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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광야 신앙, 요단강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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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1:1~13
주일오전예배 | 2026-03-2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마가복음은 마가 요한이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헬라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 이름입니다. 마가는 ‘() 망치라는 뜻이고, 요한은 여호와께서 자비를 베푸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 발음은 요하난(여호하난)이고, 독일어 발음은 요한, 요하네스이며, 영어 발음은 존입니다. 여성형은 요한나입니다. 누가복음 8:3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의 이름이 요안나입니다. 요안나는 여자 요한입니다.

 

로마 시대 10대 박해가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박해가 네로의 박해입니다.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십자가형, 맹수형으로 처형했습니다. 불꽃 놀이하듯 십자가에 사람을 산채로 메달아 놓고 불에 태우기도 하고, 원형 경기장에 굶주린 사자를 풀어놓고 기독교인들을 잡아먹게도 했습니다. 쿠오바디스 영화를 보면 사자들이 기독교인들을 잡아먹는 것을 보며 로마인들이 환호를 합니다. 경기장 안에서 사자를 피해 도망 다니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네로는 웃고, 왕비는 옆에서 뭔가를 먹습니다. 참 사람은 잔인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날 네로는 죽고 새 황제가 등극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두 군인의 대화가 나옵니다. 한 군인은 마커스입니다. 마커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바벨론, 이집트, 그리스, 로마. 그 다음은 뭘까?” 세상 나라는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던 군인이 대답합니다. “더 오래갈 나라가 오겠죠. 아니면 더 오래갈 믿음이거나.” 세상은 망하지만 더 오래갈 믿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멋진 말입니다. 마커스가 대답합니다. “둘 다 어느 한쪽 없이는 불가능해.” 이 대사의 의미는 이 세상에는 기독교가 필요하고, 기독교는 로마가 필요하다는 것 같습니다. 또 기독교에는 박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광야의 고난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 보다 더 오래 갈 믿음을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철의 제국 로마는 망했지만 로마가 세상에서 없애려고 박해하던 믿음은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로 사회가 어지럽자 마가에게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베드로가 헬라어로를 하지 못해 마가를 통역관으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로마 기독교인들은 박해로 베드로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베드로의 설교를 남겨두기를 원했습니다. 로마 기독교인들이 불안과 고통 중에서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가복음이 기록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초기 기독교인들은 베드로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본 목격자의 증언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 나라 보다 더 오래 갈 믿음을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세상 나라가 무너지고, 이 세상의 것이 다 사라지고, 이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져도 계속될 믿음이 있으십니까?

 

 

 

광야 신앙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16:16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예수님이 너무 기뻐하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복이 있구나!” 이 고백은 정말 복이 있는 고백이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겠다고 하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고백은 신구약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신약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오직 예수라는 말을 못합니다.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을 못합니다. 예수님과 알라를 똑같다고 해야 합니다. 사이비를 사이비라고 하지 못하고, 복음을 복음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선을 선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뒤에는 마귀의 엄청난 노림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것이 마가복음의 핵심 주제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주님의 오실 길을 광야에서 준비했습니다. 3-4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세례 요한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광야에서 준비했습니다. 이게 기독교 정신입니다.

 

