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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나는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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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계시록 3:17~18
주일오전예배 | 2022-09-2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아멘은 히브리어로 확실한, 신실한, 탄탄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변치 않는, 그렇고 말고요, 그럴게 될지어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굳건히, 믿을 수 있는, 확실히, 진실로,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아멘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동의와 신뢰이며 내 믿음의 확증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신다면 아멘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신앙생활 중에 아멘이 없다면 믿음이 침체되어 있든지 믿음이 아직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에서부터 아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멘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아멘은 신앙의 바로미터와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아멘으로 시작해, 아멘으로 복을 받고, 아멘으로 복을 누립니다. 내가 얼마나 자주 아멘을 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에 비해 아멘이라는 말을 특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복음서의 진실로라는 말이 아멘의 번역입니다. 마태복음에 진실로라는 말이 34, 아멘이라는 말이 1번 나옵니다. 마가복음에는 진실로라는 말이 14, 누가복음에는 7번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50번 나옵니다. 요한은 아멘을 사모했습니다. 요한이 아멘이라는 말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유일한 표현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이것은 요한의 신앙 고백이며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아주 깊은 통찰과 깨달음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확실함, 나의 흔들리지 않음, 나의 굳건함, 나의 탄탄함, 나의 진실, 나의 참이라는 고백이며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다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아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아멘이십니다. 아멘 합시다.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이십니다. 충성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피스토스입니다. 피스토스는 믿을만한, 신실한, 미쁜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계속 신실하다,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신실한 증인, 믿을 수 있는 증인이십니다. 거짓말 하는 증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증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너에게 하시는 말씀은 모두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1:14그의 눈은 불꽃같고”(2:18 ,19:1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진실을 보시고 진실만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말을 더하거나 뺍니다. 하지만 주님은 왜곡하지 않으십니다. 아첨의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무서운 진실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참되고 충성된 증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마음과 귀가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7) 다른 하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처방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  

라오디게아 교회 담임목사와 교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주어에 주목하십시오. 주어가 우리가 아니라 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한 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교인들이 꽤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말을 한 사람처럼 이야기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처럼 자만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처럼 이렇게 동일하게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소수 교인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교회를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인들은 숫자가 너무 적어 자만하는 교회가 일치하여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교회의 말을 금하지는 못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그들은 한 사람처럼 자만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금융업, 은행, 의학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의과대학이 라오디게아에 있었습니다. 귓병을 치료하는 약과 콜로니온이라는 안약이 유명했습니다. 또 상업이 극도로 발달해 많은 돈이 모였습니다. 땅이 비옥해 농사도 잘 됐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자 도시였습니다. AD 60년에 큰 지진으로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때 도시들은 로마 황제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는 황제의 재정 지원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돈으로만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매우 교만한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자라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사는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 시민들은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부 때문에 오만했습니다. 겸손한 부자가 되십시오.  

라오디게아에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에 많은 지성인들, 많은 부자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교회에 헌금이 쏟아졌고, 목사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여러 부류의 교인들과 어울리며 교회 안팎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교회는 활력이 넘쳤습니다. 교회는 사람, , 재능 등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있을 때와 똑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교인들의 눈치를 보게 됐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조용조용 부드럽게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는 영적 뜨거움이 사라지고 미지근해졌습니다. 하지만 목사도 성도도 설교가 미지근해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은 사회 분위기에 잘 맞는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신사적인 설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지근한 설교는 미지근한 교인들을 만들었고, 교회를 미지근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대외적인 사역은 잘 이루어져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역 사회에 선도적인 교회가 됐고, 다른 교회들이 부러워하는 교회가 됐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교회가 됐고 칭송받는 일류 교회가 됐습니다. 목사님도 그렇게 생각했고, 장로님도 그렇게 생각했으며, 성도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부자이고 부족함이 없다.” 자신들이 최고로 멋진 교회라는 생각은 교역자로부터 방금 등록한 교인까지 보편적이고 일치된 감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높이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그것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으며, 큰 일들을 시도하도록 고무하였습니다. 

