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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 ok!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옆에 있는 분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으시죠? 믿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 내가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위스의 정치인 한스 퍼는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오류에 가하는 망치질이다. 그 반대로 '끝'이라고 여겨졌던 것은 새로운 일의 시작이다.”라고 했습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망치질입니다. 부활은 절망, 낙심에 대한 망치질입니다. 우리 삶에 고통, 절망, 괴로움, 슬픔이 올라오면 못 올라오도록 부활의 망치질을 합시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은혜가 이 나라, 이 민족과 등대교회와 우리교회 교우들의 가정과 생활에 충만하게 넘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저는 아기 냄새를 아주 좋아합니다. 아기 냄새가 너무 좋아서 아이들을 키울 때 배에다 코를 대고 킁킁대며 아기냄새를 맡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냄새는 아기가 자라면서 점점 희미해집니다. 저의 집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 냄새가 점점 사라져 가는데 얼마나 서운한지요. 저는 그 냄새가 다 없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맡으려고 아이 배에다 코를 대고 킁킁 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냄새를 맡고 싶다고 다른 집 아기 배에다 코를 대고 킁킁 거릴 수 없잖아요. 요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기 때에는 몸에서 좋은 냄새를 풍기다가 성인이 되면 안 좋은 냄새를 풍깁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쓰게 됐잖아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서 깜짝 놀란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내 입 냄새가 이렇게 심하게 났나!’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입 냄새가 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심하게 나는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끼니까 자기 입 냄새가 아주 심하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민망한 말씀이지만 입 냄새는 썩는 냄새입니다. 사람의 몸에서는 썩는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어떤 여성 칼럼니스트가 한 조간신문에 자기 글을 연재하면서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 방에 가면 향수 냄새가 나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뿌리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향수 냄새가 할머니의 나이가 많아지실수록 짙어지더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냄새가 많이 나니까 향수를 많이 뿌리신 거예요. 노인에게서 나는 퀴퀴한 냄새는 모공에서 노넨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썩어서 나는 냄새입니다. 이 노넨알데하이드는 젊을 땐 거의 생기지 않다가 40대 이후부터 서서히 만들어지고, 노년기가 되면 생성량이 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저는 50이 넘었습니다. 이 냄새가 꽤 나는 나이입니다. 아저씨 냄새라고 하나요. 서글픈 말씀이지만 이 냄새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죽음의 냄새가 아닐까요? 이 세상에는 아기 냄새처럼 좋은 냄새도 있지만 슬픈 죽음의 냄새도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반드시 맡아야 할 냄새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냄새입니다. 이 냄새는 예수님에게서만 납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향기가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는 생명의 냄새입니다.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세상에서 부활의 향기를 맡으며 소망 중에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여인들(막16:1,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이 향품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향품은 헬라어로 아로마입니다. 아로마(ἄρωμα)는 ‘향품, 향료’라는 뜻입니다. 아로마는 좋은 향기가 나는 기름과 같은 액체로 시체에 발라 썩은 냄새를 제거하는데 많이 사용됐습니다. 향유는 헬라어로 뮈론(μύρον)입니다. 뮈론은 ‘고약, 향유’라는 뜻입니다. 뮈론은 아라비아산 나무인 발사모덴드론 뮈르하에서 추출된 일종의 방향성 수지입니다. 뮈론(향유)은 상처에 바르는 연고나 진정제로 사용되었고, 향으로 살라지기도 했으며(마2:11)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아로마와 방부제를 가지고 갔습니다. 여인들은 시체에서 나는 썩은 냄새를 제거하고 그 시체가 좀 더 늦게 썩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삼일 전에 몰약과 침향 100리트라로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1리트라는 327g입니다. 예수님이 장사지낼 때 들어간 향품이 32.7kg이나 되었습니다. 아주 많은 양입니다. 그것이 엊그제입니다. 그럼에도 여인들은 향품을 더 사 가지고 왔습니다. 비록 여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과 헌신은 그들이 가지고 온 향품 보다 더 향기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이 가지고 간 향품과 향유는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영광스럽게 변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몸에서는 인간의 몸에서 나는 어떤 좋지 않은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향품을 뿌릴 필요가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장차 이 세상의 향품이 필요 없는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는 천국의 향기가 나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몸이 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스러운 형태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몸은 썩지 않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몸에는 방부제나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어떤 향품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 몸에서는 육적인 냄새가 아니라 영적인 향기가 나고 있습니다. 그 냄새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는 부활의 향기가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에서도 향기가 나고 있습니다. 그 향기는 예수님을 장사지낼 때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몸에 넣었던 침향과 여인들이 새벽에 가져온 향품에서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향품을 모두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시지 않으시고 그것들을 무덤에 그대로 남겨놓으셨습니다. 그것들은 예수님이 떠난 무덤에 남아서 향기를 발하고 있습니다. 이 향기는 영적인 의미에서 생명의 향기, 천국의 향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무덤에 죽음의 냄새가 아니라 부활의 향기를 남겨놓고 떠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예수님의 무덤보다 더 아름다운 무덤이 있을까요? 주님의 무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웅대하지 않습니다. 금은보석으로 장식한 고대 왕들의 무덤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무덤에는 이 세상 어떤 무덤에도 없는 부활의 향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죽으실 때에 예수님께 매우 많은 향품이 드려졌습니다. 