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2 ok!
등대교회 홈페이지입니다.

Sermon

억울한 소리가 나지 않게 하소서

조회수 : 4회

본문 : 창세기 4:8~12
주일오전예배 | 2026-02-08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지난 주일에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난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라.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너의 집 문에 엎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죄가 문에 엎드린다는 말씀을 REB(Revised English Bible, 개정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죄는 문 앞에 엎드린 귀신이다.”(Sin is a demon crouching at the door) 죄를 지으면 집 문 앞에 귀신이 엎드린다는 의미입니다. REB는 히브리어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어에 맞게 번역된 보수적이고 학문적 깊이가 있는 번역 성경입니다. 이 번역에서 죄가 귀신과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 집 문 앞에 귀신이 엎드려 있게 하지 맙시다. 문 앞에서 죄가 나를 기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선을 행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선을 행하십시오. 문 앞에 귀신이 아니라 은혜가 엎드리게 하십시오. 우리 등대교회가 선을 행함으로, 세상의 축복의 통로가 됨으로 우리 교회 문 앞에 복이 엎드리게 합시다. 시편 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여기서 출입은 집 출입이 아니라 성전 출입입니다. 성전 출입을 영원까지 지킨다는 말씀은 성전 나갈 때 성전 문 앞에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성전 앞에서 하나님이 기다리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가 아벨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가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유인했습니다.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가인이 아벨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무슨 말을 해서 들로 나오게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들판으로 유인하기 위해 명령했을까요? 강요나 협박을 했을까요? 아니면 간청을 했을까요? 거짓말을 한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가인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온갖 감언이설로 아벨을 들로 유인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산도 있고, 강도 있는데 왜 들이었을까요? 창세기 3장에 들짐승 가운데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가인은 들을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하심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들은 뱀이 있는 곳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는 들판에서 동생의 인생을 파괴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성도를 가인의 길로 끌고 가 삶을 파괴하려는 마귀의 속삭임이 있습니다.

 

제가 제대 직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1년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 후배 집에서 교회 형제 몇 사람이 모여서 라면도 끓어먹고, 야식도 시켜먹으면서 밤새도록 놀았습니다. 저는 거기를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자면서 기도도 하고 새벽예배도 드리고 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있었던 때입니다. 어느 날 형제들이 저보고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밤에 교회에 있다가 후배의 집으로 걸어가는데 하나님께서 분명한 음성으로 가지 마라.”고 하시는 거예요. 친구들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지만 그냥 갔습니다. 밤새도록 놀다가 새벽기도도 하지 않고 그 다음 날 하루 종일 잤습니다. 허전한 거예요. 불순종을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뱀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도하려는 가인의 속삭임이 있습니다. 가인의 속삭임을 따라가지 마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속삼임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오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가인이 아벨을 죽인지 몰라서 물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영적 상태를 물으신 것입니다. “가인아! 왜 이런 끔찍한 일을 했니? 어쩌다가 이렇게 강퍅한 사람이 됐어?” 가인의 영적 현주소를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해주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질투가 나서 화를 참지 못하고 아우를 죽였습니다.” 회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은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회개의 촉구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오시자 아담은 재빨리 나무 뒤에 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아담이 서 있는 물리적인 장소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아담의 영적 상태를 묻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상태를 물으신 것입니다. 말씀은 인간의 영적 상태를 진단합니다. 말씀은 검입니다. 영혼을 쪼개고 수술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담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자각하고 자신의 상태를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해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하나님! 제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어요. 제가 하나님을 거역했어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지금 제 상태가 뱀에게 속아 죄로 비참해졌어요. 주님! 제가 아파요. 어떻게 하죠?”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담은 사람,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말은 인생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요한아! 네가 어디 있느냐? 요한아! 너의 영적 현주소가 어디냐?”라는 물음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그 상태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내게로 돌아오라는 요청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깨닫고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으라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나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도와주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지금 상태에서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손을 잡고 앞으로 전진 하십시오. 하나님이 인생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아!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숨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숨기지 마십시오.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분당 한울교회 김근수 원로목사님이 계십니다. 목사님이 전도사 때의 일입니다. 교회에서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달에 사례를 안 주더래요.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또 사례가 안 나왔습니다.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사례가 3개월 동안 안 나왔습니다. ‘그만 두란 말인가?’ 하소연할 대도 없었어요. 전도사님이 고민을 하다가 동료 전도사님과 주일날 도시락을 싸서 산으로 놀러 갔습니다. 전도사가 주일 날 교회에 있어야 하는데 산에 있는 거예요. 사역자가 주일에 사역을 해야 하는데 세상에서 놀고 있는 거예요. 점심 때가 됐어요. 두 전도사님이 마주 앉아서 도시락을 앞에 놓고 식사기도를 했어요.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래요. 고개를 천천히 들었는데 동료 전도사님이 고개를 안 드는 거예요. 가만히 보니까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친구도 같은 심정이었던 거예요.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산에서 슬금슬금 내려왔대요. 내가 있어야 할 믿음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만약 그 자리를 벗어나면 숨거나 도망가지 마시고 주님의 손을 잡고 돌아오십시오. 전도사님은 돌아와서 훌륭한 목사님이 됐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가인은 아주 뻔뻔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가인은 뻔뻔해도 너무 뻔뻔했습니다. 뻔뻔하다는 말의 뜻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입니다. 성경에 뻔뻔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을 했는데 임신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서 술을 진탕 먹이고 집으로 보냈습니다. 자신이 임신시킨 아이를 우리아의 아이로 꾸미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아가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다윗이 왜 집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묻자 내 전우들이 전쟁터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만 혼자 집에 가서 편히 잘 수 있겠느냐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부하의 손에 편지를 들려서 다시 전쟁터로 보냅니다. 편지 내용은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치졸합니다. 우리아가 죽자 다윗은 아무렇지도 않게 밧세바를 아내로 취합니다. 너무 뻔뻔하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병사들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뻔뻔하게 예수님께 입을 맞춥니다. 가인은 뻔뻔했습니다.

