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2 ok!
등대교회 홈페이지입니다.

Sermon

돈 때문에

조회수 : 56회

본문 : 사사기 17:1~6
주일오전예배 | 2025-05-0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 이름은 서요한입니다. 이 이름은 제가 학생 시절에 다니던 교회 세례식 중에 담임목사님이 세례의 의미를 말씀하시면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목사님은 제게 사도 요한 같이 사랑이 많은 목사님이 되라고 하시면서 이 이름을 지어주시고 성도님들에게 앞으로 교회에서는 이 학생을 요한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이 이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 이름이 부담스러운 거예요. 나는 요한처럼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요. 그럴 때마다 요한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아요. 지난 주 월요일 새벽 기도회에 마태복음 11:28의 예수님의 초청에 관한 설교하면서 예수님처럼 더 많이 사랑하자라는 생각을 했고, 지난 수요일 다른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게 사랑이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 사랑하는 목사가 되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이름은 여러분의 부모님에 의해서 지어졌습니다. 부모님이 직접 지으셨든지 아니면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지었을 것입니다. 또 개명을 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름 속에는 부모님 혹은 누군가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름처럼 살고 있습니까? 이름처럼 사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름처럼 되거나 이름 보다 더 나은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이름처럼 살도록 노력합시다. 우리의 자식들의 이름에는 우리의 기쁨과 감사, 그리고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주님의 은혜로 이름처럼 살도록 기도합시다. 기도로 자녀들의 인생을 도와줍시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됩니다. 은혜, 기도 밖에 없습니다.

 

 

 

사사 시대는 구약 시대의 암흑기, 무정부 시기였습니다. 본문은 이 혼란기에 이스라엘 땅 에브라임 산골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이 말을 직역하면 에브라임 산지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미가예후이다.” 기자가 미가라는 사람을 조금 강조하는 느낌입니다. 미가는 히브리어로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인가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와 같은 이는 없다. 여호와가 최고다.”라는 의미입니다. (천사장) 미가엘, 또 미가야(선지자), 미가(선지자), 다 같은 뜻입니다. 미가는 매우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미가의 아버지는 경건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혼란한 시기에 어떤 믿음의 기대를 가지고 이 이름을 지어줬을 것입니다. 이 이름에 아버지의 신앙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미가예후, 사람들에게 신앙적 기대를 갖게 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에브라임 지파가 거주하는 곳으로 비록 산골이지만 이스라엘 땅의 한 복판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지만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계보를 잇는 창세기의 4대 족장 중에 한 사람입니다. 역대상 5:2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로 야곱에게 아버지처럼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미가는 장자의 축복을 받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땅 중앙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매우 신앙적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를 갖게 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이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인 에브라임, 요셉의 신앙과도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자신들의 힘을 자랑하며 기드온과 입다가 사사이던 시절에 괜한 트집을 잡으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와 미가는 사람들에게 실망만 안겨주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김영규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에 목회를 하신 분이십니다. 목사님이 운전을 하시다가 신호위반을 해서 경찰에게 잡혔답니다. 목사라고 했더니 그냥 가라고 하더랍니다. 우리 사회에서 목사님들이 존경을 받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사랑을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제가 부목사 때의 일입니다. 교회 봉고차를 끌고 가는데 저 앞에서 음주단속을 해요. 차가 쭉 서 있잖아요. 제 순서가 됐어요. 교회 이름이 봉고차 앞 유리에 써져 있어요. 경찰이 교회 이름을 보고도 제게 음주측정을 하는 기계를 불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일을 한 번이 아니었어요. 과거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교회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에 대한 기대가 없고 교회를 신뢰하지 않아요. 과거에 목사가 존경을 받았고, 교회 장로, 권사, 집사라고 하면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대감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실망만 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눈총이나 받는 교회와 성도가 아닌지 생각해봅시다. 세상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교회, 목사, 성도가 되지 맙시다.

 

 

 

이 미가의 집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미가의 어머니가 은 천 백을 도둑맞았습니다. 은 천 백은 현재 시가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꽤 큰 돈이었습니다. 1100 중에서 200을 떼어서 신당 같은 것을 꾸몄으니까 은 1100이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돈을 도둑맞았으니 얼마나 애가 탔겠습니까?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미가의 아버지는 일찍 죽은 것 같은데 아내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줬습니다. 당시에는 은행이 없어서 집안에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둑이 들어온 흔적이 없는데 돈이 없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의심한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도둑은 집의 구조를 잘 아는 집안사람일 수가 있다고 추측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아들이 듣도록 아주 큰 소리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도 했습니다. 평범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주 심한 욕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도 했습니다.