그들의 자랑은 부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부자였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자랑하는 것은 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근본이십니다(14). 예수님은 믿음의 근본, 교회의 근본, 우리 인생의 근본이십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의 근본은 돈이었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돈이 교회를 움직였습니다.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 돈 자랑하는 교회. 정말 끔찍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부자라는 말이 헬라어로 플루시오스입니다. 플루시오스(πλουσίως)풍부하게, 풍성하게, 부유하게, 충분히란 뜻입니다. 부요하다는 말은 부족함이 없이 넘친다(πλουτέω)는 뜻입니다. 그들은 풍성했고 충분했으며 넘치도록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최고로 훌륭한 집사님들과 최고로 훌륭한 권사님들과 최고로 훌륭한 장로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고로 훌륭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어지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재능과 돈과 자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잘 해왔고, 지금도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잘 될 일 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랑하는 데에 진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 그들 자신들이 자랑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그들은 진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돈 자랑하며 살아왔고, 교회 안에서 돈 자랑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위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의 말 속에는 진지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멋진 존재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부자다. 우리는 금수저다. 우리 교회는 특별한 교회이고, 우리는 특별한 성도이다.” 그들은 무지가 속에서 그들에게 속삭이는 거짓말을 신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진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거짓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높이 평가하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 거짓말을 받아들입니까?  

그들은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착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무지에서 나왔습니다. 17절 끝에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졌지만 자신의 실상을 몰랐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무지 때문에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제들의 표면만을 생각하였으며, 표면의 하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충성되고 참된 증인께서는 그들로 벌거벗은 진상을 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곤고한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곤고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비참하다, 불쌍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피부가 딱딱해지는 고통을 견딘다는 뜻입니다. 피부가 붓고 소나무 껍질처럼 딱딱하게 굳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으로 피부가 마비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매우 위중하고 비참한 상태 빠져 있었지만 아무도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로 가련하다고 했습니다. 가련하다는 말은 불쌍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불쌍함은 그 불쌍함과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훌륭하고 능력이 많으며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교회에 대해서 주님은 불쌍하도다 불쌍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눈과 하나님의 눈은 다릅니다. 이사야 55:8-9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세 번째로 가난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난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무엇에 가난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에 가난했습니다. 그들은 은혜에 가난했고, 믿음에 가난했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은혜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부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이 가진 돈을 영적 부요를 가늠하는 척도로 오해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 부요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는 심각한 궁핍함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영적인 가난함에 대해 무감각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시력이 흐려진 것이 아니라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영적 눈은 아예 기능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그들이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옷으로 입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짠 거만의 옷을 입었습니다. 무지로 옷 입었습니다. 사치로 옷 입었습니다. 돈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벌거벗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의뢰하지 않고 있었으며 그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돈에 완전히 속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돈에 속은 것은 아닙니다. 돈의 뒤에 있는 검은 세력에 속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모두가 한꺼번에 속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모두가 한꺼번에 눈이 멀고 어떻게 한꺼번에 벌거벗을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 교회가 한꺼번에 눈이 멀고, 벌거벗어 가련한 공동체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가족이 한꺼번에 눈이 멀지 않게 하옵소서. 한 사람이라도 눈을 뜨고 있게 하옵소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끔찍한 교회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복되고 은혜로운 권면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이 말씀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끔찍한 교회를 주님이 사랑하시다니요. 주님의 사랑과 깊이는 알 수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권한다는 말이 헬라어로 쉼블루오(συμβουλεύω)입니다. 쉼블루오는 상담하다, 충고하다, 조언하다, 상의하다, 협의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의 조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상담자이십니다. 그 사랑의 조언을 들어봅시다. 

주님은 사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고 계십니다. “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흰 옷을 사서 안약을 사서 이것은 매우 이상한 권고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방금 전에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가련하고(불쌍하고) 가난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 수가 있겠습니다. 이 세속의 시장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비싼 것을 살 수 있지만 주님의 사랑의 시장에서는 가진 것에 상관없이 누구나 마음껏 살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55:1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허영의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붙여놓은 가격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웃기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부자는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물건을 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격표를 보고 살지 말지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의 시장에서는 값이 없기 때문에 돈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시장에는 모든 것이 공짜입니다. 그냥 가져가면 됩니다. 여러분! 그냥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주님 것은 모두 공짜입니다. 그러면 그냥 가져가라고 하지 왜 사라는 표현을 했을까요? 그것을 구걸하는 입장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거지처럼 구걸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서 꼼꼼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한 구매자의 입장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4: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지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당당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은혜를 사러 가십시오. 

