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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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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더 1:1~22
주일오전예배 | 2025-10-26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에스더서는 구약 성경 역사서 12권 중에 마지막 책입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에스더서는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헬라식 이름은 크세르크세스입니다. 에스라서가 10장까지 있는데, 1장부터 6장까지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1차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스토리이고, 7장부터 10장까지는 유대인들이 2차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스토리입니다. 6장과 7장 사이는 57-58년 정도의 간극이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이 시기에 페르시아 수도인 수산 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시기에 유대인들에게 큰 환난이 일어납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에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환난입니다. 하나님께 가야 할 때 가야 합니다.

 

이 환난으로 유대인이 전멸당할 위기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환난이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됩니다. 이 환난이 유대인들을 크게 부흥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 온지 100여년이 됐습니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페르시아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사람들이 유대인을 찾아 죽인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페르시아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환난이 일어나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나는 페르시아인인 줄 알았는데 유대인이었구나! 우리가 세상에서 흐릿하게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고통을 당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고통이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줍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한 것입니다. 고난이 신앙의 부흥입니다. 고난은 하나님께로 돌아감입니다. 환난이 일어나자 유대인이 부흥했습니다. 고난은 정체성의 부흥입니다.

 

1992429일에 LA 흑인 폭동이 있었습니다. 흑인들에 의해서 한인 타운 상가들이 약탈을 당하고, 불태워졌습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보호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백인 타운만 보호해주었습니다. 폭동이 너무 커서 경찰인력이 부족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하자 한인 타운은 보호해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한인 2, 3세들은 깨달았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미국인인 줄 알았는데 미국인인 아니었습니다. 시련이 정체성을 알게해 준 것입니다. 교회 복도 창틀에 다육이가 많이 있습니다. 요즘 일교차가 심해졌습니다. 새벽에는 많이 춥니다. 일교차가 심해지니까 다육이 중에는 더 예뻐지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아주 싱싱해졌습니다. 입이 아주 단단해졌습니다. 예배 끝나고 보세요. 예뻐지고 단단해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찬바람이 다육이를 다육이 되게 했습니다. 이걸 주신 집사님이 다육이는 가을에 좋다는 거예요. 식물은 찬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인을 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 여호와, 주 등의 표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에 아하수에로라는 세상 왕의 이름은 167절 중에서 190번이나 나옵니다. 계속 아하수에로, 아하수에로, 세상 왕의 이름이 반복되는데 하나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안 나옵니다. 율법, 기도, 예배, 말씀, 믿음에 관한 표현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에스더서는 구약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책이 무슨 성경이냐는 것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파톤이라는 사람은 에스더서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혀 존경 받을만한 인물이 못된다. 도덕적으로 에스더서는 구약성서의 도덕적 기준에 못 미치며 심지어 외경보다도 못한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에스더서를 평가 절하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경에서 뺐습니다.

 

미디어, 미술에서 <시선의 역설 효과>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시선의 역설 효과는 시선이 어떤 것에 고정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을 향하도록 전환하는 기법입니다.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느끼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기법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암시라고 합니다.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느끼도록 하는 책입니다. 우리는 에스더서에서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봐야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숨어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선의 역설 효과>를 쓰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자신을 계속 암시하십니다. 마태복음 13:13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깨닫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것은 암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암시가 있다는 의입니다. 악인은 봐도 모르고 들어도 모릅니다. 사람이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내가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껴보십시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합니다.

 

