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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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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라 7:1~28
주일오전예배 | 2025-12-21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알렉산더는 20살에 왕이 되어 10년여 만에 지중해와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누구도 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복지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그리스풍의 도시를 건설해,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게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무적의 정복 군주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 작은 모기에 물려 고열에 시달리다가 33세 젊은 나이에 요절합니다. 알렉산더는 40도가 넘는 고열 중에도 아라비아 원정을 진두지휘합니다. 그러다가 죽음이 임박했음을 짐작하고 신하들을 불러놓고 유언을 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 시체를 넣은 관 밖으로 내 손 하나를 내밀어 달라.” 황당한 유언에 신하들이 의아해하자 알렉산더가 말합니다. “천하를 차지한 알렉산더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내 인생은 공, 0이다.”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고려 말 나옹혜근의 누나가 지은 부운(浮雲)이라는 시에 <공수래공수거시인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이것이 인생이다.”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는 죽을 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Nothing, Nothing, Nothing” “아무것도 없다큰 업적을 세우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명성을 얻고, 많은 돈을 가졌어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너무 허무한 게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보십시오. 수박 겉을 핥듯 대충 말고, 전심으로 예수님을 만나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나 절대로 허무한 공수거의 인생은 되지 마십시오.

 

 

 

7장은 이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1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이 일 후에라는 말은 성전 건축 후에라는 뜻입니다. 6장에 스룹바벨이 성전 건축을 합니다. 1절은 성전 건축 후에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6장과 7장 사이에는 58년의 간극이 있습니다. 성전 건축을 완공한 때는 BC 516년이고(6), 에스라가 돌아온 때는 BC 458(7)입니다. 5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는데 에스라는 자신이 성전 건축 직후에 바로 온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긴 시간 동안에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매우 해이해져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 가운데 원수들의 방해를 이겨내고 성전 건축을 완공합니다. 하지만 그 후 유대인들은 눈물로 지은 성전에서 시간을 헛되게 보낸 것입니다. 그렇게 소원하는 성전을 짓고, 반백년 이상을 무의미하게 보냈습니다. 인생을 헛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앞에서 여러분의 인생은 0인 인생, 공친 인생이 아닌가요? 2025년을 보내면서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에스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스룹바벨의 스토리이고, 7장부터 10장까지는 에스라의 스토리입니다. 에스라는 BC 458년에 유대인 1753명을 데리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왔고, 느헤미야는 BC 444년에 숫자를 알 수 없는 유대인들 무리를 데리고 와서 성벽을 건축했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BC 444년 이후에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기록했습니다. 구약 성경 맨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BC 430년 전후에 기록됐습니다. 말라기서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와 시대가 겹칩니다. 에스라서는 성전 회복(1-6)과 신앙회복(7-10)이고, 느헤미야서는 성벽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말라기서는 무너진 예배의 회복입니다. 세 권의 책이 모두 회복입니다. 복음은 회복입니다. 은혜는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회복을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복음의 회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라기서는 예배를 좀 똑바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 끌고 온 제물이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모욕적인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얼마나 거지같이 드렸는지 하나님이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말라기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구약 성경 마지막 말씀이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끝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마지막 말씀이 제발 예배를 안 드렸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성전이 없으면 좋겠다. 이럴 거면 왜 성전 건축을 했느냐? 너희의 예배를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성전에 안 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교회에 안 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찬송도 안 했으면 좋겠고, 기도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들 왜 여기 왔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딴 생각하지마시고 이 시간 마음을 모아 전심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예배는 드리지 맙시다. 아벨처럼 산 예배를 드립시다. 사모하는 심정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스룹바벨을 비롯한 5만 여명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겠다는 뜨거운 가슴으로 돌아왔습니다. 꿈꾸는 것 같이 좋았습니다. 성전의 기초를 놓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울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주변이 떠들썩했습니다. 그것이 1장에서 6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감격과 흥분, 처음 가졌던 열정은 다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나태해졌습니다. 예루살렘이 이런 상황일 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이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신앙회복 운동을 했습니다. 신약 성경 마지막 요한계시록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마지막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처음 마음,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1절부터 5절에서 자신의 조상 16명을 언급합니다. 조상을 거슬러 계속 올라가다가 아론에서 딱 멈춥니다. 아론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5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왜 아론에서 멈췄을까요? 아론은 이스라엘 역사 1대 대제사장입니다. 아론과 그 자손을 제사장으로 선택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론과 아론의 가문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제사장 직분을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18:7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아론은 어떤 사람일까요?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에게 금을 가져오게 해서 송아지를 만들고 섬기게 한 우상숭배의 주동자입니다. 모세가 왜 이렇게 했느냐고 책망하자 아론은 백성들이 가지고 온 금을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제사장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자격이 없었습니다.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입니다. 에스라가 자랑하는 것은 좋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입니다. 에스라가 족보에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혈통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나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 목요일에 어디를 갔는데 어떤 분이 가슴에 사람 얼굴을 달고 있는 거예요. 뭔가 싶어서 조금 가까이 가서 살짝 보니까 우리나라 유명 정치인이에요. 어깨에 띠를 하고 거기에 핸드폰 거치대에 매달고 핸드폰을 걸어 놓았어요. 화면에 그 정치인을 띄워놓고 핸드폰을 자랑하듯 가슴에 달고 있어요. 나이는 70이 훨씬 넘어 보였어요. 거기에 여러 명의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고, 사람들이 계속 오가고 있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정치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릴 텐데. 이재명이 그렇게 좋은가?’ 그런데 그 분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았어요. 그걸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예수님을 저렇게 가슴에 달고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저렇게 예수님을 자랑하는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프라이드이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긍지가 있습니까?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워싱턴 시를 지나가다가 한 흑인 청소부가 욕을 있는 대로 퍼붓고 짜증을 내면서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청소부에게 조용히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 양반,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맡기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없겠는가?”라고 말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청소할 때에는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을 작곡하는 것처럼, 미켈란젤로가 저 위대한 다비드 상을 조각하는 것처럼, 괴테가 작품을 쓰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게나!”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군대 있을 때 연대장실 앞에 화장실 청소 담당을 했습니다. 청소를 할 때 찬양을 하면서 했습니다. 그때 군종병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군종병이 감동을 받아서 군 목사님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주일 포상휴가를 받았습니다. 설거지할 때, 청소하고, 세탁기를 돌릴 때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나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을 먹이고 입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을 연주하듯 합시다.