구매자는 물건을 살 때 아주 신중하게 생각을 합니다. 판단하고, 비교하고, 욕심도 내보고, 평가하며, 깊이 고민을 합니다. 값진 물건일수록 사는 구매자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저는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키우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어떤 화원을 지나가다가 화원 문 앞에 내어놓은 무화과를 보게 됐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25,000원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집에 와서 인터넷과 가격을 비교해보며 화원에서 책정한 가격이 크기에 비해 싼지 비싼지 살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따져봅니다. 

여러분! 오셔서 그리스도의 가격을 여러분이 직접 측정해보십시오. 싼 물건이 아니라 아주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것처럼 해보십시오. 그 분을 사서 내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평가해보십시오. 구매에 있어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다 만족을 해야 합니다. 판매자는 팔겠다는 데 동의해야 하고 구매자는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판매자이시고 우리는 구매자입니다. 하나님도 동의하시고 우리도 동의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우리도 만족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사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팔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자신의 은사를 아무에게나 억지로 파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에게 그러한 은사들이 필요함을 가르치시고, 그 다음 와서 사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값이 없지만 생각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평강해야 하며, 갖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소유했을 때의 기쁨을 알 수 있고, 그것에서 나오는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가치를 모르면 받아도 복인 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도록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평가해보십시오. 가격을 매겨보십시오.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십시오. 그리고 사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간절히 팔고 싶어 하십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사서라고 하셨습니다. “내게서 사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주님과 거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들끼리 흥정하고, 자기들끼리 물물을 교환하여 왔습니다. 매매할 때 주님이 계시지 않고 사람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사지 않았습니다. 한 교우는 이런 재능을 가져왔고 다른 교우는 저런 재능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서로 교역을 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부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너희들끼리 비교하지 말고, 사람에게서 구하는 것도 그만두고, 내게서 사라.” 주님께 사는 것이 은혜의 기초입니다. 예수님이 창조의 근본이십니다. 예수님이 은혜의 근본이십니다. 여러분이 등대교회에 나오셔서 제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을 제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제게서 받은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제 머리카락에 낀 때만도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거래하지 마십시오. 부모나 아내나 다른 교우들에게 받은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과 거래하지 마십시오. 주님과만 거래하십시오. 주님께만 사십시오. 모든 참된 은혜들은 그리스도부터 산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독점 판매권자이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유의 것을 팔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팔려고 하는 품목들은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만 있는 것들입니다. 그 어느 누가 불로 연단한 금을 팔 수 있고, 벌거벗은 수치를 가릴 수 있는 흰 옷을 팔며, 눈을 뜨게 할 안약을 팔 수 있습니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사서여러분은 가짜 금 세공업자가 파는 금을 사지 마십시오. 다른 곳에서 산 영적 의복을 입지 마십시오. 그러한 잘못된 물건들은 던져버리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구입한 것 외에는 진품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사서이 자리에 계신 등대교회 교우 여러분들은 이 사랑의 조언을 들으십시오. “나는 오직 그리스도께만 사겠다.”라고 결심하십시오. 예수님과만 거래하십시오. 세상과 거래하지 마십시오. 마귀에게 영혼을 팔지 마십시오. 세상과 거래하는 것은 마귀에게 영혼을 파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사라.”  

