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놀라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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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7:1, 7
주일오전예배 | 2021-01-17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창세기 618절에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라고 했습니다. 너와 네 가족이 홍수 심판 때에 방주를 피난처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노아는 자기가 생활하던 집에서 나와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노아는 방주에 억지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협으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이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지만 노아는 순전히 자신의 자유재량으로 방주를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강압이나 위협이 없었습니다. 노아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지만 노아의 완전한 이해와 동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어떤 강제나 억지가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방법에는 우리 인간 편에서 완전한 능동적인 동의와 복음명령에 대한 기꺼운 순종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심령으로 순종하여 마침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사람의 자유로운 행동이며 자발적인 존재의 입장에서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강요가 조금도 작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은밀하고 능하신 목적을 이탈하거나 그 은혜의 효과적인 역사 없이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인간의 완전한 동의로만 이루어집니다. 인간 편에서의 완전한 동의가 없이 하나님께서 억지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오늘은 구원의 날입니다. 생명의 날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순수한 재량으로 자발적으로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시는데 하나님의 강요가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러분의 자율재량으로만 나오셨습니다. 이곳에 자유의지로 나오신 것처럼 자발적으로 회개하고 능동적으로 변화되어 저 천국을 소망하며 사시기를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문은 여전히 우리에게 열려 있습니다. 이 구원의 문으로 지금 당장 들어오시기 여러분에게 간절히 청합니다. 이 문으로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어놓으신 분은 하나님시지만 들어오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끌고 들어가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들어오셔야 합니다. 이 문으로 들어오시기를 호소합니다.  

저는 이 시간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은 지금 있는 곳에서 나오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노아와 그 가족의 순종입니다.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부르심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세상 혹은 사람이 부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노아는 있는 곳에서 즉시로 나왔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기회로 연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도 않았습니다. 그 부르심을 자신에 대한 부르심으로 알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노아에게만 있었을까요? 다른 사람에게는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홍수로 멸망당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지만 무수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귓전에 울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서도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있는 곳에서 나오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고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주는 가장 완전한 피난처입니다. 노아는 방주에 물이 새지 않을까? 방주가 썩지 않을까? 방주가 파도에 두 동강이 나지 않을까? 방주가 비바람에 엎어지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배의 완벽한 설계자이십니다. 노아의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135m), 높이가 30규빗(13.5), 넓이가 50규빗(22.5)입니다. 길이가 높이의 10배이고, 넓이의 6배입니다. 1992년에 한국창조과학회에서 노아의 방주를 이 비율로 모형을 만들어서 대전에 있는 선박해양센타에 방주가 얼마나 안전한지 의뢰를 했습니다. 테스트 결과 방주는 완전한 안전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방주의 비율은 현대 조선업에서 가장 안전한 배의 비율이라고 합니다. 이 테스트 결과가 KBS 뉴스와, 한국일보, 국민일보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배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째, 구조입니다. 구조의 비율이 맞아야 파도가 부딪쳐도 부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주는 완벽한 비율이었다고 합니다. 둘째, 복원력입니다. 바람에 뒤집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파랑(안전성)입니다. 배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차로 따지면 승차감입니다. 첫째, 둘째 조건이 만족해도 세 번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배에 탈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려면 배의 설계 비율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까지 기상 관측 사상 가장 큰 파도는 32m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는 43m 파도까지 견딜 수 있는 구조라고 합니다. 테스트 할 때 크기를 조금 다르게 한 13개의 모형을 더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방주의 비율이 가장 안전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노아의 방주는 파도가 오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자동으로 뱃머리가 돌아간다고 합니다. 배는 옆에서 오는 파도에 의해서 부러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주는 파도가 오는 쪽으로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방주는 완전합니다. 방주는 고페르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의 문이 코페르나무로 만들었습니다. 100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멀쩡합니다. 방주는 하나님이 설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홍수 때에 완전한 배의 설계자이십니다. 노아가 피할 곳은 방주 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는 우리 시대의 방주입니다. 교회는 마지막 때에 완전한 피난처입니다. 저는 보이는 외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머리이신 보이지 않는 영적인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설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교회로 피하십시오. 