 

로마서 14: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하인입니다. 노예입니다. 하나님이 노예같은 비천한 사람도 당신의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그는 하인이면서 믿음이 연약한 자입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이 연약하고, 신분이 비천한 사람까지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는 권능은 이 세상의 돈이나 명예,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이 연약한 나를 받으셨습니다. 서요한 목사가 있는 것,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은 오직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프라이드를 가집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고 세우셨습니다.

 

에스라가 유대인 1773명을 인솔해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11일에 출발해서 51일에 도착합니다(9). 4개월 만에 도착합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거기는 약 1600km입니다. 고대 유대력은 1개월이 30일입니다. 4개월은 120일입니다. 안식일이 17일 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103일을 걸은 것입니다. 1600km100일 정도에 걷는다면 하루에 16km을 걸은 것입니다. 여성, 노인, 어린이가 있어서 많이 걷지 못했을 것입니다. 산적, 강도떼가 출몰하던 때입니다. 군대에서 200km만 행군해도 의무실에 치료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4개월 동안 1600km를 걸었는데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에스라가 성경을 연구하여 준행하여 가르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됐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에스라 앞에 왜냐하면이란 말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있었습니까?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하고 가르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써서 연구하여야 합니다. 에스라는 성경을 연구하고 준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심하자 하나님이 당신의 선한 손으로 에스라와 일행을 형통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 형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십시오. 사람들이 성경을 알아도 준행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을 알았으면 준행하시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가르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전하십시오. 하나님이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11절에서 26절까지는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내린 조서 내용입니다. 아닥사스다는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의 아들입니다. 아닥사스다는 조서에서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네 번 합니다(12, 21, 23). 고대 시대 이방인들은 최고의 신을 하늘의 하나님이라 호칭했습니다. 아닥사스다가 하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여호와를 최고의 하나님으로 호칭했습니다. 이방 왕이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하늘의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라를 하늘의 제사장,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라를 하늘에 속한 사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는 화가 난다고 자기 부인 왕비를 폐위시킨 사람입니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아닥사스다도 성격이 괴팍했습니다. 그런데 이 괴팍한 왕이 에스라를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 이런 칭호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윈 형제의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윈 형제는 16세이던 1974년 부친의 기적적인 암 치유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금까지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입니다. 19831217일 자정에 집회를 마치고, 신도들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공안에게 잡힙니다. 공안들이 사무실로 끌로 가서 묻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 어디서 왔나? 몇 놈이 같이 왔지? 그 놈들 어디 있어? 어서 말해!” 말을 하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가족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목청껏 외쳤습니다. “나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주소는 복음 마을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새벽별이라고 불러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은 풍성한 복이고, 어머니 이름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공안들이 기가 막히니까 발로 난폭하게 막 걷어찼습니다. 공안들이 윈 형제를 잡은 곳으로 다시 끌고 가서 집회 장소를 찾았습니다. 윈 형제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나는 공안에게 잡혔어요. 그렇지만 나는 하늘의 사람이라 집회 장소가 어딘지 몰라요. 나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닙니다!” 소리를 질러 근처에 있는 동료들에게 빨리 피하라고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윈 형제는 공안당국에 있는 감방에 감금되었습니다. 기온은 영하이었고, 난방이 전혀 안 되었습니다. 공안원이 외투를 빼앗아 눈밭에 던져버렸습니다. 몸이 후들후들 떨렸고 사지가 푸른색으로 변했습니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데 부어오른 손목에는 싸늘한 수갑이 칼처럼 파고 들었습니다. 