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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작년 7월 중순에 집중 호우가 있었습니다. 이 비로 여러 지역이 침수돼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작년 8월에 당진제일교회에서 우리 노회 시찰회가 있었습니다. 시찰회 중에 교회별로 목회자가 나와서 교회 상황 보고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당진 일도교회 김무환 목사님이 나오셔서 교회 상황 보고를 하셨습니다. 일도교회 옆에 배수로가 있는데 교회가 이 배수로 아래에 있습니다. 집중 호우로 배수로가 넘쳐서 교회 마당으로 물이 들어왔습니다. 교회 식당과 교육관이 물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예배실과 사택은 잠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교회 바로 위에 배수로 옆의 도로가 무너져서 물이 다른 쪽으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물이 오다가 교회 바로 위에서 다른 곳으로 흐른 것입니다. 너무 감사 한 일 같습니다. 만약 도로가 무너지지 않고 물이 정상적으로 흘렀다면 그 물이 다 넘쳐서 예배실과 사택까지 다 잠겼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상황 보고를 하시면서 ‘교회를 지켜주시려고 하나님이 도로를 무너지게 하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이 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하셨습니다. 물이 넘치는 중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당시에 일도교회는 물에 조그만 잠겼지만 아예 물에 잠긴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도교회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고, 물에 잠긴 교회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없었을까요? 저는 물에 잠긴 교회나 물이 피해간 교회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돌봐주시는 손길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느 상황에서나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여러 가지 재난을 당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원망 불평을 합니다. 하지만 그 재난과 어려움은 하나님의 어루만지시는 손길입니다. 열왕기상 8: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올린 봉헌기도입니다. 여기 재앙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네가으’입니다. 네가으는 ‘재앙’, ‘징책’, ‘상처’라는 뜻입니다. 이 네가으라는 말은 나가으에서 왔는데 나가으는 ‘어루만지다’, ‘손을 대다’는 뜻입니다. 가까이에서 손으로 만지는 행위입니다. 재앙은 쓰리고 아프지만 사실은 가까이에서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의사가 매스로 피부를 절개하는 것은 치료입니다. 솔로몬은 재앙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라고 했습니다. 상처를 입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원망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지금 나를 어루만지시고 있다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은 나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엘리야가 사역에 지쳐서 광야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자고 있는 엘리야를 어루만져서 깨우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했습니다(왕상19:5). 여기 ‘어루만지다’는 말이 나가으입니다. 다니엘이 80세의 나이에 3주 금식을 했습니다. 힘이 다 빠져 깊이 잠 들었는데 한 손이 다니엘을 어루만졌습니다. 이때도 어루만지다는 말이 나가으입니다. 재앙, 고통, 상처는 하나님이 손으로 자기 백성을 어루만지심입니다. 페르시아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아주 극단적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만이 BC 475년 12월 13일에 유다인을 모두 죽이려고 살인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민족적 대 위기입니다. 그런데 이 민족적 위기는 유다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어루만지심, 섭리이었습니다.
