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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1991년에 가수 민해경 씨가 부른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어른에서 아이들까지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의 나의 것”이라고 흥얼거릴 정도로 당시 히트작이었습니다. 세상은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생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사야 43:1 “…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로마서 14:8 “…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성경은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세상은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뭘까요?
<스파이더 맨>의 명대사가 있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피터 파커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 고등학생입니다. 부모님은 없고, 가난한 삼촌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피터는 어느 날 연구소에 견학을 갔다가 거미에게 물려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그 힘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플래시라는 친구를 때려줍니다. 삼촌이 학교에 왔다가면서 달라진 피터에게 “그날 그 싸움이 플래시 탓이었어도 네가 그 앨 때릴 권리는 없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피터는 삼촌에게 아버지인 척하지 말라며 화를 냅니다. 피터는 자신의 힘을 짝사랑하는 제인이라는 여자 아이의 환심을 사는데 쓰려고 합니다. 격투기 경기에서 3분만 견디면 3,000달러를 준다는 광고를 보고 경기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2분 만에 경기를 이겨버립니다. 격투기 관계자는 3분 동안 경기를 해야 하는데 2분 만에 이겼다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을 합니다. 피터는 속상해하며 격투기 장을 나오는데 괴한이 난입해 격투기 관계자의 돈을 빼앗아 달아납니다. 격투기 관계자가 쫓아오며 도와달라고 하지만 피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모른 척 합니다. 강도는 피터를 바라보며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가보니 삼촌이 길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강도는 조금 전에 자신이 본 그 강도였습니다. 만약 피터가 그 강도를 잡았다면 삼촌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안 피터는 오열을 합니다. 그제야 피터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삼촌의 말을 이해합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성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8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책임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지만 무책임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특별한 재능, 많은 물질, 높은 권세에는 사회에 대한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 기회, 직책, 물질에 비례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난제 중의 하나입니다. 당시 사회적 배경을 모르면 엉뚱하게 해석되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 본문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의 메시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부자의 집에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청지기가 자신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청지기를 해고하기로 하고 청지기를 불러 하던 일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셈하라는 말은 지금까지 관리하던 재정장부를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말 한 마디에 청지기 인생이 끝나버립니다. 주인 앞에서 청지기는 파리 목숨이었습니다.
청지기라는 말이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입니다. 오이코노모스는 집이라는 뜻의 오이코스와 관리하다, 맡다, 분배하다는 뜻의 네모의 합성어로 집을 관리하는 사람, 관리자, 책임자, 감독자라는 뜻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과 주인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며, 또 다른 하인들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청지기에는 재산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 주인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사람, 가정 살림을 돌보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청지기는 종인 경우도 있었지만 자유인으로 고용된 사람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청지기는 고용된 자유인입니다.
이 청지기 아래에는 많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청지기는 종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입니다. 하지만 종입니다. 고용인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가정의 청지기였습니다. 그 집에서 보디발과 그의 아내 외에는 요셉 보다 높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종이었습니다. 이 청지기가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감독관으로 고용된 것을 보면 제법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을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종에 불과합니다. 그는 주인의 많은 재산, 동산, 부동산을 관리했고, 재산을 사용했으며, 다른 종들을 관리하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종입니다. 주인의 집에 있는 것 중에서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셈하라는 주인의 한 마디에 그의 청지기 인생, 그 집에서의 모든 권한은 끝이 났습니다. 그는 단지 청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맡겨진 인생이라는 집을 관리, 감독하는 청지기입니다. 내 인생은 내 것처럼 보이지만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성전 관리자라고도 해석이 가능한 말입니다. 우리는 내게 맡겨진 인생이라는 성전을 관리하는 성전의 청지기입니다. 