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위대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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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6:32~34
주일오전예배 | 2022-12-0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웃집에 가서 낫을 좀 빌려오너라.” 잠시 후에 아들이 빈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그냥 오느냐?”, “, 아버지! 빌려주지 않던데요.” 거절당한 것이었습니다. 며칠 뒤에 그 집에서 호미를 빌리러 왔습니다. 이런 경우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빌려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거절하겠습니까? 빌려준다면 어떤 마음으로 빌려주시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빌려주면 다음번에는 꼭 빌려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빌려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또 안 빌려주면 그때는 안 빌려줄 거 같아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호미를 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아니, 아버지! 그들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그들에게 빌려줍니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도 빌려주지 않는 것은 복수다. 그리고 그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빌려준다.’라는 마음으로 빌려주는 것은 증오다. 그런데 그 집에서 빌려주었든지 빌려주지 않았든지 지난 것은 잊어버리고 지금 그 집에서 필요하니까 빌려주는 것은 용서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예수님은 보통 인간의 표준을 훨씬 능가하는 한 가지 표준을 정해주십니다. 설교자는 혈과 육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을 믿으십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십시오.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성품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좀 더 고상한 방식을 좇아 살아야 하며, 이런 사실이 마땅히 기대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도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벧후3:11) 베드로는 이에 대한 답을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벧후3:11-12)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할 세 가지 성품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32절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을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친절은 친절을 일으킵니다. 웃음은 웃음을 만듭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일들이 말처럼 흔한 것은 아닙니다. 뼈 빠지게 일해 입혀주고 먹여주고 보살펴 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세상에 존재토록 해준 분들께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마음을 보입니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괴롭게 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기가 낳은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전혀 돌보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준 사람에게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의 끔찍한 일을 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이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른다고 해서 결코 굉장한 성취는 아닙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전혀 칭찬을 받을 일이 아닙니다. 유순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스러운 예쁜 딸들과 아들을 기뻐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경지에 이르러 있을 것입니다. 이런 친절한 감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감정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이 정도의 경지를 위해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높은 미덕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 악의를 품고 우리를 대하는 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를 부득부득 갈거나 여러분에게 경멸과 멸시를 보내는 자들을 여러분은 사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격을 모독하고, 할 수만 있으면 여러분을 파멸시키려고 하였으며, 또 다시 그렇게 할 그런 사람들을 여러분은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현재 번영하고 또 복락을 누리게 되기를 여러분은 간절히 사모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몹시 행복하게 해주어 그들이 더 이상 악의를 품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그들이 더 이상 적대감정을 가지지 않게 될 때까지, 여러분은 기쁜 마음으로, 또 거듭해서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겠습니까? 이것은 영광스러운 행위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이기적인 사랑의 경쟁 속에서 모든 이기적인 동기를 말끔히 없앨 수 있다면 특히 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되, 그 동기가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영웅같이 보이고 싶어서나, 어떤 위대한 인물처럼 보이고 싶어서 이거나, 그렇게 하면 복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선을 행하는 것, 그 자체가 기쁘고 그 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 즉 적대감이 크게 팽배한 곳에 선을 베푸는 그 일이 즐거운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정도의 신앙 경지는 도달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할 수는 있으나,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이라는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33절에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이라는 말씀을 표준새번역성경은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라고 번역했고, 우리말성경은 잘해 주는 사람들에게만 잘해 준다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한다는 것은 선대한 자에 대한 보답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섬겨줬다면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애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발로입니다. 친절을 베풀면 친절한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가복음 6: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대접을 해준 사람에게 대접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평범한 미덕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은혜를 모른다는 것은 매우 소름끼치고 역겨울 뿐만 아니라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은혜를 아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에도 여러분이 받은 작은 친절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대단한 신앙의 경지는 아닙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입증해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죄인들도 이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에게 해를 끼친 자들에게 선을 베풀라는 요청을 하고 계십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 같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금수 같으며,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답고,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죄인들도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피로 값을 주시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같다는 점까지 이르십시오. 악을 선으로 갚으십시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마구 욕설을 해댄다면 즉시로 그를 용서하십시오. 그를 대적하지 마십시오. 분노하지 마십시오.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때 한번 미소를 지어보십시오. 사람들은 참으로 어려운 교훈이라고 말합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쉬운 일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저도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할수록 큰 축복이 됩니다. 선으로 악을 갚는 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그것은 세상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큰 승리가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런 행동에는 천국의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 행동에는 예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손을 때리고 주목으로 치고 침을 뱉으며 채찍으로 때리고 창으로 찌르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갚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악을 선으로 갚으셨다는 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믿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처럼 행해야 하지 않겠습까? 무례한 행위에 대해 꾸준히 은혜를 베풀고, 적대감에 대해 호의를 베푸는 그 사람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셨던 예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마련해줍니다. 여러분! 용서라는 향기로운 은혜를 맛보십시오. 사죄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경험해보십시오. 이것이 기독교의 미덕입니다. 기독교의 미덕은 고상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숭고한 것입니다. 그 숭고한 맛을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수준에 오르기를 원하십니다. 거기에는 하늘의 축복과 향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34) 예수님은 어떤 보답을 바라고 친근하게 돕는 행위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도움을 베풉니다. 지우개를 빌려주면 볼펜을 빌려줄 것을 기대합니다. 주걱을 빌려주면 주전자를 빌려줄 것을 기대합니다. 다리미를 빌려주면 드라이어를 빌려줄 것을 기대합니다. 내가 밥을 한번 사면 상대가 한번 사기를 기대합니다. 기브 앤 테이크. 이웃끼리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상부상조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놀라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물주이면서, 나는 그 사람의 물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친밀하고 친근한 협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이 속에는 고결한 미덕은 없습니다.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여러분은 이것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도움을 도로 받겠다는 기대를 하지 않고 도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너무 가난해서 여러분을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 도울 능력이 있는데도 전혀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은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친절에 대해 가식적이라든가, 위선적이라든가, 거짓이라고 헐뜯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런 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인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주시고 또 주시고 또 주시되 아무것도 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영원히 흘러내리는 샘이십니다. 우리의 헤아림으로 우리도 헤아림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20:35에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지 아니하고 값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존엄하고 고귀한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바리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은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전도서 11:1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면 어떻게 될까요? 물고기 밥이 되거나 떠내려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선을 베풀 때 물 위에 던지듯 어떤 계산이나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계산적인 사람의 눈에는 물 위에 떡을 던지는 것처럼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고 갚아주십니다. 

