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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다섯 편의 설교가 있습니다. 첫 번째 설교는 5, 6, 7장입니다. 마태복음 5장 1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하신 귀한 설교라고 해서 5, 6, 7장을 산상보훈, 산상수훈, 산상설교라고 합니다. 두 번째 설교는 10장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하신 설교입니다. 세 번째 설교는 13장입니다. 이 설교는 천국 비유 설교로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하신 설교입니다. 네 번째 설교는 18장으로 교회 공동체에 대한 교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설교는 24, 25장입니다. 24장 3절에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라고 했습니다. 5장 1절과 비슷합니다. 마지막 설교도 산에서 했습니다. 그래서 24, 25장을 두 번째 산상설교라고 합니다. 산상 설교가 하나는 앞에 있고, 다른 하나는 뒤에 있습니다. 5, 6, 7장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고, 24, 25장은 어떻게 천국을 준비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입니다. 천국에 대한 준비입니다.
육상경기에서 4인 릴레이 경주를 할 때 제일 중요한 주자는 네 번째, 마지막 주자입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릴레이 경기를 할 때 세계 최고의 육상 스타였던 우사인 볼트는 항상 자메이카의 마지막 주자로 뛰었습니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4, 25장은 마지막 설교이니 아주 중요한 설교입니다. 마지막 설교는 천국에 대한 준비입니다. 영생에 대한 준비입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천국으로 끝나야 합니다. 지옥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시작과 과정이 좀 부족해도 끝이 좋으면 다 좋습니다. 하지만 끝이 나쁘면 출발과 과정이 아무리 좋았어도 다 좋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끝이 반드시 천국으로 아름답게 끝나기를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얼마나 부자였는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하며 살았습니다. 베옷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2배나 비쌌습니다. 부자는 금보다 더 비싼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얼마나 가난했는지 부자의 집 문에 버려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찌꺼기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개가 헌데를 핥을 정도로 온 몸이 헌데투성이었습니다. 정말 더러웠습니다. 나사로는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였고, 부자는 부자 중에서도 상부자였습니다. 그런데 끝에 역전이 됐습니다. 나사로의 끝은 천국이었고 부자의 끝은 지옥이었습니다. 끝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끝이 좋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누려도 끝이 비참합니다. 끝이 나쁘면 다 나쁘고, 끝이 좋으면 다 좋습니다. 끝이 좋아야 합니다. 제가 사람들을 만나보니 75세, 80세 되면 돈이 그렇게 소용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 것이 소용이 없어집니다. 돈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늙으면 다 소용이 없어집니다. 늙고, 병들고, 약해집니다. 세상 것이 다 소용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끝에 하나님이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끝이 아름다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결혼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 사회 결혼 풍습은 지역마다 가정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유대들은 결혼식을 보통 해가 진 다음 밤에 했습니다. 낮은 덥잖아요. 신부 아버지는 딸을 위해 결혼 잔치를 준비하고 딸의 친구들을 초대해 딸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도록 해줍니다. 신랑은 결혼하는 날이 되면 밤에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갑니다. 이때 신랑이 맨 앞에 섭니다.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까이 가면 신랑의 친구 중에 한 명이 신부의 집에 먼저 가서 신랑이 오고 있다고 알립니다. 그러면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를 방 안에 두고 나가서 신랑 일행을 맞이합니다. 이때 등불을 들지 않은 사람은 강도로 여겨지거나, 이 기쁘고 즐거운 잔치를 훼방하러 온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등불이 꼭 있어야 합니다.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어가서 예식을 마치면 신부는 들러리들과 함께 신랑의 집으로 갑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혼인 잔칫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집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립니다. 외부로부터 초청받지 않는 사람이나 불량한 사람, 그리고 도적이나 강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2절에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는 ‘그 종말의 때에’ 또는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때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 성도들을 결혼식 때 밤에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열 명의 신부 들러리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혼식 들러리 열 명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롭다고 하셨습니다. 10은 만수로 이 땅의 모든 교인들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교회 안에 미련한 사람이 있고, 슬기로운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10은 우리 등대교회 모든 교우들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이 중에 일부는 슬기롭고, 일부는 미련하다는 말씀입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똑같이 찬송하고, 똑같이 앉아 있는데 미련한 교인이 있고 슬기로운 교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살펴보면서 나는 미련한 처녀인지 슬기로운 처녀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미련한 처녀는 등은 있지만 기름은 없고, 슬기 있는 처녀는 등도 있고 기름도 있습니다. 3-4절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여기 그릇은 휴대용 그릇입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휴대용 그릇에 기름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을 볼 때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에 기름이 부어져 있고, 등에 기름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기름을 보충할 수 있도록 휴대용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이 넉넉합니다. 