에스더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하늘의 뜻이야!”, “신의 뜻이야!”, “뜻이 있겠지!”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섭리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당하는 일에 하늘의 뜻’, ‘하늘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만물을 통제하고 인도하고 다스리시는 사역입니다. 섭리가 영어로 Providence입니다. Pro이라는 뜻이고, vidence보다는 뜻입니다. (미래)을 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보시고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앞을 보시고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십니다. 그것이 에스더 1장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이 세상을 쥐락펴락 마음대로 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에스더를 세상 무대에 등장시키십니다. 에스더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 프로비던스입니다.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 마음대로야!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며 이렇게 저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항상 폐하, 잘된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과 그 신하가 함께 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신하가 왕의 총에 총알을 거꾸로 장전해서 왕의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갔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말합니다. “폐하, 참 잘된 일입니다.” 왕이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왕은 그 신하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듬해, 왕이 다시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숲 속에서 혼자 헤매다가 식인종에게 붙잡혔습니다. 식인종들이 왕을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가만히 보니 손가락이 하나가 없었습니다. 식인종들은 이 음식은 흠이 있구나! 먹지 말자.”라고 하며 왕을 풀어줬습니다. 식인종에게 풀려난 왕은 감옥에 가서 그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자네 덕분에 살았어. 미안하네.” 그러자 신하가 말합니다. “폐하,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제가 감옥에 안 들어왔으면 폐하와 같이 사냥을 나갔을 것이고 저는 흠이 없는 음식이 되어 식인종의 밥이 됐을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때는 고통스럽고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하나님의 섭리,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에스더서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형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지나고 나서 보니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을 먼저 애굽에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 옥살이,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쓰며 온갖 고난을 당했습니다. 시편 10517절에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린 것은 하나님의 섭리, 프로비던스,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앞을 보시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줄을 알았는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뜻, 섭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생각, 지혜, 상상력을 뛰어넘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원망하지 맙시다. 불안해하지 맙시다. 감사합시다. 기대합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에스더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어떻게 일하시는지 에스더서를 살펴보겠습니다.

 

 

 

1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아하수에로는 인도에서 아프리카 구스까지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페르시아의 왕 다섯 명이 나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의 4대 왕입니다. 1대 왕인 고레스는 바벨론을 무너뜨렸고,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는 아프리카(애굽) 정복했습니다. 성경에 캄비세스는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구스가 나오는데 구스는 에디오피아입니다. 캄비세스가 애굽과 에디오피아, 아프리카를 점령했습니다. 캄비세스가 죽자 그의 경호원이었던 다리오가 왕이 됩니다. 다리오가 아하수에로 아버지입니다. 다리오가 인도를 점령했습니다. 특히 다리오가 점령한 곳은 인도의 간다라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리스입니다. 다리우스가 아테네를 쳤지만 졌습니다. 이게 마라톤 전쟁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란은 지금까지 마라톤을 하지 않습니다. 다리우스가 돌아와서 2차 공격을 준비하다가 죽고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왕이 됐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했습니다. 또 선왕들은 모두 업적이 있는데 자신은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차 전쟁에서 아하수에로도 그리스에 처참하게 집니다. 아하수에로는 그리스 원정길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나라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180일 동안 잔치를 벌입니다.

 

