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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몇 달 전에 제 차가 달리는 중에 한 번씩 꿀렁거렸습니다. 가끔 가는 카센터에 가서 점검을 받아봤는데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만 하나 교환하고 왔습니다. 이상이 없다는 말에 일단 안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운전 중에 계속 같은 증상이 나타나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증상을 인터넷에 검색해봤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이 없다는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한동안 그냥 탔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불안해서 차를 잘 아는 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와보라고 했습니다. 운전을 해보더니 점화플러그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카센터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점화플러그를 교화했더니 꿀렁거림의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점화플러그가 잘 작동이 안 되면 연료가 불완전 연소되기 때문에 연료 소비가 많다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것입니다. 또 엔진에도 치명적인 대미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가 언제 설지 모르는 것입니다. 달리다가 차가 갑자기 서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없다는 카센터 사장의 말을 믿고 계속 탔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원인을 모르면 헛발질하고, 답답하고, 불안합니다.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면 길이 보입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만물의 기원을, 2장은 인류가 어떻게 창조됐는지를, 그리고 3장은 죄와 죽음의 기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사람이 왜 죽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가시와 엉겅퀴의 고통이 인류에 왜 들어왔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인류가 죽는 이유를 노화, 질병, 사고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죽는 이유를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 중에 하나는 거짓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모든 것이 다 밝히 드러날 때가 올 것입니다. 죄 때문에 인간의 모든 가시 엉겅퀴의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지금 뭔가의 문제로 답답하고, 아프고, 괴롭습니까? 분명히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원초적인 원인을 창세기 3장은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구약 성경의 시작은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의 근원적인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시작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입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메시지는 “내게로 돌아오라”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회개가 내가 지금 당하는 문제와 고통의 해결책입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회개기도를 해보십시오. 죄가 없다고 생각해도 회개기도 해보십시오. 길이 보입니다. 저는 매일 회개기도를 합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회개기도를 합니다. 회개기도를 하면 제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제게는 회개기도 보다 더 좋은 기도가 없습니다. 회개기도가 최고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회개기도 하십시오. 회개기도가 길입니다.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면 평생 헛발질만 합니다. 사람 찾아다니고, 사람에게 묻지 마시고, 하나님을 찾으시고,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은혜를 구하십시오. 엎드려보세요. 이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인류의 모든 고통 해결의 근원적인 실마리는 창세기 3장에 있습니다. 이 시간 인류에 죄와 고통이 세상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살펴보며 성령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기자는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의 성품 하나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간교함입니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간교라는 말의 뜻은 교활하고 속임에 능함입니다. 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거짓말에 능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거짓말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귀는 가장 거짓말을 잘한다는 의미입니다. 마귀는 최고의 거짓말쟁이입니다. 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고, 사탄은 피조물 중에 가장 거짓말을 잘합니다. 한 마디로 둘 다 사기꾼이란 말입니다. 간교함은 마귀의 주된 성품입니다. 혹시 생활하다가 마음에 간교한 꾀가 떠오르면 빨리 떨쳐버리고 회개하십시오. 그것은 마귀의 마음입니다. 마귀는 간교한 사람을 이용합니다. 간교함을 그대로 품고 있다가 사탄에게 이용당해 가룟가 될 수 있고, 에덴동산의 뱀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에 간교한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엉뚱한 일에, 마귀의 일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성령께서 이 말씀을 기록하신 것은 신자로 하여금 사탄의 간교한 꾀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사탄이 간교하다는 말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경각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진실, 신실, 충성입니다. 계시록 3:14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되고, 충성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마귀의 성품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간교함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성품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가장 간교하다는 말은 가장 미련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간교한 사람을 반드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간교함이 당시에는 지혜롭게 보이고 처세술에 능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가장 미련한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맑고 투명한 사람이 되십시오. 감추고 뒷말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진실하면 미련해 보이고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미련한 사람이 되십시오. 진실함이 진짜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진실함이 복입니다.
여자를 유혹한 실제적 주체는 사탄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에 사탄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뱀이라는 말만 나옵니다. 여자에게 말을 걸은 것도 뱀입니다. 사탄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성도는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실체가 있습니다. 실체를 모르면 항상 당합니다. 사탄은 철저하게 하수인을 통해 일을 합니다. 사탄은 온갖 악하고 추잡한 일을 하수인을 통해 합니다. 간사하면 마귀의 하수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간사하면 마귀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습니다. 간사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왜 사탄은 하와를 유혹할 때 뱀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에 뱀은 이 세상 어떤 들짐승보다 더 아름다웠고,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처럼 뱀이 끔찍한 모습의 파충류였다면 하와는 뱀이 말을 걸기도 전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며 멀리 도망갔을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의 뱀과 같은 흉측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사탄의 유혹은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와는 뱀과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와와 뱀 사이에 친분이 있었고, 하와가 뱀을 좋아했으며, 뱀이 지금처럼 흉측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마귀가 가까이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하와를 유혹한 것입니다.
