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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순종은 땅을 축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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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이사야 1:19-20
주일오전예배 | 2021-08-2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컬린 하이타워는 자신의 실수를 비웃으면 삶이 길어질 것이요, 남의 실수를 비웃으면 삶이 단축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약점, 실수를 비웃지 마십시오. 그것은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비웃으려면 자기 자신의 나약함, 악함을 비웃으십시오. “저 사람 왜 저래?”라고 말하지 마시고 내가 왜 이럴까!”라고 고백하십시오. 자기 자신을 정죄하되 이왕이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죄하십시오. 그것이 나를 살리는 방법입니다. 회개가 사는 길입니다. 여러분! 회개합시다. 주님께로 가세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은 망해가면서 왜 망하는지 몰랐습니다.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았습니다. 우리 시대가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사회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너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무너져 가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가 나라를 무너뜨립니다. 우리 모두 회개합시다. 

감리교 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인 이덕주 목사님의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1908년에 미국 선교본부에 한국 교회의 부흥사경회에 상황을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며칠씩 걸어서 사경회에 참석하였는데 웬만한 어려움은 거뜬히 견뎌내고 있으며 250명에서 많을 때는 1100명이 모여서 열흘에서 열나흘 동안 성경을 배웁니다. 이 같은 대규모 사경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소규모 사경회를 개최하였는데 북부 지역의 어느 선교지에서는 일 년 동안 이 같은 소규모 사경회를 192회 실시하여 연인원 일만 여 명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하면 온 식구가 이불과 솥을 싸들고 갑니다. 자녀를 하나는 등에 업고 하나는 옆에 끼고 하나는 앞에 걷게 합니다. 교회 주변에 천막을 치고 밥을 거기서 해먹어 가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부흥회가 없는 오후 시간에는 마을에 흩어져서 저녁 부흥회에 참석하도록 전도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과 6.25 전쟁과 전쟁 이후 가난과 혼란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말씀과 기도에 있습니다. 이것이 1970-80년대 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이 사악한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말씀이 아니면 어떤 것도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기독교의 기독은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역한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예수교라고도 합니다. 예수교는 우리말 표현이고 기독교는 한자식 표현입니다.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기독교는 말씀교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이 아니라 성자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말씀이십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말씀교입니다. 기독교의 기는 터(기초)기 자입니다. 말씀에 기초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기독교 신앙은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십시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에 기초하여 살라고 요청합니다.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즐겨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아바입니다. 아바는 호흡하다, 바라다, 소원하다, 열망하다, 더 좋아하다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즐겨라는 말은 너희가 말씀으로 호흡하라, 너희가 말씀을 소원하라, 너희가 말씀을 열망하라는 의미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에 대한 강한 소원을 가지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대한 소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말씀에 대한 열망은 순종에 대한 열망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 어떤 소원 보다 말씀과 말씀 순종에 대한 소원을 가지십시오. 이것은 인생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소원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가 기록된 열왕기에 이방 나라 군대장관과 그 가정에서 있었던 아주 소소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아람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군대장관이 있었습니다. 아람은 갈릴리 바다 동북쪽에 있는 이방 나라입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큰 용사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나병이 있었습니다. 옥에 티였습니다. 인재에게 이런 큰 병이 있었으니 얼마나 애석했겠습니까? 어느 날 한 여종이 나아만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주인님의 나병을 충분히 고쳐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종은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소녀입니다. 소녀의 말을 나아만의 부인이 나아만에게 합니다. 부인이 의사가 아닌 선지자가 나병을 고친다는 종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나아만은 소녀의 말을 다시 아람 왕에게 합니다. 나아만이 여종의 말을 들은 것도 놀랍습니다. 아람 왕은 나아만을 위해 이스라엘 왕에게 추천의 편지를 써줍니다. 또 왕은 나아만에게 선지자에게 줄 선물로 은 십 달란트, 금 육천 개, 의복 열 벌도 줍니다. 왕이 종의 말을 믿었다는 것도 놀랐습니다. 나아만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지자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나와 보지도 않고 사람을 보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나을 것이라는 말만했습니다. 

