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말씀을 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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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2:8~3:3
주일오전예배 | 2024-08-11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고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장면입니다. 일종의 선지자 위임식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님은 사사, 나실인, 선지자 같은 특정한 사람에게 임재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요엘 2: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는 왕 같은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만인제사장 시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시니 지금은 만인 선지자시대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에스겔 선지자에게 부어주신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네 입을 벌리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입을 벌리라고 하셨습니다. 2:8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벌리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파차입니다. 파차는 넓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품을 크게 하면 턱이 뻐근할 정도로 입이 최대로 넓혀집니다. 새가 새끼가 있는 자신의 둥지에 뱀이 침입하면 입을 있는 대로 다 넓히고 소리를 지르며 뱀에게 덤벼듭니다. 입을 벌리라는 말은 입을 최대한 넓히라는 의미입니다. 에스겔은 영적인 체험을 육적인 형태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입을 넓히라는 말은 마음을 넓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받을 준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지난 주간에 본 말씀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네 발로 일어서라고 하셨습니다. 1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일어나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에스겔이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넓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입을 넓게 여십시오. 마음을 넓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여기 입을 크게 벌린다라는 말은 영적 식욕의 깨움을 의미합니다. 사람에게는 육적 식욕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식욕이 있습니다. 명예에 대한 식욕이 있습니다. 정욕에 대한 식욕이 있으며, 세상 쾌락과 즐거움에 대한 식욕이 있습니다. 육적 식욕은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반면에 영적 식욕은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 있습니다. 섭식 장애라는 병이 있습니다. 마음의 문제로 음식 섭취에 장애가 있는 병입니다. 음식을 안 먹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질환으로 거식증(anorexia)이 있습니다. 음식을 거부하는 병입니다. 음식을 안 먹으면 죽습니다. 육적 섭식 장애도 문제이지만 영적 섭식장애도 문제입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영적 식욕이 죽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양식인 말씀을 거부합니다. 인류는 영적 거식증에 걸려 있습니다. 말씀을 먹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먹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어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넓게 열라고 하신 것은 에스겔의 영적 식욕을 깨우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식욕은 예배에 대한 갈급함, 기도와 찬양에 대한 갈급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무뎌지고 죽어 있는 여러분의 영적 식욕이 깨어나기를 소원하십니다. 영적 식욕을 깨우는 방법은 입을 넓게 열 듯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넓게 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넓히십시오.  

시편 42: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슴은 다른 동물보다 몸이 뜨거워 다른 동물보다 물을 자주 먹습니다. 물을 마셔 몸을 식히는 것입니다. 사슴은 물가에는 맹수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내려갑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적 목마름을 목마른 사슴에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적 목마름이 있습니까? 시편 119:131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헐떡이다이 히브리어로 솨아프입니다. 솨아프는 게걸스럽게 먹다’, ‘탐하다’, ‘갈망하다’, ‘헐떡거리다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말씀을 게걸스럽게 먹을 정도로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시인은 영적 식욕으로 충만했습니다. 입을 여시고 영적 목마름을 깨우십시오. 죽은 채로 있지 마십시오.

 

 

