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주님이 크게 장려하시는 기쁨

조회수 : 92회

본문 : 누가복음 10:17~24
주일오전예배 | 2023-01-2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예수님께서 70인을 둘씩 짝을 지어 세상으로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70인 전도대가 사역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돌아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께 사역 보고를 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7) 항복하다는 말은 굴복시키다, 복종시키다라는 뜻입니다. 70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까지 굴복시켰어요. 사람들 앞에서 어깨가 으쓱했을 거예요. 그들은 세상에서 엄청난 권능을 행했습니다. 예수님께서 70인에게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70인 전도대에 의해서 사탄의 영향력이 세상에서 급격하게 제한된 거예요. 뱀과 전갈과 원수는 사탄의 세력을 상징해요. 제자들은 사탄의 세력들을 발로 밟아 꼼짝 못하게 제어했어요. 여러분! 우리에게도 예수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의 세력들을 발로 밟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밟히지 마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밟으십시오. 세상에 눌려 사시지 마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호령하며 사십시오. 한동훈 장관은 검사 시절에 회식을 가지 않았다고 해요.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술을 안 마신대요. 상사에게 잘 보이려면 회식 따라가서 비위도 맞추고 아부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을 안 한다는 거예요. 순전히 실력으로만 승부를 봤대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독교인들이 저래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마시고 세상을 이기며 사세요. 70인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흥분해서 예수님께 사역 보고를 했습니다. ‘기뻐하며라는 말을 우리말 성경은 기쁨에 넘쳐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사역의 성공으로 마음이 막 부풀어 올라 있었어요. 본문 전체 분위기를 볼 때 그들은 꽤 흥분해 있었어요. 예수님은 그들의 기쁨과 흥분을 자제시키시면서 정말 기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고 계실 때 여자의 큰 무리가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예수님을 뒤따라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3:28)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은 자연적인 슬픔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들의 자연적인 슬픔을 억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슬픔을 요청하셨습니다. 그 슬픔은 자녀들을 위해서 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울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우십시오. 그냥 저절로 흐르는 값싼 눈물이 아니라 꼭 필요한 눈물을 흘리십시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신 것을 기도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거예요. 기도에는 원하는 기도와 필요한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라는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내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전자는 원하는 기도이고, 후자는 필요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원하는 기도를 하시다가 필요한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기도보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칠십 인은 성공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기쁨입니다. 성경하면 누구나 기쁩니다. 주님은 자연적인 기쁨이 아니라 필요한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연적인 기쁨을 억제시키시고 보다 더 귀한 기쁨으로 제자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악한 영에 대한 승리의 기쁨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일으킨 기쁨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와 권능으로 말미암은 사역 성공의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권능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70인은 복음을 전하며 악한 영을 발로 밟고, 병을 고쳤습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70인으로 인해 사탄의 왕국이 무너지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성공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성공은 교만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칠십 인은 성공으로 마음이 고무되어 있기는 했지만 교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돌아와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7)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결과를 매우 적절하게 보고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우리에게 항복했습니다.” ‘우리를 뒤에 두고, ‘주의 이름을 앞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강조했습니다. 성공을 조금도 자신들의 것으로 사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영광과 존귀를 주님께 돌렸습니다. 

