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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가인이 살면서 부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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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4:11~17
주일오전예배 | 2026-02-1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고린도전서 15: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는 말씀을 표준새번역성경은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안 계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리빙 바이블은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는 말씀을 피조물 중에 가장 비참한<가장 불행한> 자라”(the most miserable of creatures)고 번역했습니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이 세상뿐이면 성도는 우주의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비참한 존재, 가장 억울한 존재일 것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성도는 지렁이보다 비참한 존재일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가장 영광스러운 피조물입니다. 예수님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가장 행복한 존재입니다.

 

아벨은 의인입니다. 가인이 결코 흘리면 안 되는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억울한 피를 흘린 가인에게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에도 땅에 저주가 있었습니다. 317절에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도 땅에 저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도 인류를 저주했습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여기 저주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아라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저주라는 뜻으로 쓰인 히브리어 단어가 다섯 개입니다. 그 중에 창세기에서는 주로 아라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아라르는 증오하다, 저주하다, 격렬히 혐오하다, 차단하다, 결박하다, 묶다는 뜻입니다. 가인이 땅에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은 땅이 가인을 증오한다, 격렬히 혐오한다, 거부한다는 의미입니다. 땅이 인간에게 화를 낸다는 의미입니다. 땅이 인간에게 적대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죄가 땅이 인류에게 저항하고, 화를 내고, 인류와 싸우게 했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적대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의인의 피를 흘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악행인지 알아야 합니다.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일, 의인을 악인으로 만드는 일은 아주 사악한 죄입니다. 억울함은 땅이 극도로 혐오하는 일입니다. 억울함은 하늘까지 울려 퍼집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이 나라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벨의 스토리를 살피면서 억울한 사건들을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사회에 억울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억울한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혹시 억울한 일, 답답한 일을 당한 분이 계십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시면 십자가를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억울함이며 가장 부당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억울한 십자가로 이 세상에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억울함으로 인류의 죄를 치료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큰 억울함을 가장 큰 은혜로 바꾼 하나님의 신비, 기적입니다. 십자가는 역설입니다. 십자가를 붙들 때 이 십자가의 신비가 내 억울하고 답답한 인생을 고칠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가 내 삶을 역전시킬 것입니다.

 

가인에 대한 땅의 저주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일을 한 만큼 땅이 효력을 주지 않는 저주입니다.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가인은 농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땅이 가인에게 협조를 해줘서 농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땅이 가인에게 협조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17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수고하면 땅이 열매를 낸다는 말씀입니다. 땅이 농사하는 사람에게 협조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수고하면 소산을 먹는다는 말씀을 거꾸로 해석하면 죄를 짓기 전에는 수고하지 않아도 땅이 열매를 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는 땅이 인간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땅이 인간에게 아주 호의적이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열매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담 후에는 소극적이 됐습니다. 일을 해야만 열매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인 이후에는 땅이 인간에게 반항적이 됐습니다. 땀을 흘려 일을 해도 열매를 잘 주지 않게 됐습니다. 저주는 결박하다, 묶이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땅에서 묶였습니다. 죄는 인생을 묶이게 합니다. 마귀는 영혼을 묶이게 합니다. 이 묶음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은혜뿐입니다. 엎드려 은혜를 구하십시오. 은혜로 여러분을 묶고 있는 문제들이 풀려지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는 저주입니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피하며 유리하다는 말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다, 술에 취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람 같다, 범죄하여 숨어 다니는 악인 같다는 의미입니다. 가인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범죄자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방랑자 인생이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영적 방랑자가 된다는 진리입니다. 가인의 진짜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적 방랑자, 영적 뜨내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방랑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영적 방랑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인생을 정착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사십시오.

 

