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회개 그리고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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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욥기 42:1~17
주일오전예배 | 2022-11-13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던 욥의 인생에 갑자기 시련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어느 날 집이 무너져 10남매(73)가 한꺼번에 깔려죽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재산(7,000마리, 낙타 3,000마리, 500겨리, 암나귀 500마리, 많은 종들)의 일부를 태워버렸고, 남은 것은 도적 떼들이 약탈해 갔습니다. 온 몸에는 악성 종기(악창)가 났고, 아내가 저주를 했으며, 친구들이 이 모든 시련은 네가 지은 죄 값 때문이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16:20). 욥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6:2~4) 욥은 하나님의 화살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독을 마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위인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욥처럼 고통과 시련을 당한 사람이 있을까요? 욥의 인생의 모든 것이 바닷가에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가듯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된 인생이 회복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회복이 됐습니다. 어떻게 회복됐을까요?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회복의 책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회복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기독교는 회복의 종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의 회복시켜주시는 손길이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왜 회복시켜주셨을까요? 욥이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욥은 세 친구와 논쟁(말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논쟁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너무 쉽게 말했습니다. 3절에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확정적으로 말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알아도, 있어도 겸손하게 말하십시오.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내가 확신해도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아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말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기도합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4) 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5-6) 귀로 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들어서 간접적으로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거두어들이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아스입니다. 마아스는 거절하다, 멸시하다, 경멸하다, 가볍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거두어들이다는 말은 자신을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경멸할 정도로 자신이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욥은 자신의 존재를 먼지와 재의 수준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욥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의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다 타고 남은 재와 먼지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먼지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제 신학교 동기 중에 경기도 포천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서른 살에 개척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회가 힘만 들고 생각대로 안 되는 거예요. 잘 안 되니까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20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금식 19일째였습니다. 기도원 숙소에서 누워 있다가 예배를 가려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마비돼 꼼짝할 수가 없는 거예요. 환상 중에 몸이 천 길 낭떠러지로 한 없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먼지 하나가 바람에 막 날아가고 있더래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자세히 봐라.” 그래서 자세히 보니까 그 먼지가 자기더래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먼지 정도 밖에 안 되는 존재였다는 거예요. 인간은 하나님의 콧김에 한 없이 날아가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때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더래요. 먼지 같은 보잘 것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한다, 안 한다 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었다는 거예요. “왜 이렇게 교만하냐? 네가 뭔데 목회를 하느냐 마느냐하냐는 거예요. 시킨 것도 나고, 그만두게 하는 것도 나라는 거예요. 너에게 그만 둘 권한 없다는 거예요. 그냥 너는 순종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뜻을 고쳐먹고 목회를 계속했습니다. 지금 목회를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티끌이고 재입니다.  

욥은 이전에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보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먼지 정도 밖에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5-6)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고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회개하다는 말이 구약 성경에서 주로 돌아가다는 뜻의 슈브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함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나함은 눈물을 흘리다, 애통하다, 마음을 바꾸다, 뉘우치다, 의견을 뒤집다라는 뜻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늘 하나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날의 잘못된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이전까지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과 마음을 완전히 뜯어 고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욥의 인생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2018년도에 어떤 방송사에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습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가 신문에서 어떤 칼럼니스트가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평해 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칼럼니스트는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아저씨의 이미지를 바꾸었다는 거예요. 그 드라마를 보며 아저씨인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는 거예요. 자기에게 인생드라마였다는 거예요. 아내가 제게 유튜브에서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찾아서 보여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서 요약된 것을 봤습니다. 그랬는데 이런 장면이 있었어요. 이선균 씨가 부하 직원에게 이선균 씨 없는 곳에서 이선균 씨를 헐뜯었어요. 나중에 이선빈씨가 알고 잘못했다고 열 번 하라고 해요. 그러니까 부하 직원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해요. 이것을 여자 주인공인 아이유가 도청합니다. 나중에 아이유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자 가방을 매고 막 도망가다가 인생이 너무 절망스러웠는지 길 한 가운데 주저앉아서 흐느껴 울면서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회개는 다 제쳐놓고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욥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에스겔 14:14비록 노아, 다니엘, ,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욥은 손에 꼽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욥이 회개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천 번, 만 번 회개해도 부족해요. 여러분! 회개해야 해요. 회개하세요. 회개하세요. 진정으로 회개하세요. 하나님이 회개하기를 원하세요. 회개하면 망가진 우리 인생이 회복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돌아가세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회복시켜주시기를 원하세요. 욥이 회개했을 때 결코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인생이 완전하게 회복됐습니다. 회개 후에 네 가지가 회복됐습니다.  

첫째,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관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먼저 욥의 인생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욥은 시련 중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3:3-4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빛을 비추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죽게 놔두지 왜 빛을 비춰 살려주셨느냐는 거예요. 6:9-10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멸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나는 너무 의롭다는 암시가 담겨 있는 거예요. 정말 교만하죠? 욥이 고통 중에 막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련이 와도 정신을 차리고 막나가지 마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세요. 13:24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안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로 여긴다는 거예요. 9:32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라고 했습니다.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라는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우리가 함께 재판에 들어간다.”가 됩니다. 욥이 하나님이 함께 재판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재판석에 앉아서 누가 옳은지 따져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나 잘못한 것 없다는 거예요. 정말 건방진 말이죠? 어디 감히! 9:33에는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중재가 없다는 거예요. 이 말은 하나님이 나를 너무 억울하게 하신다는 거예요. 32:1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라고 했습니다. 

