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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사랑하다,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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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룻기 4:1~6
주일오전예배 | 2024-07-28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데카르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알베르트 카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반항하는 인간) 루소는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가수는 이렇게 말할까요? “나는 노래한다. 고로 존재한다.” 노래하는 직업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믿는 사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예배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기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여러분은 무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룻기는 한 이방 여자의 인생 역전 스토리입니다. 이 이방인 여인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하다일 것 같아요. 사랑하다. 살아가다. 집안이 완전히 망했어요. 살 소망이 없어요. 그런데 사랑하며 사는 거예요. 룻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구약 성경 시대에는 고엘 제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기업 무를 자라는 뜻입니다. 어렸을 때 딱지치기를 했습니다. 딱지치기를 하면 잃는 아이가 있어요. 그러면 잃은 아이들이 딱지를 다시 찾으려고 먹을 거를 가져와요. 그러면서 잃어버린 딱지를 무르고 싶어 해요. 그러면 그거 받고 딱지를 돌려줍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다가 외통수에 걸립니다. 상대가 한 수만 무르자고 합니다. 그러면 맨 입으로?”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커피 한 잔 살게?”라고 해요. 이렇게 한 수를 물러줍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고엘 제도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아요. 고엘 제도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형이 후손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해서 형수가 아들을 낳게 해 죽은 형의 대를 잇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계대결혼제도, 수혼 제도, 형사취수제라고 합니다. 둘째, 어떤 사람이 생활이나 기타 어려움 때문에 노예로 팔렸을 경우 가까운 친족이 그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자유인이 되게 해주거나 땅을 팔았을 때에 팔린 땅을 다시 사 주는 것입니다. 셋째, 친족이 죽임을 당했을 때 원수를 대신 갚아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대신 해주는 사람을 고엘(기업 무를 자)라고 합니다. 룻기는 첫째와 둘째에 경우에 해당하는 스토리예요. 고엘 제도의 정신은 공동체, 특히 친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입니다. 한 가족이 자립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가까운 친족이 도와주어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업 무를 자는 친족의 잃어버린 삶(인생)을 찾아주는 사람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하나님의 가족됨을 잃어버렸습니다. 죄에 팔려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인류는 스스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회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기업 무를 자, 고엘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다시 하나님의 가족이 됐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고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 아래 팔린 우리 인생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고엘, 기업 무를 자이십니다. 잃어버린 인생이 있으면 고엘 되시는 예수님께 다시 찾아달라고 구하십시오. 이게 기도예요. 예수님은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었을 때 잃어버렸던 인생을 찾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밤에 청혼을 했습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룻의 남편, 시아버지, 시동생 모두 죽었습니다. 전 재산을 다 날리고 시어머니와 둘이 남았습니다. 비참한 집안이 됐습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달라는 말은 나와 결혼을 해서 나로 아들을 낳게 해 우리 시어머니에게 주고, 우리 시아버님이 잃어버린 땅을 사서 우리 시어머니에게 돌려주라는 의미입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룻은 재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씨받이 인생을 자청한 거예요. 정말 룻의 헌신이 놀랍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보아스가 룻의 청혼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룻이 비록 과부였고 이방인이었지만 당시 찾아볼 수 없는 현숙한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룻에게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그 친족이 보아스보다 룻에게 기업 무를 책임에 대한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그 친족이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면 좋지만 다하지 않으면 자신이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룻에게 약속을 합니다. 보아스는 룻의 청혼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3장의 내용입니다.

 

아침이 됐습니다. 보아스는 아침이 되자마자 성문으로 가서 올라가 앉았습니다. 고대 시대에 성문에서는 토라를 배웠고, 재판을 했으며, 성읍의 발전, 부동산에 관한 논쟁이나 가축의 절도, 기타 여러 가지 문제 등등의 일을 상의했습니다. 성문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일을 보기 위해 나가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성문에서 시장이 열립니다. 고대에 성문은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성문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 앉은 것은 기업 무르는 문제를 공적으로 의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재판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아침 일찍 성읍의 장로 열 명과 배심원들을 베들레헴 성문으로 불러 모으고, 그들과 함께 성문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아침이라 사람이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두 과부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공개적으로 하면 룻과 결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뒤로 사람들을 만나 돈 몇 푼씩 찔러주면서 내가 룻하고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자기에게 더 유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기업 무를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도 선물을 주면서 양보하라고 할 수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뒷거래나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성문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성문의 재판 자리에서 처리했습니다.