현대인들의 삶은 한 마디로 가인의 삶입니다. 보십시오. 계속 주소지가 바뀝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은 1년에 20프로가 이사를 합니다. 열 가정 중에 두 가정입니다. 저희 아파트가 15층입니다. 저희 라인에 30가정이 살고 있습니다. 1년에 여섯 가정이 바뀌는 것입니다. 저는 8년을 살았습니다. 8년 동안 48가정이 이사를 왔다가 이사를 간 것입니다. 8년을 살았는데 저희 라인에 아직도 모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언제 간지, 언제 온지 모릅니다. 왜 이사를 계속 할까요? 더 나은 삶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좋은 아파트가 생깁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곳으로 계속 가고 싶어 합니다. 더 좋은 곳으로 가려고 하고 더 많은 돈을 모으려고 하다 보니 쉬지 못해 고단합니다. 성공해서 새로운 곳에 가면 편안할까요? 아파트 문에 이중삼중으로 잠금 장치를 합니다. cctv를 설치합니다. 좋은 곳에 갔는데 여전히 불안합니다. 이게 현대인의 삶입니다. 가인의 삶입니다. 가인의 삶은 불안하고, 고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역과 나라를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임효준 쇼트트랙 선수가 중국으로 귀화를 했습니다. 임효준은 한 인터뷰에서 완전히 중국 사람이 됐다고 했습니다. "오성홍기를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자부심이 솟아오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인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신명기 11:26 "내가 오늘 복(바라크)과 저주(켈랄라)를 너희 앞에 두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저주와 복이 나란히 나옵니다. 저주의 반대말이 복입니다. 복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바라크입니다. 바라크의 핵심적인 뜻은 무릎을 꿇다입니다. 바라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이 엎드려 경배하고 찬양하는 행위입니다. 복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주어지는 영적, 물질적 풍요와 유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연결이 되고 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오. 이것이 가인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역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하나님께 엎드리면 하나님이 내가 선 땅을 고쳐주셔서 반항하고 거부하던 땅이 나를 도와주는 땅으로 바뀝니다. 엎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정착하십시오. 내 마음을 하나님과 연결하십시오. 이것이 가인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가인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가인이 자신이 받을 형벌 때문에 탄식을 합니다.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너무 무겁다는 말은 내가 지은 죄에 비해 형벌이 너무 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처벌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불평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한 사람이 억울하다며 원망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제가 전에 아침 일찍 무얼 사러 갔습니다. 갔더니 오픈 전인데 문 앞에 사람들이 열 대 여섯 명이 줄을 서 있습니다. 오픈 시간을 보니 25분 남았습니다. 5분 정도 남았을 때 여성 한 분이 차에서 내리더니 맨 앞에 서 있는 남자 옆으로 갔습니다. 뒤에 있는 한 여성분이 그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앞에 서면 어떻게 하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합세해서 우리는 가족이라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숫자만 많으면 잘못한 사람이 큰 소리치고, 당당한 세상이 됐습니다.

 

가인은 이어서 말합니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쫓아내다는 말이 이혼을 하듯 관계를 끊는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관계를 끊으신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뵈옵지 못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얼굴을 숨긴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면서 하나님이 숨으신다고 했습니다. 얼굴은 은혜를 상징합니다. 얼굴을 숨긴다는 말은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계속 하나님 탓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꼭 우리 같지 않습니까? 가인은 불안해합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죽일 것입니다.” 이때 아담이 가인의 동생들을 낳은 것 같습니다. 그 동생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께서라는 말이 히브리 성경 원문에는 당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탓만 했습니다. 벌이 너무 무겁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어떤 형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아무도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가인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형벌이 너무 크다며 불평했습니다. 하나님 탓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가인을 보호해주셨습니다.

 

표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오트입니다. ‘표시’, ‘신호’, ‘징조(sign)’, ‘증거’, ‘기적이라는 뜻입니다. 이 표라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이나 특별한 계시를 나타날 때 사용됩니다. 또 기적을 나타날 때도 쓰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신 표는 하나님의 계시나 기적, 권능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 표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도 알고, 가인도 아는 표였습니다. 이 표로 인해 가인은 누구를 만나든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가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표가 있었습니다. 이 표만 있으면 어디 가도 안전했습니다. 이 표는 가인에게 보호 장비였고, 피난처였으며,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이 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이 주신 이 표를 불신한 것 같습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하찮게 여긴 것처럼 가인은 하나님이 주신 증표를 하찮게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표가 있습니까? 가인과 같은 표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주신 증거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성경이 우리에게 증표가 아닙니까? 우리 속에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표가 아닙니까? 이 표를 가지고 사십시오.

 

북한에서는 교회를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제국주의의 침략을 돕는 미신이자 간첩의 온상"이라고 가르칩니다. 목사, 전도사, 선교사는 미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를 침략하기 위해 심어놓은 미제 스파이(간첩), 매국노, 악질 종교인, 사기꾼이라고 가르칩니다.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서 교회를 보거나 목사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크리스마스, 부활절이란 말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탈북할 때 주로 압록강을 넘어서 중국으로 갑니다. 압록강의 수심이 깊지 않고 짧은 곳은 48m 밖에 안 되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압록강을 넘습니다. 2013년에 개봉한 48미터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은 압록강을 죽음의 강이라고 합니다. 48m 밖에 안 되지만 감시가 삼엄하기 때문에 건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꽤 많은 탈북자들이 여기를 건너다가 총에 맞아죽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압록강을 죽음의 강이라고 부릅니다. 참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은 요단강을 건너듯이 죽음의 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갑니다. 중국에 들어간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데나 가면 고발당해 즉시 북한으로 보내집니다. 그래서 탈북자들끼리 하는 말이 있답니다. “십자가 있는데 가면 산다.” 교회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릅니다. 그런데 중국에 들어가면 무조건 십자가 있는 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있는 대 가면 산다는 말은 탈북자들 사이에 불문율입니다. 십자가 있는데 가면 목사님들을 만나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합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과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10명 중 1명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목숨 걸고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돌아가면 무슨 일을 만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시 가족에게 예수 복음 전하러 가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 복음을 가족들에게 전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있는 이곳으로 오십시오. 교회로 오십시오. 구원은 여기뿐입니다. 다른 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은혜를 남겨놓으신 곳이 십자가입니다. 이곳으로 오십시오. 여러분! 교회로 오십시오.

