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기도하지 않으면 알고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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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전서 5:8
새벽예배 | 2021-02-04
설교자 : 서요한 목사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어렸을 때 아버님이 밤늦게 들어오셨습니다. 저와 형제들은 아버님이 오시는지도 모르고 잠에 곯아떨어져 있습니다. 아버님이 늦은 밤에 오실 때 제가 어쩌다 깨서 보면 어머님은 그 밤에 항상 깨서 계십니다. 어머님은 한 밤 중에도 아버님이 오시면 주무시다가 항상 일어나십니다. 어떤 때는 그 밤에 밥도 드립니다. 그렇게 늦게 주무시고 다음 날이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집안에 군불을 때시고 밥을 해놓으시고 집안일을 하십니다. 그때는 집에 벽시계 하나뿐이었습니다. 알람이 있던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한 번도 늦잠을 주무신 적이 없으십니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우리가 밥을 먹고 학교갈 수 있는 준비, 아버님이 일하러 나가실 준비, 그리고 당신도 일하러 나갈 준비를 다 해놓으십니다. 어머님은 그 새벽에 알람도 없이 어떻게 일어나셨을까요? 지금도 종종 어머님은 어떻게 그렇게 하셨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님은 집안일을 하시기 위해 항상 깨어 계셨습니다.  

첫째를 낳고 키울 때의 일입니다. 첫째 아이가 얼마나 예민한지밤에 수도 없이 깨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깨는지 시간을 재봤더니 40분에 한 번 씩 깨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깰 때는 20분에 한 번씩, 한 시간에 3번을 깼습니다. 20분에 한 번 씩 깨서 두세 번 젖을 먹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가야하기 때문에 아이가 울면 항상 아내만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아이가 우는데 아내가 안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우는 데도 아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눈을 살짝 뜨고 아내를 보았습니다. 별 일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아내가 무언으로 하는 말을 알아 듣고 제가 일어나서 아이를 안아서 다시 재웠습니다. 그리고 저도 다시 누었습니다. 잠시 후에 아이가 또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일어나서 젖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항상 깨어있습니다. 아이의 작은 신음에도 즉각 반응을 합니다. 이게 아기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는 말은 엄마나 아기를 키우는 동안 깨어 있듯이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 테니스 선수 네 명이 있었습니다. 고등부 전국 대회에서 우승도 하는 실력이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반 친구가 역전에서 테니스 선수들을 봤는데 라켓에 공을 튕기며 다니더래요. 왜 그랬을까요? 친구 한 명이 그 애들이 잘난 척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친구의 말대로 잘난 척 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잘난 척 하느라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감각을 잃지 앉기 위해서입니다. 투수는 평상시에도 야구공을 손에 잡고 있습니다. 손이 공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골프 선수들도 골프공, 골프채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연습을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근육이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잠시만 쉬어도 근육은 무뎌지고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근신하라는 말은 정신을 바짝 차려라는 뜻입니다. ‘깨어라는 말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잠을 안 잘 수는 없습니다. 깨어있다는 말은 운동선수의 몸이 잠시라도 감각을 유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영적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적 감각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를 쉬면 안 됩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적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할까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베드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졸다가 마귀의 밥이 되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알고도 당했습니다. 왜 알고도 당했을까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알고도 당합니다. 우는 사자라는 말을 NASB는 으르렁거리는 사자라고 번역했습니다. 마귀가 지금 으르렁 거리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귀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마귀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삼키려고 할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맞이하듯, 집안을 돌보는 가정주부가 집안일에 깨어 있듯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읍시다. 아기 엄마가 아기의 작은 몸부림에도 즉각 반응하는 것처럼 이 시대에 영적 민감성을 가집시다. 영적으로 둔하면 마귀의 밥이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둔해져 알고도 당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읍시다. 마귀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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