휘부를 마비시킬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아주 미세하게 승리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특수한 상황이라도 승리의 확률은 1% 미만으로 아주 희박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AI가 종교적인 기적 요소가 있다면 승리 확률은 100%라고 했습니다. AI가 그 예로 성경의 기드온 300 용사를 들었습니다. 종교적 요소, 즉 기적이 없다면 300명이 135,000명을 이기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은 출애굽의 기적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지혜를 믿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사람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러 가는데 손에 지팡이만 들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골리앗의 키는 약 2m 90cm입니다. 갑옷의 무게는 57kg(놋 5,000세겔)입니다. 완전 무장했습니다. 16세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돌멩이를 들고 달려갔다는 말은 구원은 오직 여호와의 이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드온 300명과 135,000명의 전투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음을 보여준 이스라엘의 구원사건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질병, 돈, 직장, 사람, 사건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만이 하시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사건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이고, 오직 예수 이름이고, 오직 십자가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드온은 밤 10시경에 미디안 진영을 쳤습니다. 19절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구약 성경 시대 히브리 사람들은 밤을 3구분했습니다. 6시부터 10시까지는 1경, 10시부터 2시까지는 2경, 그리고 2시부터 6시까지는 3경입니다. 이경 초는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입니다. 지금은 10시가 늦은 저녁 정도이지만 그때는 한 밤 중이었습니다. 잠에 깊이 곯아 떨어져 있는 시간입니다. 기드온은 10시에 보초병이 교대할 때 공격을 했습니다. 기드온이 초저녁에 미디안 진영을 부라와 함께 침투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 미디안 진영의 거리는 6-7킬로입니다. 걸어서 1시간 30분 거리입니다. 왕복 세 시간 거리입니다. 빨리 걸으면 2-30분을 단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부 구간을 말로 이동했다면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드온이 6시 30분에 미디안 진영으로 갔다고 가정한다면 늦어도 8시 30분 이전에 돌아왔어야지 10시 초에 공격이 가능합니다. 기드온이 광징히 신속하게 움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경 초”라는 말은 기드온이 정탐과 공격을 속전속결로 아주 빠르게 진행했음을 보여줍니다. 기드온은 돌아오자마자 하나님의 명령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기 전에는 숨어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소심한 겁쟁이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후에는 양털로 하나님을 시험하며 갈등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고민쟁이, 갈등쟁이였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미디안 진영에 들어가서 미디안 사람들의 말을 들은 후에 하나님께 완전히 엎드리는 경배자가 됐습니다. 돌아왔을 때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로 움직이는 행동파가 됐습니다. 기드온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행동에서 흔들림이나 불안, 두려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사로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겁쟁이가 행동파로 바뀌었습니다. 겁쟁이가 용사가 됐습니다. 은혜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여러분! 은혜 받으십시오. 그래서 기드온처럼 확실하게 변화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락가락하는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오. 갈대 같은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오. 선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이전에는 300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워했는데 은혜를 받고 나니 300명이 최신 스텔스 폭격기처럼 강력한 무기로 느껴졌습니다. 이전에는 300명이 소총 몇 자루처럼 보잘 것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핵폭탄처럼 위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불가능이 가능해보였습니다.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고 예수님께 이게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체념하듯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으로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기드온의 행동에 어떤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행동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으로 미디안 135,000명을 친 것과 같은 아주 무모한 작전이 우리나라 역사에 있었습니다.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확률이 5,000분의 1이었습니다. 5,000분의 1, 0.02%란 말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0% 수렴하는 작전입니다. 어떤 사가는 인천상륙작전을 역사상 가장 미친 도박이라고 했고, 당시 미 극동 사령관이었던 찰스 조이 제독은 인천상륙작전을 “자살 작전”이라고 했습니다. 기드온과 흡사한 작전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첫째, 인천의 조수간만의 차가 10m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치입니다. 캐나다의 펀디만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인천입니다. 물이 들어왔다가 빠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군 작전을 수행하기 아주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다시 물이 들어올 때까지 병사들과 배가 갯벌에 갇혀 적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집중포화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천으로 들어오는 수로는 단 한 곳, 비어수로뿐이었습니다. 이 수로는 폭이 매우 좁고 수심이 얕아 대규모 함대가 동시에 진격하지 못하고, 배가 한 줄로 길게 늘어설 수밖에 없는 지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함대가 일렬로 길게 늘어설 경우, 적의 해안포나 기뢰(수뢰)에 선두가 타격당하면 뒤따르는 함선들까지 오도 가도 못하고 전멸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게다가 인천에 상륙 가능한 날짜는 1년 중 3일 뿐이었습니다. 9월 15일, 10월 11일, 11월 3일, 10월과 11월은 날씨가 나빠져 상륙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니까 상륙 가능한 날짜는 9월 15일 단 하루뿐이었습니다. 그것도 2-3시간뿐이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노르망디상륙작전은 1년 동안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은 1달 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찰스 조이 해군 제독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해군작전상 모든 지리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성공확률은 5000분의 1이다. 이것은 자살 작전이다.” 합동참모부는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맥아더는 이 반대 의견을 들으면서 확신을 굳혔습니다. 그 논리는 놀랍도록 단순했습니다.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적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합참도, 해군도 인천에 대규모 상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북한군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천은 가장 무방비한 곳이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제인(Jane)과 케지아(Kezia)가 두 개가 북상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에 군대 앞을 태풍이 가로막았을 때 맥아더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저 무법자들에게 송두리째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국민들은 어린 자식들을 들쳐 업고 포탄 속에 뒤섞여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이시여, 도탄에 빠진 한국인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저들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을 되찾게 하옵소서. … 주님! 간절히 비옵기는 저희들의 숭고한 뜻을 저버리지 마옵시고 불어오는 바람을 멈추어 물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맥아더의 기도처럼 바람이 멈추고 물길은 열렸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습니다. 태풍 때문에 북한 공산당은 인천상륙작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기적이 성공한 덕분이 국군과 연합군은 단숨에 전세를 뒤집고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전쟁사를 바꾼 기적의 대 반전극이었습니다.