제가 이 말씀에 제 삶을 비추어 봤더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저를 선대하는 사람만 선대하고, 저를 사랑한 사람만 사랑한 것 같습니다. 아주 평범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본문의 말씀에 삶을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다 고통을 더 잘 참는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이 없음에도 아무런 대가 없이 자선을 베풉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다 더 온유하고 더 겸손하며 더 착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얼굴이 붉어져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기독교의 미덕은 많은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아주 우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온화함에 있어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넘어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가셨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주님, 우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이 사람들을 멸망시켜 달라고 할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두 사람을 꾸짖으셨습니다. 누가복음 9:55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 사본에는 이 말씀 끝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하시고이 말씀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마을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정신으로 교회에 다니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무슨 정신으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정신으로 예배를 드리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양보할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성을 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들에게 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늘 아래서 가장 온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대담성에 있어서 매우 우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용기가 있는 사람일까요? 그리스도인은 왜 담대한 사람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외에 두려움의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4-5절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의 용기는 이 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공공의 여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유일한 두려움의 대상은 하나님뿐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담대하십시오.

참 그리스도인은 우월한 안정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22절에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통장에 찍혀 있는 잔고를 보고 마음을 안정시키지만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때문에 평안을 얻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든 속 타는 염려로부터 들어 올리십니다. 

기독교인은 기쁨에 있어서 이 세상 사람들을 능가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기쁨은 이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기쁨은 하늘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0: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귀신을 이기는 영적인 능력은 엄청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독교인의 기쁨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기쁨은 천국입니다. 기독교인의 기쁨은 하늘입니다. 

새끼 돼지 여러 마리가 어미 돼지와 함께 늪에서 꿀꿀거리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 때 가까운 길로 소 몇 마리가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모두 몸집이 좋고 깨끗했습니다. 뿔도 발톱도 구슬처럼 반짝입니다. 털은 부드럽고 비단 같이 윤기가 주르르 흘렀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이것을 보던 돼지 새끼 한 마리가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왜 돼지로 태어났을까? 저렇게 멋지고 예쁜 소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그러자 다른 새끼들이 동조를 합니다. “그래, 그래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워. 그러나 이것이 돼지 팔자인데 어쩔 수 없지 않아?” 이 말을 듣고 있던 엄마 돼지가 말합니다. “꿀 꿀 꿀.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 무슨 불평이 그렇게 많이 하니? 아까 끌려간 소들은 지금 징발되어서 도읍으로 가는 것인데 머지않아 뿔은 금과 은으로 장식을 할 것이고, 몸에는 금실과 은실로 수놓은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된단다. 그리고 제물로 바쳐진단다.”, “엄마 제물이 뭐예요?”, “죽는 거야. 그 때에는 아무리 울어도 소용이 없어.” 그러자 새끼 돼지들은 조용해졌습니다. 엄마 돼지가 이어서 엄숙한 말로 말했습니다. “곱게 태어나서 잘 먹고 편하게 지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니? 그러므로 이제 불평하지 말고 돼지 팔자가 최고인줄 알고, 기쁨으로 살아라.” 내 팔자가 최고입니다. 남의 팔자 부러워하지 맙시다. 사람마다 각각 자기 팔자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각각의 팔자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나대로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기독교인 팔자가 최고입니다. 기뻐하시고 감사하세요.  

