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계정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
2 == 2 ok!
1. 예배, 저주를 복으로 바꾸다
노아는 방주에서 377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노아는 1년 만에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지구는 약 1년 동안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고, 땅에서 물이 솟았습니다. 물이 온 세상을 완전히 휩쓸어버렸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이 세상은 홍수 이전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홍수로 모든 것이 다 파괴됐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펼쳐진 세상은 폐허뿐이었습니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지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막막한 현실에서 노아가 한 것은 예배입니다. 노아는 제단을 쌓고, 제물을 구별해 최선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8장 20절,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노아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배를 대충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장 21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노아의 예배를 받으시고 노아에게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예배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후손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민수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은 제사법을 제정하시고, 제사 후에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도 예배 후에 목사는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복을 선언합니다. 예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지 마세요. 노아의 예배가 저주를 복으로 바꾸었습니다. 등대교회 예배가 약함을 강함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질병을 치료로, 상실을 회복으로 바꾸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욥의 재산, 많은 종들, 양 7천 마리, 낙타 3천 마리, 소 천 1천 마리(오백 겨리)가 하루아침에 날아갔고, 7남 3녀의 자녀들은 한 날에 몰사했습니다. 욥의 몸에는 정수리에서 발바닥까지 나병 같은 독한 종기가 났습니다. 욥의 부인이 욥을 보니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했습니다. 욥은 이런 고난을 30년 동안 겪습니다. 그러면 이 고난을 끝낸 것이 무엇일까요? 욥의 지독한 병을 고친 것이 무엇일까요? 욥기 42:8~10에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욥과 세 친구에게 예배를 요구하셨고, 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배를 드렸고, 하나님은 예배 후에 욥의 고난을 끝내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배 후에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을 주셨습니다. 욥의 고난을 끝낸 것이 예배이고, 욥의 고난을 갑절의 복으로 바꾼 것도 예배입니다. 예배 후에 욥의 나병 같은 종기도 낫고, 자녀도 다시 낳았습니다. 예배가 욥을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했습니다.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왕이 됩니다. 랍비 라쉬는 솔로몬이 12세에 왕이 됐다고 했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14세에 왕이 됐다고 했으며, 랍비 아브라바넬은 20세에 왕이 됐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벅찼습니다. 그때 솔로몬이 한 일이 일천 번제입니다. 일천 번제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솔로몬이 일천 번 예배했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에 양 일천 마리를 드렸다는 견해입니다. 대부분 후자를 선택하지만 저는 전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둘 중에 어느 것이 맞다고 특정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천이라는 말은 많다는 말로 솔로몬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했다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날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3:4-5에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했습니다. “밤에”라는 말을 현대인의 성경은 “그날 밤에”라고 했습니다. 일천 번제를 마친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복을 주셨습니다. 예배가 나라를 든든하게 세웠습니다.
제가 전에 부목사로 있던 교회 안수집사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신학자들이 일천번제를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비판해서 일천번제라는 말이 교회에서 거의 없어졌지만 진짜 있었던 일이니까 참고해서 들어보세요. 안수집사님은 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들이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집사님이 농자재 사업을 하셨는데 정말 가난하셨습니다. 그 집사님이 제게 그랬어요. 집도 없어서 차에서 자기도 했다고. 교회 부흥회를 하는데 강사 목사님이 솔로몬의 일천 번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집사님이 새벽에 일천 번제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예배 때마다 매일 1만원씩 헌금을 하셨습니다. 3-40년 전이니까 만원이면 큰 돈입니다. 가난한 살림에 매일 일천 번제를 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지만 끝까지 하셨대요. 일천 번제가 끝난 다음에 하나님이 물질을 복을 주시는데 밤에 퇴근할 때 만원자리를 쌀자루에 꽉 채워서 가져가셨대요. 