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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끝이 꽃처럼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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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베드로전서4:7-8
주일오전예배 | 2021-01-31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할렐루야! 여러분은 꽃입니다. 옆에 분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당신은 꽃입니다.” 2년 전 여름이었습니다. 도솔 도서관에서 나와 우회전해서 시청 뒷길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조금 올라오면 T자로가 나옵니다. 좌측은 백석동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우리 교회 쪽으로 오는 길입니다. 옆 좌석에는 아내가 앉아있었고 뒷좌석에 저희 집 셋째 아이가 앉아있었습니다. 올라오다 보니까 정면에 신호등을 조절하는 단자함이 보였습니다. 그 단자함에 작은 글씨로 당신은 꽃이에요.”라는 문구가 써져있었습니다. 보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보는 순간 바로 제 얼굴에 미소가 생겼습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글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을 보고 미소 짓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그 글귀를 보자마자 아내를 보며 당신은 꽃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단자함을 가리키며 아내에게 저기에 당신은 꽃이에요.”라고 써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당신은 꽃이에요. 당신의 꽃이에요라고 몇 번 더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뒤에 앉아있던 셋째가 조금 이상한 목소리로 당신은 끝이에요? 당신은 끝이에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꽃이라는 말을 끝이라고 들은 것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당신은 끝이에요.”라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게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한 목소리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당신은 끝이에요?”라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끝이 아니라 꽃이라고 설명을 해줬습니다. “당신은 끝이에요.” 정말 부정적인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 말은 절망입니다. 끝과 꽃은 한끝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 의미는 극과 극입니다. 좋은 끝은 꽃이지만 나쁜 끝은 파멸입니다. 좋은 끝은 행복이지만 나쁜 끝은 불행입니다. 좋은 끝은 희망이지만 나쁜 끝은 절망입니다. 여러분의 끝이 아름다운 꽃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끝이에요.”가 아니라 당신의 끝은 꽃이에요.”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피운 생명의 꽃입니다.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다 끝이 있습니다. 새도, 동물도, 곤충도, 나무도, 땅도, 하늘도, 저 하늘에 떠 있는 해달별도, 심지어 이 우주도 끝이 있습니다. ‘만물이라는 말을 영어 성경은 모든 것”(all things)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헬라어로는 파스입니다. 파스는 온갖, 어떤 것이든지 다, 아무것이나, 모든, 누구든지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끝이 있고 사람이 하는 일과 겪는 일에도 끝이 있습니다. 고통도, 슬픔도, 즐거움도, 불행도, 행복도 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끝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코로나19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끝을 몰라 답답하지만 그래도 끝이 있습니다. 여러분! 소망을 가지세요.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은 좋은 끝이 있고 나쁜 끝이 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는 ‘end’로 되어 있습니다. end는 끝, 마지막, 종말, 최후, 종료라는 뜻도 있지만 목적, 목표, 존재목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끝이 헬라어로 텔로스입니다. 텔로스에도 끝이라는 뜻도 있지만 목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나쁜 끝은 최후, 몰락, 파멸이지만 좋은 끝은 목적의 성취입니다. 잘 끝나면 목표 달성이지만 잘못 끝나면 최후가 됩니다. 우리는 인생에 수 없이 많은 끝을 경험하며 삽니다. 사람, 직장, 공부, 만남, 사건 등등 우리는 계속해서 끝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끝이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습니다. 나쁜 끝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괜찮습니다. 나쁜 끝 때문에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좋은 끝이 있는가 하면 나쁜 끝도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모든 만물의 최종적인 끝은 반드시 좋은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물의 끝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이 있다는 것은 시작이 있다는 말입니다. 시작이 없는 끝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 모든 것은 다 시작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은혜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은혜 없이 시작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은 은혜 없음으로 끝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대 왕 사울은 은혜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끝이 은혜 없음이 되었습니다. 은혜 없는 자의 끝은 정말 비참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작은 분명히 은혜입니다. 사울처럼 은혜를 잃어버리지 마세요. 시작이 은혜인 것처럼 끝도 꼭 은혜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끝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작은 은혜인데 끝은 은혜 없음이 되면 안 됩니다. 끝이 꼭 은혜이기를 바랍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이 문장의 주어는 마지막입니다. 만물이 주어가 아닙니다. 