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2 ok!
등대교회 홈페이지입니다.

Sermon

반대를 뚫고 다시 시작

조회수 : 9회

본문 : 에스라 5:1~6:5
주일오전예배 | 2025-11-30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원숭이 다섯 마리를 우리 안에 넣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사다리가 있고 꼭대기에는 바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원숭이 한 마리가 바나나를 먹으려고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차가운 물을 원숭이 다섯 마리에 일시에 뿌렸습니다. 원숭이는 물과 씻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다시 올라가려고 하면 또 찬 물을 뿌렸습니다. 한 마리가 올라가려고 할 때마다 모든 원숭이에게 찬 물을 동시에 뿌렸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원숭이들은 완전히 학습해버렸습니다. 이젠 아무도 사다리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부터입니다. 사람들이 원숭이 한 마리를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했습니다. 찬 물을 맞아본 적이 없는 새 원숭이는 바나나를 보고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새로운 원숭이를 공격했습니다. 누가 사다리에 올라가면 모두 찬물을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원숭이는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먼저 있던 원숭이들에게 사다리에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실험은 계속 됐습니다. 사람들이 원래 원숭이들을 한 마리씩 전부 새로운 원숭이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는 찬 물을 맞아본 적이 없는 원숭이들만 있습니다.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원숭이가 사다리에 오르려고 하면 다른 원숭이들이 막는 것이었습니다. 막는 원숭이들은 이유를 알고 막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 안에 있었던 원숭이들이 하는 행동을 맹목적으로 따라한 것입니다. 원숭이들은 이유를 모르지만 원래부터 있던 규칙을 따르게 됐습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이건 원래부터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학습이 되면 안 되는 이유를 모르는데 그냥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렇다고 믿습니다. 무작정 따르는 것입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원래 그랬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안 되기 때문에 나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도 똑같이 합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신가요?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닌가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원래 안 되는 거야, 못해,”라는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위로 올라가려고 하면 누군가가 찬 물을 끼얹어 그 자리에 주저앉게 합니다. 찬물 세례를 계속 받다보면 성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더 이상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발전이 없습니다. 늘 제자리입니다. 무기력합니다. 마귀는 교회에 찬 물을 뿌립니다. 성도에게 계속 찬 물을 뿌립니다. 은혜 받으면 찬물을 뿌립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찬물을 뿌립니다. 말씀을 보려고 하면 찬물을 뿌립니다. 그래서 주저앉게 합니다. 성경은 성도를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독수리 같은 신앙인이십니까? 아니면 원숭이 같은 신앙인이십니까? 마귀가 우리 교회와 우리에게 찬 물을 뿌려도 주저앉지 말고 독수리 같이 날개를 치며 올라갑시다. 원숭이처럼 살지 맙시다. 원숭이처럼 신앙생활하지 맙시다. 독수리 같은 신앙인이 됩시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신 이유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전 건축이 돌아온 유대인들의 사명입니다. 사람은 10대에는 사랑에 붙잡히고, 20대에는 인기와 야망에 붙잡히고, 30대에는 사업과 일에 붙잡히고, 40대에는 소유와 정욕에 붙잡히고, 50대에는 권세에 붙잡히고, 60대에는 명예에 붙잡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붙잡혀 사십시오.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이 중단됐습니다. 4:23-24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중단되니라다리오 2년은 BC 520년입니다. 성전건축이 BC 535년에 시작됐다가 BC 534년에 중단이 됐으니까 약 15년 동안 중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15년 동안 중단된 것입니다. 사탄이 사명에 찬 물을 끼얹자 돌아온 사람들은 주저앉아서 15년 동안 더 이상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찬 물 세례에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15년 동안 목적이 없는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성전건축이 중단된 15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자기 일에 몰두 했습니다. 상황을 볼 때 유대인들은 방해자들에게 저항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기 삶에는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학개 1:4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했습니다. 판벽하다는 말은 벽판을 대다, ~에 지붕을 얹다는 뜻입니다. 지붕을 덮었다는 말은 임시 가옥이 아니라 완성된 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은 미완성인데 자기 집은 완성했다는 의미입니다. 벽에 나무판자를 댔다는 말은 집을 짓고 백향목으로 벽을 마감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벽에 나무를 덧댄 집은 매우 화려한 집이었습니다. 지금도 집 안을 나무로 인테리어 한 집은 흔치 않습니다. 판벽한 집이란 아주 화려하게 치장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성전 건축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세워지다 만 성전이 다시 무너지든 들짐승에게 밟히든 상관하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집은 아주 호화스럽게 짓고 살았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성전건축이라는 사명을 내팽개치고 개인의 먹고 마시는 삶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탄의 찬물 세례로 사명을 잃어버리고 개인의 삶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 사회의 오랜 무신론의 학습으로 내게는 원래부터 신적인 사명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사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에는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찾고 그 사명을 위해 사십시오. 이사야 5:12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는 삶이 다입니다. 이 세상이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연기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허깨비입니다. 주님을 위해 사십시오.  