욥의 자기 의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런데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과의 회복이 인생의 회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다른 것은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잘돼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합니다. 욥은 가장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관계가 회복됐습니다. 욥이 환란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라는 세 친구가 찾아옵니다. 세 친구 모두 멀리서 온 사람들입니다. 빌닷은 수아 사람인데 수아는 유프라테스 지역을 말합니다. 1600km가 넘는 거리에서 온 친구입니다. 엘리바스와 소발도 멀리서 왔습니다. 세 친구는 욥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칠일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욥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친구들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 끈끈한 친구관계가 깨집니다. 19:2-3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네 사람이 말싸움하다가 감정이 상해 친구관계가 깨졌습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힘들게 하는 거예요. 그런 말 있잖아요. “여자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잘못한 것은 잊지 못한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힘들 때 가슴을 후벼 팠어요. 원수가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 <7-9절>
  •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하나님께서 누가 잘못했는지 잘잘못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잘못된 것을 꾸짖으시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참다운 인간관계의 회복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했고, 2: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종종 대인관계에 아픔을 겪습니다. 찌르고 찔리고. 여러분! 아프실 때 많으시죠? 깨진 인간관계가 십자가로 치료되고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관계가 깨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사람과 담을 쌓지 마세요. 사랑하세요. 내가 사랑하면, 아내도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면, 이웃도 사랑합니다. 내가 변하면, 가정도, 교회도, 우리 사회도 변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두 번째로 욥의 재산이 회복됐습니다. 욥은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러면 욥의 재산이 언제 회복됐을까요? 10절에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고 했습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셨다고 했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축복 기도할 때 욥의 곤경이 해결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친구들이 손가락질 하며 비난했습니다. 그것이 가슴에 원한으로 맺혔습니다. 친구들이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원한을 풀라는 것입니다. 욥이 원한을 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갑절로 갚아주셨습니다. 참 이상하죠? 욥이 친구들을 용서하고 친구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했는데 친구들이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욥이 복을 받았습니다. 광야에 5천명이 앉아 있습니다. 먹을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축복기도 하시고, 열두 명의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열심히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입니다. 남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내 광주리가 더 많이 찼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이 돌아오고, 미워하면 미움이 돌아옵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마태복음 10:12-13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평안을 빌면 평안이 돌아오는 거예요. 여러분! 원수 맺지 마세요. 미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미워하는 사람을 축복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잃었던 것을 찾아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절은 양적인 두 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갑절이라는 말은 땅이 것과 하늘의 것,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모두 포괄한다는 의미입니다. 욥이 고난 후에 자신의 가슴에 못을 박은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땅의 복은 물론 하늘의 복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원수 맺지 마세요. 사람들 미워하지 마세요. 원수를 위해 기도하세요. 이것이 땅의 복과 하늘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12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라고 했습니다. 욥이 처음에 복을 받았는데 나중에는 더 많이 받았습니다. 욥은 점점 더 좋아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에 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가정이 회복됐습니다. 먼저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욥의 아내는 다시 73녀를 낳았습니다. 13절에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가축은 두 배로 회복시켜 주셨지만 자녀는 두 배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치를 물질적인 것으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영적 교훈입니다. 14-15절에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아리따운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페입니다. 야페는 아름다운, 빼어난, 빛나는, 우아한이라는 뜻입니다. 욥의 딸들은 아름답고 우아하며 빼어난 여인들이었습니다. 

넷째, 건강이 회복됐습니다. 2:7-8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고 했습니다. 본문의 종기를 성경학자들은 나병같은 불치의 병으로 생각합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나병같은 피부 악성 종양이 번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깨진 그릇으로 긁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치료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16절에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라고 했습니다. 욥은 병을 고침받았고, 140년을 더 살며 아들과 손자 4대까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늙어 편안하게 죽었습니다. 17절에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고 했습니다. ‘차서라는 말은 꽉 찼다, 풍부하다, 가득 차다,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차서라는 말은 시간을 다 되어, 세월이 다 되어라는 의미로 만족하게 살았다, 후회도 여한도 없이 아주 충족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욥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복주심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기 마지막장 마지막 절이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이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다니엘서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12:13) 신명기 마지막 장에 모세의 마지막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신명기 마지막장은 모세 오경의 마지막 장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34:7) 역대상 마지막 장 끝부분에 다윗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상 29:28) 성경은 해피엔딩입니다. 성경은 행복한 결말입니다. 새드 엔딩이 아닙니다. 새드 엔딩은 아쉽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한이 맺힙니다. 하나님은 한이 맺히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욥처럼 해피엔딩이 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회복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종으로 살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70년을 포로로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에덴 동산 중앙에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열매가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생명나무 열매가 다시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회복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회복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건강의 회복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재물, 가정, 관계, 인생의 회복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회복의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회복의 말씀인 성경을 붙잡으십시오. 믿음의 회복이 먼저입니다. 믿음이 회복될 때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에 떨어졌습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돌아왔을까요?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60-62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했습니다. 부인하는 순간 주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이 부인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셨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회복이 필요합니다. 회복의 주님을 바라보며 주여, 나를 회복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이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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