만물이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 것이 아니라 마지막이 만물을 향해 나아왔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삽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내가 끝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끝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끝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아니 끝이 이미 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끝은 내가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끝은 내가 끝을 향해 간 것이 아니라 끝이 나를 향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끝이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희망입니까?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끝이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끝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절의 가까이 오다라는 말이 헬라어로 엥기조’(ἐγγίζω)입니다. 엥기조는 엥귀스(ἐγγς)에서 온 말입니다. 엥귀스는 가까이에서 잡아당기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마지막이 만물을 잡아당겼다는 의미입니다. 끝은 좋은 끝과 나쁜 끝이 있습니다. 좋은 끝을 위해서는 좋은 끝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잡아당기시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살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나쁘게 끝나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가 불행하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를 나쁜 끝으로 끌어당깁니다. 마귀에 이끌리어 사시지 마시고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사시기 바랍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딴 미국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를 아십니까? 올림픽 금메달이 23, 은메달이 3, 동메달이 2, 모두 28개입니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수영이 인생이 전부였던 그는 은퇴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과음을 일삼았고 대마초와 도박에 빠졌습니다. 골프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그는 슬럼프에 빠졌고 자존감은 극도로 낮아졌습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파탄에 이르렀고 자살 충동까지 느꼈습니다. 20149월 말에는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심경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된 사건은 가장 비천한 감정이 드는, 끝 모를 바닥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 세상은 내가 없는 편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저 인생을 끝내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수렁에 빠진 펠프스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민 것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전 미식축구 선수인 레이 루이스였습니다. 루이스는 펠프스에게 치유 센터를 소개했고, 책 한 권을 건네줬습니다. 그 책은 릭 워렌 목사의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이었습니다. 펠프스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들여 201510,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심리치유 및 중독 치료 센터인 메도우즈에 입소해 첫날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4일째 되던 날, 펠프스는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어 놀라운 책이야. 나를 살렸어!”라고 외쳤습니다. 펠프스는 회복 속도가 빨랐고 책은 그의 삶 전체를 바꿨습니다. 완전히 회복한 펠프스는 센터의 동료환자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설교자 마이크라고 불렀습니다. 펠프스는 리우올림픽에서 100% 기량을 발휘할 준비가 됐다"내 인생의 다음 장의 페이지로 넘어와서 행복하다. 수영 경력에서 내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펠프스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따면서 올림픽 금메달 23개의 소유자가 됐습니다.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20168월에 마이클 펠프스의 진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습니다. 마이클 펠프스는 27세까지 수영이 그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수영의 그의 삶에 전부였습니다. 그의 삶은 수영이 이끄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영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27세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수영을 그만두자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하나님이 이끄는 삶을 삶았습니다. 그의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마지막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끝이 아름다운 마지막이 되도록 저 끝에서 우리를 잡아당기시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삽시다. 마귀에 이끌리지 맙시다. 마귀는 우리를 불행과 멸망으로 잡아 끕니다. 마귀의 손에는 불행과 파멸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에는 은혜와 소망과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끌리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하나님께 이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의 삶의 첫 번째 삶의 자세는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신을 차리는 것이 무엇일까요? ‘정신을 차리다는 말이 헬라어로 소프로네오(σωφρονέω)입니다. 소프로네오는 건전한 마음을 갖다, 신중하다, 냉정하다, 자제하다, 절제하다는 뜻입니다. 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건전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냉정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다 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건강한 마음을 위해서는 세상일을 자제해야 합니다. 만물이 마지막이 가까운 이때에 우리가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건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건전한 마음을 가지려면 세상일을 자제해야 합니다. 세상일을 다하고 건전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일을 절제하세요.  

