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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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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 3:1~3
주일오전예배 | 2024-06-0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어떤 식당 한쪽 벽에 오늘은 현찰, 내일은 공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한 손님이 내일은 공짜라는 말에 다음 날 다시 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가려고 하는데 주인이 음식 값을 내라는 거예요. 손님은 어제 왔을 때 내일은 공짜라고 해서 왔는데 왜 돈을 내라고 하죠?”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손님이 음식을 드신 것은 오늘입니다. 공짜를 드시고 싶으면 내일 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왠지 억울할 거 같아요. 속는 느낌, 이런 생각이 들 거 같아요. 우리가 무엇을 받으면 그 뒤에는 대가가 숨겨져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세계는 어떨까요? 어떤 초등학생이 쓴 일기입니다.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그런데 그 순수한 마음에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공짜로 받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햇빛과 바람을 공짜로 받았어요. 공기와 구름과 하늘을 공짜로 받았어요. 그리고 생명을 거저 받았습니다. 이 생명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누군가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순간입니다. 이 순간을 우리는 거저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값없이 거저 주신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은혜를 쏟아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감사하며 지키며 살 때 그것이 전정한 복이 됩니다.  

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습니다. 아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아르입니다 나아르는 유아에서 청년까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보통 소년(소녀)을 가리킵니다. 이때 사무엘의 나이를 12살 정도로 추정합니다.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긴다는 말은 대제사장인 엘리의 감독 아래 제사장의 수업을 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18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고 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의 옷 중에 제일 겉에 입는 옷으로 앞치마처럼 생긴 옷입니다. 사무엘은 대제사장인 엘리의 지도 아래 제사장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제사장 수업을 받아야 할 사람은 사무엘이 아니라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디 가고 어린 아이가 제사장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 직분을 버린 것 같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열심히 음식을 만들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예수님 발 앞에서 말씀만 듣는 마리아를 보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10:41-42).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길가 밭에 떨어진 씨앗을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것을 마귀가 말씀을 빼앗아 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15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말씀을 빼앗아 갔다고 했습니다. ‘빼앗아 가다는 말의 헬라어에는 옮겨가다, 가져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은혜가 옮겨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 생기면 가져가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를 마태는 악한 자라고 했고, 누가는 마귀라고 했고, 마가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빼앗기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사장 직분과 성막에서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민수기 18:6-7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선물이라는 말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을 버렸고 그 선물을 사무엘이 받았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은혜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은혜를 지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빼앗기지 않고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을 잘 간직할 때 진정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은혜를 받으면 교회 문 앞에서부터 마귀가 받은 은혜를 빼앗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혜를 마귀에게 빼앗기지 맙시다. 받은 바 은혜를 굳게 지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라고 했습니다. 스승이 엘리이고, 제자는 사무엘입니다. 엘리가 사무엘의 선생님입니다. 학생은 모범적인데, 스승은 이상합니다. 학생은 바른데 스승은 삐뚤어져 있습니다. 2:26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했습니다. 제자인 사무엘은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면에 선생인 대제사장 엘리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2:27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라고 했습니다. 31~34절에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엘리는 저주받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예배는 좋은 일인데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이상합니다. 예배는 은혜로운 일인데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은혜롭지 않습니다. 학생은 복을 받았는데 스승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제자는 건전한데 선생님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이게 엘리 시대의 비극입니다.  

신학대학원 다닐 때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고, 같이 성경 연구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던 동기 목사가 2년 전에 이단으로 정죄되어 목사면직이 됐습니다. 인류대학을 나왔고, 신학대학원을 2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데 재능이 있어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 리더로 활동하도록 동아리 이사회 선배들이 밀어줬습니다. 졸업생과 연결되어 있고 이사회가 있는 큰 동아리입니다. 그런데 이단이 됐습니다. 건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 어떤 분이 기도하러 왔습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습니다. 느낌이 이상해서 간 다음에 교회 이름을 검색해보았더니 우리 교단에서 교류 정지한 교회이에요. 일부 교단에서는 이미 이단으로 정죄했어요. 세상에는 이상한 교회, 이상한 목사, 이상한 성도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등대교회가 목사도 좋고 성도도 좋은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사무엘은 이상한 지도자의 지도를 받았으며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이상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이상한 영향을 받지 않고 믿음이 건전하게 성장했습니다. 등대교회는 목사도 건강하고, 성도도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등대교회는 목사도 은총을 받고, 성도도 은총을 받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단 사설이 밀려오고, 이상한 신앙이 침투해 와도 바울의 축복기도처럼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건강하게 잘 보전되기를 바랍니다. 

1절 하반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희귀했다고 했습니다. 희귀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카르입니다. 야카르는 보배로운, 값비싼, 보기 드문, 굉장히 드문이라는 뜻입니다. 물건의 희소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씀이 희귀했다는 말은 값비싼 보배를 보기 어렵 듯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을까요? 백성들은 말씀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상품화됐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사기 마지막에 미가라는 사람이 레위인을 자기 집으로 사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사기 17:9-10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고 했습니다. 레위 사람이 한 집 안의 성직자로 팔렸습니다. 