지금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경향은 항상 자기 과시로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주의 이름보다 를 강조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성공 전체를 자신에게로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영혼을 구원하고 큰 능력을 행하게 하셔서 큰 성공을 거둔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교만한 본성 속에는 자신에게 특별한 탁월성이나 특별한 미덕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려는 악한 습성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주여, 나의 설교로 인해서 이 큰 죄인들과 교만한 이방인들이 당신에게로 돌아왔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동시에 그와 같이 특별한 성공을 성취시킨 것이 예수님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아무리 많은 일을 하실지라도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영광은 당연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에는 자기만족적인 성향이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누가 이런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공으로 인한 기쁨은 적절하게 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만으로 향하는 육신의 부패한 본성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우리는 삶이 형통하고 사업이 번창할 때, 또 먹구름 같은 어두움과 고난이 전혀 없고, 오직 희망찬 새 아침만 있을 때, 바로 그때가 우리의 영혼이 위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이 바울을 신이라고 하며 바울에게 제사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때 바울이 옷을 찢고 그들을 말리며 우리는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신 노릇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바울은 거기서 파멸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또 성공의 기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사들을 소유하고 우리가 성공을 하며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 것이 마음 속에 은혜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은사, 곧 탁월한 기억력, 뛰어난 웅변술, 논파력, 감화력, 그리고 추리력 같은 재능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며 또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나치게 존경심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와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능은 사악한 사람들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기가 가진 은사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만하게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은혜에 집중하게 하십니다. 재능이 없는 은혜는 구원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 없는 재능은 저주만 증가시켜 줄 뿐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신들이 받은 은사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엄청 싸웠어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은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합니다. 은혜에 집중하라고 홥니다. 교회를 위해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교회에 큰 영향력을 미쳐도 은혜를 떠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가룟 유다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다도 교회의 구성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신뢰받을만한 직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 배워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얼마나 감화력 있게 메시지를 잘 전했겠습니까? 12제자 중에 제일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파멸의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이용한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지만 그 이름은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좋은 씨는 강도가 뿌리거나 선한 사람이 뿌리거나 잘 자랄 것입니다. 좋은 씨는 말기 암환자가 뿌리든 건강한 사람이 뿌리든 잘 자랄 것입니다. 그들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전했고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찬양을 하고 기도했으며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은혜가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짓 입술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발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발람은 눈이 열려 미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발람은 예수님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혀와 입술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보상을 요구했기에 저주의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사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선지자들 중에 끼어 함께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교만했기에 추한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성공을 하고, 물질의 복을 받으며, 존귀한 자리에 올라간다고 자랑하거나 기뻐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들은 주님께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나 저주받은 멸망의 사람들에게도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축복의 여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정말 복을 받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주님의 백성들 중의 한 사람이 되고 또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진 것을 기뻐하십시오. 은혜 없이 은사만 소유한 사람은 그 은사가 아무리 놀라운 것이라 할지라도 죄 가운데 멸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은사 없고, 가진 것 없으며, 배운 것이 없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무지몽매해 보이고 거지처럼 보이며 가장 천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또 이 성공의 기쁨은 영속적인 기쁨이 아니기 때문에 고삐를 단단히 쥐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세 번이나 강력한 무기로 예수님의 심령을 강타했지만 예수님은 조금의 요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승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공은 영속적인 성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기자는 예수님의 시험 기사 끝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4:13) 실제로 마귀는 얼마 동안만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마귀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계속 죽이려고 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 죽으셨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인류 구원의 역사는 물거품이 됐을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 그냥 죽게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얼마 동안 떠났다가 다시 시험하기 위해 올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큰 시험에서 승리하신 후에 쉬시기는 하셨지만 기뻐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마귀가 다시 시험할 것 아셨기에 예수님은 기뻐하시기보다는 고삐를 굳게 잡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은혜가 아니라 은사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와 권능을 놀라워합니다. 은혜 보다 은사에 집중합니다. 은혜를 값싸게 여깁니다.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은혜를 기뻐해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신앙은 성공이 아니라 은혜를 가장 중요시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이것이 우리들이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기쁨 중에서 가장 큰 기쁨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은사나 능력이나 성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뼈를 깎는 고행이나 수련, 아니면 가진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믿음은 오직 은혜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 생긴 것입니다. 