그러면 세상일에 절제만 하면 건전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건전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 지방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에 군대귀신이 들려 옷을 입지 않고 무덤사이에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흉악한지 마을 사람들이 이 귀신들린 사람을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8:35>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누가복음 835절의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정신이 온전하여라는 말이 본문 7절에 정신을 차리고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마음이 건전하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려면 예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열심히 사세요.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주일이 되면 꼭 교회로 오셔서 하나님 앞에 앉으세요. 하나님 앞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말씀도 아무 말씀이나 듣지 마시고 건강한 말씀을 들으십시오. 요즘 이단 사설이 정말 많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들 아무거나 보거나 듣지 마세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아예 보지 마세요. 이단들이 기독교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똑똑해! 나는 분별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 마세요. 이것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똑똑해서 빠지지 않고 똑똑하지 않아서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미혹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말씀이 우리 마음을 건전하게 합니다. 마귀에게 이끌리지 않으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정진이 건전하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목요일에 성경을 읽은데 제 마음이 맑아지는 거예요. 제 마음에 각성이 일어나는 거예요. 저는 그 순간 말씀을 대로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어제 말씀을 읽는데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은 거예요. 오늘 새벽에 말씀을 읽는데 하나님 앞에서 제가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말씀이 저의 폐부를 찌르는 거예요.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앞에 건전해집니다. 말씀이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합니다. 말씀이 우리 영혼을 건강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서세요. 예수님 앞에 서세요. 그래야 우리가 정신 차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정신이 온전해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세라 나이트의 정신 차리기 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겉표지 상단에 이렇게 써져 있습니다. “, 시간,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인생 청소 3단계돈과 시간을 아끼며 인생을 잘 살아보자는 말입니다. 세라는 정신을 차리기 위한 <정신청소법> 세 가지 단계를 소개합니다. 첫째, 전략입니다. 정신을 차리려면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집중입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라고 합니다. 셋째, 실행입니다.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투두리스트><머스트리스트>를 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리스트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오늘 하라는 것입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루라도 잊지 마시고 기도하시고 말씀을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머스트 리스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닥치고 정신 차리라는 말입니다. 세라는 이 책에서 닥치고라는 말을 72번이나 사용합니다. 닥치고! 닥치고! 닥치고! 닥치고 뭘 하라는 것일까요? 닥치고 정신 차리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잘 살기 위해서는 닥치고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잠깐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닥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술수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맑고 건전한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세상으로 자꾸 끌어갑니다. 세상에 이끌리지 마세요. 세상의 아비는 마귀입니다. 말이 거칠어 죄송합니다만 <닥치고> 건전한 마음을 가집시다.

둘째,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근신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네포(νήφω)입니다. 네포는 금주하다, 전혀 술을 마시지 않다, 술 취하지 않다, 정신을 맑게 하다, 냉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네포는 맑은 정신에서 나오는 올바른 판단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맑은 정신><술 취함>과는 정확하게 반대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술에 취하면 절대로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은 맑은 정신으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은 술을 마시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이십니다. 술에 취한 영혼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술에 취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술을 끊고 맑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술을 드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제가 오늘 술을 마시는 분을 나쁘다고 공격하거나 정죄하기 위해 이 말씀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 보다 더 큰 죄인인데 제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또 저는 등대교회 목사이고 여러분은 등대교회의 소중한 성도입니다. 저는 눈곱만큼도 여러분을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몇 년 전입니다. 저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직장에서 사람이 와서 저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분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겠지만 어쨌든 저는 성도가 사람을 죽이고 와도 성도편입니다.” 저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무슨 실수, 무슨 잘못을 했더라도 교회는 오세요.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저도 정죄하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지 마세요.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술을 마시는 것을 얼마든지 이해합니다. 그래도 술을 드시는 분은 술을 끊으시기 바랍니다. 끊으셔야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분은 마실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필로는 네포라는 단어를 설명하기를 하나님에게 알맞게 다가가는 필수조건이며 하나님을 거슬리는 모든 것을 사려 깊게 회피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야 맑은 정신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NIV 성경은 기도할 수 있도록 자신을 절제하라”(self-controlled so that you can pray)라고 번역했습니다. KJV기도의 목적을 위해 술을 끊어라”(sober for the purpose of prayer.)고 했습니다. sober의 뜻은 술 취하지 않은, 술 마시지 않은, 절제하고 있는, 조용한, 냉정한, 침착한, 균형 잡힌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기도를 위해 술을 끊어라또는 기도를 위해 맑은 정신을 유지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맑은 정신이 사라집니다. 술을 끊으셔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술을 끊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술처럼 맑은 정신을 빼앗는 것을 끊으세요. 그래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 <29:7-8>
