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바람이 분다

조회수 : 42회

본문 : 스가랴 6:1~8
주일오전예배 | 2023-11-0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2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7.8 규모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뉴스 앵커가 보도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대지진의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위성 영상과 사진도 공개됐습니다. 강력한 충격에 땅이 종이처럼 찢겨버렸고, 거대한 협곡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영상 자막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땅을 200km 종이처럼 찢었다이사야 54:10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은 산들이 밀려 나고 언덕이 무너져도 나의 사랑은 결코 너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주는 평화의 계약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너를 불쌍히 여기시는 야훼의 말씀이시다.”라고 했고, 우리말성경은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려도 내 사랑은 네게서 옮겨지지 않고 내 평화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를 가엾게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땅이 종이처럼 찢어져도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은 찢어지거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엾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시편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스가랴 선지자는 BC 5201124일 밤에 8개의 환상을 봤습니다. 그 날 밤은 스가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본문의 네 병거의 환상은 그 중에 마지막 환상입니다. 1절에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이라고 했습니다. 보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슈브입니다. 슈브는 돌아가다는 뜻입니다. “내가 또 눈을 들어 보았다.”라는 말을 직역하면 내가 또 눈을 들고 돌이켰다.”가 됩니다. 이것은 돌이켜서 눈을 들어 봤다는 의미입니다. 스가랴가 일곱 번째 환상을 본 후에 여덟 번째 환상을 보기 위해 몸을 돌이켰다는 의미입니다. 뉴스를 보다보면 서 있는 앵커가 하나의 기사를 보도한 후, 다른 기사를 보도하기 위해 몸을 다른 방향으로 돌이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할 때 졸리면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흔들고 두 손으로 뺨을 치며 몸에 자극을 줍니다. 선지자가 환상을 주의 깊게 보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선지자가 스스로를 각성시킨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스가랴는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각성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세상에 있던 상태 그대로 있지 맙시다. 이 시간 우리 영혼을 깨워봅시다. 몽롱한 상태로 있지 맙시다. 세상에 취한 상태로 있지 맙시다. 고통, 슬픔, 근심, 우울함, 과거에 빠져 있지 마십시오. 일어나십시오. 깨십시오.

 

1. 구리 산

 

네 개의 병거가 두 개의 구리 산에서 나왔습니다.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구리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네호쉐트입니다. 네호쉐트는 구리, (구리와 주석의 합금), 청동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네호쉐트는 성경에서 대부분 놋이라고 번역됐습니다. 개역성경, 공동번역성경, 표준새번역성경, KJV은 놋이라고 번역했고, 우리말성경, NIV, NASB은 청동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본문에서 놋은 아주 강한 것(금속)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놋은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였습니다. 첫째, 놋은 저주를 상징합니다. 신명기 28: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하늘이 놋이 되고, 땅이 철이 된다는 말은 하늘도 막히고 땅도 막힌다는 의미입니다. 하늘과 땅이 막히는 것처럼 큰 저주는 없습니다. 신명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에스겔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늘의 닫히는 저주가 아니라 하늘이 열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60:17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라고 했습니다. 금으로 놋을 대신한다는 말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생선 대신 뱀을 주지 않으며, 알 대신 전갈을 주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뱀 대신 생선을, 전갈 대신 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놋은 공의와 심판, 승리를 상징합니다. 열왕기상 4:13, “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그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마을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 빗장 있는 육십 개의 큰 성읍을 주관하였으며여기서 놋 빗장은 아무도 꺾을 수 없는 힘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골리앗의 투구와 갑옷이 놋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7:5-6,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군인들의 갑옷과 투구가 놋으로 되어 있다는 말은 아무 것도 뚫을 수 없는 강한 능력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놋은 저주와 축복, 고통과 승리를 동시에 의미합니다.

 

그런데 저주와 승리가 공존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으로 불뱀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놋뱀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4-15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높은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산 것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놋뱀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영적 불뱀인 사탄에 물리면 쳐다보아야 할 놋뱀이십니다. 지금은 놋뱀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교회는 놋뱀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스가랴처럼 몸을 돌이켜 눈을 들고 놋뱀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는 저주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 저주의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씻어 구속을 다 이루심으로 저주를 승리로 바꾸셨습니다. 심판을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발이 풀부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5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석이 놋을 의미합니다. 쇳덩어리로 된 발로 밟으면 박살이 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무찌르고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강력한 발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을 생명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약함을 강함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십시오. 십자가가 우리를 치료하는 놋뱀입니다.

