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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6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세월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이로스인데 이 말은 시점, 시기, 기회, 좋은 때, 알맞은 때라는 뜻입니다. ‘아끼다’는 말은 헬라어로 엑사고라조입니다. 엑사고라조는 구속하다, 속량하다, 건져내다, 도로 사다는 뜻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인생의 좋은 기회를 건져내라”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라” “시간을 구속하라” “ 인생의 잃어버린 기회를 도로 사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는 저장이 안 됩니다. 기회는 늘일 수 없습니다. 기회는 다음으로 미룰 수 없습니다. 한번 가면 그뿐입니다. 놓치면 끝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좋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그런데 인생에서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을 기회입니다. 인생의 다른 기회를 다 놓쳐도 예수님을 믿을 기회는 놓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다음이 아니라 지금 믿으십시오. 지금 회개하십시오. 예수님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기회입니다. 세월을 아껴야 하는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때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날들”입니다. 이것은 시대를 의미합니다. 여기 악은 자기 자신이 악할 뿐 아니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넘치는 악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하려고 계획적으로 꾸미는 악입니다. 넘쳐나는 악입니다. 이 시대는 악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티브,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은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예수님을 놓치지 마십시오.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옥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걸”이라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 믿을 걸.” “엄마 말 들을 걸.” “아내 말 들을 걸.” “친구가 교회 가자고 할 때 따라갈 걸.” “그 사람이 전도할 때 받아드릴 걸.” “목사가 예수님 믿으라고 할 때 믿을 걸.” “미워하지 말 걸.” “살인하지 말 걸.” “우상을 숭배하지 말 걸.” “간음한지 말 걸.” 지옥에서는 말이 걸로 시작해서 걸로 끝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도 저들처럼 껄껄껄 하시겠습니까? 설산 히말라야에는 야명조라는 전설의 새가 있다고 합니다. 야명조는 밤이 되면 설산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고통스럽게 우는데 그 소리가 “날 밝으면 집을 지으리”라는 말로 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해가 뜨면 따뜻한 곳을 찾아 밤새 추위에 떨었던 몸을 녹이며 전날 밤의 일은 까맣게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밤을 맞는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둥지가 없어 잠자리를 구걸하다 구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낮의 일을 후회하며 “날 밝으면 집을 지으리. 날 밝으면 집을 지으리.”라고 구슬프게 운다고 합니다. 영혼의 밤이 올 것입니다. 역사의 밤이 올 것입니다. 지옥의 어둠 속에서 영혼의 집을 걸이라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기회, 구원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의 구원이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이 지나가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에 휩싸여 가까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기회는 한 번 뿐입니다. 삭개오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조리며 예수님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예수님이 돌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멈추어 서시더니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나무를 올려다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와 예수님의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삭개오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셨을까요? 멸시 천대의 눈일까요? 조롱의 눈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분명히 예수님이 부드럽고 다정한 눈빛으로 삭개오를 바라보셨다고 믿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삭개오를 혐오와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내 돈을 빼앗아간 나쁜 놈, 벌레 같은 놈, 더러운 놈, 인간 말종 등등의 욕을 하며 사나운 눈으로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독사 같은 섬뜩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삭개오는 늘 그 따가운 눈총 속에 살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총이 늘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개를 위로 향해 들고 삭개오를 다정하게 올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5절에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라고 했습니다. “쳐다보다”는 말을 개역 성경은 “우러러 보시고”라고 번역했고, 우리말성경은 “올려다보며”라고 번역했습니다. 올려다본다는 것은 존경, 신뢰, 기대, 의지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의 아이들이 자랄 때 작은 키로 저를 올려다봐요. 아빠를 올려다본다는 것은 뭔가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신뢰와 기대의 눈으로 삭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욕했지만 주님은 그를 신뢰하셨습니다. 이제까지 아무도 삭개오를 이렇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를 사람들은 눈을 반쯤 감고 내리깔 듯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를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시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이제까지 자신을 이렇게 쳐다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허전하고 우울했던 삭개오의 마음이 왠지 모르는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눈빛에 흥분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주님이 이 시간 우리를 사랑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여러분을 신뢰하시고 기대하십니다. 