원용국 박사는 자신의 창세기 강해에서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에 뱀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담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이름을 지음 받던 들의 짐승들 중에 빛나고 아름다운 한 짐승이 있었는데, 가장 매력적인 동물로 부드럽고 은혜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은 소위 뱀이었는데 그 어떤 동물보다 간교하였다. 무죄한 하와는 그 놈에게 현혹되었고, 곧 이 간교한 매력적이고 사기적인 창조물에 의하여 타락하게 되었다.” 원용국 박사는 뱀을 빛나고 아름다우며 가장 매력적인 들짐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기성과 간교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간교한 사람, 사기성이 있는 사람, 음흉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어느 순간 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여러분을 물 수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사탄이 뱀을 하수인으로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와도 뱀의 외모에 쉽사리 황홀해지고 말았습니다. 이 여자는 뱀의 찬란한 색깔에 탄복했습니다. 우리는 그 뱀이 지금보다 그 때는 더 한층 고상한 피조물이었다고 믿어집니다. 아마 그는 뱀이 서서 다닐 수 있었으며, 여자는 이 뱀을 좋아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이 뱀은 여자가 가지고 놀기 친숙한 피조물이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 뱀은 흉측한 모습의 파충류가 아니라 들짐승이었습니다. 1절에 뱀을 파충류라고 하지 않고, 들짐승이라고 했습니다. 1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고 했습니다. 뱀이 저주를 받기 전에는 네 발 혹은 두 발로 걸어 다녔을 것입니다. 그때 뱀은 하와에게 친숙한 동물이었습니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님은 타락 이전의 뱀의 모습을 아주 재미있게 설명하셨습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여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완용 동물이 바로 뱀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자들이 시장에 다닐 때 장바구니에다가 항상 뱀을 하나씩 집어넣고 다니면서 친하게 지냈을 가능성도 충분이 있습니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개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가장 친숙한 동물이 뱀이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뱀이 인간에게 최고의 애완동물이 됐을 것입니다. 이처럼 뱀은 에덴동산에서 아름답고 고상하며 인간에게 가까운 동물이었습니다. 사탄은 아름답고 인간에게 가까우며, 간교한 꾀가 있는 동물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 때문에 상처입고, 고통당하고, 넘어집니다.
마귀는 삼손을 블레셋에 굴복시킬 때 삼손이 사랑하는 들릴라라는 여인을 이용했습니다. 마귀는 삼손의 약점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속을 위해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며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 항변하다는 말을 NIV 성경은 꾸짖다(rebuke)라고 번역했습니다. 베드로는 감히 예수님을 손으로 잡고, 꾸짖었습니다. 베드로는 뱃사람입니다. 손이 투박하고, 거칠고, 힘이 셌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강인한 두 손으로 예수님을 꽉 잡았을 것입니다. 두 손으로 예수님을 잡고 그러시면 안 된다며 흔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감히 베드로가 예수님을 이렇게 대할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가 미친 것일까요? 이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너는 나를 무너지게 하는 자라” 이때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거침없이 사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막는 사탄의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12 제자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인 베드로를 조종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나를 넘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하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서요한 목사를 믿지 마십시오. 수제자 베드로가 이 정도였다면 서요한 목사는 더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제 마귀의 입이 되며, 언제 마귀의 손이 될지 모릅니다. 언제 설교하다가 헛소리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 서요한 목사를 조심하십시오. 목사의 탈을 쓰고 마귀의 입 노를 하는 가짜 목사가 있습니다. 목사를 조심하십시오.
마귀는 때로 아내를 통해 남편을 파멸시키고, 아버지를 통해 자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마귀는 목사를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교회와 성도를 파멸시키기도 하고, 권사를 졸개로 삼아 집사나 목사를 공격하게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목격하는 것 중에 하나는 교회 안에 있는 신자가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 보다 더 마귀의 졸개 역할을 더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괴롭힌 사람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너무 마음이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저와 가깝게 지내던 분이 있었는데 어느 교회에서 장로가 됐습니다. 장로가 되기 전까지 이 분은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장로가 된 다음에 돌변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를 쫓아내고 다른 목사를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교회를 세우고, 월급쟁이 목사를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대부분의 경우는 교회 밖의 사람보다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 의해서입니다.
