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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사랑이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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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전서 13:1~3
주일오전예배 | 2025-10-1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우리 합동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인 사랑의 교회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오정현 목사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2013년에 들어나면서 오 목사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예배실에 들어가지 않고 교회 마당에 하나 둘씩 모이게 됐습니다. 이들은 오 목사님이 설교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본당에서 진행하는 금요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 교회 마당에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대여섯 명이 모여 기도하고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점점 사람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마당 기도회'가 됐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분쟁이 2019년 말에 끝났습니다. 그 간에 500여명이 피켓을 들고 서울 시내에서 가두행진을 하기도 하고, 예배 시간에 교회 앞에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시위도 했습니다. 저는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 했는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아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요 일간지와 주요 뉴스에 사랑의 교회 문제가 계속 나왔습니다. 너무 아프고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천안에서 우리 교단 중 제일 큰 교회에 몇 년 전 분쟁이 있었습니다. 3천 명이 넘게 모이는 큰 교회였습니다. 주일에 청년만 800명이 모였습니다. 얼마 전에 총회에 보고 된 인원을 보니 세례 교인이 100명 조금 넘었습니다. 상처로 교인들이 떠난 것입니다. 제가 전도사 때 사역하던 교회가 있습니다. 교인이 1500명 정도 되는 교회였는데 분쟁으로 현재 250 명 정도 모이고 있습니다. 현재 둘로 갈라져서 한 쪽은 예배실에서, 한쪽은 교육관에 모이고 있습니다. 심하게 다툴 때는 주일 아침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너무 큰 아픔입니다.

 

고린도전서 1:11-12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다툼, 투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가장 큰 이유가 교회 분열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네 개의 분파가 있었습니다. 네 개의 분파가 서로 물고 뜯고 싸웠습니다. 심지어 교회 설립자인 바울까지도 물고 뜯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사도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비난을 넘어 조롱과 업신여김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4:13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설립한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심하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아픔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이솝 우화입니다. 고양이 두 마리가 길에서 빵 한 조각을 발견합니다. 두 마리는 서로 먼저 보았다고 주장하며 빵을 차지하기 위해 다퉜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원숭이가 자신이 빵을 공정하게 나누어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원숭이는 빵을 두 조각으로 쪼개어 저울에 올려놓고는, 한쪽이 무겁다는 핑계를 대며 큰 조각에서 한 입을 베어 먹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쪽이 무거워졌고, 원숭이는 다시 그쪽을 베어 먹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원숭이가 계속 빵을 조금씩 먹어버리자, 빵 조각은 점점 작아지고, 결국 고양이들이 가져갈 몫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들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빵은 원숭이의 뱃속으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교회가 다투면 마귀에게 최고로 좋은 먹잇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싸우면 마귀는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마지막 때 사탄의 아주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는 교회 분열입니다. 교회가 싸우면 마귀는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우리는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이유로도 교회의 분쟁, 분열에 가담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한쪽이 잘못했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양쪽이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싸우면 진리도 정의도 없어집니다. 싸워서는 절대로 진리를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분쟁으로 아픔을 겪고, 업신여김을 당하던 바울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다

 

먼저 바울은 말에 사랑이 없다면 그 말은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는 신약 성경 시대에 이방인들이 신전 제사에서 우상 제사를 할 때 신을 불러들이거나 잡신을 쫓아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악기의 일종입니다. 우리나라 무당이 굿을 할 때 손에 방울과 부채를 들고 흔듭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꽹과리를 칩니다. 꽹과리와 방울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부르고 귀신을 쫓아내는 용도로 쓰입니다. 바울은 사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이방인 신전에서 귀신에게 제사하며 귀신을 부르기 위해 꽹과리를 치고, 구리(놋쇠)를 두드리는 제사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천사처럼 말을 잘해도 나는 귀신을 섬기는 무당, 점쟁이, 우상 숭배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방언을 헬라어로 글로사라고 합니다. 글로사는 혀, 언어, , 방언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뜻이 혀입니다. 방언이란 말을 영어성경은 텅즈(tongues)라고 번역했습니다. 텅은 혀, , , 언어라는 뜻입니다. 방언은 혀, 입에서 나오는 인간의 모든 말들입니다. 방언은 인류가 사용하는 이 땅의 모든 언어들을 가리킵니다. 방언은 과학, 철학, 의학, 물리학, 사회학, 천문학, 등등의 인간의 모든 학문에 쓰는 전문적 언어와 어휘들을 모두 일컫는 말입니다. 인간이 연구하는 모든 분야의 전문적인 언어를 총 동원해서 아주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아주 탁월한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말(언어)은 접신을 하기 위해 쓰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구리를 구리로 쳐보세요. , , , 이런 소리가 납니다.

