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2 ok!
등대교회 홈페이지입니다.

Sermon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일 하신다②

조회수 : 3회

본문 : 에스라 1:1~11
주일오전예배 | 2025-11-0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가 전에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 살았습니다. 경기장 2층에 마트가 있어서 장을 보러 가곤 했는데 어떤 곳을 지나가다보니 경기장 내부가 보이는 틈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는데 환호성이 들려서 그 틈으로 경기를 살짝 본 적이 있습니다. 파란 색의 잔디 구장이 보였고, 라이트가 얼마나 밝은지 경기장 안이 하얗게 보였습니다. 경기장 안은 완전히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왠지 모르게 저도 흥분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만 서 있으면 사람이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틈으로 보이는 경기장 안은 일보러 온 사람들로 정신없이 북적이는 통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경기장 근처에 고층 아파트들이 있습니다. 아파트 고층에서 보면 경기장 내부가 보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동호수가 있습니다. 위치와 높이에 따라서 경기장 내부가 많이 보이는 집이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부동산에서 문의를 할 수도 있고, 사기 전에 집에 들어가서 경기장이 보이는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교회 성도님 한 분이 근처 아파트에 살았는데 경기장 일부가 보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일부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그발 강가에서 혹독한 노역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하늘이 열리더니 다른 세상이 보였습니다. 1:1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에스겔이 비록 바벨론에서 살았지만 그때부터 열린 하늘 틈으로 보인 세계가 에스겔의 행동을 결정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죄수가 되어 밧모섬으로 끌려갔습니다. 어느 날 하늘이 열리더니 그 틈으로 하늘의 세계가 보였습니다.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죄수의 몸이었지만 그때부터 요한의 마음은 다른 세계에 의해 지배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 통로, 틈이 어떤 때는 예배가 될 수 있고, 어떤 때는 성경이나 기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지만 세상 역사 배후에서, 이 세상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에스라서는 원래 느헤미야서와 한 권으로 된 책입니다. 3세기에 오리겐이 에스라서를 제 1 에스라서와 제 2 에스라서로 나누었습니다. 4세기에는 제롬이 라틴어 성경(불가타역)을 만들면서 제 2 에스라서를 느헤미야서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5-16세기를 지나면서 히브리어 성경도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로 나누어져 구약 성경이 오늘의 39권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두 책이 원래 한 권의 책이었기 때문에 두 책의 주제는 동일합니다. 주제는 회복입니다. 에스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성전의 회복이고, 7장부터 10장까지는 성경(말씀)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서는 성벽의 회복입니다. 에스라는 잃어버린 성경을 회복시킨 지도자이고,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회복시킨 지도자입니다. 에스라는 종교지도자이고, 느헤미야는 평신도 지도자입니다. 에스라서가 종교 지도자가 한 일을 보여준다면, 느헤미야서는 평신도가 한 일을 보여줍니다. 종교지도자와 평신도가 힘을 합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신앙 회복을 이끌었습니다.

 

회복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원래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원래 자리입니다. 회복은 죄로 잃어버린 나의 원래 자리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복은 영적으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물리적인 외적 행동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죄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나의 의지입니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힘을 합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 말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말라기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구약 성경의 결론은 회복, 돌아옴입니다. 성경은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회복입니다. 십자가는 회복입니다. 나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은 회복입니다. 나의 원래 자리인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회복 운동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회복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에스라는 율법에 매우 능통한 학사이면서 제사장입니다. 에스라는 유대의 3대 랍비(가말리엘, 힐렐) 중에 한 명으로 유대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에스라는 최초로 성경 통독을 이끈 사람입니다. 느헤미야 8:5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고 했습니다. 이때 레위인들이 에스라와 함께 성경을 읽은 그 다음 뜻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전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풀어주는 전통을 최초로 확립한 사람이 에스라입니다. 계시록 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는데 여기 읽는 자는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눈으로만 읽는 책이 아니라 무릎을 꿇거나 일어서서 또는 공동체 앞에서 소리 내어 낭독하는 경전입니다. 복음을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합니다. 유앙겔리온은 기쁜 소식, 복된 소리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소리 내어 읽는 경전입니다. 성경을 소리 내어 읽어보십시오.