  •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  
  • <23 :7-8>
  • 29.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 32.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 34.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셋째,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는 사랑이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세 개의 수식어를 쓰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어는 무엇보다도입니다. “무엇보다도라는 말은 우선, 가장 먼저, 첫 번째로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먼저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우선입니다. 사랑이 첫 번째입니다. 사랑이 먼저라는 말은 사랑으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큰 행사가 있을 때 사람들은 테이프 컷팅식을 합니다. 테이프를 끊는다는 것은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은 시작 테이프 커팅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랑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가장 먼저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 <5:22-23>
  •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랑이 모든 것보다 우선합니다. 사랑이 희락보다 먼저입니다. 사랑이 화평 보다 먼저입니다. 사랑이 오래 참음, 자비, 충성, 온유, 절제 보다 먼저입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모든 덕목 중에 첫 번째입니다. 크리스천은 사랑이 시작이고 사랑이 과정이며 사랑이 끝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이 동기이고 사랑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이 우리를 향해 계속 걸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가도, 친구를 만나러 가도 그 사랑이 여러분을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고 있어도 그 사랑이 여러분을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그 사랑은 계속, 중단 없이 우리를 향해 걸어올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계속 걸어올 것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두 번째 단어는 뜨겁게입니다. 베드로는 뜨겁게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뜨겁게는 헬라어로 엑테네스인데 이 단어는 열심인, 열정적인, 뜨거운, 열렬한, 근면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뜨거움은 감정적인 뜨거움이 아닙니다. 운동선수가 열심히 운동을 하다보면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합니다. “열정적인이라는 말은 운동선수가 팽팽한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벤치 프레스를 최고 200kg까지 드는 선수가 자신의 한계인 200kg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또 달리기 선수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최대한도로 고조된 강렬함을 말합니다. 100m 최고 기록이 12초인 육상선수가 자신의 12초의 벽을 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전력질주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은 계속 더 많이 더 많이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라는 말은 죽기까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뜨거운 사랑입니다. 미지근한 사랑이 아닙니다. 말세를 만난 우리는 사랑을 하되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어떤 어머니가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고 대나무로 때려서 죽였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두 시간을 때렸다고 합니다. 때리는 중에 아들이 쓰러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계속 때렸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보니 숨을 쉬지 않는 거예요. 죽은 것입니다. 아들이 죽은지도 모르고 계속 때린 거예요. 그까짓 공무원 시험이 무엇입니까? 성공이 뭡니까? 성공 못했다고 아들을 때려죽이다니요. 사랑의 마음이 아주 완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심해질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시대의 조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성경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뀌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함없이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세 번째 단어는 서로입니다. 베드로는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사랑의 공식은 서로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있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폭등합니다. 100원짜리가 10000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폭락합니다. 10000원짜리가 100원이 될 수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야 적정 가격이 유지가 됩니다.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면 경제가 기형이 됩니다. 경제가 기형이 되면 사회가 기형이 됩니다. 우리는 자유 시장 경제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자유 시장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서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야 합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면 교회가 기형이 됩니다. 서로 사랑해야 교회가 건강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라는 말을 쉬지 않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마지막 때라는 말이 300번 나옵니다. 신약성경이 260장이니 1장에 1번 이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절수가 7957절입니다. 대략 27절에 한 번 꼴로 마지막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마지막이라는 말을 성경이 강조하고 있을까요? 마지막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꼭 생각하십시오. 마지막이 옵니다. 이 마지막을 어떻게 꽃처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만물의 끝에서 우리를 잡아당기시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을 건전하게 하십시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술을 끊고 맑은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합시다. 우리는 예수님께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십자가에서 피운 예수님의 꽃입니다.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 가시나무 사이에 핀 백합화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꽃을 가지로 찌릅니다. 꽃잎에 상처를 냅니다. 꽃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세상 바람으로 계속 흔들어댑니다. 마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꽃으로 고고하게 서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꽃잎을 찢고 싶어 합니다. 쓰러뜨리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세상 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저 끝에 계신 분의 손에 이끌려야 합니다. 우리의 끝이 아름다운 백합화가 되려면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야 합니다.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지 마세요. 세상에 휩쓸려 살지 마세요. 세상의 아비는 마귀입니다. 세상에 이끌려 사는 것은 마귀에 이끌려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사세요. 그러면 만물의 마지막이 왔을 때 우리는 꽃 같은 끝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고 피우신 그리스도의 꽃입니다. 여러분의 끝이 꽃이 되려면 예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손에 이끌립시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우리의 끝이 끝이 아니라 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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