<왕하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나와서 인사도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안수도 해줄 줄 알았는데 나오지도 않고 말뿐이었습니다. 엘리사의 행동에 기가 막힌 나아만은 기분이 나빠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약 저 선지자가 당신께 엄청난 일을 하라고 했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물며 그가 당신께 몸을 씻어 깨끗하게 돼라고 말하는데 못할 까닭이 있습니까?” 종들의 믿음이 놀랍습니다. 여러분!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불편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순종하기 싫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남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해가 안 되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진짜 순종입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나아만의 종들은 선지자의 행동과 말을 전혀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아만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나아만은 종들의 말에 마음을 고쳐먹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급니다.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그런데 엘리사는 씻으라고 했는데 나아만은 몸을 물에 잠급니다. 씻었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라하츠입니다. ‘씻다, 목욕하다는 뜻입니다. 잠그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타발입니다. 타발은 파다, 파고 들어가다, 몸을 물에 담그다, 가라앉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짐승의 피를 찍어서 성전 제단에 뿌려 속죄할 때 이 단어를 씁니다(4:6, 4:17). 제사장이 정결케 하기 위해 짐승의 피에 자신의 손가락을 잠갔습니다. 나아만은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행하듯 몸이 요단강에 완전히 잠기도록 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아만은 선지자의 말씀에 마치 성례를 행하듯 몸과 마음을 다해 순종했습니다. 나아만은 어디까지 몸을 잠기게 했을까요? 성경 동화를 보면 목까지 잠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아만이 머리까지 물 속에 집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을 뿐입니다. 전후 상황을 볼 때 그냥 가볍게 씻는 정도를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마치 정결예식을 행하듯 자신의 몸을 발끝에서 머리까지 요단강에 완전히 잠갔습니다. 나아만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태도가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책에 성경 기자는 왜 이방 나라 군대장관 스토리를 기록했을까요? 예수님은 이 스토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4:27) 이스라엘 땅에 말씀은 있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방인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나아만, 부인, 아람 왕, 나아만의 종들이 한결같이 같은 마음으로 순종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선지자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것이 놀랍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이덕주 교수님의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중에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907년 평양에서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이때 인천에서 사역하던 존스 선교사가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한국 교회를 소개하면서 쓴 내용입니다. 

한국 교인은 성경을 외울 뿐 아니라 그대로 실천합니다. 어느 날 멀리 북쪽에서 한 평범한 교인이 우리 선교부를 찾아왔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그에게 방문한 목적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성경 말씀 중 몇 구절을 외우는데 그것을 보여 드리러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1백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농부였습니다. 그는 목사님에게 외운 성경을 들려주려고 그 먼 거리를 나흘 동안 걸어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 앞에서 마태복음의 산상설교 부분을 한 절도 틀리지 않고 외웠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성경을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얼굴빛이 밝아지면서 즉각 대답하기를, “제가 성경공부 하는 법이 바로 그렇습니다. 처음에 성경을 외우려고 애를 썼으나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고안한 것입니다. 한 절을 외운 다음 이웃을 찾아가 그 말씀대로 그에게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외워지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114년 전,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농부가 성경을 외우는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그것은 말씀을 실천하면서 외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성경공부 방식입니다. 요즘 교회마다, 선교회마다 나름대로의 성경공부 과정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성경을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배운 다음에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그냥 배운 것으로만 만족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에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병자들이 고침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땅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사회를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순종하는 것은 땅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은 피조물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죄는 사회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말씀에 즐겨 순종할 때 너희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복은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는 것입니다.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땅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땅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27:28)고 했습니다. 땅이 기름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복 주시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복을 주시며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땅과 하나님의 복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종할 때 우리는 땅에서 복을 받습니다.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이라는 말은 좋은, 선한이라는 뜻입니다. 순종하면 땅이 선한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낸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불순종하면 땅이 악한 것, 좋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을 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순종은 땅을 축복하는 것이고 불순종은 땅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 <3:17-18>
  •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아담이 죄를 졌을 때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3:17)라고 했습니다. 땅이 아담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채소를 내게 됐습니다. 이 말은 죄를 짓기 전에는 땅이 가시덤불, 엉겅퀴를 내지 않고 채소만 내는 선한 상태였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이 말은 이제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악한 상태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순종은 땅을 선하게 하는 것이고 불순종은 땅을 악하게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땅이 아름다운 소산을 내게 하지만 불순종은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합니다. 죄는 땅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땅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땅을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런데 인간은 불순종으로 땅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였을 때도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땅도 가인을 저주합니다.  

