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남은 기름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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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하 4:1~7
주일오전예배 | 2022-10-02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필라델피아지의 편집인인 프레드 셰드 씨가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나무를 톱으로 켜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셰드 씨는 다시 졸업생들에게 그러면 톱밥을 톱으로 켜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톱밥을 다시 톱으로 켜지는 않을 것입니다. 셰드 씨는 졸업생들에게 톱밥은 이미 켜져 있습니다.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걱정하는 것은 톱밥을 켜는 일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는 아무리 씨름을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과거에 매이는 것은 톱밥을 다시 톱으로 자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는데 나면서부터 맹인된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제자들은 맹인이 듣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입니다. 아마도 이 맹인은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런 말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잔인하게 다른 사람의 과거를 들추어냅니다. 심지어 부보, 형제, 할아버지까지 들추어냅니다. 정말 잔인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은 이 사람의 죄도,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수없이 읽고 또 읽어도 감동적인 대답입니다. 제자들의 눈은 과거를 보고, 예수님의 눈은 미래를 보시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눈은 죄와 허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예수님의 눈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은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까? 어느덧 10월입니다. 지난 시간이 아프고 아쉽지만 우리 눈의 초점이 우리 앞에 남아있는 시간에 있기를 바랍니다.

1. 과거에 집중하지 마라 

엘리사 선지자는 선지자를 양성하는 선지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엘리사가 출타 중에 선지 생도 중에 한 명이 가족에게 빚을 많이 남겨놓고 죽었습니다. 엘리사가 돌아오자 죽은 선지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남편에게 빚을 준 사람이 자신의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려고 한다며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1) ‘부르짖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차아크입니다. 차아크는 부르짖다, 외치다, 호소하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다, 천둥처럼 소리를 내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위급한 상황에서 아주 간절히 도움을 요청할 때 쓰입니다. 창세기 4: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피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의 피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호소하다와 본문의 부르짖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입니다. 여인은 남편의 죽음과 두 아들 때문에 피맺힌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선지자에게 자신의 남편이 왜 빚을 졌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죽은 선지 생도의 학교 동료들도 침묵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도 여인의 남편이 왜 빚을 졌는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죽은 사람이 왜 빚을 졌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왜 아무도 선지 생도가 빚을 졌는지 말하지 않을까요? 빚 때문에 한 가정이 파탄 나게 생겼는데 왜 그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을까요? 성경은 지난 실수나 잘못에 대해 파헤치지 않습니다. 성경이 집중하는 것은 이미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나의 과거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기독교인을 죽이고 박해했던 끔찍했던 바울의 과거를 십자가로 덮어버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내 아프고 우울한 과거를 덮어버리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과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 오늘 내가 여기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빌립보서 3:13-14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지난 일을 잊어버리고 우리 앞에 있는 부름의 상을 잡기 위해 달려가십시오.  

얼마 전에 파주를 다녀왔습니다. 차가 막혀 2시간 30분 거리를 4시간 30분 걸려서 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자유로를 달리다가 우축으로 빠져야 하는데 그냥 지나쳤습니다. 50m 정도 더 가서 갓길에 섰습니다. 장시간 운전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위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는 너무 힘이 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차가 안 올 때 조금씩 후진했습니다. 사이드 미러를 보면서 차가 오면 서고, 안 오면 가고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차가 100km로 달리는 도로입니다. 커다란 덤프트럭이 쌩하고 지나가는데 바람이 차가 흔들렸습니다. 섬뜩 하더라고요.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후진해서 우측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참 사람은 이상합니다. 사람은 위험한 줄 알면서 합니다. 자동차 역주행은 매우 위험합니다.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매이는 것은 자동차 역주행과 같습니다. 시간은 과거로 가지 않고 미래로 갑니다. 시간은 절대로 후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꾸 시간 역주행을 합니다. 역주행하지 마십시오. 시간 역주행은 인생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가십시오.  

영국 속담에 과거는 과거로 버려두라!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Let by gones be by gones, we are here now)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에 없는 일로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세계 최고의 병원 중에 하나인 존스 홉킨스 병원의 설립자 중에 한 사람인 윌리엄 오슬러는 내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과거는 쫓아 보내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슬픔, 고통, 아쉬움, 미련을 생각하면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과거가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면 기억 속에서 쫓아내십시오. 그리고 현실의 하나님의 도우심을 붙잡으십시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바라보세요.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습니다. 과거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과거를 은혜로 덮어버리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있는 것에 집중하라  

여인에게 엘리사가 묻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2b) 여인은 엘리사에게 대답합니다.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2c) 엘리사는 있는 것을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있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반면에 여인은 없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선지자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여인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름 한 그릇은 몸에 한 번 바르거나 한 번 부을 정도의 양입니다. 현대인들은 목욕 후에 몸에 로션을 바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목욕 후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나 왕이 임직할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한 그릇은 몸에 한 번 바를 정도나 한 번 부을 정도의 양입니다. 여인의 전 재산이 기름 한 그릇이었습니다. 여인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큼 가난했습니다.  