 

구약 성경 성막에 들어가면 첫 번째로 마주대하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에 제물을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번제단에서 제물이 태워져야 죄인이 구원받습니다. 죽어야 사는 곳이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에서 심판과 공의가 만족되는 것입니다. 번제단이 바로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죄인은 제일 먼저 번제단을 통과해야 합니다. 번제단이 맨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오면 제일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못 만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못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극 중에 비극입니다. 여기에 오시면 눈을 감으시고 제일 먼저 주님을 부르십시오. 주님!

 

성경학자들은 두 개의 놋산을 1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산과 감람산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영적으로 신약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두 개의 놋산은 신약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둘은 증인의 숫자입니다. 신명기 19:15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11:3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증인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증인입니다. 시온 산은 돌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반석 위에 있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반석 위에 있는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반석 보다 더 단단한 놋산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놋산입니다. 예수님은 이 놋산을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교회이고, 놋산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놋산처럼 강력한 힘과 능력으로 지키십니다. 나는 지금 놋산에 서 있습니다. 약해지지 마십시오. 절망, 불안에 취해 있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깨십시오.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 산들을 하나님의 목적이 감추어져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비밀이라는 말은 신비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는 병거들이 두 산 사이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 목적은 실행되기 전까지 산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서서 기다렸습니다. 5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서라는 말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천사들이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첫 번째 환상을 보면 천사들이 세상을 두루 살펴보고 여호와의 사자에게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합니다.”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1: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온 땅에 평안하고 조용하다는 말은 의인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의인들을 학대한 악인들은 아주 평안하게 잘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천사들의 보고를 들은 여호와의 사자가 고통당하는 의인들 때문에 탄식을 합니다. 1: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여호와의 천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주님께서 탄식하십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1: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기다리는 천사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을 붙잡고 굳게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놋산처럼 결코 변개되거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2. 네 개의 탱크

 

두 놋산 사이에서 네 개의 병거가 나오는데 그 병거를 끄는 말들의 색깔이 다양합니다. 2-3절에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천사에게 네 병거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천사는 네 병거와 말을 하나님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합니다. 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천사는 네 병거를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하늘의 바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바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레미야 49:36,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하늘의 바람이 엘람에 불어 사방으로 흩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7:2,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불었습니다. 여기 큰 바다는 세상입니다. 하늘의 바람이 세상으로 불고 있습니다. 계시록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천사가 불지 못하도록 바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심판의 바람을 불게하기도 하고 멈추게 하는 천사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하늘에서 불어오는 심판의 바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바람이 무슨 바람인지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늘에서 부는 심판의 바람이 있다고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바람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해치 못합니다. 천사가 언제까지 바람을 붙잡고 있을까요? 7:3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산업대로 변에 가면 에베소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세우신 분이 고 이강산 목사님이세요. 한국 교회 초기 아주 유명한 부흥 강사이십니다. 그 분이 제가 고등학교 때 저희 교회에 부흥회를 오셨어요. 그 때 연세가 90정도이셨습니다. 그 분이 환상 중에 천사 둘이 하나가 서해 쪽에서, 다른 하나는 동해 쪽에서 삼팔선을 잡고 있더래요. 이강산 목사님이 우리나라에 전쟁이 안 일어나는 이유는 천사가 삼팔선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미군의 힘이나 국제적인 정세의 영향이 있겠죠. 그런데 근본적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환란의 바람이 우리 교회, 우리 교회 성도의 삶에 불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하늘의 사역자들이 우리 인생을 굳게 잡아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런데 성경은 다른 하늘의 바람을 하나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바람입니다. 사도행전 2:1-2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날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는데 온 집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떤 하늘의 바람은 심판의 바람이고, 어떤 하늘의 바람은 성령의 바람입니다. 우리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삶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사모하고 기도합시다. 하늘의 바람이 불어와야 능력이 있고 결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1871~1945)<해변의 묘지>라는 시가 있습니다. 23연까지 있는 아주 긴 시입니다. 마지막 연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

세찬 바람은 내 책을 여닫고,

파도는 분말로 바위에서 마구 솟구치나니!

