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예언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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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역대하 18:4~34
주일오전예배 | 2023-10-2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히브리어로 선지자가 나비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비가 부르다는 뜻의 동사 나바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비가 부글부글 끓다는 말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말씀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전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가 돼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예레미야 20:7-8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께 속았습니다. 주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씀을 선포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속에서 말씀이 끓어오르는 것입니다. 20: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표준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조롱을 당한다 해도 끓어오르는 성령의 역사 때문에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예레미야가 복을 받습니다. 유다가 망해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를 선대합니다. 39:11-12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지금 당장 힘들고 우습게 보이며 하찮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복입니다. 본문 13,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이 말씀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기에, 확실히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그것을 내가 반드시 말할 것이다.”입니다. 미가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만을 반드시 전파하겠다는 타오름이 있었습니다. 미가야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1. 여호와께 묻다.

 

아합은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을 길르앗 라못 정복 전쟁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합니다. 길르앗 라못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이스라엘에게 아주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아합은 이것을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욕심으로 시작한 전쟁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이 전쟁에 관해 하나님께 여쭈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들을 모으고 전쟁에 관해 묻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아합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예언합니다. 5절에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하니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시드기야 선지자는 시청각 자료까지 동원해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10절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뿔은 권세를 상징합니다. 시드기야가 만든 철 뿔은 아합에게 철과 같은 매우 강한 권세가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승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400명의 선지자들의 예언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선지자에게 더 묻고 싶어 합니다. 6절에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하니여호사밧 왕은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사밧의 신앙입니다. 그는 어떤 일을 결정하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말씀 앞에 서고 또 서야 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결정하기 전에 물은 것이 아니라 결정을 한 다음에 물었습니다. 우리는 말씀 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뒤에서 따라가야지 앞에서 하나님을 끌고 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1:30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하나님이 우리 보다 앞서 가시면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45:2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라고 했습니다. 또 여호수아 3: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 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따라갈 때 행할 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목자되신 주님을 따라갈 때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가 나옵니다.

 

 

2. 예언대결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에게 좋지 않은 것만을 예언했기 때문에 평소 아합에게 미움을 산 선지자입니다. 아합이 미가야에게 전쟁에 관한 묻자 미가야는 아합 왕과 400명의 선지자들을 비꼬듯 말을 합니다. 14절에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하는지라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그들이 왕의 손에 넘긴 바 되리이다 하니아합은 미가야의 태도를 불쾌해하며 진실을 말하라고 합니다. 그때 미가야 선지자가 진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16절에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하는지라여기서 목자는 아합 왕으로 목자 없는이라는 말은 아합 왕이 죽는다는 의미이고, 흩어진다는 것은 전쟁에서 패해 백성들이 제각기 갈 길로 가버린다는 뜻입니다. 미가야가 아주 기분 나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목자가 없어졌는데 양들이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합이 얼마나 사악한 목자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목자를 잘못 만나면 양이 고통을 당합니다.

 

마태복음 7: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했습니다. 선지자 노릇이라고 번역한 성경은 개역성경, 개역개정성경 외에는 없습니다. 헬라어 성경에 노릇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KJV, NIV, NASB, 표준새번역, 우리말성경에도 노릇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개역개정과 개역성경에만 있습니다. 저는 이 번역이 정말 놀랍습니다. 진짜 권사, 진짜 집사가 돼야지 권사 노릇, 집사 노릇을 하면 안 됩니다. 참 성도가 돼야지 성도 노릇을 하면 안 됩니다. 저는 진짜 목사가 돼야지 목사 노릇을 하면 안 됩니다. 22절에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선지자입니다. 왕의 선지자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자녀가 돼야지 세상의 자녀가 되면 안 됩니다. 400명은 선지자가 아니라 아합 밑에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아합은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가짜 선지자와 가짜 목자 밑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 선지자가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가짜 선지자들의 실체와 목자 노릇을 하는 가짜 목자인 아합의 실체를 벗긴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충돌한 것입니다.

