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계정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
2 == 2 ok!
주디스 올로포스의 「포지티브 에너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에너지 흡혈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에너지를 주고받는 순간들로 이루어집니다. 같이 있으면 힘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같이 있으면 생기를 빼앗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 빠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이 있는 것이 그냥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을 아주 잠깐 봤는데 나는 기분이 우울해지고 컨디션은 나빠졌는데 상대는 더 활기찬 모습이 된다면 이런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사람들을 에너지 흡혈귀, 에너지 뱀파이어라고 부릅니다. 에너지 흡혈귀는 에너지를 빼앗아 가서 지금 이 순간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방해하는 대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순간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십시오.
에너지 흡혈귀의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울보입니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는 사람입니다. 우는 소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년기에 철저한 무력감을 느꼈거나 자기 삶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부모를 모방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도 의기소침해집니다. 두 번째 비난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하면 칼이 찔린 듯한 상처를 입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보호하려면 투명망토를 입은 것처럼 완충지대를 형성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세 번째 드라마 퀸입니다. 작은 사건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집에 강도가 들었다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흥분하고,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하면 해고될 것이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침착하세요. 침착한 사람 앞에서는 드라마 퀸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네 번째 수다쟁이입니다. 수다쟁이는 상대의 기분에는 관심이 없고, 타인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힘을 빠지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거부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거부하면 보복하려고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분명하게 중립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몇 가지 더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에너지 흡혈귀가 있습니다. 에너지 흡혈귀는 지금 나를 방해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을 방해하는 대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예배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에너지를 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에너지를 빼앗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에너지 흡혈귀가 아니라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금 하려는 일의 방해자, 대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7월 1일부터 번제, 나팔절, 초막절을 지키며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그들은 첫 예배를 드릴 때 감격했습니다. 시편 126:1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꿈꾸는 것 같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감격은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를 세울 때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돼 돌무더기 속에 파묻혀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성전의 터를 찾아 기초를 세울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어떤 사람들은 울고, 어떤 사람들은 기뻐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멀리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흥분과 감격 속에서 성전 건축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시험이 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건축에 협력하겠다는 것입니다. 1-2절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성전 건축에 협력하면 성전건축은 아주 쉽게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입니다. 너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협력 제안은 영적으로 큰 위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협력 제안은 신앙적 타협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의 엘살핫돈이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면서 사마리아 사람 일부를 앗수르로 끌고 가서 살게 했고, 앗수르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이주시켜서 살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났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앗수르인이 섞여 살면서 혼혈이 됐습니다. 문제는 사마리아에 이주한 사람들이 앗수르에 살 때 섬기던 신들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도 같이 섬긴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7:41에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전에 섬기던 신들에 하나님을 더해서 섬겼습니다. 그들은 종교혼합주의자들이었습니다. 혈통이 유대인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이 유대인의 조건입니다. 혈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인들의 협력 제안은 좋은 일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큰 위협인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와 승려가 손을 잡고 교회를 같이 건축하는 것입니다. 승려가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서 설법을 하고, 목사는 절에 왔다 갔다 하면서 설교하는 것입니다. 요즘 이런 교회들이 있죠. 교회도 다니고, 절도 다니는 것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 중에는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갔다 오면서 점도 치고 온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불교인입니까? 아니면 무속인입니까?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불교인도 아닙니다. 부산의 제2영도교회에 심선미 집사님이 있습니다. 심선미 집사님은 26년 동안 무속인으로 살았습니다. 우울증을 앓던 어느 날 기독교 방송을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심 집사님이 과거 무속인 시절에 방문하는 손님의 40프로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손님 중에 사모님, 권사님도 있었다고 합니다. 심 집사님은 기독교인이 점을 보러 오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귀신에게 와서 운명을 맡기느냐?”고 되레 묻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심 집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점·사주·타로 를 보는 건 돈을 주고 사망을 사는 행위입니다.” 또 영적으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무속 행위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악한 영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위험이 크다고 했습니다. 심 집사님은 “점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어둠의 영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여러분! 신문에 난 오늘의 운세 재미로도 읽지 마세요. 죽음의 길입니다. 점치는 것은 귀신 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점집은 근처도 가지 마세요.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30프로가 무속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혼합 종교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무속인도 아닌 것입니다. 순수한 신앙인으로 사세요.