 

1950년 9월 29일 맥아더는 서울 수복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우리 부대는 한국의 옛 서울을 해방시켰습니다. 이 거리는 잔학무도한 공산주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으며 시민들은 다시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적인 승리를 우리에게 되찾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다 같이 이런 하나님을 위해 나와 함께 주기도문을 외우도록 합시다.” 우리나라는 서울 한 복판에서 주기도문을 외운 나라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52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노병은 이제 물러갑니다.” <맥아더 회고록에서> 인천상륙작전이 하나님의 계시였다는 고백입니다. 그의 믿음과 도전이 지금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은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구원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사랑하십니다.

 

 

300명이 100명씩 세 대로 나누어 미디안 진영 가까이에 가서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쉈습니다. 그리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나팔을 들고 불며 외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이 칼이다.” 20절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칼이여! 여호와를 위하라. 그리고 기드온을 위하라.”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주님의 칼이다! 기드온의 칼이다!” 깨뜨린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이 주님을 위한 칼이고, 기드온을 위한 칼이라는 의미입니다. 항아리는 질그릇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질그릇에 비유합니다. 세상 정욕, 미움, 시기의 항아리를 깨드리는 행위가 주님을 위한 칼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 주님의 칼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나팔과 복음의 횃불이 주님을 위한 칼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한 칼이 곧 나를 위한 칼입니다.

 

횃불과 나팔은 둘 다 복음 진리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진리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횃불은 소리 없이 세상을 비추는 진리입니다. 진리가 소리 없이 비추기만 해도 악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 나팔을 불 듯 진리를 크게 외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팔은 선포를 의미합니다. 악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나팔을 불 듯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십시오.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어둠이 덮쳐버립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작은 소리라도 소리를 내십시오. 5-6년 전입니다. 봉서산에 올라가면 팔각정 밑에 여러 개의 벤치프레스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워서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사람들이 누워서 운동하는 곳에 올라가서 발로 밟으며 운동을 하는 거예요. 아무도 말하지 않아요. 저도 말하기 싫더라고요. 옆에서 아내가 눈치를 채고 가만히 있으라는 거예요. 하지만 어른이 돼서 침묵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사람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300명처럼 우리 자아의 항아리를 깨뜨리고, 세상을 향해 복음의 횃불을 들고, 진리의 나팔을 부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칼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칼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이 성도의 칼입니다. 이것이 오늘 성도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위한 진리의 삶을 사십시오. 여기에 인생의 참된 가치가 있습니다.