 

미가야는 아합 왕과 400명의 어용 선지자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예언을 계속 합니다. 하늘에서 회의가 벌어졌습니다. 18절에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고, 좌우에 천군천사들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우상 종교를 최대로 부흥시킨 아합을 어떻게 심판하실지 탄식하십니다.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19) 이런 저런 방식이 논의 될 때 한 영이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영이 되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들어가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 전쟁을 하다가 죽게 하겠다고 합니다. 21절에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거짓말하는 영이 누구일까요? 천사가 아닙니다. 거짓말하는 영은 사탄입니다.

 

욥기 1장에 천상회의가 벌어졌는데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여기도 사탄이 서 있습니다. 사탄은 400명의 선지자 속에 들어가 여론을 조작했습니다. 사탄이 텔레비전, 신문, 인터넷, 유튜브 등 언론에 들어가 여론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언론을 조작하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백성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여론을 믿지 마십시오. 여론에 속지 마십시오. 여론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텔레비전, 신문. 인터넷, 유튜브를 믿지 마십시오. 텔레비전 광고를 믿지 마십시오. 매체는 이미 가짜 선지자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이걸 쓰면 건강해지고, 예뻐지고, 행복해지고 잘 될 거라고 말합니다. 유명 강사, 인기인들이 나와서 행복의 비결, 성공 비결, 부자되는 비결을 말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정말 그래요. 어떤 선교사님인 프랑스 유명 박물관에 가서 관람하는데 세계적인 작품 뒤에 악령이 붙어 있더래요. 문화재라고 하는데 사실은 우상이 아닙니까? 저는 코로나가 터져서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안 가는데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수학여행이 많은 부분 문화재라며 우상 구경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너무 무식하고 극단적인 말을 하나요? 문화, 언론, 예술, 영화, 드라마는 이미 거짓말 하는 영이 장악을 했습니다.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처럼 오늘 우리에게 언론은 각종 시청각 자료를 보여주며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가짜 길을 진짜 길인 것처럼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다수가 정의가 아닙니다. 다수가 진실이 아닙니다. 소수가 정의일 수 있고, 소수가 진실일 수 있습니다. .

 

미가야가 여호사밧 왕과 아합 왕과 남과 북의 모든 신하들과 거짓 선지자들 앞에서 진실을 선포합니다. 22절에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거짓말하는 영이 왕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거짓의 한 가운데서 왜 진실을 선포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선지자를 거짓의 한복판에 보내셔서 진리를 선포하게 하셨을까요? 싸움을 멈추라는 말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모든 계획을 철회하고,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역사에 없었던 전무후무한 죄인 아합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합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멸망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합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석에서 떡을 떼어서 가룟 유다에게 주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유다야, 회개해라. 유다야, 회개해.” 하지만 유다는 돌아오지 않고 밖으로 나갑니다. 아합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진실이 선포되자 악인들이 분노합니다. 가짜 선지자가 진짜 선지자의 뺨을 때립니다. 23절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하는지라그러자 미가야가 가짜 선지자의 종말을 선언합니다. 24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바로 그 날에 보리라 하더라골방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방 안에 있는 방입니다.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하는 날에 아합의 측근들은 가짜 선지자들을 죽이려고 찾을 것이고, 가짜 선지자는 숨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가짜 선지자들은 불안에 떨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언의 대결이 있습니다. 성경은 진짜 예언입니다. 성경을 붙잡으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붙잡으십시오. 십자가가 진짜 예언입니다.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이 진짜 예언입니다. 왜 사람들은 성처럼 좋은 집에 살면서 불안해할까요?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쓰는데 왜 안식이 없을까요?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정신질환이 이렇게 많을까요? 진짜 예언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가짜에 속아서 가짜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진짜 예언을 붙잡으십시오. 십자가가 우리의 미래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예언입니다.

