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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욥의 아내가 끝까지 참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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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욥기 2:7~10
금요철야 | 2021-03-05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욥의 아내가 끝까지 참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2:7~10)

 

  • 7.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마리, 소가 1천 마리(5백 겨리), 암나귀가 5백 마리였습니다. 종도 많았습니다. 욥은 거부였습니다. 그런데 욥의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모두 날아갔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폭삭 망했습니다. 이렇게 기막힌 일이 있을까요? 그런데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슬하에 둔 10남매도 하루아침에 모두 죽었습니다. 하나나 둘을 잃는 것도 힘든데 10남매를 모두 잃었습니다. 이렇게 재앙을 당하면 정신 차리기 힘들 것입니다. 울고 원망하고 한탄을 해도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욥의 아내 또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욥이 인내한 것처럼 욥의 아내도 인내했습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그 고통을 견뎠을까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두 사람은 정말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 재산과 10남매를 모두 잃었는데 어떻게 참았을까요? 정말 두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칭찬할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같으면 전 재산이 아니라 재산의 절반만 잃었어도 속이 상해 잠을 못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아내의 믿음과 인내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사탄이 욥의 몸을 쳤습니다. 욥의 온 몸에 종기가 생겼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종기라는 말을 개역성경은 악창이라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성경은 악성 종기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 주석은 나병이라고 했습니다. 욥의 전신에 아주 심한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욥이 얼마나 가렵고 아팠던지 재에 앉아 깨진 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었습니다. 정말 처참했습니다. 이를 본 욥의 아내가 참다못해 한 마디 합니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한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완곡하게 죽으라고 번역했지만 원어 성경은 돼져라는 의미입니다. 남편에게 돼져라고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4천 년 전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처럼 여기던 시대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 한 마디 쉽게 못하던 때입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돼지라고 했으니 욥의 아내의 감정이 얼마나 격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욥의 아내는 욥에게 아주 심한 욕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심각하게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욥의 아내를 세계 3대 악처 중의 하나라고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여기까지 참고 견딘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았으면 재산의 많은 부분을 잃었을 때 이미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욥의 아내가 욥과 함께 끝까지 인내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욥기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욥기><욥과 그의 아내의 책>이라고 바뀌지 않았을까요? 욥의 행적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욥의 아내의 행적까지 기록되지 않았을까요? 또 욥기에 욥의 아내 이름까지 나왔을 것입니다. 욥기 마지막에 욥이 다시 낳은 딸의 이름이 나옵니다. 딸의 이름은 나오는데 엄마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욥의 아내가 끝까지 참았더라면 욥의 아내의 이름까지 나왔을 것입니다. 욥의 아내가 끝까지 참았더라면 성경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욥의 아내는 끝까지 참지 못했습니다. 욥의 아내는 욥과 함께 하다가 욥과 하나님을 원망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다시는 욥기에 욥의 아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참았다면 욥기 마지막에 욥이 두 배로 복을 받을 때 함께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욥의 아내의 말들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욥의 아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여러분! 시험을 만나거든 끝까지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시험에는 끝이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해서 시험 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갑절의 복을 누리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는 사람들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저 끝에 있을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며 참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읍시다.  

두 번째로 욥의 아내는 왜 아픈 곳도 없었고 죽지도 않았을까요? 욥은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습니다. 욥의 자녀 10명이 모두 죽었습니다. 욥의 온 몸에는 지독한 종기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욥의 아내는 아프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욥에게 속한 모든 것들이 없어지거나 죽었는데 욥의 아내만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사탄이 욥의 아내는 건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아내만은 사탄이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욥의 아내만을 그대로 남겨두셨을 그랬을까요? 우연일까요? 성경에는 우연은 없습니다.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욥의 아내를 그대로 남겨두신 것은 고난 중에서 욥이 아내를 통해 위로받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만약 욥의 아내가 고난받는 욥을 위로해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욥의 몸에 난 종기를 닦고 치료해주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욥의 아내로 말미암아 욥이 더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남들이 고난당할 때 우리를 남겨두신 이유는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내가 고난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내가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재수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내가 힘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는 나에게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 우리 주변에 고난당하는 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싸매주고 위로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또 욥의 아내가 찬송하고 예배하며 기도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욥의 세 친구가 욥을 향해 맹열하게 비난할 때 욥의 아내가 욥을 위해 기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욥이 아내의 기도소리를 듣고 힘을 얻지 않았을까요? 세 친구가 비난하기 전에 이미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욥이 친구들의 비난을 들으며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요? 위로를 받아도 부족할 판에 친구들이 위로가 아닌 비난을 했습니다. 그것도 매우 가까운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위로가 아닌 숨은 죄를 고백하라고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비난 중에 욥의 아내가 욥을 위해 기도했더라면 그 기도소리에 오히려 소망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나를 믿어주는 아내로 인해 힘과 용기를 얻지 않았을까요? 그 기도소리에 절망했던 욥의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우리 주변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위로받도록 기도합시다. 진심으로 말과 행동으로 위로합시다. 욥의 아내가 고난 중에 아무렇지도 않는 이유는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잘 나서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의 아내는 그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온전한 것, 아무렇지도 않는 것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나거나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몸이 건강할 죄 짓지 맙시다. 교만하거나 죄 짓지 맙시다. 우리도 아플 때가 온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합시다. 이웃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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