기름을 그릇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사온 기름이 아닙니다. 신부의 부모님이 집 안에 신부의 친구들이 쓸 수 있도록 기름을 준비해놓은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 준비된 기름을 휴대용 그릇에 담았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집 안에 있는 기름을 담지도 않았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등과 기름을 따로따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갖고 있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즉시로 보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슬기 있는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점은 준비성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강조점은 등과 기름의 철저한 준비성에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등과 기름을 잊지 마십시오. 등만 있으면 안 됩니다. 등과 기름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등과 기름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주장이 등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기름은 성령이라는 해석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등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길을 인도하는 등이 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등이 있는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왼쪽에 등잔대가 있습니다. 등잔대에는 항상 불이 켜 있습니다. 등대에 불이 켜 있다는 말씀은 등대에 기름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성소에 들어가서 등대에 기름을 주입했습니다. 등에 불이 꺼졌다는 것은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 속에 말씀의 등과 성령의 기름이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이 나에게 등과 기름이 있다는 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의 기름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이름이 없다는 말은 불이 꺼졌다는 뜻입니다. 예수 이름이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의 기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알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등은 있는데 기름이 없었습니다. 등은 있는데 불이 꺼졌습니다. 꺼진 등은 무용지물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성경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책이 성경입니다. 미국 호텔 48%가 룸에 성경을 비치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95% 이상이 성경을 비치했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 집사님이 장례식에 갔더니 장례식장에 성경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경이 흔한 책이 됐습니다. 그런데 기름이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매주일 설교를 듣는데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열 처녀 모두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섯에게는 기름이 있고, 나머지 다섯에게는 기름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말씀의 등과 성령의 기름이 있습니까? 요즘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습니다. 머리만 커졌습니다. 교회에 싸우는 소리가 많이 납니다. 머리만 커져서 그렀습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싸웁니다. 성령의 기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돌아가려면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기름이 없으면 기계가 망가집니다. 교회에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기름이 없으면 망가집니다. 싸우고 다투고 깨집니다. 교회에 성령의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도 성령의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부산 수영로교회 담임하셨던 정필도 목사님이 미국 유학을 가셨습니다. 공부할 양이 많아 시간에 쫓겨 기도도 못하고 성경도 못 읽었습니다. 너무 답답했습니다. 영혼이 메말랐습니다. 기도할 곳을 찾다보니 숙소 바로 앞에 개집 같은 조그만 집이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그 속으로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30분 동안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루를 기도와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살 것 같더래요. 그리고 정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학자들이 기도는 하지 않고 공부만 하니까 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목사님 방송 설교로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역시 훌륭한 목사님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신학교 다닐 때 공부한다고 성경을 안 읽었거든요.
기름을 파는 자들이 나옵니다. 기름을 파는 사람이 복수입니다. 기름을 파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많습니다. 목사는 기름을 파는 사람은 아닙니다. 성령은 팔고 살 수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본문에 기름을 파는 자들을 목사에게 비유해보려고 합니다. 24장 45절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서 영적 양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터널 저쪽 아래에서 빵집을 경영했습니다. 손님들이 막 들어오고 저는 그 손님들에게 빵을 팔았습니다. 사장이 있었고, 직원들이 있었고, 저는 중간 경영자였습니다. 교회는 영혼의 빵집이고, 저는 그 빵집에서 영혼의 빵을 파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물세례를 주면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을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기름을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목사를 기름을 파는 사람에 비유해도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저는 기름을 파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기름을 파는 곳, 영적 주유소에 비유해보겠습니다. 제가 영적 주유소에서 기름을 팔아보니 사람들이 기름을 잘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즘 성도들 사이에 기름이 인기가 없습니다.