죽으시기 직전에는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몸에 부었습니다. 이 옥합은 장정이 1년 동안 일해서 받은 품삯을 하나도 쓰지 않아야 살 수 있는 아주 값비싼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요12:3)고 했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향유를 머리에 부었다(마26:7, 막14:3)고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옥합을 부었습니다. 머리에 부은 향유는 예수님의 몸으로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향기가 나고 있습니다. 이 향기는 온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요12:3). 여인이 예수님께 드린 향유가 예수님의 몸에서 나는 땀 냄새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몸에서 나는 모든 육적인 냄새를 다 덮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장사될 때에는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왔습니다. 침향은 침향나무에서 나오는 향기가 아주 짙은 수지입니다. 부활의 새벽에는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왜 이렇게 많은 향유가 예수님께 드려졌을까요? 그것은 영적 의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이 세상 죽음의 냄새를 씻어버리는 생명의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썩은 냄새를 풍깁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의 냄새를 풍깁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베다니의 집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모든 육적인 냄새를 씻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죄의 악취를 제거한 것입니다. 니고데모와 여인들의 향품은 예수님의 무덤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향기는 영적인 의미에서 죽음의 냄새를 제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는 생명의 향기 부활의 향기가 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남겨놓으신 부활의 향기를 어떻게 맡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말씀을 통해서 맡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게 바로 나다”라며 주신 것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말씀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향취를 말씀에서 맡을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의 향기가 바로 생명의 향기이고 부활의 향기입니다.
한자로 부활은 되돌아올 부(復)자에 소생할 활(活)자를 써서 ‘다시 살다’ 또는 ‘다시 태어나다’는 의미입니다. 국어사전에는 부활을 “쇠퇴한 것이나 없어진 것이 다시 성하게 일어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의 부활은 그 뜻이 그렇게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영어로는 부활이 resurrection입니다. re-는 다시, sub-는 아래에, rect-는 똑바른, 직각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부활이라는 말은 아래에(땅 아래에) 있다가 똑바로 다시 서다는 뜻입니다. 아주 성경적인 의미입니다. 부활이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입니다. 뜻은 ‘위로 오름, 다시 일어서기,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죽음에서 일어남’입니다. 아나스타시스는 동사형 아니스테미에서 온 말입니다. 아나(ἀνά)는 ‘위에, 위를 향하여, 한 가운데, ~의 복판에, 사이에’라는 뜻이고 히스테미(ἵστημι)는 ‘세우다, 서게 하다, 두다, 확실하게 하다, 고정하다, 확고한 마음을 가지다’라는 뜻입니다. 부활이란 문자적으로 한 가운데 굳게 선다는 의미입니다. 부활이란 마귀가 왕 노릇하는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죽음과 절망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과 슬픔의 세상에서 일어나 똑바로 서십시오. 이것이 부활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말씀입니다. 어떤 학자는 부활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통하여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인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으로 똑바로 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나는 부활이다’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나는 말씀이다’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향기를 말씀에서 맡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향기가 부활의 향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우리의 지팡이를 삼아 절망과 고통, 낙심과 슬픔의 세상 한 복판에서 보란 듯이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말씀을 의지하여 부활의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다윗은 말씀으로 부활을 경험한 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소성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슈브입니다. 슈브는 돌아가다, 돌이키다, 회복시키다, 회개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사람의 영혼을 회복시킵니다. 말씀이 죽은 영혼을 살립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우리 눈을 밝게 합니다. 절망적인 현실의 삶에서 부활을 경험케 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에 부활의 향기, 생명의 향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부활을 경험하세요. 말씀에서 부활의 향기를 맡으시고 땅 아래에 앉아 있지 마시고 땅 한 복판에 직각으로 서십시오.
“식사는 장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식사는 먹는 것이고 장사는 죽은 자를 초상 치르는 것입니다. 어떤 분 글에 보니까 사람은 사체를 먹는다는 거예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식물과 동물을 죽여서 사체를 먹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을 먹어도 먹으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먹는 것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장사를 치르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먹으면서 즐거워하잖아요. 장사를 지내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식사라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입니다. 살기 위해서 죽인다! 살기 위해서 장사를 치른다! 무엇인가의 죽음 때문에 우리가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죽이려고 하고 한 쪽에서는 죽지 않으려고 바둥바둥 합니다. 이런 세상에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놓고 자기 몸을 먹으라고 주는 존재가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살과 피를 사람들에게 영적인 식사로 제공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먹으라.”(마26:26)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피니 받아 마시라.”(마26:27-28)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6:55)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어디서 언제 주셨습니까? 2천 년 전에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습니까? 그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얻는 자는 부활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6:54) 말씀에 영생의 맛이 있습니다. 말씀에 생명의 향기가 있습니다. 말씀의 향기를 맡으세요. 이것이 바로 부활의 향기입니다.