  • <4;11-12>
  •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땅이 입을 벌려 아우의 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땅이 더러워졌다,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로 인해 땅도 가인을 저주했습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4:11)라고 했습니다. 사람과 땅이 저주를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저주받은 땅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요? 살인의 피가 뿌려진 땅에 아름다운 소산이 맺힐까요? 이제 가인이 밭을 경작해도 땅은 그 효력을 가인에게 주지 않을 것입니다. 땅이 가인의 패역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이제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며 방황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땅이 가인을 살지 못하도록 쫓아낸 것입니다. 죄는 땅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죄는 땅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더럽혔습니다. 

  • <2: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이 만들었으며  
  • <24:5-6>
  • 5.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 6.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며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내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땅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셨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백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땅, 거룩한 땅을 죄로 더럽히고 가증하게 만들었습니다(2:7). 저주가 그 땅을 삼켰고 그 땅을 더럽힌 자들은 불에 타버렸습니다(24:5-6). 120절에는 칼에 삼켜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칼에 삼켜질 것이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이 칼이 먹을 것이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칼의 밥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칼밥이라는 말은 멸망의 밥이라는 의미입니다. 불순종은 멸망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멸망의 밥이 되지 마십시오. 결국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견디지 못하고 토해낸 것입니다. 

  • <18:25-28>
  •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 26.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도 행하지 말라
  • 27.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 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거주하기 이전의 원주민들을 토해냈습니다.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18:25) 그 이유는 그들이 가나안 땅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그들을 견디지 못하고 토해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처럼 가나안 땅을 더럽혔고 가나안 땅은 그들도 토해냈습니다. “전 거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18:28)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죄는 나라를 더럽히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지난 주간 말씀을 보면서 제가 등대교회를 더럽히고 있는 것이 아닌지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가정을 더럽히지 않았는지 돌아봤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제 삶을 더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내 삶을 죄로 더럽히지 맙시다. 내 삶의 터전이 나를 견디지 못하고 나를 토해내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엎드립시다. 

