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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대답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고 항변하며 결코 이런 일이 예수님께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지 말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피하라는 말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아주 크게 꾸짖으시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랑하는 수제자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사탄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십자가를 피하는 것은 사탄의 뜻입니다. 오늘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귀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마귀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정욕과 욕심을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마십시오. 고통과 고난에 맞서십시오.
심리학자이며 정신의학자인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에서 “어떤 경우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하며, 그 때 생겨나는 고통을 회피한다는 것은 문제에 직면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정신적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만성 정신질환 상태에서 정신적 성장은 정지하게 되며, 이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인간 정신은 시들어 가기 시작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기독교 신앙에 대입해보겠습니다.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은 신앙(믿음) 성장을 멈추는 것이며 만성 영적질환 상태에서 점점 영혼이 시들어 가게 하는 것입니다. 시험이 와도 피하지 마시고 담대히 맞서십시오. 십자가를 피하지 마시고 지십니다. 십자가를 지려고 하면 주님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복도 없고, 십자가를 지면 복도 주어집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없는 복을 원합니다.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리면 복도 따라옵니다.
1. 시험을 정면으로 맞서다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네 사람은 자신을 관리하는 감독관에게 <열흘간의 음식 시험>을 요청합니다. 12-13절에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라고 했습니다. 음식 시험으로 10일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닙니다. 조금 짧게 느껴지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왜 한 달이나 2-3주가 아니라 열흘 시험을 요청했을까요? 성경에서 1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만족입니다. 그리고 10은 시험(test)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10일 시험은 충분한 시험이라는 의미입니다.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입니다. 인류가 10대만에 홍수로 심판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의인 50명에서 시작해 의인 10명에서 멈췄을까요? 왜 아브라함은 더 이상 기도를 안했을까요? 의인 열 명이 없다는 말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의미입니다. 라반은 조카 야곱을 열 번 속였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시험하셨다는 말입니다. 열 개 재앙이 다 내리기 전에 회개하고, 이스라엘을 보냈어야죠? 모세는 시내산에서 열 가지 계명을 받았습니다. 나발이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발이 회개할 기간을 주셨는데 그 기간이 열흘입니다. 나발이 열흘 동안 회개하지 않자 열흘 후에 몸이 굳어 죽었습니다. 회개하고 은혜받을 때가 있습니다. 시험 기간이 지나면 심판입니다. 기회 다 지나가기 전에 빨리 회개하십시오. 계시록 2:10에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열흘 시험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열흘 시험은 짧은 시험, 기간이 정해진 시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족한 시험이라는 의미입니다.
네 사람은 10일 시험을 요청했습니다. 14세 밖에 안 된 어린 소년들이 어떻게 성경을 이렇게 깊이 알았을까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네 사람은 누구에게 신앙교육을 받았을까요? 부모님일까요? 아니면 율법교사일까요? 부모님일 가능성이 제일 크지만 교사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분명히 그들을 교육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유다 말기에 유다에는 의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5:1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망해갈 때 네 사람을 교육한 사람이 부모인지 교사인지 알 수 없지만 참 놀랍고 신비로운 일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아버지이면서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네 사람을 가르친 사람을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니엘이 감독에게 열흘 시험을 요청한 것은 시험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신앙의 의지입니다. 밥상에는 하나님이 금하신 온갖 음식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라면 안 먹고 버텼을 것입니다. 하지만 3년 동안 안 먹을 수 없었습니다. 네 사람은 정면으로 시험에 맞서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바벨론 왕궁에서 시험과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의 나이는 14세였습니다. 그들은 이방 땅에 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바벨론 왕궁에서 최고의 권력자들 틈바구니에 있습니다. 그 엄청난 압박감, 불안, 스트레스를 그들은 어떻게 견뎠을까요? 그들은 덤프트럭 같은 중압감을 회피하지 않고 믿음으로 맞섰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피할 것이 있고, 도망가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피하거나 도망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음식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믿음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외에 유대에서 끌려온 또 다른 귀족이나 왕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험 앞에서 그냥 무릎을 꿇어버렸습니다. 십자가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무릎을 꿇지도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맞섰습니다. 십자가를 졌습니다.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의 <신경증과 성격장애>라는 부분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신경증(노이로제)이 아니면 성격장애로 고생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책임감에 장애가 있다. 그런데 세상과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서로 상반된다. 신경증인 사람은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려하고 성격장애인 사람들은 응당 져야 할 책임조차 피하려 든다. 신경증인 사람들은 세상과 갈등이 생기면 곧바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버린다.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곧바로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신경증은 문제로 자신을 눌러버리는 스타일이고, 성격장애는 세상을 탓하면 문제를 피해버리는 스타일입니다. 둘은 정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고통에 맞서려는 의지가 둘 다 없습니다. 스캇 펫은 이 글의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당신이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고통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고통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십자가를 버리면 고통과 저주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십자가를 피하면 세상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마십시오. 시련을 피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오늘 회피한다고 해서 내일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도전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전자의 도는 “의욕을 돋우다, 어깨에 메다”라는 뜻이고, 전은 싸운다는 뜻입니다. 도전자(挑戰者)는 의욕을 돋우어, 어깨에 책임을 지고,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영적 도전자였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어둠의 세력에 대해 맞서 싸우는 영적 도전자가 됩시다.
