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은혜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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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9:32-33
주일오전예배 | 2023-02-0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도미노를 아시죠? 도미노는 연쇄, 파급이라는 뜻입니다. 도미노는 쓰러지면서 자신보다 1.5배 더 큰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 있어요. 6cm의 도미노는 9cm의 도미노를, 9cm 도미노는 13.5cm의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 있어요. 뒤로 갈수록 더 큰 도미노가 쓰러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6cm의 작은 도미노가 쓰러졌지만 나중에는 1m, 2m 크기의 큰 도미노가 쓰러지는 거예요. 작은 도미노가 점점 큰 도미노를 쓰러뜨리듯이 어떤 작은 일이 좋은 일이나, 좋지 않은 일들을 점점 크게 하는 것을 도미노 효과또는 도미노 현상라고 해요. 큰 성공이나 실패는 예상치 못한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성경에도 도미노 효과가 나옵니다. 창세기 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은지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하와를 파괴했어요. 그랬더니 아담이 파괴되고, 에덴이 파괴됐으며, 모든 피조계가 파괴됐습니다. 엄청난 연쇄반응입니다. 사탄이 탐욕의 연쇄반응을 이용한 거예요. 하와와 아담이 마귀의 도미노가 된 거예요. 마태복음 8장과 9장에는 열 개의 기적이 나옵니다. 이 열 개의 기적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요. 열 개의 기적 중에 열 번째 기적이 본문의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요. 마귀의 도미노 놀이에 이용당하지 맙시다. 예수님의 은혜의 도미노에 쓰임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도미노가 되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해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셨어요. 마태는 이 치료의 스토리를 그들이 나갈 때에라는 말로 시작해요.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에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갈 때 누군지는 모르지만 귀신들려 말을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어요. 바로 직전에는 예수님이 맹인 두 사람을 고치셨어요. 맹인의 치료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해요. 27절에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두 맹인이 따라오며두 사건 스토리의 시작이 아주 비슷하죠. 하나는 그들이 나갈 때에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예요.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맹인의 치료사건 바로 앞에는 어떤 관리가 죽어가는 자신의 열두 살 된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는 중에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져 병을 치료받고, 이어서 관리의 딸이 살아나는 사건이 있어요. 두 개의 치료사건이 바로 이어서 일어나고 있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의 사건에 다른 하나가 끼어있어요. 두 사건이 걸려 있어요. 두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마태는 12라는 숫자로 나타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건 앞에는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매고 예수님께 와서 치료받은 사건이 있어요. 예수님은 어떤 관리의 집으로 가시는 중에 혈루증 여인을 치료하시고, 그 집에 가셔서는 죽은 관리의 딸을 살리시고, 그곳에서 떠나시려고 할 때 두 맹인을 치료하시고, 다시 나가려하시다가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셨어요. 예수님의 치료의 은혜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예수님의 치료 사건이 도미노처럼 이어서 막 일어나고 있어요. 마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에게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어요. 여러분의 인생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치료의 은혜가 사슬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어요. 이 세상 마귀 권세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것을 봤어요. 어둠, 불행, 질병, 슬픔, 중독, 귀신, 고통이 예수님 앞에서 도미노처럼 쓰러졌어요.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는 43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선지자가 없어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 역사에 중단된 것처럼 보였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은혜가 중단된 게 아니었어요. 은혜는 계속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제일 먼저 족보를 기록해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는 낳고 낳고 낳고 마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계속 베푸시고 싶어 하신다는 거예요. 주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결코 쉬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주님은 주시고 더 주시고 계속 주시는 분이세요. 장마철에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는 장맛비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쉬지 않고 계속해서 복을 주고 싶어 하세요. 주님은 마르지 않은 샘물과 같은 분이세요. 주님의 은혜는 중단 없이 퐁퐁 솟아나는 샘물과 같습니다. 주님의 은혜 주심이 중단되지 않고 우리 교회 성도님들 가정과 범사에 이어지고 반복되고 계속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등대교회를 통해 주시는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로, 직장과 사업장으로, 이웃에게로 도미노처럼 이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항상 누군가가 예수님에게서 능력과 축복을 끌어내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네 사람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매고 왔어요. 92절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했어요.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어요. 만약 네 사람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은혜는 중풍병자에게 이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혈루증 여인은 어떤 관리가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시고 가는 과정에서 은총의 기회를 얻었고, 12살 된 소녀는 아빠 때문에 새 생명을 선물 받았고, 두 맹인은 예수님께서 관리의 집이 있는 곳을 떠나실 때 축복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어떤 관리에 의해서 12살 소녀와 혈루증 여인과 두 맹인이 은혜의 기회를 얻은 거예요. 누군가에 의해 예수님께 나왔고, 나왔을 뿐만 아니라 기적과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그 복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항상 은혜의 중매쟁이가 있었어요. 