사탄의 찬물 세례에 하나님의 일은 뒤로 하고 모두 개인의 삶에 빠져 있을 때 일어난 선지자가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1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NIV 성경은 그들(학개, 스가랴) 위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번역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자기들이 받들어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언했다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끓어 넘치다는 뜻의 단어에서 왔습니다. 은혜 충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선지자들의 속에서 예언의 말씀이 막 끓어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뚜껑을 제치고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제 속에서 말씀과 사명이 부글부글 끓어서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속에서 은혜, 부르심, 말씀이 끓어올라야 합니다. 세상 욕심, 욕망, 유흥이 끓어오르면 안 됩니다. 

선지자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도왔습니다. 2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선지자들이 함께 있었고, 선지자들의 그들을 도왔습니다. 선지자들이 무엇으로 도왔을까요? 선지자들이 돈을 줬을까요? 옷을 사줬을까요? 아니면 도시락을 싸줬을까요? 아닙니다. 선지자들은 말씀을 줬습니다. 말씀이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시편 107:20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내 병과 내 인생과 내 가정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고, 말씀에 이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시편 147:18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얼음을 녹이고, 물을 다시 흐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은 마귀의 방해로 얼어버린 사람들의 심령을 녹이고,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흐르게 합니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가 함께 있었다는 말은 말씀이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위기 때마다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경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이 선지자입니다.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특히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성경은 더할 나위 없는 선물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이 책이 없었으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류에게 최고의 선물은 성경입니다.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성경을 선지자로 삼으십시오. 시작하매(2)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쉐라입니다. 쉐라는 풀다, 풀어놓다. 끄르다, 시작하다는 뜻입니다. 묶인 것이 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성전건축이 얽혀버렸습니다. 너무 오래 동안 얽혀 있어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임하자 비틀리고 꼬아져버린 문제가 풀어졌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성경을 선지자로 삼으십시오. 성경을 들으십시오. 선지자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성전건축이 다시 시작되자 방해자들이 또 일어났습니다. 3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누가 준 권한으로 성전을 건축하느냐는 것입니다. 마귀는 징글징글합니다. 또 찬물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방해자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말합니다. 4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있는 그대로를 말했습니다. 돌아온 유대인들이 달라졌습니다. 이게 말씀을 가진 자의 담대합니다. 총독은 그 지역에서 왕 정도의 권세가 있는 사람입니다. 공권력 앞에 서면 사람들이 움츠리게 됩니다. 구속력이 있잖아요.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왔습니다. 코로나 때 주일 아침마다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거예요. 별거 아닌데 유쾌하지가 않아요. 주일 아침마다 스트레스입니다. 총독은 군사를 대동해서 왔을 것입니다. 동사무소 직원이 아니에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전혀 움츠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가진 자의 담대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자 원수들이 성전 건축을 막지 못했습니다. 5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다는 말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 위에 있었다.”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5장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위에 계셨다는 말을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북아메리카에 살았던 인디언 중 체로키 부족이 있습니다. 지금은 체로키 부족이 오클라호마 주에 살고 있습니다. 이 부족은 소년들을 강인한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 독특한 훈련을 했습니다. 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사냥과 정찰하는 법을 익혔고, 물고기를 잡는 기술들을 배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장한 소년들은 성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을 치룹니다. 일종의 성인식입니다. 이 의례를 위해 아버지는 아들을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숲속으로 데려갑니다. 거기에 아들의 눈을 가린 채 홀로 남겨둡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과 부족을 떠나본 적이 없는 소년이 처음으로 혼자 밤을 꼬박 지새우는 것입니다. 언제나 가족과 부족이 그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지만 그날 밤은 철저히 혼자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심지어 이날 밤 소년은 아침 햇살이 비출 때까지 눈가리개를 절대로 벗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더욱 겁에 질립니다. 아버지가 떠나자마자 소년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수풀 사이로, 땅 위로 매섭게 몰아쳤습니다. 소년이 앉아있는 그루터기까지 흔들었습니다. 사방에서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립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요? 그렇게 그 밤을 홀로 이겨내야 진정한 남자로 거듭난다기에 소년은 이를 악물고 버텨냈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공포의 밤은 어느덧 지나가고 어두컴컴한 숲들 사이로 새벽 미명이 스며듭니다. 마침내 눈가리개를 벗고 기나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소년의 눈엔 주변에 꽃들과 나무, 작은 숲길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인디언 소년이 눈에 어렴풋이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눈을 비비고 보니 그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지난밤 내내 아들 옆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뜬눈으로 지켜봤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혹시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여차하면 도와주기 위해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함께 밤을 지새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유대인 위에 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눈이 유다인들 위에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계속 하나님의 눈이 그들 위에 항상 있었습니다. 단지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우리 위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 위에 있습니다.

