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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건강하시고 형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를 할 때 이렇게 축복에 관련된 메시지를 전하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반대로 죄에 관한 메시지를 전할 때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축복에 관한 말을 주로 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성공, 잘됨, 형통, 번성 같은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이런 말씀을 전할 때면 신이 납니다. 반대로 말하기 곤란한 부분은 설교하기 싫습니다. 이런 부분은 건너뛰고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경은 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롭게 생각하는 구절들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 정죄, 우리가 읽으면서 낯 뜨거워지는 내용들까지 다 성령님의 동일한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심지어 전혀 은혜를 생각할 수 없는 본문까지 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현대의 성경 비평가들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을 제거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찾는 작업을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점, 한 획까지 모두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성경은 비평이나 평가의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받아들이고 내가 불편한 것들은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두 아멘으로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20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모두 아멘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지 평가한 다음에 좋으면 아멘 하고 싫으면 No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좋든 싫든 다 아멘 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거울입니다. 그것도 우리 영혼 전체를 볼 수 있는 큰 거울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보는 것은 거울을 깨서 그 조각으로 자신의 모습 중에 한 부분만 보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로 한쪽 눈만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울로 한쪽 머리만 보지 않습니다. 거울로 얼굴 전체를 봅니다. 성경 전체를 동일하게 보십시오. 얼짱 각도라는 말을 합니다. 사진 찍으면 잘 나오는 방향이 있습니다. 얼짱 각도에 성경을 놓고 좋은 것만 받아들이지 마시고 싫은 것도 받아들이십시오. 성경은 쪽거울이 아니라 큰 거울입니다. 이 세상을 모두 비출 수 있는 초대형 거울입니다. 성경을 쪽거울로 사용하지 마시고 큰 거울로 사용하세요.
성경은 선례들도 말씀하지만 악례들도 말씀합니다. 선례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악례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롯의 스토리는 악례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읽기 불편한 말씀입니다. 감동 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롯의 스토리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불편한 말씀, 부담스러운 말씀도 들어야 하고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태곳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롯의 이야기는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경고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세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롯이 소돔 성에서 몇 명을 구원해냈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체하는 롯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롯의 끝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끌어 내라
먼저 롯이 소돔 성에서 몇 명을 천국으로 인도했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천사는 롯에게 네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했습니다. 12절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끌어 내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차인테 야차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사용되었습니다(참고, 출3:10, 13:3, 9, 14). 출애굽기 6:26에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이끌어 내다는 말은 단순히 소돔 성 밖으로 나가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악 세상에서 구출한다는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돔 성이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아무도 소돔 성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롯에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간 것처럼 자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소돔에서 데리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모세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롯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롯은 아내나 자녀들 또 동료들이나 종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소돔에서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롯은 천사의 말을 듣자마자 사위가 될 사람들에게 달려가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어서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한다네. 여호와께서 이 성을 곧 멸하실 것일세.” 하지만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생각했습니다. 농담으로 여겼다는 말을 우리말성경은 우습게 여겼다고 번역했습니다.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롯의 말을 다른 소돔 성 사람들이 들었다면 그들도 동일하게 비웃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소돔이란 사회의 영적 분위기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은 그들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하지만 롯의 잘못은 조금도 없는 것일까요? 평상시 사위들에게 여호와의 신앙에 대해 조금의 영향력도 끼치지 못한 롯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롯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위들에게 영적 영향력을 전혀 주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만나는 몇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 말에 웃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쓴 웃음을 지었고 어떤 사람은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이 난리에 웬 교회냐는 표정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신뢰가 없는 사람이었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한 이유는 제가 변변치 못한 사람이기도 했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꽤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터지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교회에 점점 더 적대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악해질수록 더 그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어렵고 전도하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세상에 영적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이전 보다 더 잘 믿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주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을까?” 여러분! 예수님을 이전 보다 더 잘 믿읍시다. 정말 잘 믿어야 합니다.
