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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의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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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18:23-33
주일오전예배 | 2021-10-10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이어령씨는 한 신문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고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영역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성, 그 이상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술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예술은 느낌, 즉 감성입니다. 예술은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는 느낌의 단계를 넘어 영성의 단계입니다. 이성과 감성을 뛰어 넘는 영성의 세계가 종교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해답을 구하지 않고 그냥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시인이라고 부른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습니다. “해답을 구하며 그냥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믿으면 답이 보입니다. 믿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어령씨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성경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믿으십시오. 성경은 이성의 영역도 감성의 영역도 아닌 영성의 영역입니다. 신앙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이 중요하지만 신앙은 이성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느낌이 중요하지만 신앙은 느낌 보다는 믿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두 천사 그리고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수풀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성경에 여기 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가는 중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나의 친구라고 하셨고 친구에게 말하듯 아브라함과 소돔의 장래의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은 계속 걸었지만 하나님은 상수리나무 수풀 어느 지점에서 멈추어 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도고(빌도, 알릴 고, 딤전2:1)를 시작했습니다. 도고는 중보기도입니다. 그런데 중보자는 예수님(딤전2:5) 외에는 없기 때문에 중보기도라는 말 대신에 도고라는 말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도고의 기도는 아주 특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함께 산책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한 기도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오직 여기 밖에 없는 유일한 기도입니다. 왜 성령님은 이 사건을 모세에게 기록하게 하셔서 오늘 우리가 이것을 읽게 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만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날마다 산책하듯 걷고 계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아주 멀리 계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친구보다, 아내보다 더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친밀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아내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첫 번째로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주님! 사랑합니다.”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여러 번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보내시고 아브라함 바로 앞에 서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뒤에 계시지 마십시오. “이 정도 믿으면 됐지!”라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뒤에 계시다가 영원한 지옥에 빠질까 두려워하십시오.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 <23-24>
  •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아브라함의 기도의 주된 관심사는 의인이었습니다. 23절에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24절에 끝에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23절에서 28절까지 의인이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오는데 그 중에 아브라함이 여섯 번 사용합니다. 뒤에 나오는 45, 40, 30, 20, 10명도 모두 의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도하면서 의인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의인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의인을 찾는 기도입니다. 29절에서 32절까지 의인을 찾으시면이란 말을 네 번 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살리기 위해 의인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를 위해 의인을 찾고 의인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들을 위하여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포괄성입니다. 

저희 아이들이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반 아이들이 저희 아이들을 괴롭혔습니다. 아이가 학교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학교를 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속이 상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억지로 들여보냈더니 어느 정도 들어가더니 다시 나와요. 나오는 아이를 다시 들여보내고 교문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학교를 저에게 주십시오.”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저는 아이 때문에 그때부터 학교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네 아파트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화요일에는 파크밸리, 수요일에는 9단지, 목요일에는 10단지, 금요일에는 리젠시빌을 위해서 새벽마다 아내와 함께 합심 기도했습니다. 또 그리고 월요일에는 우리교회가 선 이곳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쌍용동과 불당동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땅을 덮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이 물러가기를 기도합니다. 봉서산이 성산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분이 여러 가지 중병을 앓았습니다. 몸이 아주 쇠약해졌습니다. 그래서 공기 좋은 곳을 찾아서 이사를 하려고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는데 마땅한 곳이 없더래요. 그러다가 이 근처 아파트로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니까 마음이 편하더래요. 그분을 아시는 분이 뭐라고 하신 줄 아세요. “목사님이 기도해서 그래요.” 여러분!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천안 땅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이 땅에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의인들을 위하여 소돔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 같은 조카 롯 때문에 소돔을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학교와 우리 사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을 위하여 여러분의 남편이 다니는 직장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관심사도 의인이었습니다. 26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소돔 성에 의인 오십 명이 있다면 그 의인들을 위하여 소돔 성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모두 용서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45명을 찾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40, 30, 20, 10명을 찾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의인만 있다면 온 지역을 용서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용서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사인데 이 단어는 떠받치다, (고개를) 들어 올리다, 용서하다, 용납하다, 받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의인 때문에 내 앞에서 죄인이 얼굴을 들게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의인 때문에 내가 죄인을 용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의인 때문에 악인에게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의인으로 인해 악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의인은 세상의 영적인 대표입니다. 29절에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31절에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2절에도 십 명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말미암아라는 말이 위하여라는 의미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소돔뿐 아니라 소돔을 중심으로 한 모든 지역을 멸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28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절에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2절에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의인 때문에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는 것은 학교나 기업이나 물질이 아니라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떠받치고 있는 영적 기둥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통로가 되십시오. 세상에는 믿음의 대표, 영적인 대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영적 대표를 위하여 세상에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6절에 의인을 찾으면이라고 했습니다.  