 

아나운서들은 말을 아주 잘 하잖아요. 아나운서처럼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말을 잘해도 사랑이 없다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꽹과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박사학위를 여러 개 따고, 아주 똑똑한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라는 것입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아주 감미로운 노래를 해도 사랑이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2,500개에서 3,5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 라틴어를 하는 사람은 학식이 있어 보이고, 그리스어는 지적으로 보이게 하고, 프랑스어는 세련되고 교양 있게 느껴지게 하며, 독일어는 논리적이고 진지한 이미지가 풍기다고 합니다. 세련돼 보이는 불어를 하고, 배운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라틴어를 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구리가 서로 부딪칠 때 나는 퍽퍽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국가적인 경사입니다. 한 씨는 학교 다닐 때부터 천재였다고 합니다. 작가들은 언어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특별히 시인들은 짧은 언어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작가들처럼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해 감동을 준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잘 하고 싶습니다. 목사님들의 공통된 갈망입니다. 제가 전에 이 말씀을 읽다가 궁금해서 구리를 두 개 구해서 두드려 봤습니다. 그랬더니 퍽퍽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아주 탁월한 설교를 할지라도 제 가슴 속에 사랑이 없다면 귀신을 쫓아낼 때 소리를 내는 구리 막대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제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제 설교는 무당이 굿을 할 때 내는 짤랑이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목사는 굿을 하는 무당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또 방언은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경에 방언이 처음 나온 곳은 사도행전 2장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베드로가 설교하자 15-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스캇 브래너라는 미국인 목사님이 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의 불로등의 곡을 한국말로 작사하신 분입니다. 브래너 목사님이 한국어 방언을 받았습니다.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 한국어를 하게 됐습니다. 신기하죠. 목사님은 한국어 방언을 받고 자신의 사역지는 한국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목사님은 한국에 와서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하고 현재 성남의 주님의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배를 인도할 때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라고 합니다. 찬양도 한국어와 영어로 합니다. 영등포에 가면 광복교회가 있습니다. 과거 김옥순 목사님이 사역하시던 교회입니다. 김 목사님은 일본어 방언을 받으셨습니다. 일본어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데 동시통역을 할 정도로 일본어를 잘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청년 때 다니던 교회에 김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혹시 이 분 설교가 있는지 검색해보았더니 이 분에 대한 추모 영상이 유트브에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방언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신학자들 간에 방언이 있다 없다 싸워요. 하지만 방언은 있습니다. 성경에 방언의 은사를 말씀하잖아요. 성경에 있고, 그리스도인이 방언을 하고 있는데 방언이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 옳지 않은 주장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공 예배 중에 방언을 하는 순서를 가진 것 같습니다. 예배 중 은혜가 충만한 시간에 한 사람이 나와서 방언을 하면 청중들이 박수를 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해 칭찬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신비하고 놀라운 성령의 은사를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사의 말은 천사가 사용하는 하늘의 언어, 천국의 언어입니다. 천사의 말은 이 땅에는 없는 최고의 언어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없는 하늘의 언어, 최고의 언어를 사용해도 사랑이 없으면 놋쇠가 부딪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쓸 수 있는 최고의 말을 하고, 심지어 하늘의 언어를 사용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구리와 꽹과리의 소리를 내용 없이, 생명 없이, 의미 없이 떠드는 인간 행위의 표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말은 마치 이교도 신전에서 귀신을 불러들이거나 쫓아낼 때 사용하는 구리와 꽹과리 소리처럼 생명력이 없는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말에 사랑이 없으면 쇳덩이 불과합니다. 말에 사랑이 없으면 그 말하는 사람이 고기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말에 미움이 있으면 상처가 됩니다. 사람들이 말 때문에 죽고 삽니다. 말로 상처주지 마십시오. 말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에 사람은 힘을 얻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여러분! 말에 십자가 사랑을 담으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바울은 두 번째로 예언하는 능력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예언은 구약의 선지자직과 관련된 성령의 은사로 하나님의 계시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은사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시의 내용과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여 선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라고 했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 수는 없습니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비밀과 모든 심오한 지식을 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란 말은 무가치하다, 실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이 실체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껍데기입니다. 바울이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는 일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은 능력을 행하는 은사로서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은사를 받으면 기도로 병을 고치기도 하고, 어떤 능력을 행하기도 합니다. 불치의 병으로 병원에서 3개월 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기도로 병을 고침을 받고 살아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청년 때 포항에 있는 대련 기도원을 갔습니다. 오명근 목사님이라는 분이 강사로 오셨습니다. 어떤 중년 여자 분이 허리 디스크가 아주 심했는데 허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니까 그 자리에서 병이 났습니다. 기도 후에 목사님이 허리춤을 잡고 흔들면 이제 디스코를 춰도 되겠네요.”라고 하세요. 제가 그때 일을 잊지를 못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교회에 인천 은혜기도원 김은혜 원장님이 부흥회를 오셨는데 기도하면 그 자리에서 병이 났습니다.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한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큰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큰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큰 역사, 큰 능력이 실체가 아니라 사랑이 실체라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말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사랑이 없으면 노예입니다. 종입니다.