영적 중매쟁이가 있었어요. 저는 말씀을 보면서 내가 그 영적 중매쟁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분들도 주의 은혜가 세상으로 계속 이어지게 하는 영적 중매쟁이가 되세요. 교회 안에도 가라지가 있어요. 엉겅퀴 같은 사람이 자꾸 찔러요. 신앙생활을 방해해요. 하지만 실족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것을 은혜받을 기회로 삼으세요. 우리에게 오는 은혜를 중단시키려는 마귀에게 속지 마세요. 주님은 당신의 은혜가 여러분들을 통해 계속 세상 속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세요. 사람들은 부모님, 배우자, 친구, 직장동료 등 주변에 있는 사람 때문에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주님의 은혜가 중단되지 않도록 은혜의 중매쟁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어떻게 고치셨다는 말씀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예수님께서 맹인들을 고치실 때는 눈을 만지시며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고, 관리의 딸은 손을 잡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이라고 하시면서 일으키셨으며, 중풍병자는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때는 만지심으로, 어떤 때는 선포하심으로, 어떤 때는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어떻게 고치셨는지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가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했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는 예수님 앞에 오면 그냥 귀신이 나갈 수밖에 없다고 증언하고 있는 거예요. 봄이 되면 그냥 눈이 녹고, 비가 내리며, 싹이 나고, 꽃이 펴, 열매를 맺듯이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 귀신들린 사람이 나오자 저절로 귀신이 떠나가고 귀신 때문에 생긴 고통과 아픔까지 사라져버렸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께 나를 사랑해주십시오.”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은 이미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엄마가 아기를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속에서 샘솟듯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면 속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분출하는 화산처럼 솟아오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저를 자비롭게 대해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해가 무상으로 빛을 천지에 비추고, 구름이 무상으로 온 대지에 비를 내리듯 주님은 당신께 나온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한량없이 없이 내리고 계십니다.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시면 여러분의 어두운 면이 저절로 물러날 것이며 그 어둠과 함께 왔던 고통도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조용히 그분께로 가셔서 그분 앞에 계세요. 주님을 믿으시고, 주님 곁에 계셔 보세요. 이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난 것처럼 어두움이 떠날 것입니다. 도미노처럼 예수님 앞에서 악은 연쇄적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또 눈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귀신들린 사람의 태도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12살 먹은 딸을 가진 어떤 관리는 예수님께 나와 절을 하며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고, 12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와서 자신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겉옷의 푸른색 술을 붙잡았습니다. 맹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며 간절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사람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간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귀가 먹었기 때문입니다. “말 못하는라는 말이 헬라어로 코폰입니다. 코폰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성경 어디에는 듣지 못한다고 번역을 했고, 어떤 곳에서는 말하지 못한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귀신이 들려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원하는 것을 간구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님에 대해 하는 소문도 전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또 이 사람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생명의 말씀도 들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이 사람은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욕망,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지 간에 모든 욕구가 차단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귀신이 들려있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그의 전인격을 장악해 인간적인 어떤 욕구를 가지지 못하도록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귀신 들려 귀신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나를 이 귀신에게서 구해달라고 간구할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 없고, 말씀을 들을 수 없으며, 고통스럽다고 몸부림칠 능력도 없었습니다. 사탄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비참한 상태가 됐어요. 전적 무능한 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여러분! 마태는 왜 이 사건을 기록했을까요? 귀신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과거에 이 사람과 같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요? 마태는 지금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 벙어리이며 영적 귀머거리라고 하는 거예요. 영적으로 완전히 무능한 상태라는 거예요. 마태는 백성들에게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리를 죄인이라는 대명사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동포들의 돈을 탈취해 로마에 바치는 매국노였습니다. 그는 돈 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돈을 세고 있는 마태에게 예수께서 오셔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즉시로 세관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갔고 돈 마귀는 그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는 영적 귀머거리였고, 영적 벙어리였으며, 돈 귀신이 붙어 돈의 노예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완전 무능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얼마나 괴물이었는지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는 유대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큰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어둠을 물리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곁에 거할 때 그의 어두운 삶이 저절로 밝아졌습니다. 