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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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7:24~28
주일오전예배 | 2023-02-1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광야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도 주고, 말씀도 전했습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무리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로 나갔습니다. 이사야 2:3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전하지 않고 광야에서 전했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제가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나 허허 벌판에 나가서 설교를 하는 거예요. 왜 요한은 예루살렘이나 도시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광야로 나갔을까요? 여기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광야를 헬라어로 에레모스(ἔρημός)라고 합니다. 에레모스는 버림받은, 황량한, 황막한, 텅 빈, 외로운이라는 뜻입니다. 광야는 버림받은 땅이에요. 성경 히브리어로 광야라는 단어에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광야가 미드바르이고, 말씀이 다바르입니다. 다바르는 말하다, 인도하다, 안내하다, 추종하다, 뒤따르다라는 뜻입니다. 광야라는 말은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곳, 하나임의 소리가 있는 곳, 하나님의 인도가 있는 곳 등등의 의미입니다. 출애굽기 8:27-28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광야로 나가도록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가 광야까지 가지 말고 여기서 만나라는 거예요. 광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곳 또는 만나는 곳입니다. 지성소를 히브리어로 드비르라고 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고,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광야를 당신의 임재의 장소로 선택하셨을까요? 광야는 사람도, 나무도, 풀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에요. 그냥 한없는 침묵만 흐르는 곳이에요. 외로움, 쓸쓸함, 고독, 침묵, 고요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언가에 아주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에요. 하나님은 세상의 잡다한 것을 뒤로 하고 당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때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아주 분명하고 똑똑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이 광야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만나는 장소로 광야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일대일로 만나고 싶어 하세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40년을 살았어요.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당신의 음성을 분명하게 듣게 하셨어요. 광야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인 공간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광야는 오늘의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스데반 집사님은 광야 교회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쉬는 날이라고 집에서 쉬고 놀고 먹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여기에 나왔어요. 여러분은 지금 세상과 세상 일을 뒤로 하고 오신 거예요. 교회 온다는 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광야로 온다는 말이에요. 지금 여러분은 영적 광야에 서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는 곳입니다. 왜 십자가를 가운데에 달아놨나요? 왜 십자가를 교회 탑 위에 세웠나요? 왜 교회의 상징이 십자가가 됐나요? 십자가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인생의 고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 광야 같은 세상이라고 하잖아요. 인생에 왜 광야가 있을까요? 광야는 정말 놀라운 곳입니다. 광야는 인생을 새롭게 설계, 편집, 디자인, 조성, 변화, 창조시키는 일을 해요. 요셉에게는 형이 열 명 있었어요. 형들에게 왕따를 당했어요. 누나들도 있었을 거예요. 누나들에게도 똑같이 왕따를 당했을 거예요. 형들이 나중에는 요셉을 종으로 애굽 사람에게 팔았어요.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성폭행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어요. 성폭행범! 얼마나 수치스럽고 민망했을까요? 차라리 살인범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고난이라는 광야가 왕따에 성폭행범이었으며 종이었던 외롭고 고독한 요셉의 인생을 히브리 족속과 애굽의 구원자로 새롭게 디자인합니다. 모세는 마흔 살에 민족을 구원하려다가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어요. 모세는 도망자가 되어 광야에 숨어 40년 동안 양을 치며 떠돌이로 처량하게 살았습니다. 광야가 살인자요 도망자이며 떠돌이 이방인이었던 모세를 민족의 영웅으로 새롭게 창조했어요.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대충 하나님을 만나고 어렴풋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게 아니에요. 광야는 저주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는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 마음이 매우 완악해졌어요.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보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바뀌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완악해져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을 더 멀리 떠났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셨어요. 호세아서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친 들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어요(2:14). 거기서 새 마음을 주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신다고 하셨어요. 에스겔 36: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했어요. 이것이 광야의 효과예요. 광야는 딱딱해진 마음을 깨버리는 곳이에요. 여러분 중에는 지금 혹독한 인생 광야에 서 있는 분이 계신가요? 힘들어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계세요. 택한 백성에게는 반드시 광야가 있어요. 여러분은 영적 광야인 교회에 서 있습니다. 광야는 딱딱한 마음을 깨버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는 곳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곳이에요. 예레미야 23:29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라고 했어요. 광야는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는 곳이에요. 하나님의 말씀과 내가 하나 되는 곳이에요.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왜 세례 요한이 예루살렘이나 여리고 같은 도시로 가지 않고 광야로 갔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광야로 초청을 한 거예요.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천국을 준비하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영적 광야로 우리들을 초청하십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말씀이 내 완악한 마음을 무너뜨려야 내 인생이 새롭게 디자인 됩니다.