2.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방법 시험하기
열흘간의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환관장은 네 사람에게 왕의 진미와 포도주 대신 채소와 물만을 주게 했습니다. 왕의 진미는 최고의 영양사와 최고의 요리사가 최고의 재료로 만든 음식입니다. 영양과 맛과 품질에서 조금의 하자도 없는 최고의 요리들입니다. 한참 자라고 있는 14세 소년들에게 맞게 아주 잘 짜진 과학적인 식단입니다. 왕의 진미와 채소의 대결입니다. 왕의 포도주와 물의 대결입니다. 5절에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라는 말씀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왕의 음식과 그의 마실 것과 포도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의 음료와 최고급 와인 대 물의 대결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는 바벨론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의 대결입니다. 바벨론의 학문과 성경의 대결입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과 영적인 방법의 대결입니다. 지금 네 사람은 바벨론에서 그들의 주인님 되신 하나님의 방법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12-13절) “비교하여 보아서”라고 했습니다. 시험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바벨론의 방법, 어떤 방법이 이겼을까요? 여러분은 답을 다 알고 있으시죠? 15절에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열흘이 지났을 때에 보니, 그들의 얼굴빛이 왕이 내린 음식을 먹은 젊은이들의 얼굴빛보다 좋고 건강하여 보였다.”고 했고, NIV 성경은 “열흘이 지나자 그들은 왕실의 음식을 먹은 어떤 젊은이들보다 더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해 보였다.”라고 했습니다. “살이 더욱 윤택하여”라는 말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살이 더 찐, 기름이 더 오른”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NASB는 “더 뚱뚱한”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고대에는 기름은 건강 혹은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채식을 한 사람들이 육식을 한 사람보다 더 건강해 보였고, 더 늠름해 보였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고기를 먹은 사람보다 더 기름지고 살이 쪄 몸무게가 더 나간다는 것이 말입니다. 성경이 육식 보다 채식이 더 좋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은 고기를 먹지 말고 야채만 먹으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채소를 주셨지만, 고기도 주셨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음식입니다.
의사들은 건강을 위해서는 적당한 운동과 균형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식품에 관계된 회사에 다니는데 우리 몸은 음식 덩어리이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다고 항상 강조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깨끗한 물만 마셔도 질병의 80퍼센트를 퇴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인류 건강의 첫 번째 책임은 농부에게 있다.”라고 했습니다. 침대를 파는 사람들은 건강의 첫 번째 비결이 수면이라고 합니다. 잠이 보약이라고 합니다. 잠을 잘 자야지 건강하다고 합니다. 모두 나름대로의 전문가적 식견이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의 건강의 첫 번째 요건은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모세는 말씀에 따라 살면 복을 받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4:40에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고 했고, 30:20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며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19:2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고 했고, 잠언 14:2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했으며. 잠언 10:27에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4에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을 당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병이 생긴 것입니다. 모든 병이 다 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죄 때문에 사람의 건강이 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 영혼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아주 심하게 해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을 때 사울은 악신에 들려 괴로워했습니다. 개역성경은 악신이 들려 야료했다고 했습니다. 야료는 까닭 없이 떠들어 대며 마구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사울은 은혜가 없어지자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했습니다. 헤롯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벌레 먹어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12:23에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엘가나에게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린 후에 한나를 사랑해서 제물의 분깃을 떼어 브닌나 보다 두 배를 주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 보다 고기가 두 배로 많았지만 항상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받은 후에 다시 얼굴에 근심의 빛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두 배의 고기가 한나의 얼굴을 밝게 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축복기도가 한나의 얼굴을 빛나게 했습니다.