롯과 그의 아내가 소돔 성에서 나갔습니다. 천사들이 두 사람의 손을 잡아서 억지로 성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천사들은 두 사람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빨리 뛰어 산으로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롯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봤습니다. 천사들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봤고 소금기둥이 됐습니다. 롯은 자신이 아내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두 딸은 건졌습니다. 그런데 두 딸이 아버지를 따라 나와서 참으로 해괴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죄로 더럽혔습니다. 소돔 성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딸들은 마귀의 일 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에게서 시작된 두 민족이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일을 했습니다. 롯의 두 딸이 소돔 성에서 나와서 한 일은 소돔 성에서 있었던 악행을 세상에 계속 남아 있게 한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롯의 두 딸이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롯은 두 딸도 구원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롯에게는 많은 소와 양과 염소와 나귀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치는 종들과 종들의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롯은 그 종들 중에 단 한 사람도 구원받게 하지 못했습니다. 종들은 롯이 돈을 주고 산 사람들입니다. 롯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롯이 나가자고 했다면 종들은 모두 따라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그 많은 종들 중에 단 한 명도 데리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가자는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도 소돔 성에서 롯을 따라 나오지 않았습니다. 롯은 가족, 종료, 종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지옥의 문에서 천국의 문으로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롯은 그냥 혼자만 소돔에서 나왔습니다. 천사들은 롯에게 말했습니다. “네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소돔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하지만 롯은 소돔에서 아무도 데리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롯은 혼자만 구원받았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1993)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쉰들러가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나치를 뇌물로 매수해 살린 유대인들의 명단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 2주 만에 점령합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큰 돈을 벌 목적으로 나치 당원이 돼 폴란드의 한 도시로 갑니다. 거기서 쉰들러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헐값에 인수합니다. 경영을 위해서 유대인 회계사 슈텐을 고용하고 공장 노동자들도 값싼 유대인으로 고용합니다. 전쟁과 유대인의 불리한 상황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쉰들러는 유대인들의 참혹한 실상을 목격하고 나치들의 잔인한 유대인 학살에 분노하게 됩니다. 쉰들러의 공장에서 일하는 유대인들은 근로허가증을 가지고 있어서 처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쉰들러의 공장으로 모여들었고, 쉰들러는 유대인 노동자들이 처형당할 위기마다 나치 장교를 매수하여 구해줍니다.
어느 날 한 유대인 여성이 찾아와 “당신 공장은 천국이라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여기선 아무도 죽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사장님은 좋은 분이라고도 했어요.”라고 하며 자신의 취직을 요청합니다. 우리 교회가 쉰들러의 공장 같은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쉰들러는 유대인들이 공장에 꼭 필요한 노동자임을 주장하며 끝까지 고용된 유대인들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 모두가 포로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쉰들러는 나치 장교와 협상하여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독일군 장교에게 뇌물로 주어 공장 사람들의 생명을 지킵니다. 이때 구해낸 유대인이 1,100명입니다. 하지만 독일이 전쟁에 패하면서 나치 당원이었던 쉰들러는 연합군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도망가는 쉰들러를 위해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문서를 만들고 거기에 1,100명이 모두 서명을 한 다음 쉰들러에게 주면서 연합군에 잡히면 제시하라고 합니다. 친구 슈텐은 떠나는 쉰들러에게 금니를 뽑아 만든 반지를 선물로 줍니다. 그 금니에는 탈무드에 나오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선물을 받아든 쉰들러는 눈물을 흘리며 친구 슈텐 앞에서 자책을 합니다. “더 살릴 수도 있었어. 더 살릴 수 있었는지도 몰라. 좀 더 구할 수도 있었을 거야! 돈을 좀 더 벌었더라면 난 너무 많은 돈을 버렸네. 자넨 상상도 못해. 충분하지 못했어. 이 차 커트가 사줬을 텐데 왜 팔지 않았을까? 열 명은 구했을 텐데! 열 명이나 말이야. (가슴에 꽂혀 있던 금 핀을 뽑으며) 이 핀은 두 명! 금이니까 두 명은 더 구했어.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구했을 텐데! 한 사람을 말이야, 슈텐, 이거 하나로! 더 구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안한 거야! 안 했다고!” “한 사람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안한 거야! 내가 안한 거야!”라는 말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롯처럼 혼자만 겨우 구원받은 것 아닌가요? 가족이나 이웃, 직장 동료나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가요? 예수님을 정말 잘 믿읍시다. 사회가 정말 혼란합니다. 이전 보다 더 잘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 교회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교회와 이 세상을 위해서 기도주세요. 그래서 소돔 같은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2. 지체하는 롯