 

 

바람의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 요한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로 나아갔던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너희들이 메마른 광야로 수고하면서 나간 이유가 겨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함이냐는 거예요. 갈대(reed)는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에요. 갈대는 줄기와 마디가 대나무처럼 생겼어요. 갈대는 냇가, , 습지, 호수 주변의 갯가의 모래땅에서 흔히 자라는 풀로 온대와 한대에 걸쳐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갈대는 아주 잔바람에도 잘 흔들립니다. 여러분! 갈대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갈대는 센 바람에 흔들릴 때 우우우 ~ 웅 하는 소리를 냅니다. 이 갈대 울음소리가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 내는 신음소리와 유사하다고 해요. 그래서 갈대를 여자의 마음이나 남자의 눈물에 비유하곤 해요. 물리학자이면서 수학자이었던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어요. 갈대는 사람에 비유되는 풀예요. 

성경에서 갈대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성경을 갈대에 기록했어요. 그래서 갈대는 성경을 의미하기도 해요. 갈대는 날씨에 따라 그 크기가 많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고대인들은 갈대를 자로 사용했었어요. 또 갈대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의미해요. 요한계시록 11:1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갈대 지팡이를 주셨다고 했어요. 하지만 본문에서 갈대는 아주 연약한 인생(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12: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했습니다(42:3). 여기 상한 갈대는 아주 연약한 이스라엘을 상징해요. 모진 세파로 아픔과 고통을 겪어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무너져버린 쇠잔한 영혼을 의미해요. 성경에서 갈대는 아주 연약한 인생을 의미해요. 

여러분! 인생은 갈대 같은 존재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갈대와 같은 존재를 의지해요. 풀 같은 존재를 바라봐요. 공주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끔 가는데요. 세종시로 가는 고속화도로에서 어머니 집으로 가는 시골길로 빠지면 옆에 조그만 냇가가 있어요. 거기에 갈대와 억새풀이 있어요.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려요. 아주 운치가 있어요. 어머니 집에 가면서 제일 많이 보는 풀이 갈대예요. 가면서 아내와 갈대 이야기를 여러 번 했어요.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봐요. 서울에서 목회할 때 하늘 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어요. 가을에 거기서 억새풀 축제를 해요. 무슨 풀 축제를 구경가요? 교회 사모님들이 모여서 애들 데리고 갈대하고 억새를 구경하러가요. 갈대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한 번도 안 갔어요. 저는 시골에서 풀을 보면서 살아서 풀이 조금도 안 궁금해요. 풀 안 보고 싶어요. 