교회 오시면 다른 분들을 “당신 같은 사람이 교회에 왜 왔어?”라는 독사의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평생 잊지 못할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봅시다. 주님은 삭개오를 다정하게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무에서 급하게 내려오면 피부가 나무껍질에 긁히고 생채기가 나고 옷이 찢깁니다. 잘못하면 떨어져서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나무에서는 천천히 내려와야 합니다. 조심해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이가 많은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속히’라는 말이 헬라어로 스퓨도입니다. 스퓨도는 ‘서두르다, 급하게 하다, 간절히 바라다(갈망하다), (간절히) 촉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서 삭개오가 당신께 빨리 나오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간절한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께 어서 빨리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왜 삭개오가 그토록 빨리 내려오기를 바라셨을까요? 그것은 삭개오의 집에 가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삭개오와 함께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빨리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집이 헬라어로 오이코스입니다. 오이코스는 집, 식구,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너의 집에 간다는 말은 나는 네 식구가 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너의 Family가 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삭개오의 집은 죄인 중에 괴수가 사는 집입니다. 나쁜 놈 중에서 가장 나쁜 놈이 사는 집입니다. 사람들은 삭개오 집 앞을 지나가면 침을 뱉고, 저주와 욕을 퍼붓고, 돌을 던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집에 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집에 오고 싶어 하십니다. 사람들은 내 집에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집에 오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패밀리, 나의 식구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 오이코스에는 성전, 성소라는 뜻이 있습니다.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는 말은 네 성전에 유하여야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성전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마음에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성전에 유하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성전에 주님을 모시십시오. 주님은 삭개오의 마음의 성전에 유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반드시 필요한 부르심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내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삭개오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구원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4절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고 했습니다. 다른 길이 없어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신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서 사마리아로 가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사마리아로 가신 것입니다. 은혜가 예수님을 사마리아로 가시게 한 것입니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구원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반드시 우리 마음의 성전에 유하셔야만 합니다. 계셔도 되고 안 계셔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내일 너의 집에 유하겠다고 하시지 않고 오늘 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너의 집에 가겠다고 하시지 않고 지금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내일 구원이 이 집에 이를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구원입니다. 내일의 구원이 아닙니다. 오늘의 은혜입니다. 내일의 은혜가 아닙니다. 4절에 “달려가서”라고 했고, 5절에 “속히”라고 했고, 6절에 ‘급히’라고 했습니다. 5절과 9절에 “오늘”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구원의 긴박성입니다. 구원은 지금 속히 받아야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구원은 오늘 지금 여기서 받아야 합니다. 내일은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구원, 지금의 구원이 있습니까? 오늘 나를 새롭게 하고, 나를 이끌고, 나를 담대하게 하고, 나를 변화시키고,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오늘의 구원이 있습니까? 오늘, 지금 구원받으십시오. 내일은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 지금 구원이 있어야 합니다. 흘러간 물이 수레바퀴를 돌리지 못합니다. 지금 흐르는 물이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습니다. 지금 회개입니다. 어제의 회개가 아닙니다. 지금 은혜입니다. 어제의 은혜, 내일의 은혜가 아닙니다. 지금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은혜가 나를 움직여야 합니다.
저기 뒤에 시계를 보십시오. 시계가 지금 재깍재깍 가고 있습니다. 어제 가는 것도 아니고 내일 가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가고 있습니다. 제 심장이 지금 쿵쿵쿵 뛰고 있습니다. 심장은 어제 뛰는 것도 아니고 내일 뛰는 것도 아니고 오늘 뛰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코로 호흡하고 있습니다.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일 낳을 것이 아니라 오늘 낳았다고 했습니다. 시편 95: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음성이 오늘 들리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오늘 주님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오늘 주님의 말씀이 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지금 아니면 결코 안 됩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지금 당장 구원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오늘입니다. 오늘, 지금 구원이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의 집에는 오늘의 구원이 있었습니다.