8절에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불이 꺼져가는 것을 알았고, 기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 사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다 졸며 잘새”라고 했습니다. 잠은 영적인 잠입니다. 영적 침체입니다. 세상 일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나 미련한 처녀나 다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세상일에 빠졌습니다. 넘어졌습니다. 실수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세상에 너무 빠져서 성령의 기름의 필요한지 알면서도 채우려하지 않습니다. 잔다는 말에는 죽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기름이 필요할 줄 알면서도 기름을 다시 채울 의지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잘 할 때가 있지만 잘못할 때도 있습니다. 잘못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영적 잠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등과 기름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넘어져도, 잘못해도, 실수해도 등과 기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등과 기름이 없으면 넘어져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꺼져가니”라는 말이 “소멸해가니”라는 뜻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소멸한다는 뜻입니다. 말씀과 기름이 소멸하도록 그냥 두지 마십시오. 내 마음에 불이 꺼지도록 그냥 두지 마십시오. 꺼지면 살릴 힘이 없습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미련한 처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적 잠에 빠져 불이 껴져가는 데도 기름을 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 일에 너무 깊이 빠져 영혼의 기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나도 전에 다 해봤다고 말합니다. 나도 전에 은사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은요? 지금 없으면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다시 회복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요? 등과 기름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회복할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름 좀 사세요. 불이 다 꺼지기 전에 기름을 사십시오. 우리 영혼에는 성령의 기름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는 성령의 기름이 필요합니다. 기름 사러 등대 주유소로 오세요. 집에 기름이 없어보세요. 요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차단되니까 세계에 기름 난리가 났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차단되는 것보다 성령의 기름이 차단되는 것이 더 큰 난리입니다. 영혼의 기름 사십시오.
제가 기름을 파는 입장에서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해서 기름을 파는 사람들이 기름을 파는 일에 열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유튜브로 목사님들의 설교를 자주 듣습니다. 어떤 교회 새 신자가 담임목사님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새벽에 다니는 교회까지 가기가 어려워 집 근처에 있는 교회로 새벽기도회를 갔는데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에게 새벽기도를 안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 신자가 담임목사님에게 찾아와서 하는 말이 새벽기도를 해야 사람이 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안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오냐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새벽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기름을 파는 사람이 기름을 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됐습니다. 서울 중흥교회 엄신형 목사님이 제가 학생 때 저희 교회 부흥회를 오셨습니다. 오래 돼서 앞뒤에는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목회할 교회도 없고 교인도 없을 때 목사님은 주일날 산에 올라가서 나무들을 놓고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나무를 성도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나무를 보고 설교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목사님 앞에 앉아서 설교를 듣더랍니다. 교인도 없고, 목회지도 없지만 포기하지 않으니까 훌륭한 목회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기름을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름을 팔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기름을 팔려고 해야 합니다. 목사는 기름 파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기름을 파는 사람입니다. 기름을 팔려고 해야 합니다.
저희 어머님이 시골에 계십니다. 저희 어머님 집 거의 다 가서 주유소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를 지날 때 아내에게 여기 주유소는 영업을 하느냐는 말을 가끔 한 번씩 합니다. 주유하는 지점에 차가 한 대씩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장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불은 항상 꺼져 있습니다.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을씨년스럽습니다. 폐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그 주유소를 지나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차들은 장사하는 것처럼 꾸며 나라에서 지원금을 타 내려고 세워놓은 차들인가? 장사를 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 같은데 …’ 주유소이긴 주유소인데 파는 사람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유소 간판은 있습니다. 그래서 주유소처럼 보입니다. 어제 어떤 분들과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가 끝난 다음에 어디를 가는데 한 분이 한 지역을 가리키며 저기에 교회가 있는데 목사님이 시청에 가서 있다는 것입니다. 지원을 받으러 여기 저기 다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수요일인데 예배를 안 드리고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간판은 안 내린다는 것입니다. 요즘 이상한 목사님, 이상한 교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기름이 없고, 목사는 기름을 팔지 않고, 성도는 기름을 사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일부 교회가 을씨년스러운 곳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간판은 있는데 불은 꺼져 있고, 파는 사람도 없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교회 간판만 세워져 있습니다. 교회처럼 보입니다. 영적 주유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기름을 팔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됐습니다.
여러분! 등대 주유소 기름 사러 오세요. 저희 교회는 모든 예배 정상적으로 드립니다. 저는 여기 항상 있습니다. 여기에 성령님의 순수한 기름이 있습니다. 2019년 말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상가들의 문이 다 닫히고 불이 꺼졌습니다. 제가 주변을 돌아다보니 상가가 어두컴컴했습니다. 교회 문도 닫히고 교회 불도 꺼졌습니다. 성도들도 교회에 안 왔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오지 말라고 광고까지 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조성이 되었습니다. 이 건물에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제가 나갈 때까지 하루 종일 5층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2020년 초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교회에서 잤습니다. 3월 19일, 20일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제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교회 문을 다 열어놓고 여기 강대상에서 잤습니다. 21일 주일 새벽에 눈을 뜨는데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앞으로 한 달 동안 교회 문을 24시간 열어놓아야겠다.’ ‘이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한 달 동안 문을 24시간 열어놨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1년을 열어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65일,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아주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잠깐 잠급니다. 그리고 항상 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기름 사러 오세요. 사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성령의 기름은 값없이 돈 없이 사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름을 사십시오. 등대 주유소 기름 사러 오세요. 등대교회 거룩하고 순수한 성령의 기름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셔서 기름이 마르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기도해야 기름이 마르지 않습니다.