예배드리면 돈을 많이 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예배로 장사 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몽골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마음”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은 한 때 몽골에서 순회 선교 사역을 했습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베르흐 지역에 있는 예배처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마을에는 나면서부터 듣지 못하다가 이 선교사와 함께한 선교팀의 기도로 귀가 열린 벌러르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벌러르라는 소녀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교회 안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예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소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뛰어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소녀는 예배 시간이 임박해지자, 말씀을 듣기 위해 소를 포기하고 들판을 가로질러 예배당으로 달려왔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지만 몽골에서 소는 특히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큰 재산입니다. 그런 소를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놀랍고 마음이 답답했을까요? 그러나 소녀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달려온 것입니다. 소를 포기하고 예배를 선택한 것입니다.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선교사님은 설교를 마치고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벌러르의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마십시오. 소를 찾게 해 주십시오.” 예배를 마쳤을 때 바깥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망간 소가 제 발로 주인을 찾아온 것입니다. 벌러르 소녀는 예배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소녀의 순전한 예배에 하나님은 순전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의 순전한 기도에 하나님은 순전하게 응답하셨습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대신 소를 선택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소를 포기하고, 예배를 선택하지 못하는 믿음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서울시 강동구 성내3동에 엄신형 목사님 시무하시는 중흥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제가 다니던 교회에 엄신형 목사님이 부흥회를 오셨습니다. 아직도 기억하는 간증이 있습니다. 엄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중에 맹인이 눈을 뜨고 좋아서 춤을 추더랍니다. 박영문 집사님이 부산 충무 교회에서 간증 집회를 했습니다. 박 집사님은 후에 목사님이 됩니다. 간증을 하는데 강대상 밑에 중풍병자가 누워있더래요. 가족이 죽을 바에는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라고 데려다가 뉘어놓은 것입니다. 간증이 끝나고 기도를 하는데 집사님의 마음에 중풍병자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더니 중풍병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집사님도 놀라고, 사람들도 놀라고, 중풍병자도 놀랐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부산의 초량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이었습니다. 설교 중에 모퉁이에서 누군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외치더래요. “목사님! 목사님! 내 눈이 보여요. 내가, 내가 눈을 떴어요.” 그 사람은 맹인이었는데 눈이 보이게 됐다며 설교 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기쁜 나머지 자제를 못하고 팔짝팔짝 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인 사람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분을 쳐다보며 여기저기서 감탄과 찬양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설교도 예배도 중단되었습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복을 주십니다. 시편 138:2절에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전심으로 예배해봅시다.
2. 세 가지 복
노아와 가족은 예배 후에 세 가지 복을 받습니다. 첫째,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해지는 복입니다.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열매가 맺어라. 많아져라. 가득 차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자손들에게 열매를 맺고, 많아지고, 가득 차는 복을 주셨습니다. 노아와 같은 예배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열매가 맺고, 많아지고, 가득 차게 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생육, 번성, 충만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노아와 노아의 가족의 모두 예배했겠지만 성경은 노아가 예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8장 20절에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복은 노아와 노아 자녀들이 같이 받았습니다.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아버지가 드린 예배로 자녀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저주를 남겨 놓고 죽지 마세요. 후손에게 저주가 아니라 복을 남겨 놓고 죽으세요.
둘째, 보호하심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물이 노아와 노아 가족을 두려워하며 무서워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절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두려워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레인데 이 말은 ‘경외하다, 깜짝 놀라다’는 뜻입니다. 동물은 사람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의 두려움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조처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처음 세상에서 사람과 동물은 조화로웠습니다. 그런데 죄로 그 조화가 깨졌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인간을 두려워하는 천성을 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의 삶은 동물들에게 큰 위협을 받았을 것입니다. 코끼리, 기린, 하마, 사자, 호랑이, 표범, 늑대 같은 동물들은 사람 보다 훨씬 힘이 셀 뿐만 아니라 포악하고 잔인합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동물에게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셨다면 인간의 삶은 망가졌을 것입니다.