두 번째로 지체하는 롯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롯의 신앙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지체하여”입니다. 이 말 보다 롯의 신앙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습니다. 롯은 소돔 성에서 지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롯은 죄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지체했습니다. 롯은 멸망할 성에서 나오지 않고 지체했습니다. 천사가 롯에게 네게 속한 사람들을 다 데리고 소돔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롯은 소돔에서 누구도 데리고 나가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지체함, 이것이 롯의 신앙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15절에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했다고 했습니다. 16절에 “그러나 롯이 지체하여”라고 했습니다. 지체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하흐입니다. 마하흐는 ‘꾸물대다, 연기하다, 어떤 결정을 머뭇거리다’라는 뜻입니다. 롯이 천사들에게 소돔이 망할 것이라는 말을 밤중에 들었습니다. 천사들이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습니다. 이때가 몇 시쯤 됐을까요? 고대에는 지금처럼 밤늦게까지 깨어있지 않았습니다. 대략 8시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때 폭도들이 롯의 집을 에워쌌습니다. 폭도들이 롯의 집 앞에서 한 시간 가량 소란을 피웠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천사들이 롯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고 소돔의 멸망에 대해 말한 시간은 대략 9시 전후였을 것입니다. 늦어도 10시는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천사들이 소돔의 멸망을 예고한 후 소돔에서 나가라고 한 시점부터 새벽 동이 터올 때까지 밤새도록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고 꾸물대며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롯은 밤새도록 무엇을 했을까요? 천사들이 빨리 나가라고 하는데 롯은 왜 나가지 않고 있었을까요? 롯의 머뭇거림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베드로후서 2:8에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상했다는 말은 괴로워했다는 뜻입니다. 롯은 소돔 성의 죄악을 보면서 늘 마음이 상했고, 슬퍼했으며,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소돔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돔 성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다고 했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누구의 부르짖음일까요? 그 부르짖음의 주인공 중에 한 사람이 롯이었습니다. 롯은 소돔 성의 죄악이 싫어서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럼에도 롯은 소돔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롯은 소돔의 죄악이 싫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도 떠나지 않고 거기에 그대로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왜 롯의 말을 비웃었을까요? 사위들은 정작 자신은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떠나라고 하는 롯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다른 이상한 그리스도인, 롯. 오늘 우리가 롯처럼 말과 행동이 다른 그리스도인은 아닐까요? 천사들이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음성을 천사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지체했습니다. 롯은 누구 앞에서 지체했습니까? 천사들 앞에서 밤이 새도록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나가라고, 빨리 도망가라고 연거푸 재촉하고 있는 천사들 앞에서 지체했습니다. 천사들이 지금 앞에서 롯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꾸물대고 있는 것입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버지처럼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믿음을 배웠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듣고 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롯은 지체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천사들이 말을 할 때 롯의 집에는 아내와 두 딸이 함께 있었습니다. 12절에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고 했습니다. 소돔 성이 멸망한다는 말을 같은 자리에서 모두가 함께 들었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롯의 아내도 롯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두 딸도 “아빠, 빨리 나가자.”라며 롯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롯도 아내와 딸들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롯은 사위들에게 말한 이후 가족들에게 동이 터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롯은 그 밤에 아무 것도 한 흔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소돔에는 가축들과 그것을 관리하는 종들도 많았습니다. 롯은 그 밤에 종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소돔에서 나가자고 했을까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자신의 많은 가축 떼를 끌고 나갈 수 없어서 고민했을까요? 모릅니다. 기도했을까요? 기도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냥 롯은 아무것도 안하고 밤이 새도록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숨을 쉬며 한탄하고 후회하고 탄식하며 그냥 밤이 새도록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소돔의 쾌락이 그렇게 좋았을까요? 롯의 아내도 지체했습니다. 소돔에는 음란한 친구들 밖에 없었을 텐데 왜 그렇게 소돔에 연연해했을까요? 죄악이 그렇게 좋았을까요? 두 딸은 왜 지체했을까요? 약혼자들이 있어서 지체했을까요? 음란하고 불경건한 약혼자들이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요?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정말 이상한 교회입니다. 정말 이상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정말 기이하고 놀랍고 아이러니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롯은 아주 빨리 서둘러야 할 때 정말 꾸물거렸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어정거렸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때 뒤로 갔습니다. 화끈해야 할 때 미지근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이때 롯이 지체했다고 썼습니다. 왜냐하면 롯과 같이 지체하는 크리스천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이 오늘 이 세상에도 똑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죄에는 빠릅니다. 먹고 즐기는 일에는 빠릅니다. 그런 일에는 아주 열정적입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는 어디든 갑니다. 사업에는 참으로 빠릅니다. 돈에는 ktx처럼 빠릅니다. 출세에는 어떤 수고와 땀도 아끼지 않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지체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에는 정말 화끈합니다. 그런데 은혜에는 지체합니다. 은혜에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은혜에는 수고하지 않습니다. 은혜에는 어깨가 처집니다. 은혜에는 뒷짐입니다. 은혜에는 열정이 없습니다. 은혜에는 너무 소극적입니다. 여러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영혼의 문제가 아무것도 아닐까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십시오. 여러분들의 영혼은 지금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겁주고 있습니까? 제가 종교 사기꾼인가요? 예수님이 사기꾼인가요? 하나님이 가짜 신인가요? 성경이 거짓말인가요? 만약 예수님이 사기꾼이라면 도망가십시오. 성경이 거짓말이라는 버리십시오. 지옥이 없다면 교회에 오지 마십시오. 하지만 예수님이 진리시라고 믿는다면 은혜받는 일에 지체하지 마십시오. 