바울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 삶, 재능, 시간, 재산, 돈, 가족, 은혜 등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도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 내가 사는 집, 내가 가지고 있는 돈, 내가 노력해서 얻은 사회적 지위, 등등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냥 잠시 맡고 있는 청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지기가 바뀔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 뜻에 따라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평가하십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망에 따라, 주인에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관리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승아 집사님의 「내 것이 아닙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승아 집사님은 한 때 남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습니다. 명문대를 나오고, 명품 옷과 가방, 비싼 가전제품, 해외 여행기,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된 집을 블로그에 올려서 인터넷 상에서는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가지고 있는 파워블로거였습니다. 삼성 연구원인 남편 덕택에 풍족한 생활을 하며 해마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니고, 예쁜 그릇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명품 옷과 가방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2012년 12월, 결혼 17주년을 앞두고 남편이 구토와 두통이 심해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그 행복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꿈같았던 결혼 생활이 17주년을 며칠 앞두고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전 남편이 응급실에 입원하던 그날도 눈발을 해치며 열심히 쇼핑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올 연말에는 어디로 해외여행을 갈까, 아이들 겨울 방학 때는 도배를 해서 집 분위기를 바꿔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모든 것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다 살고 나면 하룻밤의 꿈같을 것입니다. 이 집사님의 남편은 2013년 10월, 발병 10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집사님은 명품 물건과 인테리어를 자랑하던 블로그에 ‘내 것이 아닙니다’란 제목으로 간증을 올렸습니다. 한 달 만에 42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연 2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동받는 사연이 되면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 집사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한 때는 이 아름다운 집이 저의 가장 큰 자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프고 보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궁궐 같은 우리 집이 아니라 몇 평 안 되는 비좁은 병실이었습니다. 바라만 봐도 뿌듯했던 참으로 고운 접시들, 수많은 예쁜 그릇들도 남편과 함께 하는 병실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황량한 병실에서 쓸 수 있는 건 보잘 것 없는 플라스틱 접시와 종이컵뿐이었습니다. 붙박이장에 가득 담겨있던 수많은 옷들과 명품 백들... 이 또한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하는 병실에선 그저 편한 옷이면 좋았고 귀히 여기던 명품 백도 아무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디 그뿐이었을까요. 20년 넘게 나의 자랑이었던, 내 남편 조차도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이 또한 내 것이 아니라고... 이젠 알고 있습니다. 내 분신, 내 생명, 내가 사랑하는 이들조차 전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 또한 그분이 내게 잠시 맡겼던 선물임을 나는 잊고 있었습니다. 이젠 압니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 조차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와 같은 이유로 근심, 염려 또한 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것입니다. 아버지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이 땅은 잠시 잠깐이에요. 그 후에는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을요. 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입니다.”
주인의 정리하라는 말 한 마디에 청지기의 직무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청지기는 주단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청지기 직무를 모두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핑계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청지기는 자신의 청지기 일이 끝난 후의 인생을 생각하다가 지금 청지기로 있을 때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먼저 올리브기름 100말을 빚진 사람에게 채무증서에 50말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밀을 100석을 빚진 자에는 80석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반응이 의외입니다. 이 청지기를 법정으로 끌어가 사문서 위조로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데 오히려 지혜롭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 기름을 빌리면 이자가 100%였습니다. 그러니까 빚진 사람의 기름 100말 중에서 50말은 원금이고, 50말은 이자라는 말입니다. 레위기(레25:35-37) 율법에 동족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 동족에게 100만원 빌려주면 100원만 받아야 합니다. 빌려주는 사람이 손해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름을 50말 빌려주면서 차용증서에는 원금과 이자를 합한 100말이라고 써서 원금이 마치 100말인 것처럼 쓰게 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교묘하게 어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밀에 대한 이자는 25%였습니다. 밀 100석이라는 말은 원금이 80석이고, 이자가 80석 중에서 25%인 20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금인 80석이라고 쓴 것입니다.