영국의 웨스턴 대학교 환경생물학과 마이클 클런치 박사 연구팀은 야생에 사는 동물들은 어떤 소리를 가장 무서워하는지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 연구자들과 협력해 동물들의 공포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장비를 목마른 동물들이 머무는 물웅덩이 21곳 근처 나무에 설치했습니다. 이 장비들은 동물들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작동하기 시작해 무작위로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고 동물의 반응을 촬영합니다. 연구팀은 하루 24시간 6주 동안 장비를 작동했습니다. 연구팀이 장비를 통해 들려준 소리는 동물들이 위협감을 느끼지 않는 새소리부터 개 짖는 소리, 총소리, 사자들의 울음소리, 인간이 차분하게 말하는 소리 등이 담겨 있습니다. 소리에 대한 동물의 반응을 평가한 행동 척도는 ’도망‘이었습니다. 각 영상에서 개별 동물들이 얼마나 빠르게 물웅덩이를 떠나 도망가는지, 이때 걸린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점수로 매겼습니다. 19종의 동물이 등장한 4000개 이상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 동물들은 개, 사자, 총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사람의 말소리를 들었을 때 40% 빨리 물웅덩이를 떠났고, 뛰어 도망갈 확률은 2배 높아졌습니다. 기린, 얼룩말, 임팔라, 쿠두 등의 초식동물은 물론 표범, 하이에나 등의 맹수들도 인간의 목소리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코끼리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도망쳤지만, 사자 소리가 들릴 땐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해 격렬하게 부딪히는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연구팀의 장비가 망가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가 숲속에서 거닐다가 사람이 소리를 들으니까 그 자리를 급하게 떠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물이 무서워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에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이 나옵니다. 두 번째 재앙이 개구리 재앙입니다. 개구리가 물에서 올라와서 바로의 궁과 침실과 침상 위와 애굽 사람들의 화덕과 그릇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동물과 사람의 경계가 없다면 정말 징그럽고 끔찍한 일이 많을 것입니다. 여덟 번째 재앙이 메뚜기 재앙입니다. 메뚜기가 애굽에 들어와 애굽 들판의 채소와 과일을 다 갉아먹었습니다. 동물이 사람들 사는 세상에 들어오는 것은 아주 큰 재앙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봉서산에 있는 고라니들이 내려와서 도로, 인도, 아파트를 막 뛰어다니고, 뱀이 도로를 막 다닌다고 해보세요. 산에 있는 쯔쯔가무시, 진득이, 사슴벨레, 풍뎅이, 날파리 등 수백 종의 벌레들이 숲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섞여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늑대, 표범이 인가에 내려와 여기저기를 다닌다면 사람이 마음대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동물들에게 인간을 두려워하는 천성을 주셔서 사람이 사는 곳에 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전에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고, 땅 위에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온갖 열매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세상의 모든 식물을 쓸어버렸습니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열매는 시간이 흘러야 다시 맺습니다. 하나님은 그때까지 노아와 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3절에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했습니다. 동물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레메스인데 ‘기는 것’, ‘움직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산 동물이라는 말은 모든 살아있는 기어다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에 하나님은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4:4에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했습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습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채워주심이 있습니다.
3. 지켜야 할 한 가지
하나님은 홍수 후에 노아와 그 자손들에게 모든 피조물을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지켜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기를 그 생명이 되는 피와 함께 통째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4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노아는 모든 생물을 다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동물을 피 채 먹지 않는 것입니다. 2절 끝에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붙였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탄인데 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노아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주시고, 하나를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를 요구하신 것은 인간이 피조물로 하나님의 법 아래에 있음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하지만 선악과는 예외입니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아담이 피조물로 하나님 앞에 복종해야 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말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작은 것 하나를 지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피를 동물의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잠깐 피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혈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적혈구는 산소를 허파에서 받아 말초 세포까지 날라줍니다. 또 세포에서 생긴 노폐물을 나르기도 합니다. 백혈구는 침입한 병균을 물리칩니다. 면역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혈소판은 피부 등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게 되면 즉시 피를 응고시켜 우리 몸을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보호하고 아까운 피가 흘러 없어지는 것을 막아주며 상처가 치유되도록 도와줍니다. 혈장에는 항체가 있어서 침입한 병균을 물리치며, 각종 영양분을 세포로 날라줍니다. 또 세포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게 해 주고 체온을 적정하게 유지해 줍니다. 동물은 피에 의해 생명이 보존됩니다. 동물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물과 피가 일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를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동물을 주셨습니다. 소유권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피조계를 함부로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값을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5절,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특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친애하는 피조물입니다. 죄인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는 것이지만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잠언 14:31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이전글 | 하나님이 활을 십자가에 걸어놓으시다 |
---|---|
다음글 | 꼭 필요한 한 가지 질문 |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