믿음은 은혜 외에 다른 것으로는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권장하는 기쁨은 믿음에서 비롯되어지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시고, 은혜를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장려하는 기쁨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져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늘의 일부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매우 귀중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어떤 고통이 있거나 혹은 어떤 세상적인 유익이 없어서 슬퍼한다면 너무 지나치게 애통해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갑에 돈이 조금 밖에 없으십니까? 직장이 불안하십니까? 하는 일이 잘 안 되십니까? 그렇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함부로 취급당하고 있습니까? 자존심 상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많이 기뻐하십시오. 또 다시 기뻐하십시오. 정말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울의 어떤 구치소 교도관의 말입니다. 이 구치소에 대통령, 유명 정치인, 기업 총수 등 사회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다 들어온 답니다. 이들의 특징이 있답니다. 그것은 일단 거기에 들어오면 기가 죽는답니다. 그런데 기가 죽지 않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목사님입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ㅃ뻐하십시오, 담대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1) ‘성령으로 기뻐하다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성령 안에 있다는 말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또는 성령의 은혜가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70인 전도대의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선교를 보고 들을 때 예수님께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는 뜻이에요. 성령님께서 얼마나 좋으셨으면 예수님을 감동시키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기록이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뻐하셨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다른 곳에 없는 유일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기쁨은 죄인들의 이름이 회개해 그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지는 것은 하늘의 기쁨이며, 천사들의 기쁨이며,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아주 열광적인 기쁨입니다. 21절에 쓰인 기뻐하다는 헬라어 단어가 아갈리아오입니다. 아갈리아오는 기뻐서 뛰놀다, 기뻐서 날뛴다, 기뻐서 미칠 지경이다라는 뜻입니다. 아주 열광적인 기쁨, 밖으로 터지듯 뿜어져 나오는 기쁨, 폭발하는 기쁨, 억제할 수 없는 지극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기쁨 위에 기쁨, 기쁨 이상의 기쁨이에요. 죄인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왔다는 말을 들을 때 예수님께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주체할 수 없이 기뻐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영이십니다.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 지극하게 기뻐하셨다는 뜻입니다. 죄인이 회개해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 생명책에 친히 기록하시면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될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이렇게 펄쩍펄쩍 뛰듯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기쁨은 자제할 필요가 없는 기쁨입니다. 아무리 기뻐해도 탈이 없는 기쁨입니다.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기쁨이 넘치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크게 장려해야 할 기쁨입니다. 주님은 이 기쁨을 크게 장려하셨습니다. 성도는 이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2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스스로 슬기롭게 여기는 자들로 서기관,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유대의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거절한 자들입니다. 어린 아이는 헬라어로 네피오스입니다. 네피오스는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작은, 단순한이라는 뜻입니다. 어린 아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사람들로 어부들, 농부들, 세리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비천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세상의 존귀한 자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을 예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감사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엑소몰로게오마이입니다. 엑소몰로게오마이는 찬양하다, 고백하다, 약속하다, 동의하다, 인정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선택에 감사하셨고 기뻐하셨으며, 동의하셨고,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진리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선택에 대해서 완전하게 만족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선택하신 것을 완벽하게 기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서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에 대해서 완전히 만족하십니다. 여러분은 세상적인 지혜와 세상적인 권세와 세상적인 부를 갖추지 않았을지라도 완전하게 만족하십니다. 비록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비천한 사람들 중의 하나와 같고, 죄인 중에 괴수와 같으며, 가장 비열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은 여러분이 선택받은 사실에 대해서 완전하게 만족하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아버지의 선택을 받은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주권적으로 여러분을 선택하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를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감사를 드린 정신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그 선택에 만족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옳습니다”(나이)라는 말은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참말입니다라는 뜻으로 완전한 동의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에 대해 아버지, 존귀하고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하필 이런 비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까?”라고 조금의 반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동의하셨습니다. 주님은 물론입니다. 참말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원하시기 때문에 주님은 하나님의 뜻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만족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의문도 가지지 아니하시고 판단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완전한 복종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니 존엄하신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들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진 사실을 기뻐합시다. 우리들은 그 뜻에 만족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뜻에 만족하셨기 때문에 더욱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뜻에 의해서 그에게 드려져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수수께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께로 달려가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은 기뻐할 만한 것들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 보다 더 큰 성공이 있을까요? 하지만 주님은 이것을 기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졌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재산이나 건강이나 자녀나 번영이나 지위나 물질이나 성공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처럼 구원을 기뻐하십시오.

이전글 한 번 더
다음글 나의 주인님께서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