교회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종교 혼합주의의 위협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성경도 믿는다고 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구원받으려면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 위에 할례를 더해야 구원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유대주의자들의 혼합주의에 미혹이 됐습니다. 이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변하다’는 말은 ‘변질시키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복음을 변질시키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1장에서 다른 복음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이 세상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이름뿐입니다. 이 말 꼭 기억하세요. 예수 이름 외에는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 이름이면 충분합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 이름 외에는 다른 것은 눈곱만큼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뿐입니다.
교회에 대한 종교혼합주의의 위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에 서울 사랑의 교회에서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 제 14 차 총회가 있었습니다. WEA는 1846년 영국에서 설립된 복음주의 단체입니다. 하지만 WEA가 WCC와 같은 노선을 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려를 많이 합니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되었습니다. WCC는 세계적인 교회일치(통합)운동 단체로 전 세계 140개국 349개 교단이 회원으로 가입된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 연합 기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장 통합, 기독교장로회, 감리교,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순복음(기하) 교단들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1961년 제 3 차 총회 때 칼 라너라는 신학자는 우주적 그리스도를 주장합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보편적으로 감지될 수 있는 창조의 중보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추구할 때 그리스도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들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David Wells).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에도 임재하시는 데, 다만 그들이 잘못 알고 힌두교에서는 그리스도 대신에 크리슈나(Krishna)를 구세주로 믿으며, 불교에서는 부처(Buddha), 모슬렘에서는 이맘 마흐디(Imam Mahdi)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도 그리스도이고, 크리슈나도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불교적 그리스도인, 힌두교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동일하고, 어느 종교에서든지 절대자에 일을 수 있으며,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1970년부터는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말을 ‘신자’(believer)라는 말로 바꾸기로 했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동료 신자들’(fellow believers)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신자라는 말을 쓰는데 신자라는 말이 기독교적 용어가 아니라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용어가 됐습니다. 교회통합운동이 종교통합으로 가고 있습니다. 종교혼합주의가 기독교 신앙을 크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아무 기반도 없는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의 협력 제안은 틀림없이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의 성전 건축 협력 제안은 신앙적인 타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종교 혼합주의 제안입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3절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상관이 없다는 말은 책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전 건축의 책임이 너희에게는 없다는 말입니다. 힘들어도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상관없다는 말씀을 NLT 성경은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홀로’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저 혼자서만 외롭게’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홀로라는 것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이 교회를 지키는 힘입니다. 신앙이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성전건축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건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타협은 신앙을 허물고, 교회를 세속화시킵니다.
강남침례교회 피영민 목사님 설교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침례교회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은 캐나다의 말콤 펜윅(Malcom C. Fenwick) 선교사님입니다. 펜윅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정이 어려워져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농장과 철물점에서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너는 한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입니다. 펜윅은 “저는 사업가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목사도 아니고 신학교에 가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하며 주님의 부르심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던 중 나이아가라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로버트 윌더라는 선교사님으로부터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막에서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물을 담아 화려한 유리잔에 따라 주면 감사하게 마실 것이다. 그러나 더럽고 찌그러진 양철통에 물을 담아 주더라도 역시 감사하게 받아먹고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물이다.” 이 말을 듣고 펙윅은 적어도 찌그러지고 누추한 양철통은 되어 생명수를 전달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펜윅은 1889년 26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넉 달의 항해 끝에 조선으로 왔습니다. 펜윅의 형님이 아우가 먼 나라에 가서 고생한다며 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펜윅 선교사님은 “형님돈은 불신자의 돈입니다. 헌금이 아니니 받지 않겠습니다. 나는 형님에게 동정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돌려보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정말 대단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펜윅은 참 신앙인의 정신이 살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스룹바벨의 정신이요 바울의 정신으로 참된 신앙과 종교혼합주의는 양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돌아온 사람들이 타협을 거절하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의욕을 꺾었습니다. 