윈 형제는 수갑으로 감방 문과 쇠창살을 두드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구석에 부서진 나무 궤짝이 있었고 그 안에 낡은 북이 있었습니다. 윈 형제는 수갑으로 북을 두드리며 시편 150편 찬양을 목청껏 찬양했습니다. 꽁꽁 언 손과 발에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고 더 이상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공안들이 아침에 문을 열더니 다른 사람들의 수갑을 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사람이라는 미친 놈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며 윈 형제의 수갑은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간수장이 전기봉을 윈 형제의 얼굴에 가져다 대면서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면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난 당신 앞에서는 그렇게 못하겠소. 오로지 내 하나님 앞에서만 무릎을 꿇을 것이오!” 간수장이 거들먹거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네 주님이시다. 네 하나님이란 말이야!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즉시 너를 풀어주겠다.” 윈 형제가 분노로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오! 내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 나는 하늘의 사람이란 말이오!” 수백 볼트의 전기봉으로 고문을 하는데 전갈이 쏘는 것 같고, 수천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에 주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갑자기 전기봉 작동이 멈췄습니다. 그들이 손을 써보았지만 전기봉이 더 이상 작동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공안들이 흠칫 놀라더니 내뺐습니다. 또 다른 신도들이 잡혀왔습니다. 공안들이 그 신도들에게 이렇게 묻더랍니다. “너는 하늘의 사람이냐, 땅의 사람이냐?” 그러자 그 신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공안이 그 신도에게 오늘밤 너를 하늘의 사람이 있는 방으로 넣어주겠다.”고 하더래요. 공안들이 윈 형제를 계속 하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때부터 윈 형제는 하늘의 사람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하늘의 속한 사람입니다. 아닥사스다는 에스라를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성도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연결된 사람입니다.

 

에스라가 하늘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십니다. 어떻게 길을 열어주셨는지 조서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아닥사스다는 에스라에게 막대한 권한을 줍니다. 첫째,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데리고 가라고 합니다. 13조서를 내리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둘째, 돈은 원하는 대로 쓰라고 합니다. 20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셋째, 세금을 면제해줬습니다.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넷째, 재판권과 체포권을 줍니다. 25-26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네 말을 안 듣는 자는 죽여도 좋고, 귀양 보내도 되고, 가산을 몰수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전권을 에스라에게 주었습니다.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궁에서 얼마나 큰 신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권은 단순히 왕만의 결정이 아니라 왕의 최측근인 일곱 모사의 결정이었습니다. 14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유다와 예루살렘 형편을 살피기 위해서 보낸다고 했습니다.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지배할 때 바벨론의 잔존 세력들이 계속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가 골머리를 알았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온 이유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를 보낸 사람이 왕과 일곱 자문관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자문관은 왕의 최측근으로 왕의 침실 외에는 어디든지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국가 정책 전반을 결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인 와스디를 폐위시킨 사람들이 이 일곱 모사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라는 국가의 전권을 등에 업고 예루살렘에 파송을 받은 것입니다. 왕을 비롯한 페르시아 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에게 이렇게 신임을 받았습니다.

 

믿음, 진실, 신실, 아멘 등등의 말을 많이 있습니다. 다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라는 합니다. 진실하신 분이시며, 신실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처럼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사람 교회 다니는데 믿으면 안 돼!” 이런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저 사람 교회 다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은 믿어도 돼.”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에스라는 이런 신뢰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됩시다.

 

사람들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선포입니다. 여러분!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십시오. 하늘에 연결된 사람이 되십시오. 에스라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7-28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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