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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내 인생이 아름다운 구역에 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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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16:4~6
주일오전예배 | 2024-10-2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아주 먼 옛날에 땅에 사는 동물 나라와 하늘에 사는 새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어요. 박쥐는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동물나라가 전쟁에서 유리해보였어요. 박쥐는 날개를 등 뒤에 숨기고 동물 나라 왕 사자를 찾아가 사자님, 저는 땅에 사는 쥐처럼 생겼으니 동물나라 편이에요.”라고 했어요. 사자는 아주 좋아하며 박쥐를 반겨주었습니다. “, 그렇구나! 이제부터 박쥐 너는 동물 나라 편이다.” 그런데 얼마 후에 동물 나라가 새 나라에게 밀리기 시작했어요. 걱정이 된 박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새 나라의 왕인 독수리를 찾아갔어요. “독수리님, 저를 보세요. 저는 날개가 있으니 새랍니다.” 독수리는 반가워하며 박쥐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앞으로 박쥐 너는 새 나라 편이다.” 싸움은 밀고 밀리며 계속 되었어요. 동물이 이겼다가 새들이 이기고, 새들이 이기다가 동물이 이기기를 반복했어요. 그럴 때마다 박쥐는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하며 이기는 편에 서서 싸우는 시늉만 했어요.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시끄러웠던 숲 속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어요. 새들과 동물들이 사이좋게 지내기로 한 거예요. 박쥐는 새들을 찾아갔어요. “아니, 박쥐잖아? 동물 편에서 싸우더니 왜 나타난 거야.” “박쥐를 쫓아버리자!” 새들은 부리로 박쥐를 마구 쪼아대며 쫓아냈어요. 놀란 박쥐는 동물들을 찾아갔어요. 동물들은 박쥐를 보자 간첩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물며 쫓아냈어요. 어쩔 수 없이 박쥐는 멀리 도망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혼자 살아야 했어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을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우리 속담에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체면도 없고, 양심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박쥐처럼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입니다. 저질스러운 인간 중에 하나가 연애할 때 양다리 걸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양다리 중에 가장 나쁜 양다리는 신앙의 양다리입니다. 하나님께 붙었다가 우상에게 붙었다가, 하나님께 붙었다가 세상에 붙었다가 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양다리 인간관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절대로 양다리 신앙인이 되지 마세요.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4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예물을 드린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할입니다. 마할은 재촉하다, 서두르다는 뜻입니다. 재촉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빨리 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NIV다른 신들을 쫓아 달려가는’(who run after other gods)라고 번역했습니다. KJV는 이를 다른 신을 서둘러 쫓아가는’(that hasten after another god)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린다는 말은 다른 신들의 뒤를 허겁지겁 쫓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마할은 다른 신을 너무 갈망해 정신없이 쫓아가는 모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실패한 역사입니다. 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을까요? 그것은 양다리 신앙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나와서 다른 신에게 예배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예레미야 2:23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과 같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양다리 신앙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양다리 신앙이 오늘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 때 다녔던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아들이 대학에 원서를 접수하고 합격하는지 떨어지는지 점을 쳤다는 소문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의 아들이 고등부와 고등학교 제 1년 후배였습니다. 소문이 어떻게 났을까요? 권사님이 이야기를 했으니까 소문이 난 게 아니겠습니까? 권사님이 점치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 거예요. 김창옥 씨 강의에서 한 여성이 아들 때문에 너무 불안해서 점을 치러갔다며 사연을 이야기 하는데 이야기 중에 자신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좌중을 폭소케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웃었을까요?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점을 안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강남에 그리스도인들이 47프로였습니다. 한국교회가 한창 부흥할 때였습니다. 강남에 있는 여자 신도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린 후에 성경책을 가방에 넣고 점을 치러 다녔다고 합니다. 예배드리고 점도 치고. 만약 여러분이 점을 쳐서 점괘가 나왔다면 점쟁이가 가짜이든지 여러분이 가짜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둘 다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 그런 분 없겠지만 행여나 점치러 가지 마세요. NASB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는 말씀을 다른 []과 물물교환한 자들(의 슬픔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The sorrows of those who have bartered for another [god] will be multiplied)라고 번역했습니다. 우상숭배를 NASB는 물물교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귀신에게 물건과 돈을 주는 것은 영혼을 파는 행위입니다. 귀신과 물물교환하지 마십시오.