십자가를 설계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구원을 설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을 설계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 분은 완전한 설계자이십니다. 안전성을 의심하지 마세요. 교회는 세상 어떤 파도에서 깨지지 않습니다. 방주로 들어가십시오. 구원이 있을까? 안전할까? 생명이 있을까? 교회를 의심하지 마세요. 다른 곳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을 때 노아는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노아는 방주 근처를 맴돌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방주 근처에서 놀다가 비가 오면 바로 뛰어 들어갈게요. 방주에 들어가면 한 동안 햇빛 보기 어려울 것 같은데 들어가기 전에 일광욕 좀 할게요.” 혹시 교회 주변을 맴도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 주변을 맴돌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교회 주변에 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노아는 방주 문에 한쪽 발만을 걸쳐놓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완전히 방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제 한 쪽 발은 방주 안에, 한 쪽 발은 땅을 짚고 있을 게요. 나는 중간자예요. 나는 편협한 사람이 아니라 포용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쪽과도 친하고 저쪽과도 친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도 있어야 하고, 방주 밖에도 있어야 해요.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면 재빨리 안으로 들어갈게요. 주님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어요. 날씨도 맑고 땅도 전혀 젖어 있지 않아요. 벌써부터 방 안으로 들어가 답답하게 있고 싶지 않아요. 비가 오면 그때 들어가도 늦지 않아요.” 노아는 하나님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을 때 완전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혹시 여기에 두 마음을 품고 계시는 분들이 없습니까? ‘나는 예수님 믿으니까 확실히 구원받았어!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지금 죽어도 나는 천국 갈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한 손은 예수님은 손을, 한 손은 세상 습관을 붙들고 있는 분 없으십니까? 그 믿음은 진짜 믿음인가요? 그 구원은 진짜 구원인가요? 두 마음을 품지 마세요. 한쪽 발을 세상에 걸쳐놓지 마세요. 한 쪽 손으로 세상을 잡고 계시지 마세요. 두 손 다 예수님을 잡으세요. 두 발을 다 방주 안에 들여놓으세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시려면 심장부로 들어가세요.  

노아는 방주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이전 세상이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방주 안에만 있었습니다. 새 세상이 오는 날 노아는 방주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때 노아는 새 세상을 마음껏 뛰어다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가지는 방주 안에서만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밖으로 다시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저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안에 들어와 계십니까?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다시 나가지 마십시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영원한 거함입니다. 오늘 믿다가 내일 안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얻은 생명은 썩거나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이 생명을 파괴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손에서 너희를 빼앗을 자가 없도다.” 예수님의 손에 붙잡힌 영혼을 탈취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건강이나 질병이나 죽음도 그리스도와 여러분을 분리해 놓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경험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하나님의 명령은 지금 즉시 들어가라는 명령입니다. 7일 후면 하나님이 물로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직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3-4일이 지난 다음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심판은 7일 이후이니 7일 이내에 아무 때나 들어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방주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혀져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방주는 누구나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방주에 들어갔다가 쫓겨났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짐승이나 새 한 마리 비록 기어 다니는 미물이라도 일단 들어갔다가 추방당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문이 열려져 있는 한 아무나 와도 좋습니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노아가 들어갈 할 시간입니다. 방주의 문이 닫힐 때가 왔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세상이 교회를 폐쇄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서운 시대가 됐습니다. 세상 공권력이 무섭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영적 방주의 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이 패역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 문을 닫아버리실까 두려웠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지금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방주 안으로 지금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미래에 어느 날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본문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매우 크게 돋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와 네 온 집은이라는 부분입니다. ‘네 온 집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너의 모든 식구입니다. 너의 모든 식구가 다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만을 생각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교회에 나와 있는 여러분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배우자, 자녀, 부모님, 형제까지 생각하십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간수와 그의 모든 가족을 위해 축복했습니다. 바울은 간수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첫째 아들 셈과 셋째 아들 야벳은 방주에 들어갈 만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 함은 아주 못된 불량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둘째 아들은 불량하니 방주에 태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가족을 다 태우라고 하셨습니다. 함도 방주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만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온 집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너와 온 집이라는 말은 내가 믿으면 내 가족까지 자동적으로 다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과 구원은 지극히 개별적인 것입니다. 