2-4,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왕위에 있은 지 제 삼 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전쟁 전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돈 자랑, 힘 자랑을 하면서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는 돈 자랑 잔치를 한 후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면서 세상에서 내가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과시입니다. 교만입니다. 아하수에로가 그리스를 공격해오자 그리스는 도저히 페르시아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테네를 비워놓고 살라미스라는 섬으로 모두 피합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아테네에 아무도 없자 전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때려 부수고 불태우며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완전히 기고만장해진 것입니다. 그리스 해군은 페르시아 해군에 1/3 전력이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가 대패합니다. 이 해전이 세계 3대 해전 중에 하나입니다. 왜 졌을까요? 교만해서 진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요즘 2030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플렉스입니다. 플렉스는 자랑하다, 과시하다는 뜻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자기들의 과소비를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자랑합니다. 사치, 과시가 자랑이 됐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치성 소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 방송에서 염따라는 레퍼가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라고 말한 이후에 플렉스가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염따의 말이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과소비를 당당하게 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플렉스라는 말이 돈 자랑하다는 뜻의 신조어가 됐습니다. 참 이상한 세상입니다. 과시가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이 됐습니다. 사치하는 것이 자랑인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치, 과시는 망하는 길입니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이유가 왕과 귀족들의 과시, 사치, 돈 자랑 때문입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함과 사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권력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막대한 국고를 쏟아 부어 궁전을 지었습니다. 귀족들은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왕도 돈 자랑, 귀족들도 돈 자랑이었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과시와 소비는 결국 프랑스의 재정을 파탄으로 이끌었고, 귀족과 왕실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증폭시켜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왕실과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민중의 분노를 부추긴 것입니다. 사치는 망하는 길입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 의자왕입니다. 의자왕은 초기에 유능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말기에 사치와 향락에 빠집니다. 의자왕은, 신라를 압박하며 힘을 자랑하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망합니다. 철의 제국 고대 로마가 망한 것도 과시, 돈 자랑 때문입니다. 로마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거대한 건축물, 화려한 검투사 경기, 호화로운 연회 등의 사치스러운 문화를 즐겼습니다. 후기로 갈수록 제국의 국력에 걸맞지 않게 과시적인 소비가 만연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망한 이유도 과시, 돈 자랑 때문입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매장량이 세계 1위였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평범한 시골집에서도 석유가 나온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물 보다 석유가 싼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돈 자랑하다가 망했습니다. 돈 자랑, 힘자랑, 과시는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아하수에로는 6개월 동안 잔치를 했습니다. 사치 중의 사치입니다. 6개월 동안 잔치를 한 후에 수산성에 있는 사람만 7일 동안 잔치를 또 했습니다. 6개월 동안 봉사하느라고 수고했으니까 너희들도 즐기라는 것입니다. 왕궁의 문을 열어놓고 아무나 들어와서 먹고 마시라고 했습니다. 과시입니다. 그런데 음식이 무한리필이었습니다. 이런 사치는 없을 것입니다. 5절부터 8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 새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음식이 무한 리필이었습니다. 소고기 뷔페 무한리필, 연어 무한 리필, 회 무한 리필 식당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절대로 좋은 고기 아닙니다. 싸구려입니다. 많이 먹으면 탈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무한리필은 최고급이었습니다. 잔은 금잔인데 똑같은 잔을 안 썼습니다. 잔이 다 다릅니다. 대리석은 각종 아름다운 실로 장식했습니다.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과시하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 마지막 날에 주흥이 올랐습니다. 힘자랑, 돈 자랑, 권세 자랑을 막 하다가 마지막에 예쁜 부인 자랑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사건이 여기서 터졌습니다. 끝까지 가면 안 됩니다.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합니다. 왕이 왕비를 불렀습니다. 왕비도 여자들을 대상으로 잔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1장에 잔치가 세 번 나오는 것입니다. 사치가 극에 달한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이 술잔치를 하다가 그 밤에 페르시아에 망했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과시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페르시아가 망한 바벨론처럼 술잔치를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망하는 것을 보고도, 망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합니다. 아하수에로가 내시 중에서 가장 높은 내시 7명을 왕비에게 보내 잘 차려 입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어전 내시라고 했는데 왕의 가장 측근을 말합니다. 왕비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왕비가 거절을 했습니다. 술 취한 남자들의 눈요깃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와스디가 왕의 그리스 출정을 반대했기 때문에 왕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든 와스디는 왕의 명령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9절에서 12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했다고 했습니다. 싫어하다는 말에 반항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왕비가 즉각적으로 아주 단호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왕의 부르는데 나갈지 말지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명을 거스른 것을 보면 와스디에게 어떤 든든한 배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왕비가 좀 교만했던 것 같습니다. 왕의 체면이 많이 상했습니다. “부인도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게 무슨 이 거대한 제국의 왕이냐? 무슨 정복 전쟁을 한다는 것이냐?”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6개월 동안 잔치를 잘 했는데 마지막 날 망친 것입니다. 돈 자랑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돈 자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존심이 아주 상했고, 화도 아주 많이 났습니다. 왕이 펄펄 뛰었습니다. 그런데 이 속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이용하셨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대신들에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므무관은 왕후 와스디를 폐위 시키자고 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흥겨운 잔치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그 일이 일파만파고 커져 한 제국의 왕후가 하루아침에 폐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역사 속에 에스더가 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에스더를 세우시기 위한 배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손대시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에,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교회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손대심이 있기를 기도하고 기다립시다.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뜻이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그 배후에 하나님이 다 일하고 계십니다. 프로비던스, 하나님이 앞을 보시고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뭘 하면 될까요? 주님만 믿고 따라가면 됩니다.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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