1980년대 원조 아이돌 그룹인 <소방차>의 리더였던 김태형 씨가 CBS<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에 나와서 한 간증입니다.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처가에 인사를 갔습니다. 장인어른이 자네 교회에 다니나?”라고 물어서 얼떨결에 라고 했습니다. 나오면서 아내 될 사람에게 장인어른께 교회 다닌다고 거짓말했다고 했더니 그러면 교회 다니면 되지.”라고 하더래요. 그때부터 소망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를 많이 다닌 것처럼 하려고 소망 교회 답사를 갔습니다. 주차장, 예배실을 보고 왔습니다. 찬양을 하는데 코러스도 넣고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다녔습니다. 결혼 후에 김태형 씨는 중국에서 나이트클럽을 오픈했습니다. 나이트클럽 규모가 장충 체육관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픈하는 날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왔는지 50만 명이 몰려오는 것 같더랍니다. 문 앞에서 입장료를 쌀자루에 받았습니다. 한참을 받는데 안에서 그만 들여보내라고 하더랍니다. 안에 들어가 봤더니 5천명이 있더랍니다. 입장료를 받은 돈이 불안해서 돈 자루를 가지고 그 길로 집으로 갔습니다. 매일 밤마다 누가 훔쳐 갈까봐 돈 자루를 베고 잤습니다. 그렇게 돈을 엄청나게 벌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불량배들이 와서 영업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흑사회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흑사회를 클럽에 데리고 오니까 불량배들이 다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흑사회에서 매출에 40퍼센트를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싫다고 하니까 다시 불량배들이 와서 영업을 방했습니다. 불량배들이 돈 달라고 협박하고, 매장에서 마약하자고 협박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와주던 형이 배신을 한 거예요. 공안들, 불량배들 다 한패라 도움을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가려고 하니까 못 가게 했습니다. 우황청심환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밤에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도망왔습니다. 그리고 목동에 있는 집을 팔아 빚을 갚았습니다. 아내와 매일 싸웠습니다. 가정은 파탄지경까지 갔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에 공연을 갔는데 돌아오는 중국 공항에서 자신의 사업을 방해하고 괴롭혔던 형을 만났습니다.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된 거예요. 수년 동안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만나면 죽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중국 공항에서 그 형을 보자마자 입 꼬리가 올라가더래요. 그 형은 자신을 보더니 덜덜 떠는 거예요. 한국에 전화를 해서 김포공항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데리고 가서 죽여 버리려고 한 거예요. 비행기를 탔는데 한쪽에서 벌벌 떠는 거예요. 음식이 나왔는데 음식을 엎고 안절부절 하는 거예요. 김태형 씨는 복수할 마음에 너무 좋더래요. 한국에 가면 땅을 파고 산채로 묻어버리려고 했습니다. 비행기가 한국 공항에 착륙을 해 활주로를 달리는데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한 번만 죄를 짓겠습니다. 복수를 꼭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김태형 씨는 너무나 죽이고 싶다고 한 번만 죄 짓고 하나님 곁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용서해라. 용서해라.”고 하시는 거예요. 김태형 씨는 하나님께 그 말씀 안 들을래요. 그 말씀 안 들을래요.”라고 계속 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안 들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행기서 내려 그 형 옆으로 가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형 내가 형 진짜 죽이려고 했는데 용서해줄게. 앞으로 다른 사람한테 나쁜 짓 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수년 동안 너무 원한에 사무쳐 복수심에 불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났는데 마음이 너무나 후련하고 편하더랍니다. 그때 진짜 웃음이 나오더래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구나! 예수님이 나한테 오셨구나! 내가 어려울 때마다 오시는구나!” 공항 입구에서 동료들이 봉고차를 대놓고 그 사람을 납치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태형 씨는 그때 하나님이 자신을 강제로 그 사람 옆에 데려다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정말 용서한다는 말을 정말 하기 싫었는데 그 말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좋아지더랍니다. 평안해지더래요. 이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시고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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