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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숫자를 의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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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사기 7:1~8
주일오전예배 | 2026-07-1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꼭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6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가 9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147개국 중 67위에 올랐습니다. 작년은 58위였고, 2024년은 52위였습니다. 3년 연속 하락했습니다. 핀란드는 왜 행복지수가 이렇게 높을까요? 핀란드의 알토 대학교의 프랭크 마르텔라 박사는 그 이유를 세 가지 꼽았습니다. 셋째는 커뮤니티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연이 주는 혜택을 간과하지 않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핀란드에 유명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말라” 자랑은 비교의식에서 나옵니다. 우월의식에서 나옵니다. 자랑은 교만입니다. 자랑은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된 것(능력, 성과, 소유 등)을 높이 드러내어 남에게 알리고 뽐내는 행위입니다. 자랑하지 마십시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뛸 때입니다.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했습니다. 기자가 두 골을 넣고 자랑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손흥민이 불편한 얼굴로 대답합니다. “자꾸 내가 골을 넣었다고 하니까 내가 힘들다. 나는 골을 넣은 게 아니고 마지막 터치만 했을 뿐이다.” 개인의 골이 아니라 팀의 골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없으면 나는 골을 넣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골의 영광을 팀에 돌렸습니다. 손흥민이 자랑을 했다면 참 꼴불견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십시오. 저들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다고. 그리고 영광을 저 위에 계신 하나님께 돌리십시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다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은혜라고. 자기 자랑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예레미야 9:23-2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자랑하십시오. 하나님 자랑이 행복의 참된 길입니다.

 

 

 

기드온이 오브라에서 나팔을 불어 병력을 모았습니다. 이때 모인 인원이 32,000명입니다. 적군은 135,000명입니다. 적군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입니다. 기드온은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치하지만 양털 시험 기도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확인하고 32,000명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갑니다. 1절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기드온 군대는 하롯 샘에 진을 쳤고, 미디안 군대는 모레 산 앞쪽에 진을 쳤습니다. 하롯 샘에서 모레까지 거리는 6.5km입니다. 중간이 평지이기 때문에 육안으로 미디안 군대가 잘 보였을 것입니다. 적의 군대 숫자가 메뚜기 떼처럼 까마득했습니다. 적군의 숫자에 기드온의 군대의 기가 확 죽었습니다. 벌벌 떨었습니다. 사람들은 숫자에 우쭐하고 숫자에 기가 죽습니다. 통장에 찍힌 돈의 숫자에 따라 불안하기도 하고 평안하기도 합니다. 점수 숫자, 등수에 따라 우쭐하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합니다. 사람은 마음이 숫자에 좌우됩니다.

 

숫자에 기가 확 죽어 있는데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 숫자가 많다.” 2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135,000명에 비하면 32,000명 너무 적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많다고 하셨을까요? 자기 자랑 때문입니다. 자랑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파아르입니다. 파아르는 ‘아름답게 하다’, ‘장식하다’, ‘꾸미다’, ‘뽐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많다고 하신 이유는 전쟁 후에 자기들의 능력으로 이겼다며 뽐낼까봐서입니다. 뽐내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일은 자랑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이라고 했습니다. 거스른다는 말은 대항하다는 의미입니다. 자랑은 은혜를 부정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여러분! 자랑하지 마십시오. 자랑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두려워 떠는 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3절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32,000명 중에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습니다. 적군 숫자의 1/13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대로 많다는 것입니다. 더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9,700명이 돌아가고 300명이 남았습니다. 12절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고 했습니다. “많은 수와 같고 … 수가 많아 … 많음 같은지라” 많다는 것을 계속 언급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숫자에 겁을 먹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기자는 숫자에 겁먹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성경 총 장수가 1189장입니다. 1189장에서 많다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장이 사사기 7장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볼 때 많다, 적다, 크다, 작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많고 적고를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함께 하시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허수에 불과하고, 적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많고, 적고 숫자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많고 적고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마음을 두십시오.