말씀을 먹으라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는 뜻입니다. 두루마리는 파피루스라는 식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든 고대의 종이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먹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공동 활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일방적으로 먹이시지 않고, 하나님 없이 내가 일방적으로 말씀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2:8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고 했고, 3:2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라고 했습니다. 입을 여는 것은 내 몫이고, 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도 내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3:1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발견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차입니다. 마차는 ‘~에 오다’, ‘도착하다’, ‘발견하다’, ‘찾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에스겔에게 도착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와도 에스겔이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이 여러분에게 도착했습니다. 매주일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의 식탁이 차려집니다. 어떤 분들은 잘 먹고, 어떤 분들은 대충 먹고, 어떤 분들은 먹지 않습니다. 말씀을 먹으십시오.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먹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듣는 것입니다. 8절에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육신의 귀가 아니라 마음의 귀로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마음으로 들으십시오. 둘째 읽는 것입니다. 두루마리가 에스겔 앞에서 펴졌습니다. 9절에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은 펴진 말씀을 읽었습니다.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내가 보니, 보라고 했습니다. 셋째, 마음에 담아두는 것입니다. 3:3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했습니다. 배와 창자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말씀을 심령 깊은 곳에 충만하게 채우라는 뜻입니다. 우리 영혼의 배에 말씀을 가득 채웁시다. 말씀을 가득 채워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4대 우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중에 세 번째가 시장의 우상입니다. 시장에 많은 것은 말입니다. 말이 많다보면 없는 것도 생겨났습니다. 삼인성호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존 로크는 17세기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300-400년 전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400여 년 전에 말이 얼마나 많았으면 시장의 우상이라는 말을 했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SNS의 발달로 그 시대보다 말이 백 배, 천 배로 많아졌습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세상이 됐습니다. 지금은 시장 우상 시대입니다. 말이 칼이 됐고, 말이 총이 됐습니다. 교회에도 말이 참 많아요. 우리는 시장의 우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선지자처럼 말씀을 읽고, 들어서 배와 창자에 채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에 가득 채우시고 세상 말을 이기십시오. 잠언 15:4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상하게 한다는 말이 조각을 내다, 깨뜨리다, 박살내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세상 말에 깨지거나 박살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귀를 이기십시오. 시장의 우상을 이기십시오.  

부산에 가면 범어사라고 아주 유명한 절이 있습니다. 범어사는 영남 지역 3대 사찰로 꼽히는 부산의 명소입니다. 범어사에 이명식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속세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습니다. 스님 중에서도 엘리트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이명식 스님은 절을 찾아오는 신도들이나 부산대학교 불교회 학생회를 대상으로 교리를 가르치면서 불자의 길을 가는 장래가 총망되는 법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 올라와 법당 앞에 탑을 돌던 여대생들이 주고받으며 하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여대생의 말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어느 날 교회에 다니는 친구의 권유로 부산 시내 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교회 목사님이 불교는 아무리 수양하고 고행을 해도 인생의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일종의 허무주의 철학사상에 불과하며 구원도 없고 영생도 없으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종교가 아니라고 하더라.” 이명식 스님이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그 날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날따라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젊음과 생명을 바쳐 불교의 도를 천상천하에서 가장 심오하고 유일무이한 진리로 믿고 있던 불자로서 기독교를 공격하고 불교의 진리를 지키는 글을 쓰기 위해 큰 스님의 허락을 받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려면 먼저 성경을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해 시내 서점에서 성경책을 구입해 절에 딸린 뒷산의 한 작은 암자에 들어가 두문불출하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염도 깎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고, 성경만 읽었습니다. 큰 스님이 큰 실수를 했죠. 식사는 겨우 연명할 정도로 소량만 섭취했습니다.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지 머리를 깎지 못해 머리가 자라 이마를 덮었습니다. 하루 서너 시간 잠자는 것을 빼고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독교를 공박하고자 하는 마음이 허물어지고 자신이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꼬박 70 번을 읽고 나자 자신이 스님이 아닌 기독교 신자로 변모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불교 신문과 잡지사에서 스님이 그 동안 성경을 많이 읽는 말을 듣고 기독교를 공박할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글을 쓰고 내용을 검토하다가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써 놓은 원고를 읽어보니 기독교에 대한 공박은커녕 온통 불교의 허구성과 우상숭배의 실상을 드러내는 성경구절만 잔뜩 써놓은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차 창세기와 시편과 복음서를 외웠습니다. 성경의 줄거리가 그의 뇌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불교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큰 스님이 어느 날 아침 공양 때 이명식 스님을 불러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제 너는 부처님과 인연이 다 되었으니 산에서 내려가라스님은 하산해서 서울 신림동에 방을 얻고 건축현장에서 노동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심한 통증을 느껴 일찍 집에 와서 쉬면서 기독교방송(CBS) <새롭게 하소서>를 봤습니다. 마침 스님이었다가 목사님이 된 김성락 목사님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즉시로 스님은 김성락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김 목사님은 교회 근처에 방을 얻어주었습니다. 시장에서 튀김을 팔 있도록 리어커를 마련해주고, 생활비도 일부 지원해주었습니다. 교인들이 쌀과 먹을 것을 서로 갖다 주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교인들이 와서 팔다가 남은 튀김도 사갔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명식 스님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시켜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 5만 여명의 스님들이 있다고 합니다. 입산 후에 5년 동안은 고요하고 평안하여 스님이 된 것을 만족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무상, 무념, 무욕, 무구의 순정으로 살다가 얼마가 지나면 우상의 허구성을 파악하고 통찰하게 되어 승려의 60% 이상이 심각한 갈등에 직면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인다고 합니다.