 

 

 

6절부터 17절까지는 방해자들이 다리오 왕에게 보낸 조서의 내용입니다. 1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유다인들은 자신들을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돌아온 유대인들이 정체성을 회복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편119:91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정체성을 회복하십시오. 이 성전 건축을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13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조서를 내린 사람은 고레스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고레스 왕의 명령에 따라서 성전 건축을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온 유대인들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무기는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이 꼬일 때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사탄의 시험이 힘을 잃고 그냥 무너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진실 앞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더 이상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거짓은 사탄에게서 시작됐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무기이고, 진실은 하나님의 무기입니다. 마귀의 무기를 사용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하십시오. 거짓은 마귀의 성품이고, 진실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방해자들은 더 이상 방해하지 못하고 다리오 왕에게 조서를 올립니다. 방해자들은 조서를 올리면서 다리오 왕에게 바벨론 보물 전각을 조사하여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서 내용을 확인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17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고레스는 1대 왕이고, 지금은 3대 왕인 다리오 시대입니다. 왕이 두 번 바뀌었습니다. 컴퓨터 시대인 지금도 문서가 사라집니다. 방해자들은 문서가 없어 졌거나 있어도 다리오 왕이 찾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리오 왕이 굳이 고레스의 칙령을 계승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페르시아 역사를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1대 왕이 고레스입니다. 고레스의 아들이 캄비세스입니다. 캄비세스는 간사하고 사악하여 표독한 인물입니다. 고레스가 죽은 후에 캄비세스는 애굽 왕 아마시스의 공주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청혼을 합니다. 하지만 애굽 왕은 고레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주 대신 하녀를 보내 너에게는 이런 사람이 제격이다.”라고 합니다. 화가 난 캄비세스는 애굽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합니다. 가는 동안 애굽의 왕이 죽고 아들 프삼메디코스가 왕이 됩니다. 프삼메디코스 왕은 캄비세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멤피스로 도망갑니다. 캄비세스가 멤피스까지 따라가서 애굽 왕을 잡고 죽은 아버지 무덤으로 끌고 가서 그 시체(미라)를 파내서 온 성을 끌고 다니면서 화풀이를 하고 그 미라를 불태우는 만행을 합니다. 캄비세스는 미치광이입니다. 이 미치광이 왕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성전 건축을 중단시켰습니다. 캄비세스가 애굽에서 이디오피아를 정벌하기 위해 나섭니다. 그런데 고국에서 동생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이 됐다는 전갈을 받고 돌아가다가 길에 죽습니다. 하지만 이미 동생은 죽었습니다. 캄비세스의 7명의 장수는 돌아가서 가짜 왕을 죽입니다. 일곱 명 중에 하나가 다리오입니다. 캄비세스가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왕이 될 사람이 없었습니다. 

7명은 집단지도체제로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 아니면 7명 중에 한사람을 왕으로 추대하여 1인 독재 체제로 할 것인가? 논의 끝에 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왕을 선출하는 방법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선출방법은 내일 해가 뜰 때 해 돋는 쪽을 향하여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말이 앞다리를 들고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를 내는 말의 주인이 왕이 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7명 중에 세 사람은 기권을 하고 네 사람만 왕의 경선에 나가게 됩니다. 다음 날 새벽에 해 돋는 방향으로 말 네 마리가 달립니다. 한참 달리는데 다리오히스타페스의 말이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앞발을 치켜들고 큰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뇌성이 울러 퍼집니다. 이때 다른 세 사람은 말에서 내려와 다리우스 왕 만세를 부르면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 다리우스히스타페스는 제국의 1대 왕인 고레스의 딸 '아토사'를 왕비로 맞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왕이 된 사람이 다리오입니다. 선왕 캄비세스가 성전 건축을 중단시켰습니다. 중단시킬 다리오는 캄비세스의 최측근이었습니다. 굳이 고레스의 칙령을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성을 세우면 지방 세력이 강해질 것입니다. 성을 짓고 지방 세력이 강해지는 것은 다리오 왕에게 좋을 이유가 없습니다. 방해자들은 다리오가 고레스 칙령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역사가 악인들의 뜻대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리오가 고레스 칙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6: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찾아도 찾아도 조서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포기를 해야죠? 그런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리오는 사람을 메대 파사의 악메다 궁으로 보내서 거기서도 찾게 합니다. 2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1-2절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결코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바벨론에서 악메다 궁까지는 480km입니다. 차가 없던 시대입니다. 유대의 원수들은 다리오가 고레스 칙령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찾게 하시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왕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3-4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고레스 칙령에는 성전 크기까지 정해져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건축 경비를 다 왕실에서 내라고 했습니다. 더 잘 됐습니다. 역사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상황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사마리아인이 방해하려고 한 모든 음모가 오히려 성전건축이 더 잘 되도록 도와준 셈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의 반대를 역으로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명령의 순종하는 사람들의 길이 열리게 합니다. 이런 승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가는 길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축복합니다

이전글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다음글 모든 상황에서 예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