사람들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없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비교의식이 생깁니다. 저 사람은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는데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교를 하다보면 열등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없는 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채우고 또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채우지 못하면 자신이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물었습니다. 여러분!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 없는 것에 불평하지 마시고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양을 쳤습니다. 정말 모세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물으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의 손에는 닳고 닳은 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손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셔서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셨을까요? 80년 인생에 달랑 나무 지팡이 하나뿐인 모세,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있는 것에 집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은 바로의 손에 있는 금 막대기가 아니라 모세의 손에 있는 나무 막대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들판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이 오랜 동안 먹을 것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냥 보내면 가다가 길에서 기진할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누가복음 9;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있는 것에 집중하시고, 제자들은 없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은 소년이 지금 가지고 있는 도시락에 집중하시고, 제자들은 빵집에 있는 빵에 집중했습니다. 엘리사는 여인의 기름 한 그릇에 집중했습니다.

3. 말씀에 집중하라  

엘리사는 여인에게 모든 이웃에게 () 그릇을 빌리라고 했습니다. 3절에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은 미완성형 문장입니다. 문장을 완성을 한다면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라는 말은 하고, “많이 빌려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빌려라는 말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빈 공간으로 남겨놓았습니다. 괄호를 남겨 놓았습니다. 엘리사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말끝을 흐렸습니다. 엘리사는 왜 말 끝을 흐리고 있을까요? 그릇을 준비하는 것은 여인의 몫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순종입니다. 믿음의 다른 말은 순종입니다. 순종한 만큼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인이 순종한 만큼 채워지는 것입니다. 

여인은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러 갔습니다. 보통 그릇을 빌리는 경우는 집에 그릇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손님이 많이 오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이웃의 사정을 다 아는 때입니다. 옆집에 그릇이 몇 개이고, 수저가 몇 개인지 아는 때입니다. 잔치가 있으면 모두가 모이는 때입니다. 그런데 담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여인이 그릇을 빌리고 있습니다. 손님을 맞이할 형편이 아닌 집에서 그릇을 빌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집집마다 다니면서 있는 대로 다 빌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잘 빌려주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시하는 투로 뭐하려고 하느냐고 묻지 않았을까요? 좋은 그릇이니 흠집나지 않게 잘 쓰고 다시 꼭 가져오라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릇을 빌리면서 여인은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릇을 조금 빌리지 말라는 선지자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마음이 상했지만 끝까지 그릇을 빌렸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빈 그릇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채워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그릇을 준비하는 것은 나입니다. 내가 준비한 만큼 채워지는 것입니다. 적게 준비하면 적게 받고 많이 준비하면 많이 받습니다. 시편 81:10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채운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말레입니다. 말레는 가득 채운다, 남김없이 채우다, 만족시키다,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만족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인이 아들들에게 그릇을 더 가져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릇이 더 이상 없습니다. 6절에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그릇이 없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릇이 떨어져갈 때 두 아들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엄마, 그릇이 이제 다섯 개 남았어요.” “엄마 이제 두 개 남았어요. 이제 하나 남았어요. 이제 이게 마지막이에요.”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여인의 말은 아쉬움입니다. 그릇이 더 이상 없느냐는 말입니다. 더 이상 기름을 부을 그릇이 없었을 때 여인은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이웃 마을에 가서라도 더 빌려 올 걸!’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준비한 만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에 집중한 만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에 집중하세요. 말씀을 꼭 붙잡으세요.

4. 하나님께 집중하라. 