1절에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라고 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12월 13일에 유다인을 모두 도륙하고,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려는 하만의 음모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꾸민 음모를 상세하고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7절에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라고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꾸민 일들을 세세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경비인 모르드개가 어떻게 세세하게 알 수 있었을까요? 어쨌든 알지 못했다면 유대인들은 하만에게 모두 몰살당했을 것입니다. 알았기 때문에 하만의 음모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마귀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대충 알면 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에게 많이 당합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는 말은 마귀는 거짓의 시작, 근원, 뿌리라는 뜻입니다. 마귀에게 진리가 조금도 없습니다. 마귀는 그냥 거짓 덩어리입니다. 마귀의 정체를 알고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을 알아도 마귀에게 속습니다. 박사, 교수, 엘리트들이 마귀에게 넘어갑니다. 지식만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해야 마귀의 음모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교회에 있을 때 어떤 구역의 부구역장이 신천지가 됐습니다. 구역장이 부구역장에 의해 신천지로 넘어갔습니다. 구역장이 똑똑하고 아주 차분한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모의를 해서 구역예배 때 신천지 사람을 전도사라고 속이고 데려와서 예배를 인도하게 했습니다. 얼마동안 그렇게 구역에서 교제를 하다가 신천지 무료 성경 교육원에 구역식구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여러 번 가서 성경공부를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구역의 한 집사님이 마음이 불편하고 자꾸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공부를 안 갔습니다. 성령께서 그분을 깨우신 것입니다. 성경께서 그 분을 붙잡으신 것입니다. 저는 그 집사님에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은혜가 없으면 알아도 속습니다. 지식인들이 신천지에 넘어갔습니다. 구역장과 부구역장이 속았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계시록 12:12에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씀은 세상 끝이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세상 끝이 가까이 온 줄 알고 마귀가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 자식을 만들기 위해 발악을 합니다. 제발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할 때 마귀의 음모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마귀의 음모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지금은 옷이 많지만 구약 성경 시대에는 옷이 한 벌 밖에 없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 벌이 전부입니다. 옷이 귀했습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극한의 슬픔의 표현입니다. 모르드개는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굵은 베옷은 염소털이나 낙타가죽으로 만든 옷입니다. 염소털이나 낙타가죽으로 만든 옷은 거칠거칠해서 생활하기에 불편합니다. 이런 옷은 내면적 고통을 드러냅니다. 굵은 베옷을 입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행동입니다. 모르드개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기도할 때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극한의 슬픔을 표현할 때 재나 티끌을 뒤집어썼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습니다. 재나 티끌을 머리에 쓰는 행동은 내가 이런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민족이 말살되는 위기 앞에서 재를 뒤집어쓰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했습니다.
“성중에 나가서”라고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성 한 가운데로 가서 큰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습니다. 민족이 한 날에 모두 도륙되게 생겼습니다. 성 한 가운데서 큰 소리로 부르짖은 행동은 기도이면서 동시에 하만의 음모에 대한 공개적인 항거였고 폭로였습니다. 또한 다른 유다인들을 기도와 항거에 동참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다른 유다인들도 모르드개처럼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큰 소리로 애통해했습니다. 여러분! 성도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 아닙니다. 모르드개는 오직 기도로만 항거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상복을 입고 갈 수 없는 궁궐까지 갔습니다. 2절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베옷을 입고 궁궐 문에서 하만에게 항거한 것입니다. 목숨을 건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행동은 수산 성에 있는 유다인들을 영적으로 각성 시켰습니다.
왕의 조서와 명령이 각 지방에 이르자 유다인들이 모르드개처럼 동일하게 부르짖었습니다. 3절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시련이 오자 유다인들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민족적 큰 시련이 잠자고 있는 유다인들의 신앙을 각성시킨 것입니다. 하만의 사악한 흉계가, 마귀의 흉계가 이방 땅 페르시아에서 여호와의 종교를 크게 부흥하게 한 것입니다. 시련은 백성들을 일으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어루만지시는 손길입니다. 시련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1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유다의 멸망 직전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당하는 일이 끝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도가 미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효과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가 정말 미신일까요? 정말 효과가 없을까요? 한 신경과학자가 종교를 초월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뇌를 스캔했습니다. 그랬더니 전두엽은 활성화되고, 공포와 불안을 만드는 편도체의 활동이 줄어들었습니다. 전두엽은 뇌의 앞부분에 위치합니다. 전두엽은 사고, 계획, 문제 해결, 감정 조절, 충동 억제 등 인간의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과 인격을 주관하는 핵심 사령부입니다. 기도하니까 이성은 올라가고 불안은 내려간 것입니다. 기도하니까 이성이 더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기도를 비이성적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도하니까 이성이 오히려 각성됐습니다. 기도하니까 뇌가 아주 합리적이 됐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기도하면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하면서 누군가에게 말을 합니다. 첫째, 눈을 감으면 뇌가 외부 경계를 멈춥니다. 안정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평안을 얻습니다. 불안할 때 기도하십시오. 기도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둘째, 기도하면 내면에 집중해 감정 정리가 시작됩니다. 시련이 갑자기 오면 삶이 뒤죽박죽됩니다. 감정이 헝클어집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뒤죽박죽된 감정이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제일 많이 느끼는 감정이 정리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일들이 정리되고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정리가 됩니다. 삶에 질서가 잡힙니다.