제주도 돼지가 왜 유명한지 아십니까? 제주도 돼지에는 기독교의 광야 정신이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임피제 신부 기념관이 있습니다. 임피재 신부님의 본명인 맥그린치이고, 아일랜드 사람입니다. 임피재 신부님을 돼지 신부라고 부릅니다. 1954년 대한민국이 너무 가난할 때 임피제 신부님이 새끼를 밴 돼지 한 마리를 가지고 제주도에 갑니다. 625 직후 제주도는 광야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임피제 신부님을 비웃었습니다. 신부님은 어미 돼지가 새끼를 낳자 새끼를 이웃에게 나누어줍니다. 나누어주는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똥을 먹여 키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제주도 사람들은 돼지에게 똥을 먹여 키웠습니다. 두 번째는 돼지가 커서 새끼를 나면 두 마리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돼지가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임피제 신부님을 제주도 사람들은 <돼지 신부>라고 부릅니다. 임피제 신부님은 1961년 목장을 설립하고, 양돈 및 축산업을 보급해 제주의 근대화와 자립을 이끈 선구자입니다. 임피제 신부님은 2018년에 죽습니다. 제주도 돼지에는 기독교의 광야 정신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 교회라고 했습니다. 광야는 교회 공동체가 부대끼며 훈련받고 성장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학교입니다. 교회의 원형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교회는 광야에서 시작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 있을 때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광야에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디셉 사람입니다. 성경에 엘리야가 디셉 사람이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옵니다. 엘리야가 디셉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디셉은 현재 정확하게 어디인지 모릅니다. 단지 요단 동편 길르앗 산악지대 중에 있는 한 마을로 추정합니다. 디셉은 척박하고 거친 환경을 가진 시골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는 아벨므홀라 사람입니다. 아벨므홀라는 디셉에서 5km 떨어진 곳입니다. 엘리사도 시골, 광야 사람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형들이 사무엘과 식사할 때 혼자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광야로 갔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지금 마음이 광야와 같습니까? 지금 내 인생이 광야와 같이 황량하십니까? 내 마음이 광야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광야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기독교 신앙은 광야 신앙입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6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석청은 일반적인 벌집과 달리 산속의 절벽 바위틈이나 암벽 사이에 지어진 벌집에서 채취한 자연산 꿀입니다. 사람들이 지리산 절벽에서 석청을 채취합니다. 석청은 꿀 중에서는 최상급의 꿀입니다. 석밀(石蜜)이라고도 합니다. 석청은 깊은 산속에서 채취해 일반 꿀에 비해 토코페롤이나 칼슘 등 영양분이 풍부하고 생산량이 매우 적어 산삼처럼 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성경을 읽으면서 세례 요한은 몸에 좋은 것만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석청은 종려나무(대추야자) 열매가 땅에나 바위 위에 떨어져 마른 것을 가리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게 없으니까 바위 위에 떨어진 대추야자 열매를 주어서 먹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가을에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서 구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어느 식당에 갔는데 구운 메뚜기가 나왔습니다. 비주얼이 못 먹겠더라고요. 그래도 옛날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하나를 먹었는데 더 이상은 먹지 못하겠더라고요. 식감이 너무 안 좋고 맛이 정말 없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메뚜기가 이렇게 맛이 없었던 거야. 어렸을 때는 이걸 어떻게 먹었지?”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쥐엄나무를 메뚜기 나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메뚜기는 쥐엄나무 열매를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15:16에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쥐엄나무 열매는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한다면 풀뿌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쥐엄열매는 당시 사람들이 가장 가난해졌을 때 먹는 열매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단 말은 최고로 가난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아주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7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 위해서는 예수님 앞에 꿇어앉아야 앉아야 합니다. 서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앉아야 합니다. 앉으면 뒤통수만 보입니다. 등만 보입니다. 얼굴은 안 보입니다. 앞은 보이지 않고 뒤만 보입니다. 우리는 뒤통수만 보여야 합니다. 얼굴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름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는 게 기독교인의 정신입니다. 광야 신앙입니다. 마리아의 별명은 발 앞에 여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시면 무조건 예수님의 발치에 꿇어앉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발 앞에 여인이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가 있다고 합니다. 8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지금 내가 주는 물 세례는 모형,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진짜는 성령세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진짜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십시오. 성령 세례를 사모하십시오.

 

 

 

요단강 신앙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9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세례는 죄인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이 죄인처럼 되셨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세례는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은 세례이고, 사역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죄인이 되시는 것이고, 십자가는 예수님이 죄인으로 죽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우리와 같아지신 것이고, 십자가는 우리 대신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마다 죄 용서를 받고 구원받습니다. 십자가를 믿으십니까? 십자가를 믿으십시오.

 

지구에서 가장 낮은 땅이 사해입니다. 사해는 해발 430m입니다. 사해와 연결된 강이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은 가장 낮은 땅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땅으로 내려가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은 죄인 중에 죄인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눈높이 교육이 있습니다. 성육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셨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의 눈높이로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핵심 요절이 10:45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섬긴다는 말은 종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을 소의 복음이라고 하고, 종의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종처럼 섬기셨고, 소처럼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그 사람과 같아져야 합니다. 그 사람이 처한 삶의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똑같이 돼야 합니다.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사람 위에 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요단강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요단강처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요단강처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셨을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비둘기 같이 임재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낮아지면 하늘이 열립니다. 낮아지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낮아지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교만해지면 하늘이 닫히고, 낮아지면 하늘이 열립니다. 내려가면 하늘이 열립니다. <새롭게 하소서>의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항상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교만해서입니다. 낮아지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음성이 들렸습니다. 11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것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없고 왜 기쁨이 없습니까? 낮아져야 하는데 자꾸 높아지려고 하기 뿐입니다. 자꾸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원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놓은 곳을 바라보니까 불평, 미움, 시기,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비우고 버리고 내려가면 기쁘고, 감사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요단강 신앙, 광야신앙입니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아들이 둘 있는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칼빈은 27세 기독교 강요를 썼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3대 명저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신국론),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존 칼빈, <기독교 강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강요를 최고의 책으로 생각합니다. 칼빈은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그런데 그가 아들 둘이 있는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아내가 굉장히 가난했고, 칼빈도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칼빈이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빵을 사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합니다. 이제 칼빈은 얼마든지 좋은 배경의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 둘 있는 미망인과 결혼합니다. 낮아집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목회를 하다가 2년 만에 쫓겨나 가난한 난민들을 위한 목회를 합니다. 후에 칼빈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을 때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로 회상합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과 재혼했습니다. 부인이 일찍 죽은 것 같습니다. 모세가 재혼을 했는데 대상이 흑인이었습니다. 출애굽할 때 구스 여인이 애굽에서 따라 나온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12:38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잡족이 섞여 있었습니다. 민수기 11:4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라고 했습니다. 다른 인종들이 있었습니다. 구스 여인은 그 잡족 중에 하나였습니다. 모세는 그 잡족 중에 하나와 재혼한 것입니다. 그때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정죄했습니다. 왜 잡족, 흑인, 이방인과 결혼했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문가 집안인데 왜 잡족과 결혼을 했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왜 하필 흑인이냐는 것입니다. 모세는 전무후무한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얼마든지 좋은 배경의 여인과 재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흑인과 재혼을 했습니다. 모세가 흑인과 재혼한 이유는 하나님 안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담이 없어졌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입니다. 구스 여인을 이방 교회(이방인)를 상징합니다. 모세의 결혼은 훗날 복음 안에서 이방인이 구원받을 것을 미리 보여준 사건입니다. 모세는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낮아졌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로 갔던 것처럼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광야에서 시작하십니다.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똑같은 기사를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 4: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다고 완곡하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게 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마가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좀 과격하게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광야로 가시는 것을 성령께서 아주 적극적으로 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몰아내다는 말이 헬라어로 내던지다입니다. 성령께서 집어서 던지든 광야생활을 아주 적극적으로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광야로 가는 것을 아주 적극적으로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광야로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원하실까요? 광야로 가면 하나님이 보이고, 광야로 가면 하나님의의 음성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도 없고, 마트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돈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출발은 광야의 소리만 울려 퍼지는 소박한 자리입니다. 광야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만드신 축복의 무대입니다.