 

친구와 다른 사람의 험담(뒷담화)를 하면 둘 사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파비아대학 연구팀은 여성 22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뇌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다른 대화를 했을 때보다 험담을 했을 때 뇌에서 옥시토신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옥시토신 호르몬은 사랑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데, 정서적인 안정감을 증가시켜 불안감과 긴장감을 해소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의 과도 분비를 억제합니다. 연구를 이끈 나타샤 브론디노 박사는 함께 험담을 나누는 동안 뇌에서 분비되는 다량의 옥시토신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더욱 친밀해지는데 도움을 준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직장 내에서도 뒷담화가 내부 결속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뒷담화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는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조직 내에 니편내편이 생겨 조직에 대한 신뢰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뒷담화, 뒷거래가 일시적으로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직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뒷담화, 뒷거래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5:14-15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 앉자 마침 그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1절에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라고 했습니다. ‘마침이라는 말은 어떤 기회나 경우에 딱 알맞게또는 우연히 공교롭게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는 전자로 쓰였습니다. 이 사건이 어쩌다가 우연히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이 섭리하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어쩌다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입니다. 우리 삶에는 마침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리고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해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마침이 여러분의 삶에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마침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계획했습니다.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을 한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30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나갔는데 마침 밤이었습니다. 나쁜 일을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마귀가 마침을 이용해 가룟 유다를 어둠 속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마귀가 준비해놓은 마침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준비해놓으신 마침으로 빛 가운데 행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에게 앗수르의 니느웨 성으로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아주 가혹하게 괴롭힌 나라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이방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앗수르는 북쪽이고, 욥바는 남쪽입니다. 반대쪽으로 도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욥바로 가자 마침 배가 한 대 출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나서 1: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욥바로 내려갔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니느웨에서 더 멀리 달아났습니다. 다시스는 유럽 서쪽 끝부분에 있는 도시입니다. 요나가 땅 끝으로 도망을 가려고 한 거예요.

 

사도행전 10장에 이방인의 오순절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달리야 부대 백부장인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합니다. 고넬료는 천사의 명대로 욥바로 사람을 보냅니다. 사람들이 베드로가 있는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베드로는 기도 중에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들을 따라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자 성령 강림이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기자는 이 이방인의 오순절 사건을 기록하면서 마침이라는 말을 4 번이나 씁니다. 사도행전 10:7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10: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11: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사도행전 기자는 마침이라는 말을 계속 씁니다. 이방인의 오순절 사건이 어쩌다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결국에는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국부론 중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국에는 공공의 이익을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사상론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그의 위의 용량은 그의 거대한 욕망에 비해 그리 크지 않으며, 가장 비천한 농민의 위의 용량 정도 밖에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부자는 단지 큰 덩어리의 생산물 중에서 가장 값나가고 가장 기분 좋은 것을 선택할 뿐이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보다 별로 많이 소비하지 못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토지가 모든 주민에게 똑같이 나누어가졌을 경우에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생활필수품 분배를 하게 된다. 신의 섭리는 대지(大地)를 소수의 귀족과 지주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이 분배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망각하지도 방기하지도 않았다.”