 

성경 통독을 하면서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황숙희 전도사님은 통독을 하다가 눈이 좋아져서 안경을 벗었다고 합니다. 성경 통독으로 우울증을 치료하신 분이 있습니다. 우울증과 아빠 소천으로 외롭고 몸이 많이 아팠는데 성경 통독을 하다가 우울증과 몸을 치료받고, 지금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2023년 성경을 필사하다가 공황장애를 치료받았습니다. 코로나19 TV와 유튜브, 세상 취미에 빠져 살았는데 어느 날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가족과 부딪칠 때, 상처를 입을 때 성경을 통독했더니 어느 날 갑자기 TV와 유튜브가 보기 싫어지더랍니다. 성경 통독이 유튜브 중독을 치료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2시간 동안 이사야서를 통독했더니 가슴 부분은 물론이고 팔까지 시원하다 못해 추운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를 낭독했더니 머리가 엄청 시원해졌다고 했습니다. 이런 성경 통독을 최초로 확립한 사람이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성경 통독을 통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말씀 회복운동을 했습니다. 성경을 소리 내서 읽어보십시오. 교회는 성경으로 회복 운동하는 곳입니다.

 

 

에스라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3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고레스는 조서를 내려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이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바사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유다가 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70년 후면 바벨론이 망하고 유다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12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바벨론이 70년 후에 죄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이 망하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됐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고레스 원년은 BC 537년입니다. 고레스가 537년에 칙령을 내리자 유다인들은 BC536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유다는 BC606, BC597, BC586, 3차례 바벨론에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 성은 붕괴되고 성전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정확하게 70년 만에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에스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실현됐음을 유다인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끌려온 유대인들은 이방 땅,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신가?”, “여기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가?”, “우리는 지금 큰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여호와 하나님은 바벨론 신보다 더 능력이 있으신가?” 유다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면서 이런 수많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에스라는 에스라서를 기록하면서 유대인들의 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으며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스라가 에스라서를 기록한 이유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70년 후에 바벨론이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BC 539년에 바벨론이 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을 믿고 기억했던 사람들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철옹성 바벨론이 망하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지 않았을까요? 이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사하신다는 것에 가슴이 막 뛰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더 놀라운 예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을 무너뜨린 사람이 고레스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4:28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가 일어나기 200년 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가 세상을 지배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2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고레스는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지배했다고 생각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고레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5:1~3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하나님이 고레스에게 열국이 항복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고, 대적들의 성문을 열어버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고레스보다 먼저 가셔서 험한 곳을 평지가 되게 하고, 놋문과 쇠빗장을 꺾어버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실제로 하나님이 고레스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고레스가 태어나기 전 세상은 바벨론과 메디아라는 두 강대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가 꿈을 꿉니다. 딸 만다네 공주가 소변을 보았는데 그 소변이 넘쳐흘러 온 아시아 대륙 전체가 물에 잠기는 것이었습니다. 또 꿈을 꾸었는데 딸의 아랫배에서 포도나무 넝쿨이 돋아나 온 천하를 뒤덮는 것있습니다. 아스티아게스는 이 꿈들을 모두 만다네의 후손이 메디아 왕국을 넘어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자신의 왕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는 징조로 해석합니다. 왕의 딸은 원래 귀족에게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귀족의 세력이 커져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싫었던 아스티아게스는 딸을 변방이 아주 작은 나라 페르시아의 왕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넘쳐봤자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딸이 아들을 낳으면 바로 죽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하는 어린 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목동에게 키우게 했습니다. 고레스는 BC 549년에 반란을 일으켰는데 아스티아게스가 워낙 나쁜 왕이었기에 병사들이 고레스 편을 들어버립니다. 힘들이지 않고 강대국이었던 메디아를 접수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고레스는 주변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합니다. 그리고 최강의 제국인 바벨론도 정복해 당시 유례없던 명실상부한 최대 제국을 건설합니다. BC 539년에 고레스는 바벨론 성을 포위합니다. 바벨론 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내성은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바벨론 내성에는 성 중앙을 관통하는 유프라테스 강이 흘렀고, 성 안에는 20년 분량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습니다. 바벨론 벨사살 왕은 고레스가 전쟁을 하다 지쳐서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벨사살은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고레스가 포위하고 있는데도 성 안에서 귀족들을 초청해 술잔치를 했습니다. 다니엘서 5:1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그날 밤에 바벨론 성을 고레스가 정복합니다. 5:30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다리오는 고레스의 장인입니다.