다윗을 파멸시키려고 했던 사람은 아들과 매우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다윗은 시편 55:12-14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다윗은 원수를 동료, 친구, 친우라고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다윗을 가장 괴롭게 한 사람은 다윗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함께 재미있게 의논했고, 심지어 함께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원수가 됐고, 다윗을 파멸시키려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원수가 아닌데 원수이고, 미워하는 자가 아닌데 미워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뱀이 될 수 있습니다.
뱀은 빛나고, 아름다운 피조물이었습니다. 뱀은 하와와 친숙했습니다. 그런데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했습니다. 뱀은 하와를 멸망시키는 마귀의 입이 됐고, 손이 됐습니다. 우리의 입과 손이 교회를 어렵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뱀의 입과 손이 되게 하지 맙시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탄의 입이 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마귀가 뱀의 마음에 들락날락하며 뱀을 하수인으로 부렸습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에 들락날락하지 않도록 간교한 마음을 버리고 신실한 사람이 됩시다. 뱀처럼 간교한 마음을 갖지 맙시다. 내 마음을 뱀의 놀이터가 되게 하지 맙시다. 마음과 입을 굳게 지켜 의의 도구가 되게 합시다. 내 입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천사의 입이 되게 합시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뱀의 입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천사의 입이 됩시다.
마귀의 유혹은 3단계로 진행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1절 하 반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마귀는 두 개 단어를 교묘히 써가며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혼동하도록 유도합니다. 그것은 “참으로”와 “모두”입니다. “참으로”라는 말은 “하나님이 진짜 그렇게 하셨느냐?”라는 의미로 놀라움의 표시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그러죠. “리얼리?” “그거 실화냐?” “그럴 리가?” 깜짝 놀람의 의미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셨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너무 가혹하신 것 아니냐는 의미입니다. 이때 뱀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이며, 흥분한 척 했을 것입니다. 마귀는 “참으로”라는 말 다음에 “모두”라는 말을 살짝 끼어 넣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모두 못 먹게 하셨느냐?”는 의미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하나님을 아주 가혹하신 분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마귀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하와의 마음에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에게 너무 인색하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과일이 수천 종이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 때는 수만 종이 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과일을 하나님이 하와에게 임의로 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것 중에 두 개도, 세 개도 아닌 하나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하나님을 인색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6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그 중에 하루를 드리는 것이 어려운 가요? 하루도 아니죠. 예배 한 시간입니다. 왔다 갔다. 두 시간입니다. 1/84입니다. 84분의 1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기 어렵습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배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색하시고 가혹하신 분이신가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2-3절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6-17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두 말씀을 비교해보면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고 뺏는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먼저 하와는 만지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는 말씀은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것을 다른 사람이 만지지도 못하게 하시는 아주 치사하고 욕심 많은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는 ‘반드시’라는 말을 뺏습니다. 말씀을 약화시킨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변경시켰습니다. 그것은 “죽을까 하노라”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지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변경시키면서 마귀의 간교한 꾀에 말려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복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변경시킨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와는 이때 이미 마음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한 후에 마귀가 예수님을 공격할 때 변조된 말씀으로 했습니다. 마태복음 4:6 <이르되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시오.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성도들을 지키신다는 의미입니다.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도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 받아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탄은 말씀을 변조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기록되었으되”라며 성경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뜻을 변조해서 인용했습니다. 마귀는 말씀을 변조시키는데 귀재입니다. 이단들이 하나같이 성경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성경을 변조했습니다. 이단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맙시다. 사탄의 술수에 마음을 빼앗기지 맙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부인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4절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와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자 마귀는 즉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부인해버렸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뱀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요? 인류 역사를 보면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사람은 죽고 있습니다. 사탄이 거짓말 했다는 사실이 들어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다 들어났는데도 거짓말을 믿습니다. 세상은 마귀의 거짓말에 눌려있습니다.
뱀의 유혹은 3단계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가감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면 부인하게 합니다. 이게 마귀의 수법입니다. 이 간교한 원수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 지성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내 경험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한다면 틀림없이 뱀처럼 사탄의 밥이 될 것입니다. 사탄은 적어도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상대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담과 하와를 상대할 때 보다 훨씬 더 간교해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아담과 하와 이후에 수천 년 동안 인간을 파멸시키는데 자신의 모든 간사한 꾀를 총동원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방법을 고안해내 왔습니다. 사탄에게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인간을 파멸시킨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이 마귀를 내가 당할 수 있을까요? 내 힘을 의지하면 사탄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의 간교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말씀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밥으로 삼고, 말씀을 음료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마귀를 대적하는데 넉넉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만큼 성도에게 강한 힘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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