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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경상북도 영주의 영주중고등학교 교장과 이사장을 지냈던 강경훈 장로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강 장로님은 일제 말엽에 끌려가 한 달여 간 채석장에서 폭파작업을 했습니다. 오전에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폭약을 넣어 폭파 작업을 한 다음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돌들을 옮기는 중노동을 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오전에 폭파 작업을 마치고 돌덩이 위에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먹었지만 청년 강경훈은 도시락을 앞에 놓고 식사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개 한 마리가 그의 도시락을 물고 달아났습니다. “강형! 기도 시간에 개가 점심을 물고 가요?” 옆 사람이 소리를 쳐서 눈을 떴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인부들이 한 마디씩 하며 비아냥거렸습니다. “하나님이 도시락을 못 지켜 주시나!”, “배고픈데 기도는 무슨 기도야! 밥부터 먹어야지.” 청년 강경훈은 급히 일어나 개를 쫓아갔습니다. 개는 힐끗힐끗 뒤돌아보며 뛰어갔습니다. 강경훈이 빨리 가면 빨리 가고, 천천히 가면 천천히 갔습니다. 개가 꼭 강경훈을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꽝하는 폭음소리가 났습니다. 뒤돌아보니 자기가 일했던 채석장에서 난 소리였습니다. 채석장 돌덩이 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던 인부들이 이 사고로 죽거나 크게 다쳤습니다. 순간 강경훈은 도시락을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강경훈을 비웃던 동료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처음에 강경훈은 개가 도시락을 물고 가서 원망했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기도하는데 개가 도시락을 물고 갔으니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가 도시락을 물고 가는 바람에 죽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개가 젊은 강경훈을 살리려고 한 것입니다. 식사기도가 청년 강경훈을 살렸습니다. 여러분! 식사기도 꼭 하세요. 그 기도 때문에 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강경훈은 좋은 일이 생기든지 나쁜 일이 생기든지 항상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상2: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신앙을 가졌습니다. 벌써 2월입니다. 아! 정말 시간이 빠릅니다. 한 해를 살면서 좋은 일이 생기든지 나쁜 일이 생기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얼마나 후회했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뱀에게 속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원수를 갚아줄 후손을 간절히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와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와는 아들을 낳고 얼마나 기뻤는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말미암아’라는 말은 ‘함께’, ‘~의 도움으로’라는 뜻입니다. 비록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하와는 아들을 낳고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하와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신앙을 가졌습니다. 아들을 낳았을 때 하와의 마음이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은혜로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하와처럼 여호와로 말미암아 신앙을 가지기를 축복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첫째 아들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가인은 ‘건립할 자’, ‘세울 자’, ‘얻은 자’라는 뜻입니다. 득남했다(아들을 얻었다)고 했는데 얻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나입니다. 카나는 ‘세우다’, ‘얻다’는 뜻입니다. 아들을 얻었다는 말을 직역하면 남자를 세웠다는 뜻입니다. 하와는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하나님이 세운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카인이라는 말이 카나에서 온 말입니다. 하와가 아들을 낳고 세운다는 말을 두 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인, 카인. 세울 자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하와는 가인이 자신의 무너진 인생, 넘어진 인생, 허물어진 인생을 다시 세워줄 아들이라고 믿고 바랐던 것 같습니다. 첫째 아들 가인에 대한 하와의 기대감이 아주 컸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신앙 같긴 한데 사람에게 기대한 것 같습니다. 사람을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아벨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벨의 히브리어 발음은 헤벨입니다. 헤벨은 숨, 허무, 공허, 호흡, 허탄이라는 뜻입니다. 내쉬는 순간 바로 사라져 버리는 사람의 호흡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도서 1장 2절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헛되다는 말이 헤벨입니다. 하와가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헛되다’라고 지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첫째 아들을 낳고 너무 좋아서 “하나님이 세운 자”, “하나님께 얻은 자”라고 했는데 왜 둘째 아들의 이름은 허무라고 했을까요?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2절에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라고 했습니다. 하와는 아들을 또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더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둘째 아벨을 낳고 여호와께서 ‘복을 더하셨다’, ‘복을 크게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름을 허무라고 부정적으로 지었을까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땀을 흘리며 밭을 가는 고달픈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인생이 결국에는 죽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뼈저리고 느낀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고 인생의 허무를 느낀 것입니다. 손자 에노스가 태어났을 때 아담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식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좋아졌습니다. 믿음이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에노스의 뜻이 '연약한 자', '필멸의 존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아담은 가인을 낳은 후에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이름을 아벨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낳았을 때 많은 기대를 했는데 가인이 자라면서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 때문에 인생의 허탈함을 더욱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에게 뭔가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자식에게 뭘 바라지 마십시오. 자식은 사랑하되 오직 믿음으로 대하십시오.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한 언론의 인터뷰에서 “나는 큰 아들 부부 집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또 큰아들 부부(손흥민 선수의 형 부부)에게 자신의 집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뭘 바라지도 하지 않고 간섭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손흥민에게는 “나는 너와 축구만 봤다. 