 

이스라엘 4000년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믿음이 좋은 때가 광야 생활 40년이 끝났을 때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령하십니다. 여리고가 바로 앞입니다. 적들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할례를 행했는데 적들이 알고 쳐들어오면 모두 다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할례를 명하도 되는데 요단강을 건너니까 할례를 명하십니다. 원수를 앞에 두고 할례를 하라는 말은 죽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합니다.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뜨거운 신앙을 가졌을 때가 40년 광야 생활을 마친 때였습니다. 광야가 이스라엘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만든 것입니다.

 

개그맨 김용만 씨가 20134월 상습 도박 행위로 불구속 기소된 이후 방송 활동을 잠깐 중단했습니다. 이 힘든 시기에 개그우먼 이성미 씨와 김원희 씨로부터 아이티로 비전 트립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2010년에 아이티에 큰 지진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의료 봉사간 분들이 전부 기독교인들이에요. 기도하고 아침마다 예배드리는 생활이 김용만 씨는 적응이 안 됐습니다. 무덥고 더러운 환경에 짜증이 났지만 현지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용만 씨가 기도했습니다. “근데 왜 하나님 필요할 때 안 나타나시고 이럴 때 나타나세요.”라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늘 옆에 있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음성을 들은 날 잠을 한 숨도 못 잤다고 합니다.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봉사를 나갔는데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봉사하러 나갔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돈이 있을 때는 쾌락에 빠져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생 광야가 되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방송인 이홍렬 씨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군 생활을 하는 중에 집안에 큰 일이 생겼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특별휴가를 받고 집에 가보니 어머니가 말기 암에 걸리신 거예요. 병원에서는 손을 뗐습니다. 가족이 너무 낙담하고 있으니까 집 주인이 안수 기도를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을 업고 안수기도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래서 용산 남부 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성경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어머님께 들려드렸습니다. 그렇게 교회 다니시며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어머님은 천국에 가셨습니다. 이홍렬 씨는 인생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죠. 고 김수미 씨는 공황 장애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너무 좋더래요. 그래서 조금 일찍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인생 광야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개그맨 박성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창 인기가 있을 때 <개그 콘서트>에서 하차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박성광 씨가 광야를 만난 것입니다. 박성호 씨는 너무 힘 들었다고 합니다. 이틀 밤을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머리에 온갖 불안한 상황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국이 보였습니다. 눈을 뜨고 있는데 천국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죽으면 갈 곳이 있으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라.” 천국이 보이고, 천국에 아들 정빈이도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아들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크리스천 남자 개그맨들의 감동적인 신앙 고백). 광야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광야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고통, 시련, 환란이 저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시련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집니다. 광야는 낮음의 자리고, 비움의 자리입니다. 광야는 자기 부인의 자리입니다. 광야는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광야는 새로워지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생 광야는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이제 세상 그만 바라보고, 나 좀 바라봐라. 이세 세상 소망 버리고 하늘 소망을 가져봐라.”는 소리입니다. 낮아짐은 비굴함이 아닙니다. 낮아짐은 하늘 문을 여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일입니다. 왜 미워하고 다투고 시기할까요? 높은 곳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으로 가면 사랑이 있습니다. 왜 원망 불평이 가득할까요?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낮아지면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광야 신앙입니다. 요단강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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