기름 100말은 올리브나무 92그루에서 150그루에서 나온 기름의 양입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천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노동자가 3년 이상을 꼬박 일해서 벌 수 있는 엄청난 돈입니다. 하루 노동사 품삯을 150,000원이라고 한다면 1억 5천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1억 5천 중에서 이자가 7천 500백, 반입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고리대금이 성행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감당하기 너무 큰 이자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런 지기 어려운 부당한 이자를 부과해 가난한 사람들을 더 어렵게 했습니다. 밀 100석은 2500데나리온입니다. 20석이면 500데나리온입니다. 청지기는 두 사람의 채무자에게 500데나리온씩 동일하게 탕감해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지기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성경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차용증을 고쳐준 것입니다. 청지기는 바지 사장이었습니다. 불법한 사실이 들어나면 주인 대신 다 짊어지고 감옥에 가야 하는 바지 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할 일을 찾은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이자를 모두 날려버렸으니 너무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주인은 법에 호소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에 호소하면 이중장부를 기록한 정황을 모두 밝혀야 하기 때문에 청지기와 함께 쇠고랑을 차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간에 청지기는 주인을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대로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게 해주었기 때문에 괘심하지만 고발도 못하고 칭찬한 것입니다. “지혜롭게”라는 말이 ‘신중한’, ‘통찰력 있는’, ‘총명한’, ‘사려 깊은’, ‘야무진’이라는 뜻입니다. 청지기는 자신의 청지기 인생 위기의 순간에 깊이 생각하고 아주 통찰력 있는 행동으로 모든 상황을 레위기의 말씀대로 되돌려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면 ‘너 죽고 나 죽자!’하며 막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청지기는 자기를 내쫓는 주인에게 앙심을 품고 너 죽고 나 살자며 이중장부를 세상에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살고, 주인도 살고, 채무자들의 빚도 원래대로 해주어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만약 이자를 합친 장부를 다른 청지기에게 넘긴다면 그 청지기가 아직 어떤 사람인 줄 알 수 없어서 그 청지기가 앙심을 품고 주인의 모든 불법한 사실을 폭로하면 주인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주인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지만 청지기를 칭찬한 것입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율법을 바로 잡아 미래를 준비한 아주 사려 깊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인생 위기의 순간에 청지기는 원래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철도국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냉장고 화차 속으로 들어간 후 그만 실수로 밖의 문이 잠겨 냉장고 화차 안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냉장고 화차는 고장이 나 작동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공기도 충분했고, 온도도 적당한 13도였습니다. 다른 직원이 이 사람을 찾다가 그 직원이 갇혀 있던 냉장고 화차의 문을 열어보니 몇 시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죽어 있었습니다. 죽을 만한 환경이 아니었는데, 왜 죽었을까요? 사람들은 그 죽은 직원이 고장 난 냉장고 화차 벽에 남긴 글을 보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점점 몸이 차가워진다. 나는 점차 몸이 얼어오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몸이 차가워지지 않는데 차가워진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죽어버린 것입니다. 냉장고의 추위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절망과 자포자기가 죽인 것입니다. 큰 환란이 오거나 연거푸 환란이 계속 일어나면 어떤 시도도 해보지 않고 자포자기해 절망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냥 인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위기의 순간이라도 길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말씀이 길이 있습니다. 청지기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불의한 재물은 주인과 청지기가 함께 모의해 원금을 부풀려서 만든 차용증에 숨겨놓은 불법한 이자입니다. 불의한 재물은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면서까지 원금에 이자를 더한 나쁜 돈입니다. 친구는 가난한 자들입니다. 친구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의한 돈에 묶여 고통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불의한 돈에 매여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어 그들의 친구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불의한 재물로”라는 말은 “불의한 재물로부터 빠져나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청지기는 불의한 돈으로부터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저축해 놓은 돈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쌓아놓은 돈은 없습니까? 현대인들에게 가장 설레는 말 1위가 “입금됐습니다.”라고 합니다. 돈이 그렇게 좋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움켜쥐고 있을 정도로 돈이 좋습니까? 오늘 말씀의 결론은 13절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돈과 하나님 둘 중에 하나만 섬겨라”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고, 영주할 처소는 영원히 거주할 천국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천국으로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이 세상 어떤 것도 믿음을 대치할 수는 없습니다. 죄 용서에 있어서 십자가, 예수님의 피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부활입니다. 오직 예수 이름뿐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마치 믿음과 같은 위치에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뒤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를 거지 나사로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세대의 아들들은 이 세상의 아들입니다. 빛의 아들들은 믿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합니다. 불법이 합법이 되고 합법이 불법이 되며, 악인이 의인이 되며 의인이 악인이 되며,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시대에 빛의 자녀들답게 할 일을 찾읍시다. 고린도전서 6:11-12 “…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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