만약 본문에서 야카르라는 말이 상업적인 의미로 쓰였다면 말씀이 희귀한 이유가 제사장, 레위인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상품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다가 그것이 우리를 전쟁에서 이기게 하자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4:3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법궤에는 십계명이 들어있습니다. 법궤가 상징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법궤를 부적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악귀가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사람들의 도구가 됐다는 뜻입니다. 복음이 목사가 출세하고, 교회가 목사가 명예를 얻고, 먹고 사는 수단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목사가 하나님 뜻보다는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복음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적 원리가 아니라 이 세상의 시장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목사가 장사꾼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동창 모임에 가지를 않으니까 초등학교 동창들이 저를 보겠다고 왔습니다. 식사 중에 한 친구가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요. “나는 요새 모든 게 다 장사로 보여.” 뜬금없이 하는 말을 들은 친구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니까 한 번 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모든 게 다 장사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말은 저를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교회도 장사하는 곳 아니냐는 말입니다. 목사인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냐는 의미입니다. 그 친구의 눈에 목사인 제가 교회 장사꾼처럼 보였나 봅니다. 밥 먹자고 온 친구가 가슴을 후벼 파고 갔습니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안산에서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 친구의 말이 두고두고 제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두고두고 저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교회를 짓지 않아도 되고, 이 상가에서 제 목회를 마쳐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이 교회를 건축하도록 해주신다면 저는 교회를 아주 초라하게 그게 아니면 아주 소박하게 짓고 싶습니다. 현대적으로 좋은 재료를 가져다가 아름답게 짓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말은 이렇게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 옆에 고아원도 짓고 싶어요. 제 꿈이 고아원 하는 것입니다. 전주에 가면 안디옥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성전을 건축하고 있습니다만 1980년대의 안디옥 교회는 깡통 교회를 유명했습니다. 인터넷에 깡통교회를 치면 그 교회가 나옵니다. 제가 여기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간판을 달아야 하냐고 했더니 아는 집사님이 거의 짜증을 비슷하게 내면서 아휴! 목사님, 그래도 간판은 있어야죠.”라고 해서 전면에 간판을 대충 했어요. 그랬더니 어떤 분이 답답했는지 동쪽에 간판을 달아줬어요. 지금 간판을 새로 제작하고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탑도 세울 겁니다. 작년 7월에 제가 전에 사역하던 교회 집사님과 식사를 하는 중에 교회 십자가 탑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세우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 연락을 했습니다. 지금 아시는 장로님이 제작 중에 있는데 어떻게 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이 자기가 여기 오래 살았는데 여기에 교회가 있는지 몰랐다며 1층에 간판을 해야 한다는 말을 몇 년 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제 고민이 장사하는 상가 간판처럼 교회 간판을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1층 입구에 간판 대신 십자가를 달려고 합니다. 잘 나오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기 온 후에 여러 단체에서 전화가 많이 왔습니다. “동사무소에 봉투를 비치해라”, “돋보기를 비치해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거울 밑에 광고를 넣어라”, “농협에 돋보기 설치해라등등의 말을 했습니다. 다 거절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그렇게 팔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아무것도 없이 오직 전도지로만 전도했습니다. 지금 교회에 전도 건빵이 있습니다만 물티슈, 휴지, 사탕, 과자 같은 것에 교회 이름을 새겨서 전도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전도용 물티슈도 만들고, 전도용 부채, 전도용 과자, 견과류, 휴지, 수세미 등등을 만들 생각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안에 복음을 세상 물건을 팔 듯이 해야 하나? 그냥 순수하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만 전도할 수 없을까?’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몸을 질그릇에 비유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몸을 볼품없는 흙 그릇에 비유한 이유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못생겼다고 수근 거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외경은 바울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키가 작고, 대머리였으며, 다리는 안짱다리였고, 눈썹은 가운데가 붙었고, 약간 매부리코였고, 활기찼고, 매력이 넘쳐 때론 사람처럼 보였지만, 다른 때는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바울은 키도 작고 못생겼지만 활기차고, 매력이 넘쳤고, 어떤 때는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안에 보배를 가졌다는 넘치는 자부심 때문이 아닐까요? 겉모습이 어떻든지,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배경이 어떻든지, 나는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없을까요? 건물이 화려하고 크고 아름답지 않아도 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말씀이 선포되면 되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산 예배가 여기에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주변 환경이 좋지 않고, 태어난 배경이 열악하고, 가진 게 없어도 내 안에 보배를 가졌다는 프라이드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게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요?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상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존입니다. 하존은 환상, 이상, 꿈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한 수단입니다. 이 말에는 계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존이란 말이 구약 성경에 35번 나오는데 영어성경은 거의 visio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비전의 뜻은 내다보이는 미래의 상황입니다.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없어서 비전이 없고, 말씀이 없어서 내일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비전보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세상은 비전, 비전, 비전이 있는 사람, 비전 있는 리더쉽을 말하지만 비전보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비전이 있습니다. 말씀이 있어야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으며,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꿈, 비전, 소망, 내일을 외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먼저 말씀을 외칩니다. 꿈과 비전은 말씀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이상이 잘 내려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 이상이 잘 내려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비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환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2절에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라고 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먹으면서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은 육신적인 봄과 영적인 봄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이 함께 어두워져 잘 보지 못했다. 육신의 눈과 영혼의 눈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육신의 눈과 믿음의 눈이 둘 다 어두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몸은 늙어도 마음, 정신, 영혼, 믿음은 늙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4: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했습니다. 낡아지다는 말을 개역성경은 후패하다로 번역했고, 우리말성경은 쇠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 몸은 늙고, 병들고, 후패하고 쇠할지라도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엘리는 육적인 눈은 물론 영적인 눈까지 어두웠습니다. 엘리는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해 둘째 부인 브닌나에게 날마다 조롱을 당해 애통해하며 기도하는데 술을 끊으라며 꾸중을 했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무감각했으면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을 술에 취한 줄로 생각했을까요? 자신의 두 아들이 제사를 하나님의 제자 제물에 손을 대고, 회막에서 섬기는 여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소년 사무엘이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선생님이 부른 줄 알고 뛰어가자 그는 부르지 않았다며 그냥 잠자리에 누워버렸습니다. 엘리는 영적 감수성이 메말라 있었고,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1절부터 9절까지 엘리가 누웠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2절에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5절에 그가 가서 누웠더니라고 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에게도 가서 누우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합니다. 5절에 다시 누우라”, 6절에 다시 누우라”, 9절에 가서 누웠다가라고 했습니다. 엘리는 눕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때 엘리의 나이를 70세 정도로 추정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눕는 것을 좋아했을까요?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누웠다는 말은 엘리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엘리는 육적으로도 늙었지만 영적으로도 늙어버렸습니다. 육적으로는 태만했고, 영적으로는 안일했습니다. 제자인 사무엘은 제사장 연수를 받으며 밤낮 없이 성소를 살피고 있는데 스승인 제사장은 누워있습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 중에 환상을 보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서 계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교회로 오세요. 육적 치매도 문제지만 정말 큰 문제는 영적 치매입니다.