 

 

3. 갑옷 솔기

 

아합과 여호사밧이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을 묵살하고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갑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아무도 참 선지자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요? 오늘 우리 시대가 그렇지 않습니까? 심지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던 여호사밧도 미가야의 예언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히고 자신은 왕이 아닌 것처럼 변장을 했습니다. 내 대신 네가 죽으란 말입니다. 불안하면 회개해야 하는데 잔머리를 쓴 것입니다. 29절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가니라전쟁의 최대 표적은 왕입니다. 왕만 잡으면 됩니다. 열왕기상 2231절에 아람 나라의 지휘관이 32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지휘관 32명이 아합을 노린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합이 살기 위해 변장을 한 것입니다. 악인은 반드시 자기가 살기 위해 희생제물을 찾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비싼 밥을 한 번 얻어먹고 생명을 담보 잡힌 것입니다.

 

아합의 예측처럼 적군들은 왕에게만 달려들었습니다. 30, “아람 왕이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미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한지라여호사밧은 아합의 함정에 빠져 죽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도우십시다. 31절에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돕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아자르입니다. 아자르는 둘러싸다, 방어하다, 돕다는 뜻입니다. 둘러싸서 방어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그 날개로 감싸듯이 여호와께서 여호사밧을 감싸 적군의 칼로부터 보호하셨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을 도우셨고 적군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여호사밧에게서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은 악인의 올무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고, 어느 쪽으로 칼에 찔릴지 모르기 때문에 둘러싸서 보호해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이런 보호하심을 경험하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39:5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전후, 좌우를 둘러싸서 보호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한창 전쟁 중에 아람 군대의 한 병사가 무심코 활을 쐈는데 그것이 아합의 갑옷의 솔기에 맞았습니다. 아합 왕은 철갑옷을 입었습니다. 갑옷은 군인이 칼과 창과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가 위해서 입는 철로 만든 옷입니다. 모든 군인들이 다 똑같은 갑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계급이 높을수록 더 견고하고, 더 단단한 좋은 갑옷을 입습니다. 아합은 왕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하고 최고로 좋은 갑옷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옷은 전체를 철로만 만들 수가 없습니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전쟁을 할 수 있도록 철과 철을 가죽으로 연결하는 부분을 솔기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가슴을 가리는 철과 복부를 가리는 철 사이에 솔기가 있습니다. 어깨, 팔꿈치, 무릎 부분에 솔기가 있습니다. 솔기는 방어가 아주 취약한 부분입니다. 아합이 맞은 부분은 가슴과 복부 사이의 이음새일 것입니다. 아합의 갑옷은 솔기도 철 비늘로 가려 잘 보이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일부러 맞추려고 해도 맞추기가 불가능한 부분이 왕의 갑옷의 솔기입니다. 아람 병사가 아무렇게나 쏜 화살 하나가 거의 불가능한 곳에 맞은 것입니다. 성경기자는 무심코라고 했지만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합의 계획은 무너졌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잠언 19:21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섭니다. 시편 37:32-33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결코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전도서 11:5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결코 알지 못합니다.

 

우리 삶에는 갑옷 솔기와 같이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비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 곳, 약한 곳, 단점이 있습니다. 누구나 아킬레스건이 있습니다. 마귀는 바로 이 틈을 노립니다. 에베소서 4: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비어 있는 솔기를 어떻게 할까요? 말씀대로 사십시오.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하나님은 인생의 갑옷 솔기를 막아주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모세의 부모가 갈대 상자를 만들고 갈대와 갈대 사이 벌어진 틈을 역청과 나무진으로 칠했습니다(2:3). 하나님은 노아에게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고 방주의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6: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역청은 방주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방수처리를 하는 물질입니다. 방주 안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역청(pitch)은 히브리어로 kopher인데 '덮는다'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역청을 예수님의 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인생의 틈을 메워줍니다. 틈을 채워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틈을 덮어주는 은혜입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아합에게는 덮어주는 은혜가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갑옷 솔기같이 약한 부분을 덮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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