그의 인생은 예수님에 의해 밝아졌고, 그는 열두 사도 중에 하나가 됐으며,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도미노처럼 일어났어요. 그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귀신들인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가고 말 못하던 사람이 다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정말 마태의 삶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고백합니다. 저는 귀신 들리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이 귀신들린 사람처럼 어둠에 사로잡혀 있었던 영적 귀머거리였고, 영적 벙어리였습니다. 영적으로 완전 무능한 상태였어요. 저의 할머니는 불교에 심취하신 분이었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불교 신자였죠. 제가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할머니는 제 이름을 절에 올렸습니다. 할머니는 제 옷 속에 주머니를 만들어 부적을 넣어주셨습니다. 그 부적은 비닐로 포장을 해서 다림질을 했기 때문에 비가 오고 물에 빠져도 젖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좋은 것인 줄 알고 꼭 지니고 다녔어요. 할머니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친구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기호라는 친구를 따라 우연히 교회를 갔습니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 이후 정말 가끔 교회를 갔습니다. 저는 이 귀신들린 사람처럼 주님 저를 고쳐주세요. 저에게 복을 주세요. 제 인생을 바꿔주세요.”라고 기도할 줄 몰랐고, 찬양할 줄도 몰랐으며, 목사님의 설교가 무슨 말인지도 전혀 몰랐어요. 영적 욕구가 전혀 없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렇게 교회를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는 예배드리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왜 찬양해야 하는지 몰랐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답답했던 때가 가끔 생각이 납니다. 어떤 때는 너무 답답해 예배가 숨이 막힌 적도 있었어요. 하품이 나오고 오금이 뒤틀렸어요. 그렇게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 왜 교회에 다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계속 갔어요. 정말 이상한 일이죠. 그것은 주님의 사랑의 강권하심이었고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그때 세상으로 뛰쳐나가지 않도록 저를 교회에 붙잡아두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마음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구하지 않았음에도 제 어두운 인생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는 제 인생은 지금도 계속 밝아지고 있어요.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서 제 삶에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는 기도했지만 그 이전에는 결코 저는 무언가를 교회에 나와서 구한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제 삶에 어두움이 밝아졌어요.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돼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기이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 자리에 와 계신 분들 중에는 귀신 들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모를 때 이 사람처럼 그리고 사도 마태처럼 영적 벙어리였고, 영적 귀머거리였던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어떤 영적인 욕망이 전혀 없었던 적이 있었을 거예요. 기도하고 하고 싶은 욕망도 찬양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던 적이 있을 거예요. 어떤 분은 과거에는 빛 가운데 있었는데 지금은 세상에 살면서 신앙을 잃어버려 어둠과 빛 가운데서 왔다 갔다 하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리고 아직 어둠에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계신 분들에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어두움이 물러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하나는 제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두움이 물러가가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물러가 마태처럼 이제까지 내 인생에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없었다고 고백하시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도미노처럼 저주가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미노처럼 축복이 연속해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결코 주님 곁을 떠나지 마십시오. 우리의 의롭고 영화로운 태양이신 예수님 곁에 계세요. 그렇지 않고 주님을 떠나면 사탄이 여러분의 영혼에 역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영적 욕망도 가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결코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세상에 사로잡혀 복음에 대해 귀가 먹고 아무런 선한 욕구가 없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귀신이 쫓겨났다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쫓겨났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어두운 것들이 다 사라지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듯 귀신은 다시 돌아옵니다. 범죄자가 그 범행 현장에 다시 와 보듯 귀신은 쫓겨난 곳에 반드시 다시 와 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반드시 다시 드리어집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돌아온 귀신을 완전히 막아주십니다. 이 사람은 다시 귀신이 들려 귀머거리가 되거나 벙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 어떤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귀신은 세상을 두루 다니며 있을 곳을 찾았지만 찾지 못해 전에 있던 사람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방이 아주 깨끗해졌어요. 정말 좋은 상태가 됐어요.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방주인이 없었어요. 방을 지켜주는 존재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나 막힘없이 들어올 수 있었어요. 귀신은 친구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에게 들어갔고, 그 사람의 형편은 이전보다 일곱 배나 더 나빠졌어요. 어떻게 귀신은 그 사람에게 다시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 사람을 지켜주시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지켜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의 손을 굳게 잡고 계세요. 여러분의 영혼 속에는 집이 있어요. 그 집에는 주인이 있어야 해요. 주인이 없으면 아무나 들어올 수 있어요.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의 집에 주인으로 모시세요.