 

엘리야가 갈멜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갈멜산 한 쪽에는 엘리야 선지자가 혼자 서 있고, 맞은편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둘 사이에서 이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저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머뭇머뭇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양다리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자니 아쉽고, 우상을 버리자니 아까웠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외칩니다. 열왕기상 18:21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의 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편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을 택하자니 세상이 아쉽고, 하나님을 포기하자니 지옥에 떨어질 것 같고, 그래서 하나님도 포기 못하고, 세상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 편도 아니고 세상 편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서 서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합니다. 이것도 잡고 싶어 하고, 저것도 잡고 싶어 합니다. 죄송하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렸을 때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습니다. 그물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손으로 움켜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냇가에서 한 마리나 두 마리가 있으면 그 물고기를 끝까지 쫓아가서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물웅덩이에 커다란 물고기 많이 모여 있습니다. 어린 욕심에 다 잡고 싶었고 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뛰어들어서 이것을 잡으려고 하다가 놓치면 다른 것을 잡으려고 쫓아가고 그것도 안 되면 또 다른 것을 쫓아갔습니다. 어느 새 그 많던 물고기는 다 사라집니다. 한 마디로 잡지 못한 것입니다. 중국 어느 마을에 한 처녀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재산은 많지만 얼굴은 너무 못생긴 동쪽에 있는 마을에 사는 총각에게 청혼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얼굴은 아주 잘생겼지만 가난해 빠진 서쪽에 있는 마을에 사는 총각에게도 청혼을 받았습니다. 동쪽으로 시집가자니 서쪽 총각의 잘 생긴 얼굴이 아쉽고, 서쪽으로 시집가자니 동쪽 총각의 부가 아쉬웠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딸에게 부모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자 처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물었습니다.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면 안 되나요?” 동가식서가숙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영적 동가식서가숙하는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오.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하는 박쥐신앙인, 배트맨 크리스천이 되지 마십시오. 양다리 신앙을 버리십시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괴로움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체베트인데 손해, , 부상, 괴로움,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자는 손해, 부상, 고통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올인 하겠다는 말입니다. 저는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재미로라도 안 읽습니다. 신앙은 올인 입니다. 오직 우리 주인 되신 하나님께 올인 해 보십시오.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올인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산업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12지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지파별로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 분배받은 땅을 산업이라고 합니다. 땅은 한 지파에서 다른 지파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팔아도 희년이 되면 다시 그 지파, 그 집안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땅은 영원히 그 집안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경계를 나타내는 지계표를 움직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7:17). 이웃의 땅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경계를 넘어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자손손 그 땅에서 살면서 그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그 땅에서 생활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산업이라는 말은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먹으며,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탐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방 신의 경계를 결코 넘어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잔의 소득이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내 컵에 담긴 물(액체)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컵에 있는 것을 먹습니다. 나의 잔은 나의 인생, 나의 삶, 나의 운명, 나의 지위, 내 직분, 내가 매일 향유하는 즐거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잔의 소득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나의 인생이고, 나의 운명이고, 나의 지위이고, 내가 매일 향유하는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컵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내 인생의 컵에 더러운 것 담지 마세요. 하나님만 담으세요. 귀신을 담지 마세요. 점치러 다니지 마세요.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귀신을 왔다 갔다 하지 마세요.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5:17-28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방백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치소와 저주를 당함이 오늘날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잔이 저주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의 잔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인생의 잔이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는 말씀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나의 운명은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나의 인생의 운이 주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내 인생의 운을 붙잡고 계시다는 이 다윗의 고백을 믿으십니까? 우리 속담에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은 보통 사람에게는 생기지 않는 아주 나쁜 악재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뒤로 넘어졌으면 뒤에 있는 신체 기관만 다쳐야 하는데 앞에 있는 코까지 깨질 정도로 운(재수)이 없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 박은 셈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운(재수)이 없다는 의미의 우리 속담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이 나의 운을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다윗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나의 운을 지켜주시면 나쁜 일이 생겨도 하나님이 그것을 복으로 바꾸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갈 때의 일입니다.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때 아비새라는 다윗의 장수가 다윗에게 이 죽은 개 같은 사람의 목을 베겠다고 하자 다윗은 그냥 두라고 하면서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운명을 바꾸어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따라가면서 돌을 던지기도 하고, 먼지를 날리기도 하며며 저주했지만 다윗은 끝까지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고백처럼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내 인생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다윗은 너무 아름답고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다윗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나라, 이스라엘 땅을 가리킵니다. 또 그 땅 안에서 살아가는 다윗의 삶과 인생을 가리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인생, 나의 삶을 가리킵니다. 자기가 사는 땅은 하나님은 대충 주신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줄로 재서 주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충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무거나 주신 것이 아닙니다. 고르고 골라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 것입니다. ‘(줄로) 재어 주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팔인데 떨어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줄로 재어 주다는 말이 문자적으로 줄이 (위에서) 떨어지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과 자신에게 허락된 삶은 어쩌다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의미입니다. 좋든지 나쁘든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사건들이 어쩌다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감당하도록 주신 나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일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에서 아름답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임인데 즐거운, 기쁜, 유쾌한, 아름다운, 사랑스러운, 노래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모든 삶들, 자신이 당하는 모든 일들이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노래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너무 너무 좋은 일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디모데전서 4:4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하기 때문에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선합니다. 나에게 좋은 일, 기쁜 일, 신나는 일이 일어나지만 나쁜 일도 일어나고, 싫은 일도 일어나고, 악한 일도 일어나고,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너무 힘든 일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다 나에게 선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나쁜 일을 하실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선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칼로스입니다. 칼로스는 좋은, 선한, 아름다운, 흠이 없는, 훌륭한, 칭찬할만한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착하고, 훌륭하고, 흠이 없으며, 칭찬할 만한 것입니다. 이 말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착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흠이 없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모두 나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합니다. 마귀가 나에게 나쁜 짓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운명을 꽉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결국 그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결코 버릴 게 없습니다. 여러분! 감사합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6절 하반절에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고 했습니다. 여기 아름답다는 말은 솨파르입니다. 상반절의 아름답다와 다른 단어입니다. 솨파르는 곱다, 아름답다, 예쁘다, 잘 생겼다, 빛나게 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삶이 아름답고, 곱고, 잘 생기고, 빛난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라고 번역했고, 습니다. NIV 성경은 분명히 나는 매우 기쁜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surely I have a delightful inheritance.)”라고 번역했습니다. 시편 16편은 다윗이 고난 가운데 지은 시입니다. 황금시이지만 고난시이기도 합니다. 고난 중에 다윗은 자신의 삶이 아름답고 빛이 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은 빛이 나는 삶을 경험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삶은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우며 빛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충 생각없이 아무거나 주신 것이 아니라 줄로 정확하게 재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만나는 일이 슬픈 일이든, 좋은 일이든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지 맙시다. 박쥐처럼 이곳에 붙었다가 저곳에 붙었다가 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삶, 빛이 나는 인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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