네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얼마를 버는 지 관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용돈 안 주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들 돈은 아들 돈이고 자녀의 성공은 자녀의 것이다. 부모가 자식 돈에 숟가락을 얹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숟가락 얻으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 때문에 계속 실망한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뭔가를 바라지 마십시오. 우리가 바라고 믿을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 믿으세요. 순수하게 “여호와로 말미암아”의 신앙은 가지십시오. 일이 잘 되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일이 잘 안 되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십시오. “여호와로 말미암아” 신앙을 가지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어서 땅에서 나는 것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제물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민하입니다. 지난 주일에 레위기 2장의 소제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소제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민하입니다. 가인은 소제를 드렸습니다.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피 없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동물 제사와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피가 없는 제사는 단독으로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인은 단독으로 드릴 수 없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제사의 규례를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또 민하는 사람이나 다른 신에게 드리는 예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인은 우상에게 하듯 하나님께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시간을 드리든, 예배를 드리든, 헌금을 하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구별하십시오. 구별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하지 마십시오.
반면에 아벨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철저하게 구별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삼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4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첫 번째라는 말은 처음 난 것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가장 뛰어난 것이나 우두머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좋은 것을 구별했다는 뜻입니다. 양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랐다는 의미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골랐습니다. ‘첫 새끼’라는 말이 영어성경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아벨은 한 마리만 드리지 않았습니다. 선별한 양 여러 마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살이 찌고, 풍요하고,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아벨은 키우는 양 무리에서 볼품없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름지고, 가장 살이 찌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골라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받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솨아입니다. 솨아는 응시하다, 둘러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응시하셨고, 아벨의 인생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둘러보시고, 아벨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아벨을 받으셨다는 말은 아벨의 삶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말은 아벨의 마음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삶과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5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이 가인을 받지 않았다는 말은 가인의 삶을 받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가인의 마음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받지 아니한지라’는 말은 가장 강한 부정입니다. 절대로 받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가인의 제물에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형식도 제도로 갖추지 않았습니다. 대충 제물을 드렸습니다. 영혼이 없는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결코 받으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왜 가인은 하나님께 마음이 없는 예배를 드렸을까요? 그 이유는 가인의 마음이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사하는 자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땅을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땅을 주인으로 섬기는 땅의 종이었습니다. 농사는 나쁜 일인가요? 아닙니다. 농사는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땅의 종이 돼서는 안 됩니다. 땅에서 나는 물질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땅은 세상입니다. 세상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하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십시오. 가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땅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땅에서 나는 것, 물질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의 마음이 하나님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하나님께 대충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땅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늘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분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라입니다. 하라는 ‘불타다’, ‘빨갛게 타오르다’, ‘뜨겁게 타오르다’는 뜻입니다. 가인은 화가 나서 마음이 빨갛게 탔습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화병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하고 꼭 하나님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기가 막히셨는지 가인을 꾸짖으십니다. 6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셨는지 ‘어찌’(왜)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하십니다. 이 말씀은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화를 내지 말고 회개를 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망이 아니라 회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탓하지 말고 “제가 잘 못했습니다.”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매 순간 회개합시다.