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의 집을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다시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했다는 말은 다시 듣기도 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다시 듣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귀가 열려진 후에 이 사람은 누구의 말을 들었을까요? 새 소리를 들었을까요? 아니면 흥겨운 노랫소리를 들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을 귀신의 사로잡힘에서 완전히 구원해주신 주님이 자신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듣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이 웅성웅성했습니다. 세상에 소리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 소리들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 많은 소리들이 이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을 귀신의 사로잡힘에서 해방시켜 완전히 자신을 자유하게 해주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사랑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힘써 보세요.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에 말씀하고 계세요. 주님은 여러분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원하세요. 그리고 이 사람은 입이 열린 다음에는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했을까요? 성경이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고 단지 말을 했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주님께 감사했고, 찬양했으며, 영광돌렸다고 확신합니다. “나를 고통에서 건져주신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가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을 열어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의 귀와 입을 열어주셨으며, 여러분의 어두움을 물리쳐주신 주님을 찬양하세요. 주님께 영광돌리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것은 귀신이 쫓겨나고, 거룩한 주님의 말씀이 영혼 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귀신들린 사람에게 있었던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제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사람들에게 들어보지 못한 은혜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성경 시대 일어났던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내가 체험할 수 있을까요? 이제까지 남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에이, 이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지!’라고 생각할 거예요. 아마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변하셨나요?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세요. 주님은 요한복음 1:52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12에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는 이런 변화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전에 이런 일이 이스라엘 역사에 없었지만, 그 사람들은 그때 그것을 봤어요. 그들은 역사에 없는 것을 봤어요. 그들은 과거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과거에 없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오늘도 이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결코 우리의 이성으로 예수님의 능력의 한계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안 된다고, 내 인생은 글러먹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귀신들려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며, 아무 욕구가 없는 사람을 고치신 주님의 자비를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형편이 이 귀신들린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요? 이 사람 보다 여러분의 상황이 열 배, 백 배 낫지 않으십니까? 나는 이 사람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자비의 한계를 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능력의 한계를 여러분이 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사랑의 한계를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분은 자비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0-21)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 그런데 죄인의 괴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바울의 몸에는 사탄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것을 사탄의 가시라고 했을까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바울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쳤습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세상은 머리가 좋고, 실력이 있으며, 문벌이 좋은 사람을 알아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후원을 해줍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살이 썩어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나는 정말 끔찍하리만큼 추한 나병환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멸시받고 천대받는 창기들을 사랑하셨으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돌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길에 굴러다니는 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낫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가장 큰 죄인이며, 가장 더러운 죄인이고, 가장 흉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의 능력과 자비의 한계를 정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이전에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던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이스라엘 가운데에 이런 일이 보여진 때가 없었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본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를 기대합시다. 귀신들렸던 사람에게 있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기대하세요.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 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는다면 이제까지 일어난 일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일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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