 

말씀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구나! 내가 가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저를 아빠라고 불러요. 저는 아빠라는 말이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뻔뻔하게 아빠라고 불리면서 삽니다. 저는 목사님입니다. 성도님들이 저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목사 자격이 없는 쓰레기입니다. 그럼에도 목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제가 받은 최고의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는 쓰레기 중에 쓰레기입니다. ‘내가 뻔뻔한 가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속이고, 남도 속이고, 성도님들도 속이고, 뻔뻔하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인 앞에서 떳떳하십니까? 가인 앞에서 떳떳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가인을 욕하지만 가인을 욕할 자격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인처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처럼 뻔뻔하고, 가인처럼 뻔뻔합니다. 이렇게 뻔뻔하게 살고 있는데도 벼락을 맞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은혜 때문입니다. 목사 자격 없는데 목사 대접을 받고, 의인 자격 없는데 하나님께 의인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모두 다 은혜입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저 십자가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내가 나 된 것은 은혜입니다. 은혜를 아는 크리스천이 됩시다. 가인처럼 은혜를 모르는 크리스천이 되지 맙시다. 하지만 가인처럼 되면 안 됩니다.

 

가인과 아벨 기사에서 아우라는 말이 7번 나옵니다. 아벨이라는 말은 3번 밖에 안 나옵니다. 아벨을 아벨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계속 아우라고 부른 것입니다. 아우라는 말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우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아흐인데 남자를 형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매는 아호트입니다. 두 단어 모두 피붙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형제, 자매는 아주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싸웠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을 이렇게 부릅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13:8) 한 골육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형제(아흐)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누가 윗사람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동생이냐 형이냐를 따지는데 영어권 사람들은 형도 brother라고 하고, 동생도 brother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항렬을 중요시하지만 유대인들은 형제애를 중요시 합니다. 구약 성경에 동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동족이라는 말이 아흐라는 말입니다. 아흐라는 말이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12:50). 예수님이 우리를 아우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아우입니다. 바울도 동료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지키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솨마르입니다. 솨마르는 지키다’, ‘돌보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유지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아우들을 지키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를 지키고 돌보고,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예수님이 나에게 주셨습니다. 아우를 버린 가인 같이 하지 맙시다. 예수님처럼 형제와 자매를 돌봅시다. 교회는 형제와 자매를 지키고 돌보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억울한 소리가 나지 않게 하소서.

 

발뺌하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는다고 하셨습니다.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호소한다는 말을 새번역성경은 울부짖는다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핏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는 히브리어로 입니다. 담은 침묵하다, 고요하다, 조용하다를 뜻하는 다맘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피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피는 사람처럼 말을 하거나 동물처럼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피는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핏소리는 소리 없는 소리입니다. 핏소리는 조용한 소리’, ‘소리 없는 비명’, ‘소리 없는 아우성입니다. 아주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핏소리는 억울함의 소리입니다. 핏소리는 한 맺힌 절규입니다. 핏소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소리 없는 소리, 억울함의 소리, 한 맺힌 절규를 들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듣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이 소리 없는 비명을 들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나는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직전에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8:20-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아름다워 보였고, 살기 좋아 보였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억울한 핏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도시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거기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한의 소리가 하나님께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억울해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갚아주시기 위해서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계시록 6:9-10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제단이 있는데 그 제단 아래에서 억울하게 죽은 성도들의 피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나는 억울한 사람들의 핏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피의 소리는 조용하지만 아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소리인지 하늘까지 들렸고, 그 소리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소리를 반드시 들으십니다. 혹시 지금 억울한 일, 답답한 일을 만나고 있습니까? 마음에서 하나님을 향해 핏소리를 내십시오. 사람들은 듣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핏소리를 들으십니다. 내 핏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힘차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한 노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노인은 주인공을 나무라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주인공은 노인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증오하는 마음이 생겨서 급기야 노인에게 살의를 느끼게 됩니다. 주인공이 노인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 이유는 노인의 한쪽 눈 때문입니다. 노인의 눈은 유난히 큰데다가 옅은 파란색으로 한 꺼풀 덮여 있어서 독수리눈과 비슷해보였습니다. 노인의 눈을 보면 몸이 차가워졌습니다. 주인공은 그 눈을 볼 때 너무 기분이 나빠 노인의 목숨을 따버리고 싶다는 살의를 느낍니다. 주인공은 일주일간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8일째 되던 날 밤, 노인을 살해한 후 시체를 방바닥에 묻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널빤지 처리를 합니다.