날아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버려라

삼각돛들이 모이 쪼던 이 조용한 지붕을!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라고 했습니다. 바람은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합니다. 바람이 불어야 배가 가고, 바람이 불어야 열매가 익습니다. 바람이 불면 시원치 않는 과일을 떨어지고, 좋은 과일은 더 잘 익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사과가 맛있어 집니다. 바람이 불어야 회가 맛있습니다. 찬바람이 불어야 홍합이 맛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집근처에 겨울이 오면 포장마차에서 홍합을 팔았습니다. 저는 홍합을 사먹던 생각이 납니다. 이스라엘 서북쪽에는 지중해, 동남쪽에는 아라비아 사막이 있습니다. 우기가 되면 서북풍이 습기를 품고 불어옵니다. 이 시기의 이른 비와 늦은 비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밭에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둡니다. 반대로 아라비아 광야에서 불어오는 동남풍이 있습니다. 이 바람은 아라비아 사막을 지나와 건조하고 뜨겁습니다. 이 바람이 불어야 곡식이 익고 과일 꽃이 수정되고 다 자란 열매를 익게 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남풍이 불어올 즈음 오순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오순절 즈음에 동남풍의 뜨거운 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불과 바람 같은 성령으로 임했다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약의 지정학적 바람과 절기를 통해서 은혜와 축복의 교훈을 주시고 신약 시대에는 바람과 같은 성령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바람은 인간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바람의 생성과 소멸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서북풍의 은혜와 동남풍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바람이 있습니다. 하늘의 바람이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에 불어오기를 소원합니다.

 

또 병거라고 했습니다. 병거(메르카바)는 전쟁용 무기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병거라는 말을 현대어로 바꾼다면 탱크나 전차, 전투기 같은 최신 무기 정도 될 것입니다. 색이 네 가지라는 말은 심판의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매우 다양한 종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환난이 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내 삶에 진노 중에 은혜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전차가 나가는 말은 심판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첫째 병거는 붉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붉은 말은 피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피는 죽음, 전쟁, 대량학살입니다. 장차 잔혹한 전쟁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붉은 말이 끄는 병거는 악한 자를 땅에서 제할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에는 전쟁이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환란이고, 최고의 비극이며 슬픔입니다. 이 땅에 죄와 욕심이 있는 한 전쟁은 쉬지 않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둘째 병거는 검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검은 색은 슬픔, 절망, 죽음을 상징합니다. 검은 말이 끄는 전차는 악의 세력을 절망과 죽음의 자리로 끌고 가는 일을 합니다. 계시록 6:5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라고 했습니다. 검은 말을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습니다. 저울에 달려 부족한 자마다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부족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은혜를 구합시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셋째 병거는 흰말이라고 했습니다. 흰색은 승리를 상징합니다. 백마가 끄는 전차는 완전히 승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교회는 최후의 승리를 할 것입니다. 성도는 지금 고난을 당하지만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삶이 고단하지만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믿음을 지킵시다. 넷째 어롱지고 건장한 말들입니다. 어롱진다는 말은 기근과 질병을 의미하고, 건장하다는 말은 심판의 가혹함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에 기근과 질병이 매우 가혹하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근과 질병 중에서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지켜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스가랴의 마지막 환상은 이런 말씀으로 마칩니다. 8,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북쪽으로 검은 말과 흰 말이 나갔고, 남쪽으로 어룽진 말이 나갔습니다(6). 이스라엘 땅은 서쪽은 바다이고, 동쪽은 사막입니다. 남쪽으로는 애굽이 침공해 왔고, 북쪽으로는 바벨론이 침공해왔습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었습니다. 북쪽을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하나님의 영을 쉬게 했다는 말은 바벨론을 심판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 메대 파사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사건이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가 진멸된다는 의미입니다. 내 영을 쉬게 한다는 말을 개역성경은 내 영을 시원케 했다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원수가 진멸되는 것이나 심판을 즐기시거나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종 승리하고, 악인이 심판을 받고, 공의가 성취되어 하나님의 탄식이 멈추고 평안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성도의 승리입니다. 성도는 실패해도 하나님은 성공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고, 악이 최후 심판을 받을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삽시다.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소망 중에 살아갑시다.

 

이전글 예수님의 길에 나도 서다
다음글 예언 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