열왕기하 18: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위쪽에는 앗수르가, 아래쪽에는 애굽이 있었어요. 이스라엘은 중간에서 이리저리 치였어요.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괴롭힘을 안 당하려고 애굽을 의지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의지하는 애굽은 썩은 갈대 지팡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성경은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22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했고, 야고보서 4: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3: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인생이 마귀의 지배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 바라보면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몰라요. 사람 바라보지 마세요. 하나님만을 바라보세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길가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은 강아지가 한 마리 다가와 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하지만 루터는 강아지가 있는 줄 몰랐어요. 그 강아지는 고개를 들고 루터만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뒤늦게 루터가 강아지를 보고는 고기를 조금 주려고 잘랐어요. 그런데 강아지가 루터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하는 거예요. 루터가 고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자 강아지 눈도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루터가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강아지는 루터를 따라 눈을 돌렸어요. 루터는 이 일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집에 돌아온 루터는 친구에게 쓰는 편지에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적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난 아침에 만난 강아지로부터 배운 것이 있네. 만약 그 강아지가 고기를 들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기뻐하시고 감동하실 거라는 사실 말이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무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25) ‘부드러운은 헬라어로 사치스러운, 방탕한’(말라코스)이라는 뜻이고, ‘화려한은 헬라어로 명예로운, 찬란한’(엔독소스)이라는 뜻이며, ‘사치하게라는 말은 헬라어로 방종, 마시고 흥청대기, 사치, 호화찬란’(트뤼페)이란 뜻입니다.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입고 사치와 방탕스런 생활을 하던 왕족들과 귀족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너희들이 광야로 간 이유가 명품 옷을 입고 흥청대며 사치스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냐는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왕궁으로 세상으로 가라는 거예요. 

오늘날 교인들은 어떻습니까? 교회 건물이 낡아 보이면 가지를 않아요. 카페가 있어야 하고, 쉼터가 있어야 해요. 나쁘다고 비판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교회 내에 어느 정도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금 지양해야 되지 않느냐는 거예요. 제가 학생 때 교회는 전부 교회가 벽돌로만 되어 있었어요. 내부 벽이 빨간 벽돌 그대로였어요. 그런데 지금 좋은 내장재로 아름답게 인테리어를 해야 해요. 제가 여기서 교회를 시작할 때 강단 벽이 흰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어요. 공사하는 분에게 이대로 하자고 했더니 요즘 누가 그렇게 하냐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가 고급 카페나 고급 호텔 같은 곳이 되어야 하나요? 몸에 명품을 두르고 와야 하는 곳인가요? 세상은 점점 사치스러워져 갑니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적인 사치스러움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는 건물이나 세상 권세를 가진 사람들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도시가 어디인지 맞춰보세요. 1905515일에 탄생한 도시입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 엔젤리스와 유타주 솔크 레이크 시티를 잇는 철조 중간에 있습니다. 마피아 보스 가운데 한 명이었던 시벅이 1946플라밍고호텔을 건립한 곳이에요. 마피아의 검은 돈이 오가는 곳이에요. 도박과 환락의 도시이에요. 이 도시의 모든 호텔들은 카지노를 통과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요. 꼭 놀다 가라는 거예요. 들어가면 화려하고 시끄러운 것은 물론이고, 방향을 잃게 만들어 놓았어요. 초고속 성장의 도시로 매년 인구가 10만 명 이상 늘어나고 있어요. 이 도시는 어디일까요? 라스베이거스입니다.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영업장의 음료는 다 무료입니다. 식사는 아주 저렴하고, 호텔 숙박비도 저렴해요. 마음껏 도박을 하라는 거죠. 돈을 잃고 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호텔의 창문을 열 수 없게 되어 있어요. 1931년 미국에서 가장 쉽게 이혼할 수 있는 이혼법이 통과되었어요. 그래서 이혼의 도시라고 불립니다. 이혼 수속이 간단해 이혼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라스베가스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첫째 시계가 없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집에 가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가지 말고 밤새워 놀라는 거예요. 둘째, 창문이 없습니다. 사람은 밖을 보면 나가고 싶어져요. 다른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져요. 다른 세상을 보지 말고 게임에만 미치라는 거예요. 다른 것을 아예 생각하지 못하게 한 거예요. 세 번째 거울이 없어요. 사람이 거울을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요. ‘너 이래도 되느냐?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니?’ 거울을 없애 탐욕에 찌들어 초췌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 거예요. 돈독에 올라 눈이 시뻘겋게 돼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 거예요. 그리고 바닥에는 아주 빨간색의 카펫을 깔아 놓았습니다. 아주 좋은 향수를 뿌려놓았어요. 색깔과 향기에 흥분하게 한 거예요. 꽉 막힌 공간에서 도박에 미치도록 한 거예요. 이 환락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몇 살인 줄 아세요. 38세입니다. 미국 라스베가스를 가려면 사막을 4시간이 달려야 합니다. 가도 가도 광야만 나옵니다. 인터넷이 잘 안 돼요. 핸드폰도 잘 안 터져요. 라스베가스는 사막 속에 세워진 불야성 도시예요. 왜 라스베가스를 사막에 세웠을까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미쳐보라는 거예요. 광야 한 가운데 있는 라스베이거스에 가는 사람들은 도막과 나쁜 짓을 하기 위해서예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여러분! 광야로 왜 오셨습니까?

