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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얄라드입니다. 얄라드는 ‘낳다, 보다, 생기다, 돋다’는 뜻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이라는 말씀을 히브리어 성경을 그대로 직역하면 ‘산을 낳기 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산을 누가 낳았을까요? 시인은 산을 낳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을 낳기 전” 그런데 하나님은 산만 낳으신 분이 아닙니다. 땅과 이 세상도 낳으신 분이십니다.
뒤에 있는 ‘조성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훌(힐)입니다. 훌은 ‘몸부림치다, 빙빙 돌다’는 뜻입니다. 산모가 아이를 출생할 때 몸부림치는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상과 땅을 낳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땅과 세계를 낳으시기 위해 해산의 수고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산과 땅과 세계를 낳으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생긴 것입니다.
시인은 왜 산과 땅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이를 해산하는 산모에 비유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를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산, 땅, 세상은 흔들림이 없는 존재입니다. 마치 영원한 것처럼 존재하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에 비해 얼마나 허무하고 나약한 존재입니까? 언제 어느 때에 없어질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교회 앞에 도로가 있습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갑니다. 오늘도 수 천대의 차량과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앞을 밟고 지나갈 것입니다. 교회 앞과 뒤에 집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그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땅은 그대로 있습니다. 저 봉서산도 그대로 있습니다. 이 땅, 저기 서 있는 산에 비해서 인간은 정말 허무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들도 허무합니다. 집, 차, 물질, 금, 은, 보석도 허무한 것들은 우리 인생보다 더 허무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보다 더 허무한 것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것들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결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죽음 앞에서 그런 것들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러면 산과 땅과 세상은 영원할까요? 아닙니다. 이런 것들도 세상 끝에는 다 없어질 것입니다.
영원히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산도, 땅도, 세상도 세상 끝 날에는 종잇장처럼 변할 것입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오늘 있다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허무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이 무너져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오늘 하루도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삽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대로, 영원히 거할 우리의 거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품에서 먹고 마시고 쉼을 얻읍시다. 곤고한 세상에서 하나님 안에서 힘과 능력을 얻읍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원한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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