 

아담 스미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 세상에 보이지 않고 역사하는 절대자의 손이 있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국가의 부에 굉장히 많은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국가 경제에 보이지 않는 손, 즉 신의 섭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검은 손도 있습니다. 그 손은 마귀의 손입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이끌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보아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한 손에 이끌렸습니다. 그의 삶에 은혜가 있었습니다. 왜 그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공동체의 의무를 다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아무개에게 나오미가 자기 죽은 남편인 엘리멜렉의 땅을 팔려고 하니 그 땅을 사서 나오미에게 주겠냐고 물었습니다. 3-4절에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팔려 하므로라는 말은 이미 팔려서 다른 사람이 관리를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오미는 이미 늙었습니다. 집안의 남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몇 년만 늙은 나오미를 먹여 살리면 그 땅은 영원히 자기 가문의 소유가 됩니다. 유대인은 땅을 사도 희년이 되면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집안의 남자들이 다 죽었기 때문에 희년이 되어도 돌려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조건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보아스는 네가 사지 않는다면 내가 사야 하니 사지 않으려면 자기에게 말을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개는 흔쾌히 자기가 사겠다고 했습니다.

 

아무개가 산다고 하자 보아스는 다음 조건을 제시합니다. 만약 그 땅을 사려면 나오미의 며느리 룻까지 사서 룻과 결혼을 한 다음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을 나오미에게 주고 그 산 땅도 그 아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룻에게서 사서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룻을 사서라고도 번역이 가능한 말입니다. 룻을 사라는 말은 룻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말입니다. 보아스는 과부였지만 룻을 아내로 꼭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보기 드물게 너무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개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포기할 준비를 있었습니다. 성경의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삶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순서에 순응하십시오.

 

제가 오래 전에 어떤 분에게 좋은 구두를 선물 받았습니다. 신던 구두가 낡으면 신으려고 신지 않고 집에 잘 보관해두었습니다. 신던 구두가 낡아서 새 구두를 신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는 중에 어떤 권사님이 밥을 먹자고 해서 나갔더니 아들이 구두를 사놓고 신지를 않는다며 저에게 신으라는 것입니다. 받아서 집에 와서 보니 구두의 디자인이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디자인이에요. 저는 옛날 디자인 신경을 안 씁니다. 안에 보니 노인들이 하는 옛날 지압 깔창이 깔려 있어요. 구두가 무겁고 뒷 굽이 딱딱해요. 구두 상자를 보니 얼마나 오래됐는지 색이 누렇게 발해 있어요. 구두 상자 한 귀퉁이에 회장님이라고 작게 쓰여 있어요. 가만히 보니 아들 구두가 아니라 돌아가신 권사님의 남편의 구두인 거예요. 30년은 돼 보여요.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저에게 주신 거예요. 그걸 보는데 마음이 얼마나 짠한지! 갑자기 구두가 두 개가 됐어요. 그런데 문득 구두가 두 개인데 하나를 누구를 주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한 분 생각이 나요. 그래서 하나를 주려고 하는데 어느 것을 주어야 하나 고민이 되는 거예요. 저는 아끼고 안 신던 새 구두를 신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래 된 구두를 그 목사님에 주지 못하겠는 거예요. 또 권사님의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것을 보내고 오래 된 것을 제가 신었어요. 그랬더니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시간이 지날수록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에게는 좋은 것으로 베푸세요. 나쁜 것은 주지 마세요.

 

제가 부목사일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 집사님 한 분이 교회 교역자들을 자기 집으로 식사초대를 했어요. 식사 메뉴 중에 하나가 갈낙탕이에요. 낙지, 전복 등 여러 가지 해물이 들어 있어요. 그런데 집사님이 전복을 적게 샀는지 어떤 그릇에는 전복이 있고, 어떤 그릇에는 없는 거예요. 제 거에는 아주 큰 전복이 있어요.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전복이 있다 없다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때 전복이 없는 교역자에게 제 것을 양보를 했어야 하는데 양보하지 않고 그냥 먹었어요. 15년 정도가 됐는데 지금까지 후회스러워요. 그까짓 전복이 뭐라고! 몇 주 전에 집사님 한 분이 아이들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교회 냉장고에 넣어놓았어요. 아이들도 먹고 어른들도 먹었어요. 저는 찬 것을 잘 안 먹어요. 그런데 냉장고에 제가 좋아하는 게 하나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거 내가 언제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2-3주 동안 생각만 하고 안 먹었어요. 그리고 지난 주간 새벽에 청소하시는 분이 교회 복도를 왔다 갔다 해요. 요즘 많이 덥잖아요. 아내에게 아이스크림 하나 드리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먹으려고 두었던 것을 줄 거 같아요. 하지만 아내에게 그거 내가 먹을 거니까 다른 거를 주라고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아내가 청소하는 분에게 여러 개의 아이스크림 중에 제가 먹으려고 한 것을 주었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어서 좋더라고요.