 

“칼이여! 여호와를 위하라. 그리고 기드온을 위하라.”라는 말씀을 미디안 병사들이 들고 있는 칼을 향한 300명의 선포이기도 합니다. 300명에게는 칼이 없습니다. 칼은 미디안 병사들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300명은 미디안이 들고 있는 칼을 향해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 칼은 이스라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는데 사용됐습니다. 불의한 일에 쓰였습니다. 악의 도구였습니다. 마귀를 위한 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미디안을 겨누라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서 쓰임 받으라는 선포입니다. 선한 도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도구가 되라는 선포입니다. 원수를 겨누라는 선포입니다. 그동안 미디안의 칼이 내 가정을 짓밟고, 내 돈을 빼앗아 가고, 내 행복을 빼앗아 갔습니다. 미디안의 칼은 내 삶에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300명은 그 칼 때문은 설움을 당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300명은 하나님 앞에서 미디안에게 짓밟힌 억울함과 울분과 통한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억눌림을 터트려버렸습니다. “칼이여! 여호와를 위하라. 그리고 기드온을 위하라.” 마귀를 위한 칼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칼이 되라는 선포입니다. 우리도 300명처럼 외칩니다. “칼이여! 이제 이스라엘을 위하라. 칼이여! 이제 원수들을 위하지 말고, 나를 위하라. 칼이여! 이제 마귀에게 내 원수를 갚아 달라.” 이 말은 그냥 소리만 지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리의 편에 서서 진리를 외치라는 뜻입니다.

 

300명이 나팔을 불고 “칼이여!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하라”고 외치자 미디안 군대가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21절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선포의 위력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불행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고통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질병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세상에 억눌려 있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2-23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는 일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사람이 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선포하면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말하고 표현하십시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말을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식당에 가면 주문을 해야 음식을 주고, 옷 가게에 가면 옷을 달라고 해야 옷을 줍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좋은지 싫은지 모릅니다. 진리를 말하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선포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 이름이 전략이었고, 예수 이름이 계획이었고, 예수 이름이 무기였습니다. 신명기 28:10에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위해 불리는 것을 보면 나를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10:17) 잠언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300명이 여호와의 이름을 믿음으로 선포하자 여호와께서 싸우셨습니다. 21-22절을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라고 했습니다. 300명이 145,00명을 에워싸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미디안 군대는 300명이 무서워서 멸망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적군은 135,000명입니다. 300명이 나팔을 불어봤자 얼마나 되겠습니까? 처음에는 깜짝 놀라겠지만 금방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진영이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아우성치고, 도망가고, 서로 찌르고, 난장판이 됐습니다.

 

민수기 10:9에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전쟁에 나갈 때 나팔을 크게 불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00명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팔을 불었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300명이 한 일은 항아리를 부순 것 밖에는 없습니다.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이름을 외친 것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여호와께서 싸우셨습니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외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옛 이름으로 말하고, 진리를 외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300명은 얼마나 신기하고 신이 났을까요? 완전한 승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한 가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가 32,000명이었습니다. 먼저 두려워 떠는 자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사람 9,700명이 돌아갔습니다. 300명과 이들과 차이가 무엇일까요? 재능, 실력의 차이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원수 앞에서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 수 있는 믿음의 차이입니다. 원수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외칠 수 있는 믿음의 차이입니다. 300명이 135,000명 적군 앞에서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며,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는 일은 자살 작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여기 있으니 와서 제발 우리를 죽여 달라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나팔을 불면 내가 너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나팔을 불 수 있는 믿음, 이것이 300명입니다. 두려워 떠는 사람이 나팔을 불기 위해 왔다면 나팔을 불기 전에 너무 두려워 이미 넋이 나가 우왕좌왕하다가 미디안에게 짓밟혔을지도 모릅니다. 믿음이 승리의 조건입니다.

 

믿음으로 300명이 물고를 트자 돌아갔던 31,700명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23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기드온이 사람들을 보내 돌아갔던 사람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도 불렀습니다. 24절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에브라임 지파는 요단강 수로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도 죽였습니다. 25절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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