네 사람은 바벨론에서 자신들의 주인님 되신 하나님의 방법을 시험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말씀이 맞았습니다. 네 사람이 채소만 먹고도 야채와 고기를 균형 있게 먹은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잘돼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합니다. 여러분! 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시험해보십시오. 말라기 3:10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시험은 실험, 증명의 의미입니다. 과학자가 가설을 만들어 그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 실험실에서 실험합니다. 시험해보라는 말씀은 세상에서 실험해봐라, 증명해봐라는 뜻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실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3. 시험한 사람들이 받은 복
네 사람은 시험 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을 받습니다. 먼저, 학문을 주셨습니다.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학문을 주셨다는 말은 지식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지식은 단편적이거나 얕은 지식이 아니라 교육, 경험, 연구 등을 통해 얻은 체계화되고 총체적인 것을 말합니다. 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깊은 학문을 얻었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모든 책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모든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 있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가 가까운 대학 도서관을 가끔 갑니다. 가끔 철학, 경제, 경영, 공학 등의 전문 서적을 빼서 봅니다. 어떤 책은 읽고 싶은데 읽을 수가 없어요. 책장이 넘어가지가 않아요. 책꽂이에서 빼서 열었다가 그냥 꽂습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 답답해요. 그런데 읽어서 깨달으면 정말 좋아요. 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분야의 책이든 읽고 깨닫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셋째,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는 책에서 얻은 이론적 지식을 실생활 속에서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론에 통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는 전혀 적용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학문이 아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넷째,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다섯째,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게 됐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실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세 사람이 2등부터 4등을 차지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붙잡혀 온 최고의 인재들 사이에서 1등부터 4등까지를 네 사람이 차지한 것입니다. 그것도 근소한 차이로 1등에서 4등을 한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왕실학교는 오늘날로 말하면 미국의 하버드나 예일대학 같은 곳입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곳에서 월등한 성적으로 1등에서 4등을 해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았다고 했습니다.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들은 천재들 중에서도 천재들입니다.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까지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천재들 보다 10배나 나은 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섯째, 명예와 권세를 얻습니다. 19절에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왕이 그들과 말했다는 것은 깊은 학문적 자료를 가지고 심층 면접을 봤다는 의미입니다. 심층 면접을 봤더니 네 사람과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왕 앞에 섰다는 말은 요직에 선발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왕실학교에 졸업한 다른 소년들도 왕의 신하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네 사람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21절에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고레스 왕 원년은 BC 537년입니다. BC 537년은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세계 패권을 잡은 해입니다. 다니엘은 BC 606년에 13-14세 나이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의 나이 83세 정도가 됐습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 이후 몇 년을 더 살았습니다. 80대 후반입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오래 산 것입니다. 다니엘서 12:13에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주신 몫을 누리며 평안하게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여덟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에스라 1:1-4에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70년 후에 유다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70년 만에 망하고 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유다민족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다니엘은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홉째, 하나님께 쓰임받습니다. 유다는 BC 606년, BC 598년, BC 586년 3차에 걸쳐 바벨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BC 606년 1차 공격 때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은 1차에 끌려가 바벨론에서 3년 만에 모든 지혜자의 어른이 되어 온 나라를 다스리는 고위직에 오릅니다. 하나님이 왜 다니엘을 먼저 보내셨을까요? 2차, 3차에 끌려올 유다 민족들을 위해 다니엘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유다 민족들이 잘 살도록 여러 가지를 살폈을 것입니다. 창세기 45:5에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7절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12지파를 살리시려고 요셉을 20년 먼저 애굽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애굽에서 평안히 살 수 있도록 일을 다 해놓으셨습니다.
70년 만에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가 일어났습니다. 다니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까지 총리를 지낸 것 같습니다. 자신의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총리가 아무 일도 안 했을까요? 다니엘은 총리로서 자신의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것입니다. 신명기 7:20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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