 

자기가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 아끼는 것, 남에게 주고 싶지 않은 것을 포기하세요. 그게 우상입니다. 그것 때문에 싸우고, 그것 때문에 뒷거래하고, 그것 때문에 분란이 일어납니다. 보아스는 룻과 꼭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이때 보아스의 나이를 적게 잡으면 40대이고, 많게 잡으면 50대 정도입니다. 보아스가 40, 50 될 때까지 왜 결혼을 못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고 하며 룻을 보살펴주고 룻과 결혼하고 싶어 한 것을 보면 그때까지 괜찮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과 꼭 결혼하고 싶어요. 이 사람을 놓치면 죽을 때까지 결혼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뜻이 아니면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나오미의 며느리 룻의 이야기를 하자 아무개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어 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업에 크게 피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나오미는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룻은 이제 20대입니다. 룻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나오미 호적에 올리고, 산 땅을 그 아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너무 큰 손해입니다. 그래서 빨리 못 사겠다고 했습니다. 손해가 있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솨하트입니다. 솨하트는 부패시키다, 파괴시키다, 황폐되다, 망하다라는 뜻입니다. 내 기업에 손가 있다는 말은 내 기업에 큰 치명타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핑계처럼 보입니다. 룻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흔쾌히 수락했다는 말은 기업을 무를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기업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말은 엄살입니다.

 

당시 고엘 제도는 지켜지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있기는 있지만 사실 없는 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 법이 지켜지지 않았을까요? 아무개의 말처럼 손해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가 잃어버린 형제의 땅을 사서 주겠습니까? 누가 5촌 조카의 잃어버린 땅을 사서 주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손해가 너무 크니까 아무도 지키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에 손해가 될까봐 말씀을 지키지 않은 그 사람을 성경 기자는 아무개라고 부릅니다. 분명히 보아스는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기자는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경 기자는 그의 후손들이 부끄럽기 때문에 아무개라고 한 것 같습니다. 후손들이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도 지키지 않는 말씀을 보아스가 성문에서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있으나 마나한 책이 됐습니다. 골동품처럼 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집 안 깊이 감추어놓은 골동품처럼 됐습니다. 가치는 있는 것 같은데 쓰지는 못하는 골동품이 됐어요.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지만 손해가 날까봐 성경의 말씀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적당하게 신앙 생활합니다. 세상적인 이익에는 자신의 신앙을 언제든지 양보합니다. 아무개처럼 신앙생활하지 맙시다.

 

말씀을 지키다가 손해도 보고, 예수님 때문에 억울한 일도 당하고, 신앙 때문에 욕도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신앙 때문에 내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는 인생을 의자 뺏기게임으로 묘사했습니다. 의자 뺏기게임이 뭔지 아시죠? 사람은 열 두 명인데 의자는 열한 개가 있는 경우, 한 명은 의자에 앉을 수 없기 때문에 의자에 서로 먼저 앉으려고 다투는 게임입니다. 세상은 의자 뺏기게임과 같다는 거예요. 누구 한 사람은 앉지 못해요. 한 사람은 꼭 손해를 봐야 해요. 누구 한 사람은 꼭 잃어야 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그 의자를 다른 사람이 앉도록 양보하면 어떠니? 네가 좀 손해 보면 어떨까?”라고 하지 않으실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서로 앉으려고 하는 그 의자를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주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의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손해를 희생이라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말씀 때문에 희생하기로 각오했어요. 룻은 집안이 풍비박산 났지만 아무것도 없는 시어머니를 사랑하며 살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신앙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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