 

 

꿀같이 단 말씀  

선지자는 말씀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꿀 같이 달았습니다.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말씀이 꿀과 같이 달았다는 것은 말씀이 선지자의 심령을 완전하게 만족시켰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종종 성경 말씀을 꿀처럼 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9:10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했고, 시편 119:103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읽은 말씀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입니다. 10절에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먹은 것은 축복의 말씀이 아니라 저주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든지 간에 본질적으로 공의롭고 참되며 죽은 것을 살리고, 새롭게 하며,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받는 사람에게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서울 충신 교회 있을 때 교회에서 부부 동반으로 중국을 보내줬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마지막 날 각종 과일을 사서 호텔에서 먹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두리안입니다. 두리안은 혈압 조절에 매우 좋은 음식입니다. 아미노산 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이 있어 먹으면 초콜릿처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트립토판이 들어있어서 먹으면 숙면에 도움이 됩니다. 비타민 C 등 항산화제가 풍부해 신체의 활성산소와 싸우고 신체 및 피부 노화를 지연시켜 줍니다. 이 외에도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비싸고 귀한 과일을 앞에 쌓아놓고 냄새 때문에 먹지 않았습니다. 조금 먹었는데 냄새나고, 느끼하고, 미끈미끈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더 먹어보라고 하시는데 아내와 저는 냄새와 미끈미끈함 때문에 먹지 않았습니다. 아주 후회되는 기억입니다. 현지에서 수확한 지 얼마 안 되는 아주 싱싱한 상태이었습니다.  

성경은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은 성령의 호흡이 성경에 들어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담 속에 들어갔던 생기가 성경에 들어있습니다. 성경을 먹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기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생기가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약하고 병든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성경암송에 길을 묻다>(박종신 목사)라는 책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A씨는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배드민턴을 치던 동호회 선수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드민턴 대회 출전해서 경기 중 점프 스매시 후 착지 과정에서 왼쪽 무릎관절이 뒤틀리는 부상을 입어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진단결과 무릎 반월상 연골파열 및 십자인대 부분 손상이었습니다. 오른쪽 무릎 1, 왼쪽 무릎은 3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통증이 극심했고,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가 일어나는 동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깨는 과부하가 걸린 탓인지 어깨 부상까지 왔습니다. 온 몸이 부상으로 인해 꼼짝도 못하고 일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박종신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성경암송집회가 열리게 되어 참석하게 됐습니다. 박종신 목사님은 성경암송학교 설립자입니다. 하루 3번 새벽, 오전, 저녁 집회에 참석하여 열심히 성경암송을 했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집에 와서 잠을 자는데 배드민턴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이라 그런지 몸이 엄청 가볍고 아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상습적인 통증이 사라지고, 무릎을 완전히 굽혀서 앉았다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식구들이 놀라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 암송만 했는데 의학이 할 수 없는 병을 치료한 것입니다. 성경을 먹으십시오. 말씀을 배와 창자에 가득 채우십시오. 꿀처럼 단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돈은 채울수록 더 채우고 싶습니다. 세상 즐거움은 아무리 채워도 갈증만 남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채우면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말씀을 배와 창자에 꽉 채우시고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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