순종은 내가 선 땅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땅을 축복하는 것은 땅과 연관된 모든 것을 다 축복하는 것입니다. 복이라는 것은 혼자 떨어져 있지 않고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 <28:1~6>
  •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순종하면 어떻게 복을 받을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순종했을 때 성읍(도시, 내가 사는 곳), (일하는 터전), 네 몸의 자녀, 토지의 소산(농산물), 짐승의 새끼, , 양의 새끼, 광주리, () 반죽 그릇이 복을 받습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 어디를 가나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면 순종하는 사람과 연관된 모든 것들이 다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네 몸의 자녀와 짐승의 새끼, 양의 새끼라고 했습니다. 자녀와 새끼가 복을 받는다는 말은 복이 내 대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로 전해진다는 말입니다. 순종하면 복이 계속됩니다. 순종하면 끊어지지 않는 복을 받습니다. 내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내가 사는 이 세상과 사회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내 가정, 자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내 산업, 내가 키우는 짐승, 내가 서 있는 땅, 심지어 집에서 쓰는 그릇까지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쓰는 그릇이 금 그릇이든 스테인리스이든 플라스틱이든 저주가 아니라 복이 담겨 있는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먹는 밥그릇을 저주하지 맙시다. 내 밥상과 내 잠자리를 더럽히지 맙시다. 내 삶의 터전을 거룩하게 합시다. 순종은 내가 사는 있는 땅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므로 이 세상을 축복합시다. 그리고 순종으로 내 교회, 내 가정, 내 자녀들을 축복합시다. 순종할 때 땅이 아름다운 소산을 낸다고 했습니다. 순종으로 우리의 인생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합시다. 여러분! 내가 거하는 땅이 나를 축복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엎드립시다.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바보의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사에서 어리석음의 지분은 늘 악의 지분보다 크다.”라고 했습니다. 이 책에 인간들의 역사적인 바보짓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에, 우리 사는 세상에 바보짓 하지 맙시다. 인간의 중대한 바보짓 중에 하나는 인간의 생활터전인 환경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1880년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1도 이상 올랐습니다. 1도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1도 차이가 지구에 엄청난 환경 재앙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을 급격히 상승시켜 살인적인 폭염, 폭우, 기상이변이 잦아졌습니다. 2021년 미국에 유례없는 폭설로 일시적 것이었지만 문명이 단절됐습니다. 인도의 히말라야에서는 200명이 빙하 홍수로 몰살되었습니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는 54일간 계속되는 역대급 최장기간 장마가 있었습니다. 하천이 범람해 마을이 고립되고 도로가 끊겼으며 전국적인 물 폭탄으로 42명이 죽고 수천 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세계 기후가 요동치는 이유는 지구의 온난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온실가스는 땅에서 우주로 방출되는 열을 막아줍니다. 이 열이 바닷물을 따뜻하게 해 물의 부피가 커져 바닷물의 질량이 늘어나 해수면의 높이가 빙하가 녹은 양보다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지면 더 많은 수증기가 생기고 이것이 더 강력한 태풍을 일으킵니다. 17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현재 국토의 40%가 물에 잠겼습니다. 우리나라 제주도는 1970년보다 해수면이 22cm 높아졌습니다. 2050년에는 48.9cm, 2100년에는 105cm가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2030년 대한민국의 5%가 잠겨 대한민국 인구의 반 이상이 사는 서울, 인천, 경기에 집중적인 피해가 닥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과학자들은 온실효과로 뜨거워진 지구가 곧 임계점을 지나 바다를 끓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임계점은 1.5도입니다. 인류의 힘으로 임계점을 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시간은 10년입니다. 2050년이 되면 지구는 딴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과 동물 공통의 전염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폭염을 일상처럼 경험하게 될 것이며 4-5년에 한번씩 유행하는 팬데믹과 싸워야 할 것 것입니다. 지구가 인간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 인간을 토해내자.’라고 마음먹은 것이 아닐까요? 과학자들은 지구가 몸살을 앓는 이유를 온난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는 인간의 죄가 지구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 고통의 영적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바보짓 하지 맙시다. 자연을 잘 가꿉시다.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죄 짓지 마세요. 죄가 지구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고 건강하도록 축복합시다. 순종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1: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은 철학자나 학자나 정치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세상의 권위 있는 철학자의 철학을 강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정치가의 말을 강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강론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 성공학을 강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 영감된 성경 말씀을 강론하는 것입니다. 서점에 가면 책대에 성경이 다른 도서들과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세상의 전시용 상품은 아닙니다. 도서관에 가면 성경이 다른 책들과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세상 교양서적이나 고서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변치 않는 확고 불변의 진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고치고 새롭게 하고 살린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 앞에 겸손히 두려움으로 섭시다. 17세기 퀘이커교의 창시자인 조지 폭스(George Fox)는 설교할 때마다 주의 말씀 안에 있는 진리의 힘에 감복되어 덜덜 떨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설교 단 앞에 설 때면 두 무릎이 덜덜 떨린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움으로 순종합시다. 순종이 축복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고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순종으로 우리 가정, 우리 자녀, 우리 교회, 우리 사회를 축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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