 

여호와의 저주를 받아서 창자가 썩어 죽을 ×,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벼락 맞아 죽을 인간,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 영원히 고통당할 ×, 아이들은 병들어 고통을 당하다가 죽을 ×, 내 돈을 훔쳐서 어디 잘 먹고 잘 사나 보자.” 이런 식의 욕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미가 어머니는 이것 보다 더 심한 욕을 집에서 막 해댔을 것입니다. 아들 미가가 견딜 수 없는 욕을 해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저주와 욕설을 들은 아들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견디다 못해 어머니에게 자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보십시오. 그 은이 제게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가졌습니다.” 얼마나 심한 저주를 했으면 아들이 듣다못해 자수를 했을까요? 아들은 어머니의 돈을 훔치고, 어머니는 도둑이 집 안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집안 사람들이 듣도록 집에서 아주 심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돈 때문에 엄마가 자식을 저주하고 욕한 것입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자식에게 있기를 바란다고 저주를 한 것입니다. 돈 때문에 자기 뿌리인 가문을 저주한 것입니다.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돈 욕심이 매우 많았던 사람 같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돈을 작정하고 훔친 것을 보면 남편이 남겨준 재산을 아들에게 주지도 않고 자기 혼자 독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미가는 자식이 여러 명이었고 나중에 레위인 제사장을 아들로 삼은 것을 보면 나이가 꽤 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이 많은 부분 아들에게 상속이 되어야 하는데 어머니가 독식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가는 어머니의 돈을 전부인지 일부인지는 모르지만 꽤 많은 양을 계획적으로 훔쳐버린 것 같습니다. 아들은 돈 때문에 어머니를 꽤 정죄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돈, 돈 했으면 자식이 엄마의 돈을 훔쳐버렸을까요? 여자가 돈 때문에 아들, 며느리, 손주가 줄줄이 있는 집안에서 얼마나 욕과 저주를 퍼붓고 다녔으면 그 저주를 들은 아들이 견디다가 못해 자수를 했을까요? 사랑과 축복과 감사와 은혜가 넘쳐야 할 믿음의 가정에서 돈 때문에 도둑질과 의심과 욕과 저주와 분냄이 넘친 것입니다. 이게 미가예후,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인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는 집,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는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신앙을 계승한 요셉 지파들이 사는 에브라임 산지, 이스라엘 땅 한 복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욕을 많이 하죠. 욕 중에 급살을 맞을 놈이라는 욕이 있습니다. 살은 살인을 뜻하는 말로 아주 흉한 기운을 의미합니다. 아주 흉한 기운으로 갑자기 쓰러져 죽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안 안됩니다. “벼락 맞을 놈.” “천벌을 받을 놈.” “염병하네.”등등의 욕도 있죠. 이 외에도 아주 끔찍한 욕들이 많죠. 그런데 욕은 저주에 가깝습니다. 길을 가면 아주 어린 애들이 막 욕을 하고 다녀요. 옆에 사람이 있건 없건 막 욕을 해요. 어른이건 아이건 욕을 막하는 사회가 됐어요.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저주에 가까운 온갖 악한 욕설이 난무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마태복음 5: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라가는 멍청이, 사악한 놈, 잡류, 비류라는 뜻입니다. 욕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사람을 지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행위입니다. 욕을 들으면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욕이 얼마나 나쁜지 욕을 하는 사람은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집에서 이놈의 새끼! 자식 놈의 새끼가 이런 욕도 하지 마세요. 내 자식이지만 하나님의 자식이에요. 자식한테 !”라는 말도 하지 마세요. 그리스도인은 욕이 아니라 축복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욕하면 안 됩니다.

 