지옥이 있다면 천국을 취하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십시오. 우리의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는 꾸물댑니다. 10년 20년 동안 앞으로 조금도 나오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유일한 진리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교리를 행하는 것을 다음으로 연기합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천국을 사모하거나 천국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지옥을 향해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귀가 싫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가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이 말세라고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졸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롯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롯처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롯이 되지 마십시오. 롯의 부인이 되지 마십시오. 롯의 딸들이 되지 마십시오. 롯의 사위가 되지 마십시오. 지체하지 마십시오. 서두르십시오. 천사는 롯에게 반복해서 빨리 도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빨리 도망치십시오. 교회는 세상에서 도망치라고 외치는 곳입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목사는 여러분들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죄악에서 도망치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도망치십시오. 죄악에서 지체하지 마십시오.
3. 롯의 끝
세 번째로 롯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은 롯이 소돔에서 나온 후 어떻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가 굴에서 살았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다시 삼촌 아브라함을 만났는지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그냥 롯의 말련에 대해서는 씁쓸한 침묵만이 흐를 뿐입니다. “거부였던 롯이, 화려한 소돔 생활을 했던 롯이 굴에서 살았다.” 정말 씁쓸한 끝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롯의 끝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끝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창25:7-8)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창25:11) 정말 복된 끝입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이 정말 대조적인 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 끝에 있었던 복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롯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이삭의 끝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창27:28-29) 야곱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창49:33)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축복하고 끝을 맞이했고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고 그 이후에 죽었으며 야곱 또한 자신의 12 아들을 축복하고 끝을 맞이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여러분도 인생을 다 산 후에 여러분의 자손을 축복한 후 천국으로 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50:26) 창세기가 요셉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시작의 책이 왜 죽음으로 마치고 있을까요? 그것은 요셉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시체에 향재료를 넣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죽음은 향기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죽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값집니까? 롯은 그의 후손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오로지 모압과 암몬 후손입니다.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믿음의 사람들을 대적하는 마귀의 앞잡이들만 남겨놓았습니다. 이것이 지체한 자의 말로입니다. 여러분! 죄에서 지체하지 마십시오. 후손에게 복을 남기는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즘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에 있습니다. 주인공인 유아인은 “'지옥'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지옥' 사자로 일컬어지는 알 수 없는 괴존재, 괴물이 나타나고 천사의 고지를 통해서 사람들이 고지 받은 날 지옥에 간다. 그것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중계 되는 이야기는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이다. 웹툰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폭력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해보면 괴물은 괴물 같은 인간이고 천사는 천사인 척 하는 인간과 같다. 그렇게 조금만 바꿔보면,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습니다. “집단의 광기, 혐오, 폭력 등은 현실에서도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상당히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실이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우리에게 속한 사람을 지옥 같은 현실에서 이끌어내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돔 성은 정말 이상한 사회였습니다. 그 속에 사는 롯은 이상한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이 세상이 소돔 성처럼 이상한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상한 교회가 되면 안 됩니다.
롯은 소돔 성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거부였습니다. 롯은 소돔 성에서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그들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롯은 소돔 성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의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는 사람 중에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롯이 부리는 그 많은 종들 중에서 주인이 섬기는 하나님을 단 한 명도 섬기지 않았습니다. 롯은 소돔 성에서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소돔 성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냥 혼자 구원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2)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십시오. 그래서 소돔 성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을 이끌어 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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