 

세상이 숫자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숫자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숫자 때문에 기가 살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합니다. 전에 저희 교회에 인천에서 이사온 성도님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용암초등학교 입학했습니다. 입학 첫날 아이가 집에 와서 “아빠 우리 집은 몇 평이야!”라고 묻더랍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반에서 친구가 물어봤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입학 첫날 처음 본 아이에게 너희 집 몇 평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못이겠습니까? 부모님이 집에서 매일 숫자 놀음을 하는 것을 듣고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성도님이 주일 예배 마치고 점심을 먹으면서 한탄을 하며 한 말입니다. 사람들이 숫자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아파트 평수, 성적, 1등급, 자동차 배기량, 연봉. 물량공세, 다수결의 원리 등등 이 세상은 숫자로 밀어붙입니다. 숫자가 깡패입니다. 주식하는 사람은 매일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숫자에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합니다. 복권, 로또도 숫자입니다. 세상이 숫자에 숨이 막혀하고, 질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숫자의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고진하 시인의 시 중에 <천국에는 아라비아숫자가 없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의 제목이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입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계량화하고 서열화하는 자본주의 세상을 향한 시인의 탄식입니다. 시인은 사람을 숫자로 평가하지 않는 곳이 '천국'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숫자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을 수, 우, 미, 양, 가로 표기했습니다. 수는 빼어날 수(秀) 자이고, 우는 우수할 우(優) 자입니다. 미는 아름다울 미(美) 자이고, 양은 좋을 양(良) 자입니다. 양(良) 자에는 어질다, 편안하다, 경사스럽다는 뜻도 있습니다. 60점, 양은 편안하고 경사스러운 점수입니다. 가는 옳을 가(可) 자입니다. 59점 이하의 점수에 옳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가능하다고 할 때 ‘가’자애 옳을 가(可) 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59점 이하는 옳은 점수이고 가능성이 있는 점수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성적 평가 방식이 비록 표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이고 낭만적이었습니다.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부터 이 평가방식이 없어지고 등급으로 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1등급, 2등급, 3등급. 소고기처럼 아이들이 숫자로 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숫자에 웃기도 하고, 숫자에 울기도 합니다. 숫자 때문에 우쭐거리기도 하고, 숫자에 기가 죽기도 합니다. 숫자에 낙심하기도 하고, 숫자에 소망을 갖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숫자에 주눅 들거나 쫄리지 맙시다. 숫자에 기죽지 마십시오. 여러분! 숫자에서 자유하십시오.

 

우리나라 전통 귀신 중에 야광귀신이라고 있습니다. 야광귀신은 숫자를 세는 귀신입니다. 야광귀신은 정월 초하루에 인간의 집에 내려와 신발을 세어보고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훔쳐간다고 합니다. 야광귀신은 숫자에 아주 집착합니다. 숫자를 세야 직성이 풀이는 성경입니다. 야광귀신을 물리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집 처마에 채나 거름망을 걸어놓으면 밤새도록 채 구멍을 세다가 날이 새서 신발을 못 훔쳐 간다고 합니다. 별 이상한 귀신도 다 있습니다. 야광귀신이 진짜 있겠습니까? 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죠. 그런데 이 세상이 별 이상한 귀신에 들린 것처럼 숫자에 집착증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숫자에 매이면 불행하고, 멸망할 수 있습니다. 통장잔고, 너무 숫자에 매이지 마십시오. 욕심 부리지 말고 적당하게 사십시오.

 

사울 왕 시대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블레셋 군대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성경은 그 때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무엘상 13:5-6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적군의 숫자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숫자에 눌려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습니다. 남은 사람은 600명뿐이었습니다. 이때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무기든 소년과 함께 적진으로 들어가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4: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백성들이 오늘 요나단이 하나님과 동역했다고 증언합니다. 숫자에 눌리지 않은 한 사람이 하나님과 동역했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시편 33:16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했고, 신명기 20:1에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7:47에는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하나님은 왜 기드온에게 자꾸 숫자를 줄이게 하셨을까요? 숫자에 매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숫자를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힘을 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힘을 다 내려놓게 하기 위해시입니다. 그리고 단 한 가지 힘만 남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시키는 것만 하는 힘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힘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내가 약해질수록 하나님의 힘이 강해집니다. 내 힘이 강할수록 하나님의 힘이 약해집니다. 하나님의 힘이 약해진다는 말은 하나님의 힘이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숫자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숫자에 기죽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숫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숫자에 자유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신가 안 계신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숫자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은 전쟁에 나갈 최종 선발을 물을 어떻게 마시는지를 보고 하셨습니다. 5-6절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하나님은 개울가에서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9,700명은 돌려보내시고, 손으로 물을 떠서 개처럼 핥아먹은 사람 300명을 뽑으셨습니다. 이런 어이없는 기준이 있을까요? 전쟁에 나갈 군사를 뽑는데 힘이 세든가 아니면 싸움을 잘 하든가를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물을 어떻게 마시는지를 보셨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견해는 대략 세 가지입니다. 첫째, 무릎을 꿇고 마신 사람들은 바알 숭배자였다는 것입니다. 평상시 우상에게 무릎을 꿇던 습관이 있어서 물을 마실 때도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돌려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도 무릎을 꿇습니다. 이 해석은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어쨌든 이 세상에 너무 쉽게 무릎을 꿇지는 맙시다.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읍시다.