바울이 마치 저주한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갈라디아서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그런데 이것은 바울이 저주 했다는 것보다는 반드시 저주가 있다는 선언입니다. 집에서 사랑하고 축복하는 말을 합시다. 분냄, 싸움, 의심, 불신이 가득한 가정이 아니라 감사와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가정이 되게 합시다. 교회가 우리들의 하늘나라 가정이 아닙니까? 교회는 예수님을 제일로 섬기는 영적인 가정이 아닙니까? 교회에 시기와 다툼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섬김과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게 합시다. 욕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서로를 축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돈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하고, 욕을 했는데 아들이 훔쳐간 돈을 덜컥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화가 나서 욕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지만 아들이 돈을 내놓고 나니까 아차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가 한 저주가 아들에게 실제로 임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두려움이 온 것 같습니다. 미가 어머니는 자신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저주를 상쇄시킬 수 있는 묘안을 짜냅니다. 그것은 신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내놓은 돈을 다시 아들에게 줍니다. 3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아들에게 돈을 도로 주면서 여호와께 거룩하게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1100 중에서 200을 떼에서 먼저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신당은 성막을 본떴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조끼입니다. 우상도 만들었습니다. 드라빔도 만들었습니다. 드라빔은 가족 수호신입니다. 드라빔은 제사장이 점을 칠 때 사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중에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 아론의 후손들만이 할 수 있는데 자기 아들 중에 아무나 하나를 택해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1100개를 여호와께 드린다고 했는데 200개만 사용했습니다. 나머지 900백 개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말로만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지 자기가 챙긴 것 같습니다. 완전히 욕심쟁이에요. 욕심쟁이가 되지 마세요. 그리스도인은 욕심쟁이가 되면 안 됩니다. 거룩히 드린다고 했는데 거룩한 행위는 하나도 없습니다. 말만 하나님이었고, 말만 거룩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감자탕에 감자가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감자는 단맛이 나는 돼지 등뼈를 의미하는 감저에서 유래된 말인 거예요. 감자탕은 감자가 들어간 탕이 아니라, 돼지 등뼈를 넣어서 끓인 탕이에요. 감자는 감자탕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 하나일 뿐이지 감자탕의 주인공은 아니에요. 감자탕의 주인공은 감자가 아니라 돼지 등뼈인 감저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돼지 등뼈인 감자를 밭에서 나는 감자로 잘못 알고 있어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박수와 술객들에게 자신의 꾼 꿈을 맞히고, 그 꿈을 해석하라고 합니다. 이걸 누가 해요. 그런데 그것을 다니엘이 하는 거예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꾼 꿈을 맞히고, 해석까지 하니까 느부갓네살이 깜짝 놀라 하나님을 찬양을 합니다. 다니엘서 2:47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부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그렇다고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뒤에 가면 느부갓네살이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기라고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진짜 하나님을 부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맞습니까? 다른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아닙니까? 전 안기부장 K 씨는 교회 장로이며,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이분이 오래 전에 선거철에 북풍공작을 했습니다. 작전명은 <아말렉>입니다. 성경에서 작전명을 따왔습니다. 자신을 모세, 안기부 부하직원들을 여호수아라고 했습니다. 여당을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과 야당과 북한 세력을 아말렉이라고 했습니다. 선거전을 두 민족과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작이 실패해 K씨는 구속이 됩니다. 불리한 상황이 되자 K씨는 성경 속에 숨겨놓은 칼로 자해합니다. 한 일이 이단 사이비 같습니다. 이분이 마음으로 진짜 하나님을 믿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행동에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분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 예수님이 성경의 예수님 맞습니까? 이슬람교도들은 예수님을 그냥 선지자 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예수님을 부르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스도 없는 교회, 그리스도 없는 크리스천이 되면 안 됩니다. 감자탕의 감저를 감자로 잘못 알고 있듯이 다른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짜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배하는데 그 예배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저주를 상쇄시키는 방법이 우상을 섬기고 점치는 방법밖에 없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저주를 상쇄시킬 수 있을까요? 말씀을 의지하면 됩니다. 잠언 26:2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입으로 내 뱉는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욕과 저주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이 저주를 이기는 힘입니다. 미가 어머니가 한 저주는 까닭 없는 저주입니다. 참새가 하늘을 떠돌아 날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또 제사(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미가 어머니는 말씀도 의지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다짜고짜 성막 비슷한 신당을 만들고 에봇을 만들고,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기독교 형식을 취했는데 기독교가 아니라 변질된 기독교가 됐습니다. 이것을 미신 기독교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샤머니즘 기독교라고 해야 할까요? 이상한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말씀으로 이기십시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말씀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기십시오. 예수 이름을 의지하십시오. 예수 이름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주명식 목사님의 무당 엄마 목사 아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명식 목사님은 대학에 들어가서 선교단체에서 성경공부를 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군대를 갔습니다. 군 생활 중에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은 엄마가 무당이 됐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소식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고,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래요. 휴가를 받아서 집에 갔는데 대문 오른쪽에 용유보살이라고 간판이 붙어있고, 그 위에 대나무 깃발이 꽂혀 있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까 신당을 차려놨어요. 한쪽에 대한경신연합회(신내림 받은 사람들 연합회) 회원증이 붙어 있고, 그 옆에 무속인 자격증이 있었습니다. 엄마를 보자마자 떨리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엄마 왜 무당이 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온갖 욕설을 하면서 설명을 하더래요. 참 이상하죠? 엄마나 자식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요. 성경에 귀신을 더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더러운 욕을 하는 거예요. 엄마라면 자식에게 절대로 욕을 하지 못합니다. 엄마가 아니라 귀신이니까 욕을 한 것입니다. 미가 어머니하고 비슷하죠. 욕하지 마세요. 기독교인은 욕을 하면 안 됩니다. 어머니는 내가 살고, 가족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무당이 됐다고 했습니다. 모든 무당들이 다 똑같이 말합니다. 본인이 죽을 것 같고 집안이 망할 것 같으니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는 거예요. “신이 선택한 것이다. 인간이 거부할 수 없다. 팔자다, 운명이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명식 목사님이 군대를 가자마자 집에 어려움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목사님이 군대 간 6개월 사이에 갑자기 집안에 우환이 많아져 집안이 망해가는 거예요. 형제간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싸움이 일어나고 의가 상하고 갈라지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어머니 신병이 이전보다 심해졌어요. 어머니에게 신병이 나면 무당이 와서 된장밥을 해서 주면 나았습니다. 그런데 주 목사님이 군대 갔을 때 어머니 신병이 심해져서 잠도 못자고, 두통에 시달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몸이 바르고 쑤시고, 꿈을 꾸면 죽은 조상이나 신령을 만나는 거예요. 거리를 배회하고. 혼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병원에 가도 병명이 없어요. 이게 신병의 증상입니다. 동네에 있는 무당에게 가니까 신병이라고 하면서 빨리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인천에 있는 다른 여러 무당을 만나고 서울까지 와서 또 다른 무당을 만났는데 대답은 동일했습니다. 엄마에게만 신병이 있는 게 아니라 아버지, 누나, 남동생까지 신이 퍼졌다는 거예요. 이 신들을 모아서 한 사람에게 좌정을 시켜야지 집안의 우환이 끝난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내림굿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 누나에게 신내림이 간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울었다는 거예요. 내 딸만큼은 무당 만들 수 없다며 엄마가 설마산 굿당에서 내림굿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외 작두를 타는 무당이 됐어요. 쌍 작두와 외 작두가 있는데 외 작두를 타는 무당이 더 영험하다고 합니다. 설마산 굿당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엄마의 굿은 황해도 굿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무형문화제로 추대 할려고 했답니다.