나와 온 집안 식구가 다 구원받도록 호소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두 번째로 노아와 그 가족의 순종의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노아와 아내와 세 아들과 세 며느리 여덟 명은 다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여덟 명이 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가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어떤 이유를 묻거나 이해할 수 없다며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은 사람은 노아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으니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상이 홍수로 멸망할 것이라는 노아의 말에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 세상에 물이 넘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비가 온 적도 없습니다. 물이 조금 불어 넘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다니요. 노아의 말은 세상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럼에도 노아에게 홍수 심판이 진짜 있느냐고 묻는 가족이 없었습니다. 노아가 들은 하나님의 명령이 착각 아니냐고 하는 가족도 없습니다. 정말 놀라운 가족입니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은 망나니였습니다. 이 망나니 아들도 아버지 말을 믿을 수 없다거나 방주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들이 친정 부모님을 버리고 자기들만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말에 모두 순종했습니다. 가족들이 노아의 말을 하나님 말씀처럼 따른 것이 놀랍습니다. 여덟 명이 일시에 방주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여덟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 어디에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혼자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고를 때도 자장을 먹어야 할지 짬뽕을 먹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런데 여덟 사람이 한 마음이 됐습니다.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들만 가득 차 있는 방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놀이터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미련 없이 세상에서 뛰어나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저의 가정에,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노아의 가족을 하나로 부르신 성령님의 역사를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며느리들의 부모와 형제들과 친구들은 며느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네가 만약 방주에 들어간다면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고 말 거야. 아무도 널 알아주지 않아. 방주에 들어가면 너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될 거야. 그러니까 방주에 들어가지 마.” 그들의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며느리들은 세상과의 교제를 끊기로 결심하고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세상 보다 방주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보다 예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간 것은 그들의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들에게 방주에 들어간 날은 가장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구원받은 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간 날은 우리 인생의 최고의 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것 보다 더 큰 사건이 있을까요? 생일도 좋습니다. 결혼기념일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날 보다는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구두를 수선하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수선하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수선하는 곳은 두 세 사람이 허리를 숙이고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박스였습니다. 구두를 맞기고 잠깐 앉아 있는데 벽에 성경구절이 걸려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사장님이 한쪽에서 너덜너덜한 오래 된 편지지 하나를 꺼내더니 신앙 간증을 시작하는 거예요. 자기는 아무 날 아무 시에 구원받았다며 그날에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해요. 구원파였습니다. 구원파는 구원받은 날의 신앙 간증을 종이에 써서 갖고 다닙니다. 거기에 중생한 날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까지 써 놓았습니다. 그 신앙 간증문을 써 가지고 다니면서 자기가 구원받은 날이라고 자랑을 해요.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강연으로 유명한 구원파의 수장인 박옥수 씨의 홈피에도 박옥수 씨의 구원받은 날짜가 게재되어 있습니다. 1962107, 주일 새벽. 하지만 이것은 가짜입니다. 구원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사기이 때문에 사람은 시간을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은 우리 인생 최고의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간 날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만약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지 않고 홍수로 심판을 당했다면 인류는 완전히 끝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인류의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의 가정과 직장과 그가 활동하는 사회에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여러분의 가정에 축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쌍용동에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에게 축복이 되길 바랍니다. 바리새인처럼 천국 문을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하는 엉터리 크리스천이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이 있는 성도, 복이 있는 목사, 복이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방주에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누구일까요? 노아일까요? 아니면 노아의 아내나 아들들일까요?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노아입니다. 7절에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라고 했습니다. 노아가 가족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노아가 맨 앞장 선 것입니다. 가장이 가장 먼저 들어갔습니다. 노아가 들어간 다음에 노아 가족들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노아는 가장입니다. 가장이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이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방주에 들어갔습니까? 여러분이 먼저 방주 안에 들어가야 가족이 따라 들어오는 것입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방주 주위에서 맴돌고 있으면 가족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어가려면 확실하게 들어가세요. 그래야 가족이 따라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하나님께 무관심해.”