여기서 핵심은 셋째입니다. 기도에는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뇌 과학자들은 기도할 때 대상은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뇌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는 구조 자체라는 것입니다. 말하는 순간 뇌가 사회적 연결 회로를 가동하면서 외로움 신호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기도가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울하면 기도하세요. 울적하면 기도하세요. 거기다 기도할 때 하는 말을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지켜주세요. 잘 되게 해주세요.” 감사를 말하면 뇌가 긍정 회로를 강화합니다. 기도하면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보호를 요청하면 안전감 쪽이 반응합니다. 안정이 되는 거예요. 소원을 말하면 뇌가 미래를 시뮬레이션합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힘들 때 두 손 모아 기도해보십시오. 뇌 과학자들은 기도가 상황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뇌를 바꾸는 것은 과학적으로 맞다고 합니다. 뇌 과학자들은 기도는 누가 들어서 효과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게 기독교의 기도와 다른 점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뇌가 변해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 사람을 바꿉니다. 기도는 미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의 기도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분명하게 보고 들으십니다. 일반기도는 뇌를 바꾸어주지만 기독교의 기도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기도하는 사람을 바꾸어줍니다. 일반 기도는 상황이 바꾸지 못하지만 기독교의 기도는 상황도 바꾸어줍니다. 결과도 바꾸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과학적 효과보다 훨씬 뛰어넘는 효과가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이야기가 에스더 귀에 들어갑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옷을 보내 베옷을 벗기고자 했지만 모르드개가 거절합니다. 에스더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닥이라는 내시를 모르드개에게 보냅니다. 하닥은 에스더가 부리는 내시 중에 가장 높은 내시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닥에게 자신이 당한 일과 민족이 하만의 음모로 위기에 빠진 일을 아주 자세하게 말하고 에스더에게 왕께 나아가 유다 민족을 위해 간청하라고 합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신합니다. 왕을 만난 지 30일이 됐고, 왕이 부르지 않는데 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이 금규를 내밀지 않으면 비록 왕비라 할지라도 즉결처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왕비가 됐지만 에스더는 일반 궁녀보다 조금 나은 위치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다시 회신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가 민족의 위기 상황에서 왕후의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꽤 뚫어보는 정확한 시각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왕궁에서 숨어서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것이 사명이다>라는 책을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첫째,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들보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들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들보다 더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부담주지 말라고 합니다. 부담감을 갖기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담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담감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에이 저 같은 사람에게 무슨 사명이 있어요?’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실지 누가 압니까? 여러분 속에 여러분이 모르는 어떤 놀라운 능력이 숨어 있는지 누가 압니까? 이 우주의 수많은 피조물에는 다 사명이 있습니다. 그 피조물은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삽니다. 그런데 인간만 사명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사람만 말썽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사십시오.