중국에 해군 제독이었던 ‘첸’이라는 사람이 캔톤이라는 곳에서 한 부흥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설교에 큰 감명을 받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나눠주는 결심 카드에 이름을 적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보좌관이 “뭐가 그렇게 급하십니까? 나중에 천천히 적어 내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첸 제독은 그 말을 뿌리치고 연필을 꺼내어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 드립니다.”라고 쓴 결심 카드에 주소 성명을 쓰고 사인을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부흥회 장소에서 나오는데 한 군인이 밖에서 첸 제독을 기다리고 있다가 총을 쏘아서 첸 제독은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첸 제독은 그때밖에 기회가 없었습니다. 보좌관의 권고를 뿌리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의 말을 듣고 기회를 놓쳤더라면 그 첸은 그 밤에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됐을 것입니다. 이것은 드문 예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회는 아무 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다음에 믿어. 뭐가 그리 급해. 다음 주에 교회 가면 되지.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기도해. 피곤하잖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내 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밝은 곳에 있지만 내일의 지옥의 고통 속에서 눈을 뜰 수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 결단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지금 기도하고, 지금 예수님을 부르십시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서 하루 유하시고 그 다음 날 나오셔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메노입니다. 메노는 ‘함께 산다. 머물러 있다. 계속하여 있다. 살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숙박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주로 계속 거주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삭개오와 영원히 함께 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은 우리 마음에 잠깐 작용하다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의 집에 영원히 유하셨습니다. 마음의 집에 들어가셔서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머물기 위해 오셨습니다.
슈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슈독은 ‘신발 연구에 미친 사람’이란 은어입니다. 나이키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입니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미국 오리건 대학 재학 시 육상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렇지만 늘 일류 선수의 등을 보며 달려야 했습니다. 누구보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재능이 부족함을 절감했습니다. 그는 운동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1962년 큰 결심을 하고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출발에 앞서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자.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여러분! 세상이 미쳤다고 해도 믿음을 중지 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쉬지 마십시오. 예배를 멈추지 마십시오. 구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필 나이트가 일본 고베에 들렀을 때 선수 시절 가졌던 운동화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되살아났습니다. 그곳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만든 신발 브랜드를 보고는 영감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열정이 솟는 것을 느끼면서 무작정 운동화 제조사 ‘오니쓰카’(현재 아식스)를 찾아갔습니다. 그 회사의 경영자를 만나서는 아직 설립하지도 않은 회사 이름을 대며 미국내 판매권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한참 갈등하던 오니쓰카 경영진은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던 만큼 생면부지의 미국 청년을 믿어보기로 하고, 그에게 미국 서부 지역 독점판매권을 내주는 결단을 내립니다. 1964년 1월, 필 나이트는 ‘블루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 BRS)’라는 작은 점포를 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빌린 돈으로 일본에서 신발 300켤레를 수입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용품점들이 수입 운동화 판매를 거절하자 직접 자기 자동차에 신발을 싣고 육상대회를 찾아다니며 신발을 팔았습니다. 필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 내 가게’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뒤늦게 아들이 보따리 행상에 나선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이따위 신발을 팔라고 대학을 보낸 줄 아느냐”며 거세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가족의 실망과 반대에도 개의치 않고 필 나이트는 생계를 위해 다니던 회계사무소의 급여까지 사업에 투자하며 경영에 매달렸습니다. 창업 후 6년간 회사에서 월급 한 푼 가져가지 못할 만큼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76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변경했다. 단돈 50달러에서 시작해 사업 첫해 매출액 8000달러를 기록한 나이키는 현재 연매출 500억 달러, 시가총액 1734억6400만 달러(2023년 6월 15일 기준)에 이르는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나이키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한 마디가 있습니다. “Just do it” “일단 한번 해봐!” 또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해봐!”
예수님의 속히 내려오라는 말씀에 삭개오는 서둘러서 내려왔습니다.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반응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옴이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가만히 관망만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내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 나무 위에 있는 이상, 결단코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내려와야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보입니다. 그 모습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우리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달리신 모습입니다. 그 수치와 조롱의 나무에 대신 올라가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구원과 치유를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내려와야 보인다. 오직 말씀 그대로를 순종하는 것뿐이다. 그 나무에서 내려오는 방법은 오직 말씀 그대로를 순종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을 관망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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