 

고레스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로 군사들을 보내 강물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고레스는 강이 흘러들어 가는 쪽과 나오는 쪽에 군사들을 배치하고, 강물 수위가 무릎까지 내려오면 성안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성 안에서는 왕도 신하도 병사도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신흥 제국으로 떠오르는 강대국에 쳐들어왔는데 술잔치하는 정신 나간 왕이 어디 있습니까? 왕이 나라에 관심이 없고 엉뚱한 종교에 빠져 있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고레스는 철옹성 같은 바벨론도 손쉽게 정복했습니다. 바벨론을 정복하자 바벨론에 속한 나라가 모두 페르시아 속국이 되었습니다. 고레스는 장인인 다리오를 왕으로 세워 바벨론을 다스리게 했습니다(5:31). 2년 후, 다리오가 죽자 고레스 자신이 바벨론을 직접 통치합니다. 그때, 다리오 왕 시절 총리를 지낸 다니엘을 불러 바벨론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듣고자 했습니다. 80세가 넘은 다니엘은 고레스 왕 앞에 나올 때 이사야 두루마리(성경)를 갖고 왔습니다. 다니엘은 이사야 44장부터 45장까지 두루마리를 쭉 펴서 읽었습니다. 이사야 44:27-28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다니엘이 이사야 구절을 읽는 순간 고레스는 어떠했을까요? 등골이 오싹하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바벨론 성을 무찌를 때 쓴 전술이 이미 200년 전에 성경에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참신이라고 했고,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고백한 것이 아닐까요? 고레스가 훌륭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레스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원수들의 힘은 이미 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이 고레스의 세상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일하십니다.

 

고레스의 칙령이 떨어지자 유다 사람들은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올라간 사람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4-6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은 올라가는 사람들을 물질로 도왔습니다. 유다인들은 모일 때마다 서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나는 올라가기로 결심했어.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니?” “나는 그냥 여기 있을게. 나는 물질로 도울 테니 올라가면 내 대신 수고 부탁해. 같이 못가 미안하네.” “나는 아직 결정을 못했어. 결정되면 이야기해줄 게.”

 

여러분이 이 시대의 유다인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70년이 지났습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자식이 또 자식을 낳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바벨론 땅에 묻은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을 잡고,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돌아가시겠습니까?

 

고레스는 바벨론 보물 창고를 열어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기구들을 모두 돌려보냅니다. 7-8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세스바살은 총독으로 1차 포로 귀환을 이끈 스룹바벨입니다. 11절에 ,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고 했습니다. 금은 그릇이 5400개입니다. 엄청난 양의 금과 은입니다. 사람들은 이 성경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포로들을 풀어주고, 심지어 자신의 금과 은을 내어주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왕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1879년에 바벨론 폐허에서 BC 6세기의 <고레스 실린더>가 발견이 됩니다. 이 실린더는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실린더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고레스 세계의 왕, 위대한 왕, 정정당당한 왕, 사방의 왕이며 위대한 왕, 안샨의 왕이신 캄비세스의 아들이며 나는 오랫동안 황폐되어 온 성소들과 그 안에 있던 신상들을 티그리스 강 저편에 신성한 도성들로 귀환시켰으며 나는 그들을 위하여 영구적인 성소들을 지어주었다. 이곳의 주민들을 모두 모아서 저들의 거주지로 귀환시켰다. 나는 바벨론의 안녕을 추구했으며 다른 모든 성소들의 안녕도 추구했다.” 영국 그레셤 대학에서 실린더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본인은 제국에 속한 여러 나라들의 전통과 관습과 종교를 존중할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 오늘날 모든 사람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천명하는 바이다.” 고레스는 종교의 자유와 그 나라 전통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고레스 실린더가 최초의 인권 선언문으로 불리어집니다. 에스라서의 말씀과 고고학 자료의가 일치합니다.

 

성전 기구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이제 마음 놓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신앙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전에는 마음 놓고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유다인들에게 신앙의 자유가 허락된 것입니다. 유다인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은 예배하는 곳이고,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뒤에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계시록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하나님이 왜 뒤에서 요한을 부르셨을까요? 앞이나 옆에서 부르시지 왜 뒤에서 부르셨을까요? 내가 네 뒤에 있다는 것입니다. 너를 여기 밧모섬으로 보낸 자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나라는 것입니다. 내가 후대에 길이 남을 계시록을 기록하게 위해 너를 여기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뒤에 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뒤에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이 세상 역사 배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세상 역사 뒤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현실이 답답하고 암울해도 그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전글 -
다음글 사랑이 없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