삼촌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삼촌에게 기도요청을 합니다. 삼촌은 수산 성에 있는 유다인들과 삼일 동안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삼일 동안 시녀들과 함께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기도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중간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하닥이라는 내시입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가 처음에 보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만 하닥에게는 하만의 음모에 대해 다 말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이 말을 잘못 전하면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서로를 오해해 등을 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보면 중간에서 이간질하는 사람 때문에 오해가 생겨 싸우고 다투는 일이 많습니다. 하만은 제국의 2인자입니다. 모르드개가 전하는 말은 모두 하만에 관한 일들입니다. 이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닥이 모드르개의 말을 하만에게 가서 전하면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생명이 날아갈 수 있습니다. 또 하닥이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전하다가 오해가 생겨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왕궁에 수많은 하만의 측근들과 스파이들이 있습니다. 이 상황에 모르드개를 만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닥은 목숨을 걸고 양 쪽의 이야기를 아주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모르드개는 하닥을 믿고 모든 일을 이야기합니다. 에스더도 하닥에게 모든 일들을 의논하고 부탁합니다. 하닥이 에스더에게 충성했다는 사실은 에스더가 신뢰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에스더처럼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닥과 같이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고급 레스토랑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유명 셰프나 고급 요리를 꼽지만, 고객이 기억에 남을만한 식사 경험을 하는 데는 매니저의 역할을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매니저는 레스토랑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고, 손님들이 음식을 편안하고 즐겁고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미식가들이 맛집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친절이라고 합니다. 음식 맛이 중요하지만 손님에 대한 서비스 때문에 그 매니저가 있는 식당으로 가기도 합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매니저가 그만 두자 단체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다고 합니다. 그 매니저가 없다면 그 식당에 안 가겠다는 것입니다. 매니저는 셰프 키친의 의도와 고객의 욕구를 잘 조율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주방에서는 익숙할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매니저 선에서 먼저 찾아보기도 하고, 어떤 맛이 나는지 확인한 뒤 손님에게 미리 안내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 음식을 접하는 분들에게 낯설지 않도록 맛에 대한 안내를 하기도 합니다. 단골손님의 취향을 기억하는 매니저도 있다고 합니다. 중간 관리자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간 간부는 말단 직원과 상급 직원 간에 다리 역할을 합니다. 중간 간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 분위기가 달라지고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합니다. 가정 내에 고부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이 고부간의 갈등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이 남편입니다. 남편이 중간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정의 행복과 불행이 좌우됩니다. 남편이 중간 역할을 잘못해서 이혼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교회와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못하면 사람을 실족시켜 영원히 지옥자식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9:42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 중간 역할 잘 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또 한 사람은 에스더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왕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왕비인 에스더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전 왕비 와스디의 일로 왕비도 왕이 부르지 않으면 나가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아내가 남편이 부르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는 정말 이상한 법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왕이 무슨 사연인지 왕비의 얼굴을 30일간 보지 않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음모를 꾸며 왕이 왕비에게 못 나가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나라의 상황이 정말 이상합니다. 나라 재정의 2/3 가 달린 문제입니다. 왕이 이미 조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여자가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정치인들이 만들어놓았습니다. 이 문제를 언급하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더가 한 일은 3일 금식입니다. 3일 동안 자신의 시녀들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습니다. 자기만 금식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금식을 했습니다. 왕궁에서 여호와의 종교가 부흥하게 됐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의외의 일로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왕께 나아갑니다. 중간 역할을 뼈를 깎는 일입니다.
중간 역할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잘못하면 오해도 사고 욕도 먹습니다. 우리 속담에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하면 뺨이 세 대라고 했습니다. 상은 고사하고 뺨을 맞을 수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했습니다. 중간 역할은 등이 터질 정도로 힘든 일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이 있습니다. 이 중간 역할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으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중간 역할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중간 역할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중간 역할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중간 역할을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삽시다.
마귀가 페르시아 내에서 유다 민족을 멸하려고 살인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에 있는 유다 민족에게 커다란 시련이 왔습니다. 민족이 없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큰 시련입니다. 그때 유다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시련 앞에서 민족적 회개와 부르짖음이 페르시아 땅 곳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페르시아 땅에서 여호와의 종교가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시련이 여호와의 종교를 이방 땅에서 부흥시킨 것입니다. 시련이 유다 민족을 향한 섭리였던 것입니다. 시련이 있습니까?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잠자는 신앙이 깨어나기를 소원하십니다. 이 땅에서 여호와의 종교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련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 시련은 내 영혼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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