꼭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여기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은 ‘무작정 몇 년이 지났다’ 혹은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을 직역하면 “날들의 끝이다.” 또는 “날들의 끝이 되었다.”입니다. 정해진 날들의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날이 있는데 그 날들이 다 지나고 이제 끝이 왔다는 뜻입니다. 그냥 무작정 많은 날이 다 지난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에게 허락된 날들이 다 지난 것입니다. 많은 날이 가인과 아벨에게 허락되었는데 그 허락된 날들이 이제 끝이 났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을 평가하고 심사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평가의 기준이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제사로 평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어느 날 한 번 드린 예배를 평가하신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많은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예배해 왔는지를 평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의 인생 예배를 평가하신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허락된 시간이 다 지나고 끝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 삶에는 수없이 많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있고, 한 달의 시작과 끝이 있으며, 1년의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30대의 끝이 있고, 60대의 끝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이 있고, 회사에서 퇴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생활의 끝이 있습니다. 많은 끝이 모이고, 모여 우리 인생의 끝을 이룹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은 우리에게 허락된 그 시간이 다 지나고 끝날 때가 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평가하실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옵니다. 그런데 그 평가의 기준은 예배입니다. 단순히 이곳에서 한 번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삶의 예배입니다.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인생이 예배가 되게 합시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합시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어떤 인생의 예배를 드렸는지 응시하셨습니다.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명령하십니다.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은 문 바로 앞에 꼼짝 않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문을 열리면 즉시로 들어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죄는 바로 문 앞에 있습니다. 죄는 문만 열면 바로 들어올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죄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군에 가면 <5분 대기조>가 있습니다. 비상시가 되면 5분 이내에 출동해야 합니다. 전투복을 입고, 전투화를 신은 채로 잡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바로 총을 집어 들고, 군장 매고 즉각 출동합니다. 정말 빠릅니다. 5분 대기조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는 5분대기조보다 더 빠릅니다. 문 열면 바로 들어옵니다. 한 집사님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 집에 개가 있었습니다. 개를 방에 가두어 놓고 거실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집사님이 예배가 끝나고 문을 열자마자 개가 총알같이 뛰어나왔습니다. 개가 문 앞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막을 새도 없었습니다. 또 한 집사님에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 끝나고 방의 문을 완전히 열지 않고 조금만 열고 문틈으로 살짝 보고 닫으니까 개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못나오게 하면 나오지 못합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죄는 못 들어옵니다. 내가 문을 열어주기 때문에 죄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지 못합니다.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귀신이 들어간 것입니다.
죄가 너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원한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테슈카입니다. 테슈카는 사모함, 강한 갈망, 소원이라는 뜻입니다. 테슈카는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사람에게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테슈카는 지배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의 판단을 뿌리치고 역사하는 미친 기운인 광기가 있습니다. 죄 짓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광기가 있습니다. 테슈카는 맹목적으로 뒤쫓아가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사냥개가 사냥감을 쫓듯 사람을 쉬지 않고 뒤쫓는 맹열함이 있습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악인들을 보십시오. 죄 짓는데 아주 담대합니다. 죄는 담대합니다. 깡이 있다고 하죠. 죄는 사람을 깡이 있게 만듭니다. 죄는 아주 강하게, 병적으로, 맹목적으로, 그리고 아주 담대하게 여러분을 원합니다. 죄의 소원은 인간입니다. 죄는 인간을 너무 사랑합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죄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죄가 너를 원한다는 말은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죄가 너를 원하지 못하도록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죄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죄 위에 올라가 죄를 짓밟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죄 위에서 군림하기를 원하십니다. 죄를 지배하십시오. 여기 문은 마음 문입니다. 죄는 다른 곳이 아니라 마음의 문 앞에서 엎드려 있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즉시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으십시오. 죄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방법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일이 죄를 지배하는 길입니다. ‘선을 행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타브입니다. 야타브는 ‘유익하게 하다’, ‘기쁘게 하다’, ‘좋게 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을 행하라는 말씀은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저주의 통로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가인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저주의 통로가 되지 마십시오.
2월입니다. 수요일이 입춘입니다. 봄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봄이 시작되지만 가을 추수 때도 올 것입니다. 얼어붙은 땅에서 새싹이 올라와 세상을 새롭게 하듯 우리 마음을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합시다. 선을 행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십시오. 나쁘게 하지 마십시오. 이웃을 기쁘게 하십시오. 교우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우리 교회 문 앞에 죄가 엎드리지 못하도록 세상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축복의 통로가 됨으로 죄악이 우리 교회 앞에 엎드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죄악이 우리 교회 앞에 엎드려 있는지 수시로 살펴주십시오. 죄악이 내 집 앞에 엎드리지 못하도록 선을 행합시다. 내 마음 문 앞에 죄가 엎드려 있는지 수시로 살피십시오.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죄가 달려와서 우리를 삼킬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죄의 밥이 되지 맙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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