엘리사는 여인에게 그릇을 빌린 후 집에 가서 문을 닫고 두 아들과 함께 기름을 그릇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엘리사는 여인에게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왜 문을 닫으라고 했을까요? 문을 닫는 행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을 할 때 문을 열어놓으면 방해가 될 수가 있습니다. 공부할 때 문을 열어놓으면 방해가 됩니다. 대화를 할 때 시끄러우면 방해가 됩니다. 문을 닫아야 일도 되고 공부도 됩니다. 문을 열어놓으면 방해를 받습니다. 문을 닫으라는 말은 은혜를 받는데 방해받지 않도록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밤 중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주시거든 나도 물 위를 걷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래. 너도 물 위를 걷고 싶니? 내게로 오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물 위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인간이 물 위를 걸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베드로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런데 그 놀라운 기적의 순간에 베드로의 눈에 바람(파도)이 보였습니다(14:30). 바람이 보이자 베드로는 두려웠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기적의 순간에 베드로의 마음 문이 세상으로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해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다가 말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다가 말았습니다. 기적을 체험하다가 말았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 중간에 끊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예수님은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문을 닫는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을 닫는 것은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문을 닫는 것은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십니까? 그러면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마음의 문을 닫으십시오. 미움의 문을 닫으십시오. 정욕의 문을 닫으십시오. 이기심의 문을 닫으십시오. 쾌락의 문, 분노의 문, 정죄의 문을 닫으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집중하십시오. 주님께만 문을 열어놓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은혜를 받아도 시험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다가 중단이 됩니다. 참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할 때는 전화가 안 와요. 그러다가 기도를 시작하면 핸드폰이 울립니다. 한참 기도에 집중해 은혜가 충만할 때 핸드폰이 울립니다. 기도하면서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합니다. 궁금해서 받아보면 별일 아니에요. 안 받아도 되는 전화예요. 핸드폰 받다가 기도가 끊어집니다. 예배 중에 핸드폰을 끄세요.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인생을 살면서 급한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나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오시면 세상을 향한 문을 닫으세요.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으세요. 핸드폰 닫으세요. 하나님께로만 마음의 문을 여세요.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여인은 문을 닫고 그릇에 기름을 붓고 또 부었습니다. 부어도 부어도 기름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기름이 한이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마나 신났을까요? 여인은 두 아들과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두 아들과 함께 !”하며 함성을 지르지 않았을까요? 세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에 흥분했을 것입니다. 모든 그릇에 기름이 차자 기름이 멈추었습니다. 여인이 얼마나 많은 그릇을 준비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인이 빌린 모든 그릇에 기름이 다 찼다고 합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6) 하나님은 그릇이 몇 개이든지 상관없이 여인이 준비한 모든 그릇에는 기름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여인이 준비한 만큼 기름이 찼습니다. 여인이 준비한 만큼 복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그릇을 더 빌리지 못한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릇이 떨어져갈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들에게 혹시 빈 그릇이 더 없는지 찾아보라고 한지도 모릅니다. 기름이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기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릇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름이라는 말이 아주 다양한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 은혜, 은총, 복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시편 23: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65:11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라고 했습니다. 시편 92:10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시편 133:2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라고 했습니다. 여인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기름이 흘러넘쳤습니다. 우리의 삶에 축복과 은총의 기름이 멈추는 것은 우리 마음의 그릇이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차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낮추십시오. 마음을 비우십시오. 마음을 넓히십시오. 시편 81:10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습니다. 입을 크게 열라는 말은 입을 넓히라는 의미입니다. 입을 넓히라는 말은 마음을 넓히라는 말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넓히는 만큼 넓혀집니다. 마음을 넓힌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집니다. 마음을 낮추시고 비우시고 넓히세요. 은혜를 끊임없이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하시고 갈급해하세요.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모든 그릇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기름이 멈추자 엘리사는 여인에게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나머지로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빚을 갚아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빚만 없어도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주십니다. 마태복음 7: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기름 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300ml 정도 될까요? 어쩌면 100ml도 안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작은 양입니다. 아주 적은 양인데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온 모든 그릇을 채우는 기적의 기름이 됐습니다. 남편의 빚을 다 갚고 세 사람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기름이 됐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의해 부어질 때 한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큰 축복이 됐습니다. 세 사람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됐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52어 기적이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라는 말을 마태, 마가, 누가는 익뚜스라고 했고, 요한은 옵사리온이라고 했습니다. 익뚜스는 모든 물고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특히 익뚜스는 큰 물고기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옵시리온은 작아서 상품성이 없는 물고기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피라미 같은 물고기입니다. 멸치보다 조금 클까요? 그래서 KJV 작은 물고기(small fish)라고 번역했습니다.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면 익뚜스는 가지고 가고, 옵사리온은 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부가 버리고 간 옵사리온을 주어다가 반찬으로 썼습니다. 소년이 가지고 있었던 물고기는 피라미나 멸치처럼 아주 작은 고기였습니다. 물고기가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였다면 떡은 얼마나 컸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떡도 보잘 것 없었을 것입니다. 안드레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니까?” 하지만 그것이 장정만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습니다. 어린이, 여자, 노인까지 합하면 적어도 3만 명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소년의 도시락은 2만 명을 먹인 광야의 기름 한 그릇이었습니다.