라고 말하는 자녀가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아들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노아의 아들은 세 명입니다. 세 명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벤입니다. 벤은 바나에서 온 말입니다. 바나는 세우다, 건축하다, 짓다는 뜻입니다. 바나는 집을 짓는 것처럼 무엇을 세워간다는 의미입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다진 다음 기둥을 세우고 벽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쌓습니다. , 아들이라는 말은 바로 집을 세우듯이 세워간다는 의미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세우는 아들들이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은 정말 훌륭한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방주를 지었고 아버지와 함께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방주를 짓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아버지를 따라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아들들은 항상 아버지와 함께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아는 복을 받은 아버지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아버지 편에 서지 못한 아들들을 봅니다. 그런 아들을 둔 아버지들은 참으로 불행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 편에 섰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반대편에 서지 마세요. 하나님 아버지 반대편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구약의 노아의 방주는 신약의 교회의 상징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이 아버지와 함께 방주를 세운 것을 신약으로 말하면 아버지와 함께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방주를 건축한 노아의 아들들처럼 우리 모두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신약의 방주인 교회를 세우는 아들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아들들처럼 아버지가 계시는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방주 안에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갑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노아의 부인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자성어 중에 부창부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이 주장하면 부인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남편이 노래하면 부인이 따라서 부른다는 말입니다. 사사건건 반대하는 부인을 둔 남자는 피곤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따라오는 부인을 둔 사람은 행복합니다. 노아의 부인은 부창부수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이 홍수로 멸망할 것이라며 방주를 짓는다고 할 때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방주를 만드는 일을 도왔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가자고 할 때도 반대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남편과 함께 방주를 짓고 남편과 함께 방주에 들어간다는 것은 남편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말입니다. 롯의 아내는 롯을 따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남편과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뒤를 보면 죽는다는 남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롯의 부인은 롯이 소돔성에서 나가자고 할 때 이견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노아의 부인이 노아가 하는 일을 반대했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항상 남편이 하는 일에 조용히 따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남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조용한 확신과 은혜가 있었습니다. 노아의 부인은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교회는 현숙한 여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랑되신 예수님께 부창부수하는 신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세 며느리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노아의 며느리는 노아의 딸이 아닙니다. 세 며느리에게는 각자 부모와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친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며느리의 부모와 형제들은 사돈이 방주를 짓는다고 할 때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처럼 노아를 비웃었을 것입니다. 노아가 세상이 홍수로 망한다고 할 때 며느리들의 부모님들은 사돈이 미쳤다고 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사돈이라는 것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자기 딸이 시아버지와 방주를 만들 때 너까지 왜 그러냐며 말렸을 것입니다. 시아버지를 따라 방주 안으로 들어간다고 할 때도 따라와서 마른하늘에 무슨 벼락이 치냐며 딸들을 붙잡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 며느리는 자기 부모 형제 친구들의 말보다 시아버지 노아의 말을 더 믿고 따랐습니다. 노아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노아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방주를 지을 때 함께 지었고, 방주에 들어갈 때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머뭇거리거나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그들을 조롱했지만 어느 하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방주를 지었고 함께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교회는 놀라운 갖고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가족입니다. 새로운 가족의 가장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 어떤 말 보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은 가장 복스러운 명령입니다.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은 가장 은혜로운 명령입니다.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은 다시 올 새 세상을 상속하라는 영광스러운 명령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이것 보다 더 은혜로운 것이 있을까요? 우리의 영적 가장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방주 안에서 부르십니다. 있는 곳에서 그대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태만이요 고집이며 멸망입니다. 지금 앉아있는 곳에서 일어나 방주로 들어갑시다. 게으름, 나태, 세상연락, 정욕, 거짓, 침체, 슬픔, 미움의 자리에서 일어나 방주로 들어갑시다. 내일이나 다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나 방주로 들어갑시다. 방주 주변에서 배회하지 마세요. 그것은 전혀 소용이 없는 행동입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세요. 이왕이면 방주의 심장부로 들어가세요. 거기서 노아의 가족처럼 모든 가족이 들어오도록 기도하세요. 혼자가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방주에 올라타도록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가족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세요. 주님이 방주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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