 

주명식 목사님의 엄마는 완전히 신점을 봤다고 합니다. 점쟁이들이 신점과 사주팔자를 같이 보는데 주 목사님의 어머니는 신점만 봤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 사람의 문제가 다 눈으로 보인답니다. 귀신이 보여주는 거예요. 주명식 목사님이 제대하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랬더니 점 손님들이 끊어지더래요. 한 집에 살면서 주 목사님은 한 번도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왜요? 속에 성령님이 계시잖아요. 하나님의 자녀잖아요, 목사님이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 학교에 오셨습니다. 목사님이 선교단체 활동을 하셨는데 선교단체에서 하는 파송 졸업예배를 한 것입니다. 그 예배에 어머니가 참석한 거예요. 어머니 머리가 뻐개질 것처럼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데 자식 체면 때문에 참고 끝까지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점 손님이 더 끊어지더래요. 어머니가 다른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며 아들이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동일하게 아들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가서 점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다 아들을 이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신내림을 받을 때 갔던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 점쟁이가 아들을 이기지 못하니까 아들 뜻을 따르라는 거예요.

 

마침 마을에 있는 교회 목사님 세 분이 주 목사님의 어머니에게 전도하러 왔습니다. 어머니가 목사님들에게 고춧가루를 뿌리고 앞집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으로 피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아들의 뜻을 따르라는 거예요. 어머니가 그 할머니 집에서 소주 두 병을 마셨습니다. 술기운에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으면 자기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 세 분과 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집으로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가 간증을 하는 거예요. 이 할머니는 내림굿을 받았지만 무업은 하지 않고, 집에 신당만을 차리고 살면서 식당을 했습니다. 그런데 망했습니다. 남편은 경찰인데 잘 안됐습니다. 근처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한번만 우리 교회에 나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강대상에서 불이 나와서 머리로 들어가니까 귀신이 나가면서 내가 졌다고 하더래요. 그 할머니가 귀신을 믿으면 망하는 길이라고 그러면서 아들의 뜻을 따르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열 아홉 귀신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 어떻게 한 것이 없습니다. 복음만 받아들였더니 다 떠나갔습니다. 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이전글 사랑이 없다면 반대하신다
다음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