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성소에 있는 일곱 금 촛대를 가리킵니다. 이 등불은 1365일 항상 켜 놓게 했습니다. 제사장은 아침과 저녁에 성소에 들어가 올리브기름을 등대에 붓고, 심지를 정리하고, 촛대를 닦았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저녁에 등대에 불을 켰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39:8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고 했습니다(참조, 대하13:11). 저녁에 불을 켜라는 말은 정리하고 불을 더 밝혀라’, ‘불을 계속 밝혀라는 의미입니다. 성소 안에는 캄캄해서 밤과 낮이 구분이 없습니다. 제사장은 등불을 1365일 꺼트리지 말고 항상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제사장이 아니라 소년 사무엘이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다 어디 갔는지 어린 사무엘이 성소를 떠나지 않고 등대에 기름을 붓고, 등대를 닦고, 심지를 정리하며 하나님의 등불을 밝히고 꺼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고 했습니다. 궤가 있는 곳은 지성소입니다. 사무엘이 지성소에 누웠다고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사무엘이 성소 안에 누운 것이 아니라 성막 근처에 있는 숙소에 묵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등불이 꺼지지 않게 보살피느라 간이침대를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성소 옆에 있는 성소 안에서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자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기자는 지성소 가까운 성소의 부분을 지성소처럼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9:3-4). 사무엘은 하나님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때때로 성소 안에서 잤습니다. 소년 사무엘이 하나님의 등불을 보살피기 위해 성소에서 잘 때 어른 제사장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엘리 시대에 어른들이 어린 아이에게 하나님의 등불을 맡기고 자기 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은 이유가 소년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밤과 같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모인 무리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네가 숨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은 이때 모인 사람들이 수만 명이었다고 했습니다(12:1). 예수님이 산 위에서 수만 개의 영혼의 등불을 켜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잠언 20:27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켜신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이 등불이 하나님의 산인 교회에서 타고 있습니다. 그 등잔에 영적 심지인 말씀을 잘 세우고, 영적 올리브기름인 성령을 붓고, 예수님의 보혈로 그릇을 매일 닦아 하나님의 등불을 밝히십시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작년 1231일 엑스(옛 트위터)에 한반도를 찍은 위성사진을 올린 게 기삿거리가 됐습니다. 대한민국은 환한데 북한은 암흑입니다. 불이 거의 꺼졌습니다. 이 세상을 영적 암흑으로 만들지 맙시다. 하나님의 등불을 꺼뜨리지 마십시오. 불이 꺼진다는 것은 망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붉을 밝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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