  •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 <22: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의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때문에 복을 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자들에게도 복이 내려졌고 멸망당했어야 할 자들에게 심판이 피해갔습니다. 의인 때문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의인 때문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있습니다. 의인 때문에 세상이 아직 멸망되지 않는 것입니다. 라반은 조카 야곱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이 자기와 함께 계속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 <30: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 <30: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야곱 때문에 라반의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야곱은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밟고 다니는 땅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밟고 다니는 땅에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복을 주신 이유는 의인 야곱 때문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라반의 집에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이 다니는 직장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직장이 잘 되도록 하나님 앞에 바로 서십시오. 저주를 몰고 다니는 악인이 아니라 복을 끌어당기는 의인이 되십시오. 요셉 때문에 요셉의 직장에도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고 요셉의 범사를 형통하게 하시는 것을 목겼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의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위탁했습니다. 그때부터 요셉을 위하여 하나님이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물에 하나님의 복이 미쳤습니다.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보디발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위하여 세상에 복을 내리십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때문에 죄수의 몸이 되어 아드라뭇데노라는 배를 타고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일어나 배가 바람에 쫓겨 갔습니다. 선객들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배에 무역하는 사람들이 탔습니다. 짐은 무역상들에게는 사업밑천입니다. 짐을 버린다는 것은 사업의 부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무역상들이 짐을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배의 기구들까지 바다에 던졌습니다. 배의 기구는 항해하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선원들이 항해를 포기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날 동안 해도 달도 별도 전혀 뜨지 않았습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배가 계속 바람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구원의 여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인 때문에 배가 파선하지 않았습니다.  

  • <27:23-24>
  •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은 반드시 로마로 가야하고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 때문에 바울이 풍랑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위하여 배가 파선하지 않게 보호하신다는 말입니다. 배에 탄 사람은 바울을 포함해 276명입니다. 의인 한 사람 때문에 275명까지 죽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의인 때문에 배가 파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 때문에 사람들에게 죽음이 피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밤 중에 원수가 와서 그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 두 씨는 같이 자랐습니다. 밭에 가라지가 보이자 종들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버리겠다고 하지만 주인은 그냥 두라고 합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가 좋아서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곡식을 위하여 가라지를 그냥 두는 것입니다. 

  • <13:29-30>
  •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13:29) 곡식 때문에 가라지의 심판이 연기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자는 사탄입니다. 세상에는 천국의 아들들과 지옥의 아들들이 섞여 삽니다. 그런데 천국의 아들들 때문에 지옥의 아들들이 은혜를 입습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13:30)고 했습니다. 밭의 주인은 가라지 때문이 아니라 곡식 때문에 밭에 계속 양분을 제공합니다. 이 양분은 곡식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라지가 함께 먹고 삽니다. 곡식 때문에 가라지가 은혜를 입었습니다. 의인 때문에 악인에 대한 심판이 잠시 연기됐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아니라 의인 때문에 세상에 계속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은혜를 악인도 먹고 삽니다. 오늘도 태양이 떠 세상을 비추는 것은 의인 때문입니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그러면 므두셀라는 언제 죽었을까요? 에녹은 65세에 무드셀라를 낳습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습니다.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600세 되었을 해에 홍수가 났습니다. 187 + 182 + 600 = 969입니다. 즉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습니다. 그러면 므두셀라는 물에 빠져죽었을까요? 아니면 홍수가 나기 직전에 죽었을까요? 홍수 나기 직전에 죽었습니다. 만약 그가 홍수로 물에 빠져 죽었다면 성경이 그의 나이를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홍수 직전에 죽었다는 증거는 그의 이름에도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에녹이 하나님의 계시로 지은 것 같습니다. 므두셀라의 죽음이 홍수 심판의 싸인인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기 직전에는 까지는 세상이 멸망하지 않습니다. 므두셀라가 죽어야 세상이 끝나는 것입니다. 므두셀라는 세상을 지탱하는 마지막 의인이었습니다. 그가 죽자마자 하늘의 창이 열리고 물이 쏟아졌습니다. 므두셀라 때문에 세상의 심판이 계속 연기된 것입니다. 의인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지탱하시는 의인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지탱하시는 의인이 되십시오. 