 

이튿날 경찰 세 명이 이웃집 신고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어제 밤에 이 집에서 사람 비명 소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친절하게 경찰들을 맞이하고 대접해 줍니다. 조사가 끝나고 진전이 없자 경찰은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때 주인공의 머리가 아프고 귀속에서 뭔가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울림은 점점 또렷해졌습니다. 주인공은 그 소리를 안 들리게 하려고 의자로 노인을 묻은 위의 나무 바닥을 비볐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소리는 점점 들끓어 올랐고 계속 커져만 갔습니다. 주인공이 들은 것은 다름 아닌 방바닥에 묻혀있는 노인의 심장소리였습니다. 격렬하게 고동치는 심장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가는데 경찰은 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그 끔찍한 소리 때문에 돌아가려는 경찰을 붙잡고 말합니다. “이 나쁜 놈들아! 방바닥 밑에서 나는 이 끔찍한 소리가 안 들려? 여기 널빤지를 뜯어봐! 노인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냐고!”라고 자백해 버립니다. 주인공은 체포됩니다.

 

애드거 앨런 포가 하고 싶은 말은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심의 소리를 듣고 나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제가 21살 때입니다. 제가 운전면허를 따려고 학원에 갔는데 제가 착각했는지 여직원이 잘못했는지 착오가 생겼습니다. 제가 여직원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그랬더니 여직원이 얼굴을 가리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는 제 또래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이 나면 그 자매에게 미안합니다. 그래서 그 자매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제가 살면서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생각이 나면 지금도 기도합니다. 여러분! 나 때문에 상처입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됩니다.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됩니다. 나 때문에 이 땅에서 억울한 아벨의 피소리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손해보고 마십시오. 이 나라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꼭 들어야 할 핏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핏소리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핏소리입니다. 예수님의 핏소리가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핏소리는 나를 살리고, 우리 사회를 살리는 소리입니다. 아벨의 피 소리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고통의 소리이지만 십자가에서 나는 예수님의 피 소리는 나의 죄를 용서하고, 내 인생을 치료하고, 내 삶을 새롭게 하는 소리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네 죄를 다 씻었다.” “너를 새롭게 한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우리는 이 핏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핏소리같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핏소리를 듣고, 십자가의 핏소리를 내야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핏소리를 듣고 불신앙에서 일어나십시오. <그 피가 말한다>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세상 어떤 소리보다 더 선명한 / 주님의 소리가 온 땅 가득해 / 이 세상 어떤 노래보다 아름답게 / 예수의 피가 지금도 말한다 / 십자가에 흘린 그 피가 말한다 / 모든 죄와 사망 끝이 났음을 / 우릴 정결케 한 그 피가 말한다 / 아버지의 나라 여기 왔음을 그 피가 말한다예수님의 핏소리를 듣고 새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의 핏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서요한 목사가 나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내가 지옥에 왔어! 그때 나에게 교회에 가자고만 했어도 나는 교회 갔을 거야. 나는 교회에 가려고 서요한 목사가 교회에 가자고 하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그 말을 안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무개 집사가 그때 그렇게만 안했어도 나는 교회 다녔을 거야. 그때 등대교회 아무개 성도가 나에게 교회 가자고만 했더라도 나는 교회에 갔을 거야. 나는 얼마든지 교회에 갈 마음이 있었어. 그런데 나에게 교회에 가자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그냥 나에게 친절만 베풀어줬지. 정작 교회에 가자고는 아무도 안했어.” 이런 원망을 들으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가족, 친척, 가까운 동료가 지옥으로 가는 핏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벨의 억울한 피가 땅에 흘려 땅은 저주를 받고, 땅은 너를 저주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1-12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효력이라는 말을 KJV 성경은 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억울한 피를 흘리면 땅이 저주를 받아 그 힘을 잃어 소산물을 내지 못합니다.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면 땅이 힘을 잃고 황폐해집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가인 같은 살인자들이 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억울한 피로 황폐해진 이 땅이 예수님의 피로 치료되도록 기도합시다. 역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땅을 고쳐주소서. 내 인생, 내 자녀, 내 가정을 예수님의 피로 고쳐주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이전글 -
다음글 반대를 뚫고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