 

둘째, 사주경계설입니다. 오브라에서 하롯 샘까지 광야길 최소 8km를 걸어왔습니다. 덥고 힘들고 목이 아주 말랐을 것입니다. 적군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9700명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물에 박고 급하게 마음껏 먹었다는 것입니다. 9,700명은 전쟁 중에도 자기 필요를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300명은 목이 마르지만 사주경계를 하면서 물을 조심스럽게 마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자기부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들고 목이 마른 중에도 절제하며 물을 천천히 마신 300명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4절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시험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이 히브리어로 차라프입니다. 차라프는 녹이다, 제련하다, 정련하다, 증명하다, 시험하다는 뜻입니다. 대장장이가 쇠를 제련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쇠를 제련하는 대장장이처럼 물 시험으로 사람들을 제련하셨는데 300명이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제련과정이 있습니다.

 

셋째, 증인설입니다. 10,000명은 22,000명이 돌아갈 때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들입니다. 2/3 이상이 돌아갔습니다. 적군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지켰습니다. 10,000명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9,700명은 300명 못지않게 용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300명만 남겨두셨을까요? 하나님이 원수들을 어떻게 물리치셨는지 세상에 전할 증인으로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연이었다거나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겼다고 억지를 부리지 못하도록 증인으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전할 증인을 필요로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증인이 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루어놓으신 십자가 구원을 전하는 증인이 되십시오. 예수님이 12사도를 뽑으신 이유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사람들이 지지를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300명을 하나님을 위한 최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는 300명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300명과 일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9,700명이 떠날 때 300명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300명을 강하게 붙잡으셨기 때문입니다. 8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머물게 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자크입니다. 하자크는 ‘강하게 하다’, ‘굳세게 하다’, ‘붙잡다’, ‘용기를 내게 하다’는 뜻입니다. 9,700명이 떠날 때 기드온과 300명은 많이 흔들렸습니다. 300명도 9,700명을 따라가려고 했던 같습니다. 적군이 135,000명인데 300명만 남겨놓다니요. 300명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너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300명이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내서 그 자리를 남도록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300명을 붙잡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를 붙잡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최소한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하나님을 위한 최소한이 됩시다.

 

 

 

하나님은 제일 먼저 두려워 떠는 자들을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롯 샘에 진을 쳤고, 미디안은 모레에 진을 쳤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지명 이름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롯은 ‘떨림’, ‘두려워하다’, ‘겁을 먹다’, ‘공포스럽다’는 뜻이고, 모레는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두려움의 교실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무엇일까요? 계속 떠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선생님은 떨림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에 갔는데 담력훈련을 했습니다. 캄캄한데 들어가면 귀신이 나옵니다. 코스 중에 뱀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빨을 뺀 독사입니다. 교관이 뱀을 목에 걸어줍니다.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웃깁니다. 왜냐하면 귀신, 뱀 등이 세트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세트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겁을 먹게 하려고 설정해 놓은 세트입니다. 두려움은 세트에 불과합니다. 이 마귀의 세트 장 안에서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스라엘 군대는 떨림이 있는 곳에서 떨었습니다. 겁을 먹는 곳에서 겁을 먹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떨림이 있는 하롯에서 떠는 사람들은 돌려보내고, 떨지 않는 사람들은 남겨두게 하셨습니다. 떨림이 있는 곳에서 떨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겁을 먹는 곳에서 겁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하롯입니다. 이 세상의 기초는 두려움, 불안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한 일은 하나님이 무서워 숨은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아들이 놋땅에 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성을 쌓았습니다. 왜 성을 쌓았습니까? 두렵고,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인류의 본능입니다. 두려움은 죄인의 본능입니다.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본능대로 사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것을 가지고 인간에게 끊임없이 장난을 칩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두려워하는 마음은 절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을 저버리게 합니다. 걱정, 근심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믿음으로 이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무장하십시오. 하나님은 자녀들은 이 세상 떨림이 있는 곳에서 안 떠는 사람들입니다. 겁을 먹는 곳에서 겁을 안 먹는 것입니다. 이 세상 두려움의 교실에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숫자를 기죽지 말라. 숫자에 자유해라. 두려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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