저는 제 가정의 기름 한 그릇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가족은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6남매였습니다. 저의 8명의 가족 중에 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저를 통해 가족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집안의 우상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저의 가정의 구원의 기름 한 그릇이었습니다. 제가 매일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할 때 더 신경이 써지는 분이 세 분입니다. 다른 분들은 가족 중에 믿는 분들이 있지만 세 분은 모두 집에서 혼자 믿고 있어요. 세 분 모두 어머님이 예수님을 믿으셨지만 지금은 혼자 믿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세 분을 위해 기도할 때는 이렇게 기도해요. “하나님, 이분에게는 저 밖에 없습니다. 붙들어주세요. 제 기도 들어주셔야 해요.” 물론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기도해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집사님에게는 제 기도 밖에 없습니다.” 그분들이 그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 한 그릇입니다. 그 기름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믿지 않는 다른 가족들에게 충만하게 부어지기를 바랍니다.  

삼손은 괴력의 사나이였습니다. 역사상 삼손 보다 더 힘센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삼손에게 그토록 엄청난 힘을 주셨을까요? 이스라엘에 블레셋과 싸울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모두 가나안 족속과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습니다. 삼손은 사사 시대 은혜의 기름 한 그릇이었습니다. 삼손의 기름이 이스라엘에 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학대 속에서 구원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삼손이 주색에 빠졌습니다. 기름부음은 멈췄고 이스라엘은 암흑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은혜의 기름을 삼손처럼 세상에 쏟아버리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자녀, 그리고 교회는 암흑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나는 사사 시대 말에 기름 한 그릇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비둔했고 눈이 어두웠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들은 패역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희귀하여 이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암담한 시대였습니다. 그때 한나라는 여인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르짖음으로 이스라엘에 다시 하나님의 기름이 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나의 기름은 이스라엘을 다 적실 때까지 중단되지 않고 계속 부어졌습니다. 그의 기도의 기름이 사사 시대의 어둠을 밝혀 어둠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기름 한 그릇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누구를 쓰시겠습니까?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쓰실까요? 돈 많은 빌게이츠를 쓰실까요? 아니면 백악관, 유엔, 나토를 쓰실까요? 아닙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백악관도, 나토도, 국제연합도 푸틴의 광기 앞에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름 한 그릇이 되십시오. 우리나라에도 기름 한 그릇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기름 한 그릇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기름 한 그릇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그 기름 한 그릇이 되십시오. 그 기름을 자녀에게도 붓고, 남편에게도 붓고, 직장에도 붓고, 이웃에게 부으십시오. 집에도 붓고, 교회에도 붓고, 우리 사회에도 부으십시오. 기름이 다 찰 때까지 멈추지 마십시오. 계속 부으십시오. 멈추면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드넓은 사막 한 가운데 폐허나 다름없는 주유소가 있고, 거기에 그 사막에 유일한 물 펌프가 하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지친 나그네가 목마름으로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유소의 물 펌프를 발견했습니다. 펌프 앞에는 한 바가지의 물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팻말이 있습니다. <이 물 펌프 밑에는 엄청난 양의 시원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이 펌프 물로 목을 축이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펌프 앞에 놓은 바가지의 물만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물을 펌프 안에 넣어서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만 지하수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펌프 안의 물을 퍼 올려 목을 축이셨으면 떠나기 전에 잊지 말고 그 바가지에 다시 한가득 물을 퍼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나그네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 나그네가 펌프의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앞서서 펌프를 다녀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팻말의 충고대로 바가지의 물만은 마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펌프를 거쳐 간 사람 가운데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팻말의 충고를 무시하고 바가지의 물을 마셔버렸다면, 사막의 유일한 펌프는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물을 뿜어낼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한 바가지의 물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마중물에서 마중은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함이라는 뜻입니다. 마중물은 '맞이하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마중물은 펌프를 시동할 때 미리 펌프 동체에 외부로부터 채우는 물입니다. 마중하는 한 바가지 물은 보잘 것 없는 적은 물이지만 깊은 샘물을 퍼 올려서 세상과 소통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중물은 무한한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원동력,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힘이 되어주는 근원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중물이 되세요. 자녀에게, 남편에게, 직장에서, 사람들의 마중물이 되세요. , , 나 밖에 모르는 세상입니다. 자기 목만 채우는 시대입니다. 자기 목만 채우면 다른 사람은 어찌되든 나 몰라라 하는 시대입니다. 마중물이 땅에 쏟아지든, 바가지가 깨지든 신경 안 쓰는 시대입니다. 마중물의 바가지를 깨뜨려버리는 사람이 되지는 마세요. 여러분이 오늘 우리 사회, 우리 교회, 내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의 기름 한 그릇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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