이 세상은 절망의 냄새, 낙심의 냄새, 미움의 냄새, 분노의 냄새, 싸움의 냄새, 슬픔의 냄새, 고통의 냄새 등등 죽음의 냄새로 가득합니다. 죽음의 냄새로 가득한 세상에서 말씀 속에서 풍겨 나오는 부활의 냄새를 맡으시고 소망 가운데 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부활의 향기, 생명의 향기가 나는 곳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향기를 죽음의 냄새를 씻는 곳입니다. 세상에 살다가 마음에 죽음의 냄새가 묻으면 십자가로 닦아 버리십시오. 고통의 냄새를 말씀으로 닦아 버리십시오. 교회에 오시면 기도와 찬송으로 세상에서 묻은 죽음의 냄새를 닦아버리십시오. 그대로 갖고 계시지 마세요. 생명의 냄새만을 가지고 사십시오. 죽음의 냄새를 버리십시오. 죽음의 냄새를 끌어안고 있지 마십시오. 죽음의 냄새가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마귀는 우리의 영혼에 죽음의 절망, 낙심, 슬픔 같은 죽음의 냄새를 묻히려고 합니다. 죽음의 냄새로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생명의 냄새를 풍기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속에는 생명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생명의 향기가 나게 하십시오. 우리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게 하십시오. 우리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부활의 향기, 생명이 향기가 나야 합니다.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개미는 동료 개미의 죽음을 시각으로 감지하지 않고 냄새로 감지합니다. 죽은 후 며칠이 지나면 개미의 몸에서 올레산(oleic acid)이라는 성분이 나옵니다. 개미는 이 냄새를 맡고 죽은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죽어서 쓰러져 있어도 올레산이 나오기 전까지는 죽은 지 모르는 거예요. 올레산의 냄새가 나면 동료 개미들은 죽은 개미를 끌고 가서 개미 무덤에 묻습니다. 윌슨 교수는 종이에 올레산을 묻혀서 넣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개미들이 종이를 끌고 가서 개미 무덤에 묻었습니다. 또 살아 있는 개미의 몸에 올레산을 떨어뜨려봤습니다. 그랬더니 살아있는 개미도 끌고 가서 개미 무덤에 묻는 것이었습니다. 생매장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살아서 버둥거리는데도 죽음의 냄새가 나니까 끌고 가서 묻어버렸습니다. 올레산이 묻은 개미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치더랍니다. 죽음의 냄새가 싫은 거예요. 여러분! 죽음의 냄새를 싫어하세요. 절망의 냄새, 낙심의 냄새를 증오하세요. 고통, 슬픔의 냄새를 닦아 버리세요. 죽음의 냄새를 벗기 위해 몸부림치세요. 울부짖으세요. 내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면 가만히 계시지 마세요. 죽음의 냄새는 사탄의 냄새입니다. 죽음의 냄새는 예수님의 냄새가 아닙니다. 죽음의 냄새가 나면 사탄이 쾌재를 부릅니다. 우리가 죽음의 냄새에 싸여 있으면 사탄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성도에게서는 생명의 향기, 부활의 향기가 나야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부활의 향기가 나게 합시다.
바퀴벌레는 살기 좋은 곳을 발견하면 사랑의 묘약으로 불리는 페로몬을 분비해 동료들을 그곳으로 모은다고 합니다. 페로몬은 동물들이 같은 종끼리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분비하는 화학 물질입니다. 사람은 페로몬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바퀴가 죽으면 죽음의 냄새를 풍깁니다. 죽은 바퀴벌레 근처로는 단 한 마리의 바퀴벌레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죽은 바퀴벌레의 체액을 묻혀 놓은 곳에도 바퀴벌레가 전혀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퀴벌레가 죽으면 몸에서 어떤 죽음을 알리는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혐오스러운 바퀴벌레도 죽음의 냄새가 나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살기 좋은 곳이 생기면 좋은 향기를 분비하며 동료들을 부릅니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은 죽으면 시체에서 특수한 ‘죽음의 냄새’를 풍겨 살아있는 동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BBC 뉴스가 보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까? 부활의 향기가 아니라 죽음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데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내게서 부활의 향기. 생명의 향기가 나는지 돌아봅시다. 만약 죽음의 냄새가 난다면 말씀과 기도로 죽음의 냄새를 씻어버리세요. 찬송하고 기도하십시다. 죽음의 냄새를 벗기 위해 몸부림칩시다. 그래서 생명의 냄새를 회복합시다. 크리스천에게서는 생명의 향기가 나야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성도가 삽니다. 이 세상은 죽음의 냄새로 가득합니다. 사탄이 죽음의 냄새로 세상을 삼키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죽음의 냄새로 고통스러워합니다. 오늘은 부활의 날입니다. 부활의 향기로 이 세상의 죽음의 냄새를 씻어버립시다. 저와 여러분이 죽음의 냄새로 가득한 이 세상에 부활의 향기, 생명의 향기를 뿜어내어 죽음의 냄새를 물리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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