 

 

선지자냐?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세 번째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26) 무리들이 광야로 나간 이유는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살면서 낙타털로 된 옷을 입었습니다. 낙타 털옷은 아주 질긴 옷입니다. 옷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주 검소한 옷차림입니다.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들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메뚜기가 많고 더운 나라입니다. 메뚜기를 잡아서 바위 올려놓으면 노릇노릇 익습니다. 석청은 종려나무 열매가 바위틈에 떨어지면 열매가 녹아 끈적끈적해진 거예요. 세례 요한은 메뚜기를 바위에 구워 바위틈에 떨어진 석청에 찍어 먹은 거 같아요.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었어요. 아주 좋은 집안의 자식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아주 화려한 옷을 입었어요. 하지만 요한은 그것 것들을 다 뒤로 하고 광야로 가서 짐승 털로 옷을 해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자연에서 먹을 것을 주어먹으며 살았어요. 왜 세례 요한은 이렇게 살았을까요? 오직 그가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거예요.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한 거예요. 27절에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당신의 사자를 먼저 앞에 보내시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거예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사치와 향락을 뒤로 하고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어요. 세례 요한이 왜 이렇게 했는지 생각해보라는 거예요. 

제가 서울에 살 때 종로에 있는 스피치 학원을 다녔습니다. 어느 날 여러 명의 수강생들이 원장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원장님이 구두를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구멍이 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수강생들이 모두 원장님 구두를 쳐다보니까 웃으면서 발을 들어서 보여주더라고요. 책을 쓰신 분이에요. 종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분이세요. 서울 한 복판이에요. 저 보다 못해도 20살 이상은 많아 보였어요. 그런데 찢어진 구두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얼마나 당당한지요. 그때 나도 저렇게 살아야 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몇 년 전에 누구를 만났는데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어요. 계속 제 신발만 쳐다보는 거예요. 몇 달 전에 앞부분의 밑창이 조금 떨어진 구두를 신고 저의 집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곁눈질로 제 신발을 자꾸 쳐다보는 거예요. 여러분! 여기 저 보러 오지 마세요. 제가 입은 옷, 넥타이, 머리 스타일 신경쓰지 마세요. 목사 넥타이 색깔이 촌스러우면 어떻고, 옷이 찢어지고, 신발이 해지면 어떻습니까? 목사가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고린도후서 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질그릇은 사람의 몸입니다. 사람의 몸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담겨진 것이 예수님이냐? 석가냐? 이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여러분은 지금 영적인 광야로 왜 나왔습니까? 제가 옷 입을 보기 위해서 나왔습니까? 명품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오셨습니까?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온 거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백년의 고락이 남을 따라 생기는구나!”(고문진보)라고 했어요. 100년 인생의 고통과 기쁨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다는 것예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도시 안에 거주하는 동물이라고 했어요.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거예요. 관계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해요.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인간에게는 8가지의 지능이 있다고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대인관계지능>이라는 거예요. 대인관계지능이 높은 사람은 관계를 잘 한다는 거예요. 미국 휴렉 팩커드 창업자인 데이빗 팩커드(David Packard)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신이 주는 축복이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시키지 않으면 축복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어요. 세상은 인간관계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인간관계를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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