 

 

202567일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플로리다 주 마리온 카운티에 거주하는 20살 남성 에이든 페리 씨는 친구가 가지고 있던 총이 실수로 발사되면서 가슴에 총알이 박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페리 씨는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페리를 치료한 카프라 가르시아 헨리 의학박사는 "목걸이의 금속 부품들이 총알의 위력을 상당 부분 보호했습니다.""총알이 목걸이에 맞고 튀어나와 그의 심장 바로 위에 박혔다. 목걸이 덕분에 총알이 지방 조직에 박히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이어 "만약 페리가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총알이 흉벽 자체, 즉 뼈 사이의 폐 주변 공간인 흉막강에 박혀 심장을 다치는 심각한 상황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총알이 십자가에 부딪힌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개입'이라고 생각됩니다."고 덧붙였습니다. 페리는 NBC 뉴스 계열사인 WESH와의 인터뷰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손에 든 채 "저는 이 목걸이가 없었으면 지금 여러분과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구하셨습니다"고 밝혔습니다. 페리 씨는 "하나님이 이 모든 일에 개입하셨다고 믿는다. 고통 속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제가 오늘까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했습니다. 이어 페리 씨는 "이 사건은 제 기독교 신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치 제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믿으세요."라고 강조했습니다. 십자가 목걸이, 십자가 악세사리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1위 게임회사인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 이사가 20222월 말, 미국 하와이에서 향년 54세로 죽었습니다. 자살입니다.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았는데 상태가 악화됐다고 알려졌습니다. 고 김정주 회장은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를 나오고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일본항공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유학을 다녀오기도 한 수재입니다. 그의 이름은 기네스북에 올라있습니다. 2021년 기준 141억 달러(159540억원) 한국 부자 순위 1, 세계 부자 144위일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살했습니다. 여러분! 돈이 필요하지만 돈이 답은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돈은 오답입니다. 정답은 예수님입니다. 정답은 십자가입니다. 지금 당장은 돈이 답 같지만 답은 십자가입니다. 답은 믿음입니다. 예수님 믿으십시오. 예수님 의지하십시오.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서 살았습니다.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에덴의 동쪽은 하나님이 없는 지대를 의미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간섭이 싫어서 동쪽으로 간 것입니다. 동쪽은 아침에 해가 뜨는 방향으로 희망을 상징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곳에서 자신만의 희망을 추구하며 산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서 스스로 행복을 추구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 밖에서 행복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방랑자가 거한 땅이 놋 땅이었습니다. 놋은 유랑하다, 방황하다는 뜻입니다. 방랑자 가인이 새로운 삶을 추구한 곳이 방랑의 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은 참된 안식이 없는 방랑의 삶, 가인의 삶일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이 세상은 놋 땅입니다. 이 세상은 방랑의 땅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쉴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쉴 곳입니다.

 

가인은 성을 쌓았습니다.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성을 쌓았다는 말은 도시를 건설했다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은 성을 도시(city)고 번역했습니다. 가인이 만든 문화가 도시 문화입니다. 도시문화는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하나는 권력, , 계급입니다. 도시로 돈, 권력이 집중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세상 권세를 의지한 것입니다. 이게 도시문화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보호의 약속을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쌓은 성을 의지했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성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힘을 의지하려는 불신앙입니다. 이게 도시문명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면 충분합니다. 도시문명은 하나님이 없는 인본주의 문명입니다.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가인이 만든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본주의 토양 위에서 먹고 배우며 가인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인은 성을 쌓고 성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성이라고 했습니다. 에녹은 시작하다, 헌신하다, 봉헌하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놋 땅에서 성을 쌓고 하나님이 없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없이 무엇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에녹에는 봉헌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봉헌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예배와 믿음 성숙과 관련이 있습니다. 26절에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3장에 아브라함이 벧엘에 가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삽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십시오. 예수 이름을 부르며 사십시오. 주를 외치며 사십시오. 그런데 가인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신보다 잘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자식!, 자식!”하며 노래를 합니다. 가인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성의 이름을 자식의 이름으로 짓고,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예배한 것입니다. 세상을 예배한 것입니다. 자식 우상을 의지하며 산 것입니다. ‘에녹성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자기 방어와 인간 스스로를 예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교만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자식, 교만, 내 힘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십시오. 자식 이름을 부르며 살지 마시고 예수 이름을 부르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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