주님께서 자신의 은혜의 시장에서 파시는 상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가 불로 연단한 금입니다. 첫 번째는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으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불로 연단한 금입니다. 불은 시련이고, 금은 믿음입니다. 뜨거운 불로 금을 연단하면 금은 금대로, 불순물은 불순물대로 나누어져 순수한 금이 됩니다. 불로 연단된 금을 사라는 말은 불같은 시련으로 연단돼 세상적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왜 주님은 금을 사라하고 하실까요? 왜 금이라고 해을까요? 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살 수 있습니다. 하늘에는 모든 좋은 것이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께서 파시는 금을 사면 하늘의 모든 것을 살 수 있습니다. 금을 가진 자는 더 이상 가질 것이 없습니다. 금을 가지면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없고 부족한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 지식, 노력, 수고, 재능, 물질 등등 우리의 부족한 모든 것을 이 금이 있으면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장에서는 이 소중한 금 외에는 아무것도 통용되지 않습니다. 은혜의 금만 얻는다면 하나님의 시장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이것이 첫째입니다. 여러분!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시련의 불로 금을 살 기회입니다. 시련만 당하고 금을 내버리시면 안 됩니다. 시련을 당할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불로 연단한 금을 사는 방법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시련이 있을 때 금을 못하면 또 같은 시련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월을 허송하지 마시고 불같은 시련이 있을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십시오. 

두 번째가 흰 옷입니다. 인간은 죄로 벌거벗은 존재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수치스럽고 비참한 존재입니다. 이사야 1:5-6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보다 죄에 빠진 인간을 더 완벽하게 설명한 말씀이 있을까요? 죄는 사람을 너무 너무 비참하게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 비참함을 완전히 고칠 수 있는 완벽한 의복을 마련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영혼의 죄와 병과 고통을 완전히 고치고 제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의복을 입어 아름다운 자가 됩니다. 예레미야 50:2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지 못하시는 것이라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죄악을 찾지 못하신다면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못 찾게 하는 의복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의복입니다. 그리스도의 흰 옷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구매입니까? 이 옷을 입으면 사람은 물론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흰 옷을 사십시오. 

세 번째로 안약입니다. 안약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시편 119:18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눈을 열어서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람 나라 군대가 자신과 엘리사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자 사환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때 사환은 자신과 엘리사를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들을 보았습니다(왕하6). 엘리 제사장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삼상3). 삼손이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여자에 빠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눈이 뽑혔습니다. 안약은 영적 진리와 영적 세계를 보고 깨닫게 하는 은혜의 약입니다. 이 약은 눈을 열어서 지금까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며 하나님을 보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로 가면 주님께 이 약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가서 영적 안약을 사서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보십시오. 육적인 세계만 보고 은혜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은 우물 안에 개구리와 같습니다. 우물 위로 올라가 넓은 하나님의 세계를 보십시오. 

주님께 사라는 말은 주님께 가장 좋은 것을 사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가장 좋은 것을 파는 최고의 상인이십니다. 금은 모든 금속 중에 가장 귀한 것입니다. 금을 사라는 말은 최고의 것을 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최고입니다. 믿음이 최고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을 사십시오. 최고를 사십시오. 흰 색은 순결을 나타내는 색이요, 거룩한 색이며, 왕족의 색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기쁨이요, 우리의 영광이요, 우리의 의로 여깁니다. 안약 또한 최고입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안약이 있을까요?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발랐습니다. 그런데 씻고 나니 눈이 떠졌습니다. 주님의 안약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안약입니다. 세상 안약은 염증을 치료하지만 주님의 안약은 맹인의 눈을 보게 합니다. 최고의 안약입니다. 주님께 가십시오. 주님께로 가면 최고의 것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최고만을 최고의 상인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내게로 와서 내게 사라주님의 사랑의 상담을 들으세요. 금을 사기 위해 세상이라는 광산에서 탐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세상 광산에서 채굴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에 금이 있습니다. 여기에 흰옷과 안약이 있습니다. 주님 저는 금을 살 돈이 없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돈 없이 값없이 그것을 사십시오. 은혜로운 주님의 부담없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하여 진짜 부자가 되십시오. 세상적인 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자가 되십시오. 마귀가 너는 안 된다.”고 조롱할 때 나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나는 그 동안 착각했다. 주제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주님을 굳게 믿고 굳게 붙잡겠다.”라고 말하십시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십시오. 여러분! 지금 시작하십시오. 이 시간에 예수님을 굳게 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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