 

정치인들은 업적을 자랑합니다. 우리 당이 해냈다고 현수막을 내걸고 자랑을 합니다. 기업은 실적을 자랑합니다. 연매출액이 얼마라고 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팔았다고 돈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입니다.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뭘 자랑해야 할까요? 세상 사람들처럼 업적, 큰 일, 실적과 돈을 자랑해야 할까요? 교회는 사랑을 자랑하는 곳이 아닐까요? 교회는 업적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큰 능력 행함은 사랑에 기초해야 합니다. 기적, 능력 행함은 사랑의 도구일 뿐입니다. 바울이 기도로 병을 고치기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큰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행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일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신천지가 해마다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문에 잠실 경기장에서 몇 명이 수료식을 했다고 하고, 신도 십만 명이 모여서 무슨 축제를 대대적으로 했다고 광고합니다. 해마다 광고의 규모가 커셨습니다. 규모, 실적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신천지 2015년 표어가 만국소성, 흰 무리 창조, 종교경서통일의 해였고, 2023년은 일심단결 목적 달성의 해였고, 2024년은 바벨론 심판의 해였습니다. 신천지의 해마다 표어가 목적 달성, 승리, 성취 등이었습니다. 사랑, 섬김, 봉사, 희생, 헌신. 이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천지 2025년 표어가 사랑과 축복의 해입니다. 신천지가 갑자기 사랑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주 이만희가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만희가 죽을 때가 됐는데 후계자가 없습니다. 이만희가 결혼을 했는데 전처를 버리고 김남희라는 젊은 후처를 얻었습니다. 후계자를 삼을 아들을 낳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못났습니다. 후계자가 없는 거예요. 신천지의 지도부가 이만희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신천지의 체제를 기성교회, 정통교회와 비슷하게 바꿔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천지 지도부가 쥐락펴락하는 돈이 엄청나거든요. 그걸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예요.

 

이단에 사랑이 없습니다. 이단에는 영혼을 삼키려는 음모가 있고, 영혼들이 가진 것에 대한 착취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단과 정통 교회의 차이는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껍질만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면, 목사의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사이비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허깨비입니다. 기독교에 사랑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이비입니다. 사이비는 돈 때문에 일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사랑 때문에 일해야 합니다. 성도는 사랑입니다. 교회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으로 일합시다. 사랑으로 직장을 가고, 사랑으로 교회에 섬깁시다. 우리가 하는 일에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세 번째로 바울은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구제라는 말이 헬라어로 프소미조입니다. 프소미조는 먹이다, 양육하다는 뜻으로 음식 조각을 아이나 새에게 넣어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매우 친절하게 채워주는 아주 착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말은 순교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최고의 경건을 자신의 몸을 불 속에 던져 순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경건을 나타내는 핵심 요소를 구제와 믿음(기도), 두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것과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순교적 신앙, 이런 최고의 경건을 가져도 사랑이 없다면 그 경건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4:8에서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경건은 이 세상에서도 유익하지만 천국에 가서도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경건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에 사랑이 없으면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유익이 없다는 말이 이익이 없다는 뜻이에요. 최고의 경건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이득이 없어요. 쓸모가 없어요. 우리 신앙생활에 사랑이 없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 생활에 사랑이 없으면 쓸데가 없습니다. 우리 예배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도와 찬송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불사르셔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온몸을 찢으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왜요?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십자가는 나무토막에 불과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십자가는 껍데기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이 실체입니다.