어제 전도하는 중에 한 집사님이 어떤 분을 만났는데 요즘 이상한 목사가 많아서 자신은 교회 가지 않고 기독교 방송을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은 이상한 교회도 있고, 이상한 목사도 있고, 이상한 교인도 있는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입니다. 영적으로 세상이 더 혼탁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안 나가지는 마십시오. 교회에 꼭 나가십시오. 그럴수록 더 교회에 가야 합니다. 장마 때에 물은 많은데 마실 물이 없습니다. 온 천지가 물입니다. 그런데 흙탕물입니다. 마실 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더 물을 찾아다닙니다. 음식이 이상하다고 해서 음식을 포기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먹을 음식을 간절히 찾지 않습니까? 세상이 어두워도 교회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이상한 교회가 있지만 좋은 교회가 훨씬 많습니다. 이상한 목사가 많지만 좋은 목사님이 훨씬 많습니다. 세상이 이상할수록 더 교회에 나가십니다. 그래야 메마른 세상을 견딜 수 있습니다. 내 안에서 말씀과 기름이 마르지 않게 하십시오. 성령의 불이 꺼지지 말게 하십시오.
한 밤 중에 처녀들이 졸며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신랑이 왔습니다. 5-7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예수님이 우리가 생각지 못할 때에 오실 것입니다. 열 처녀들이 모두 신랑을 맞으러 나가려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처녀들의 등불이 꺼져갑니다. 등불이 없이 나간다면 틀림없이 결혼식의 방해꾼으로 여김 받을 것입니다. 그냥 나갈 수 없어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합니다. 우리와 너희가 다 부족할까 하니 밖에 나가서 파는 사람들에게 사오라고 합니다(9절). 주인이 집 안에 마련해 놓은 기름은 이미 다 쓴 것 같습니다. 인심이 야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영적인 일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신앙은 나눌 수 없습니다.
<교회와 신앙>에 수필가 장경애 사모님이 올린 글입니다. 남편이 집에서 외마디 소리로 종종 “아버지”라고 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어린 딸이 아빠를 바라보더니 진지하게 “할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사모님은 딸이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생각하고 딸에게 할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딸의 대답이 기상천외했습니다. 아빠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자기도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아버지이니까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어린 딸의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건 영적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빠에게 하나님 아버지이시지만 나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아내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한다고 해서 하나님 장인어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한다고 해서 하나님 시아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사위도 없고, 손자도 없고, 며느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두 자녀입니다. 주님과 나는 1:1 관계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남의 믿음을 빌려서 자기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만 계십니다. 신앙은 나눌 수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은 나눌 수 없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샀습니다. 한 밤 중에 기름을 어디서 샀을까요? 6절 “밤 중에”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밤의 한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밤의 한 가운데는 12시입니다. 지금도 밤 12시에 기름 파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2000년 전입니다. 정말 어렵게 샀을 것입니다. 지금 기름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는 사려고 해도 사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기름을 사십시오. 지금 기름을 많이 사 두십시오. 미련한 처녀들이 정말 어렵게 샀을 텐데 돌아와서 보니 문이 닫혔습니다. 두드렸지만 결코 열리지 않았습니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냉정한 소리뿐이었습니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지금은 문이 열려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등과 기름을 준비할 때입니다. 은혜 받을 때이고, 구원받을 때입니다. 하지만 문이 반드시 닫힐 때가 반드시 옵니다. 지금 등과 기름이 있습니까? 세상 일에 너무 바빠서 등과 기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까? 매일의 삶이 너무 바빠서 문이 닫힐 때가 온다는 것을 잊지는 않으셨습니까? 내가 준비를 하든지 준비하지 않든지, 내가 믿든지 믿지 않든지, 상관없이 끝은 반드시 옵니다.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문이 닫히면 결코 열 수 없습니다. 그때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 등과 기름을 준비하십시오. 예수 이름 붙잡으십시오. 깨어 있으십시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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