4절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손을 약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손은 힘, 권능, 능력, 세력 등의 의미입니다. 손을 약하게 했다는 말은 힘을 약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손을 약하게 했다는 말을 “기를 꺾어주고 겁을 주어”라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성경은 “사기를 떨어뜨렸다.”라고 번역했습니다. NIV 성경은 낙담시키다(discourage)라고 번역했습니다. 대적들은 겁을 주어 돌아온 사람들의 기를 꺾고 낙담시켜 성전 건축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기가 꺾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돌아온 사람들의 에너지 흡혈귀였습니다. 마귀는 에너지 흡혈귀입니다. 마귀는 은혜 흡혈귀입니다. 은혜를 빨아 먹는다는 말이 아니라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만들어냅니다. 마귀는 내 기를 꺾어 좌절하게 합니다. 내 기를 꺾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멀리 하십시오. 마귀적인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건축을 방해했습니다. 5절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뇌물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거짓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적들이 꼭 쓰는 방법 중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12절부터 16절까지 사마리아 사람들이 왕에게 올린 조서내용입니다. 12절에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라고 했고, 15절에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고 합니다. 듣는 사람의 머리에 거짓이 진실로 각인이 됩니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더니 아하수에로 왕도 같은 말을 합니다. 19절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아하수에로 왕이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거짓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고발을 했습니다. 6절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성전 건축을 명령한 페르시아 왕은 고레스입니다. 고레스가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고레스에게는 고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아하수에로라고 했습니다. 페르시아 1대 왕이 고레스, 2대 왕이 캄비세스, 3대 왕이 다리오, 4대 왕이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해서 중단된 성전건축이 다리오 왕 때 재개돼서 완성이 됐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 때 고발했다고 했습니다. 에스라가 100여년이 지난 후에 에스라서를 기록했습니다. 대적들의 방해가 성전 건축이 끝난 후에도 계속 된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괴롭힌 것입니다. 왕이 세 번 바뀌었는데도 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적들은 협동도 잘 했습니다. 10절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까지 고발에 참여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유브라데 강 건너편까지 거리는 직선거리로 800km가 넘습니다. 차도 없던 시대에 800km는 정말 먼 거리입니다.
악인들의 열심, 마귀들의 열심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발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계속 괴롭힌 것입니다. 고발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시트나입니다. 사탄이라는 말이 고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마귀는 성도를 괴롭히는 일에 아주 열심입니다. 이 세상에 마귀보다 열심인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하루도 빠짐없이 예배에 나온다.” 마귀는 매일 교회에 출근합니다. 여러분은 안 와도 마귀는 옵니다. 왜 마귀는 하루도 빠짐없이 예배에 나오고, 왜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출근할까요? 예배를 방해하고, 교회를 어지럽히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을 실족하게 하고, 성도를 이간질시키고, 다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의 원망 불평을 갖게 하고, 분쟁하게 하고, 다툼을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유대주의자들이 아주 열심이었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17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이려 함이라.” 열심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젤로오인데 끓어오른다는 의미입니다. 마귀는 물이 끓는 오르는 듯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욥기 1장에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들 사이에서 마치 자기도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서 있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뻔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묻습니다. 욥기 1: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사탄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두루 돌아 여기저기”라는 말은 안 간 곳이 없이 세상을 샅샅이 다녔다는 뜻입니다. “두루 돌아 여기 저기”라는 말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주 열심이라는 뜻입니다. 왜요? 괴롭힐 사람, 삼킬 영혼이 없는지 찾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고 했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열심인지 배고픈 사자처럼 삼킬 영혼을 찾으러 두루 다닌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성도를 괴롭히고, 영혼을 삼키는 일에 아주 열심입니다. 교회를 어렵게 하고,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아주 끈질깁니다. 마귀의 졸개들인 귀신들은 교회를 파괴하려고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뛰어다닙니다. 마귀는 아주 지긋 지긋한 녀석입니다. 악인들은 마귀들을 닮아서 의인들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일에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하게 괴롭혔습니다. 반면에 의인들은 어떠했을까요? 악인들이 괴롭히고, 일을 방해하자 어떻게 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포기하고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학개 1:2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 백성이 이르기를 여호와의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려고 하다가 악인들이 방해하자 포기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일에 빠졌습니다. 학개 1:4에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했습니다. 성전 건축은 뒤로 하고 모두 자기 일에 빠져있습니다. 영적 이기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악인들의 열심과 마귀의 열심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만 빠져있지 말고 주을 위해 열심을 냅시다. 악인보다, 마귀보다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전글 |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
| 다음글 | 모든 상황에서 예배하십시오 |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