 

저희 어머님이 시골에서 일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허리가 완전히 고부라졌습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병원에 가셔 엑스레이를 찍어 봤어요.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이 허리가 완전히 접혀서 사진이 안 찍힌다고 합니다. 허리가 접혀서 위 뼈하고 아래 뼈하고 닿아 있대요. 이제 수술도 못하고, 약도 없고 그냥 살라야 한대요. 일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동네 어른들이 엄마 좀 말리라고 해요. 어렸을 때 낮에는 어머니를 집에서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새벽에 나가셔서 해가 져야 오셨어요. 일을 그렇게 많이 하셨어요. 자식들에게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셨어요. 만약에 어머니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어머니는 식모예요. 이 말에 상처 입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사랑이 없다면 식모이고, 가정부예요. 너무 비참한 노예예요. 그런데 저의 어머니는 사랑으로 자신을 불사르게 내어준 거예요. 사랑으로 하면 행복한 거예요. 아버지가 일을 합니다.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 상하고, 힘들고, 지칩니다. 그런데 자식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이 없다면 아버지도 남편도 아니고 돈의 노예에 불과한 것입니다. 돈을 버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고 자존심 상해도 행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노예인 거예요.

 

어떤 부인이 가정생활을 비관하고 하나님께 빨리 죽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너무 살기가 힘들고 팍팍해서 빨리 죽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살기가 많이 힘이 드는 모양이구나! 네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소원을 들어 줄 테니 그 전에 몇 가지만 내 말대로 해 보겠니?” 그 부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했습니다. “얘야! 집안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에 정리를 잘했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 청소를 좀 할래?” 그녀는 열심히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3일 후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애들이 마음에 걸리지? 네가 죽은 후 엄마는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3일 동안 최대한 사랑을 해 볼래?” 여인은 3일 동안 애들을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며 많은 사랑을 주었습니다. 정성스럽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여 먹이기도 했습니다. 3일 후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했습니다. “이제 갈 때가 됐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당부하마. 그동안 남편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남편이 정말 미웠지? 그래도 장례식 때 남편이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3일 동안만 남편에게 최대한으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어 보아라.” 여인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가자! 마지막으로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여인이 집을 돌아보니 집은 정말 깨끗하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으로 웃음꽃이 피어 있고, 남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천국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에 내 집이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런 행복이 갑자기 어디에서 왔지요?”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사랑으로 만든 거란다.”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천국을 만들어 가며 살아 볼래요!!” 이 기적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랑의 짐을 지면 인생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사랑은 부담스럽지만 그 부담을 각오할 때 행복의 신비가 찾아옵니다.

 

사랑의 교회 분쟁을 해결하신 분이 있습니다. 당시 부총회장이셨던 소강석 목사님입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제가 듣기로는 분쟁 당사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우리 교단의 대표 교회가 이렇게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그분의 행동의 밑바탕에 교회에 대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싸우지 마세요. 어떤 분쟁도 하지 마세요. 싸우면 다 죽는 것입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다 패자고, 다 죽는 것입니다. 싸워서 절대로 진리를 세울 수 없습니다. 칼을 든 사람은 칼로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는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식는다는 말이 헬라어로 프쉬코입니다. 프쉬코는 차게 하다, 냉정하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차가워진다, 사람이 냉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전서 4:7-8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뜨거워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차가워지는 시대입니다. 우리도 사랑이 식어지는 시대에 뜨겁게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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