여러분! 교회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의인을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은혜를 입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복을 받고 그 사람 때문에 이 세상이 아직 멸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 은혜를 모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다른 것은 다해도 교회는 건드리지 마십시오. 교회가 박해를 받고 의인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은 세상에 끝났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다같이 죽자는 말입니다. 롯은 소돔에서 날마다 마음이 상했습니다. 

  • <벧후2:7-8>
  •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은 소돔에서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마귀는 세상이 끝으로 갈수록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힙니다. 마귀의 도구가 되지 마십시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가는 중에 요나로 인하여 큰 풍랑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됐습니다. 선원들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죽게 됐습니다. 요나 때문에 배에 피해가 갔습니다. 요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고라 때문에 250명의 이스라엘의 지휘관과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고라 같은 저주의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1923, 아돌프 히틀러가 1표 차로 나치당을 장악하고 1934년에 독일 총통이 됩니다.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포화 속으로 집어넣어 5000만 명이 죽게 했습니다. 악인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이 되십시오.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오늘 세상에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의인을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라고 불렀습니다.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히브리어 성경에는 세상이라는 말 앞에 모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라는 호칭은 성경에서 오직 여기에만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히브리 족속만의 신 정도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통치자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면서 심판자이십니다. 어느 한 지역에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관은 지역적인 신관입니다. BC 9세기 중엽에 아람 왕 벤하닷(2)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에 벤하닷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려고 준비할 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이라고 했습니다. 

<왕상20:23>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지의 신이기 때문에 산에서 싸우면 지지만 평지에서 싸우면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산지에서만 활동하는 산지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도 줄곧 산에서 예배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이긴 곳도 산입니다.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성도 산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산에서만 활동하는 산지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산이 아니라 평지에서 싸우면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신이 특정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 전쟁으로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왕상20: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우리 조상들은 방에는 방신, 다락에는 다락신, 부엌에는 부엌신, 부뚜막에는 부뚜막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붕을 지키는 지붕신, 문을 지키는 문신, 우물신, 나무신, 산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신들에게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도 신들의 영역이 있습니다. 제우스는 하늘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포세이돈은 바다와 물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땅은 가이아라는 여신이 관장합니다. 숲에 가면 숲의 신이 있고 강에 가면 강의 신이 있습니다. 지혜의 신(아테나), 사랑의 신(에로스), 전쟁의 신(아레스, 아테나), 미의 신(아프로디테), 음악이 신(오르페우스) 등등 각종 신들이 있습니다. 또 교차로, 문턱, 건널목 등을 지배하고 저승으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관입니다. 

고대에만 사람들이 지역적인 신관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스티브 호킹이 2018년에 별세했습니다. 호킹은 살아 있을 때 신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을 했습니다.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신은 없다. 누구도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고, 누구도 우리의 운명을 지시하지 않는다. 천국도, 사후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죽으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신은 없다. 하나가 전 세계를 지시할 수 없다.” 이 말은 신은 인정하지만 온 세상을 다스리는 신은 없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지역적인 신은 인정하고 있는 듯한 말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관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방에서만 활동하는 방신, 산에 가면 있는 산신령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혹시 예배당 안에서만 활동하시는 하나님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면서 심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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