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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살면서 깨달은 하나님의 경륜

조회수 : 598회

본문 : 창세기 50:15~26
새벽예배 | 2021-01-01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어떤 랍비가 여행 중에 들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밤에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타고 여행하던 나귀를 사자가 물어갔습니다. 조금 후에는 요란 닭소리가 나가 보니 시계대신 가지고 다니던 닭을 늑대가 물어갔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기름이 다 엎질러져 등불이 꺼져 버렸습니다. 랍비는 속이 상해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주 가까이에 있는 동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랍비가 어제 텐트를 치고 잠은 잔 곳은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밤에 산적들이 동네에 내려와 마을의 모든 것을 강탈하고, 주민들을 죽인 후에 불을 질렀던 것입니다. 만약 나귀가 살아있었거나, 닭이 울었거나, 등불이 켜 있었더라면 랍비는 그날 밤 랍비는 저 세상 사람이 됐을 것입니다. 그제야 랍비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성도의 삶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등대교회를 하나님이 여기로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것처럼 우리 교회는 세 건물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못마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잘 보이는 곳으로 보내시지 왜 잘 안 보이는 곳으로 보내셨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교회마다 주일 아침이 되면 동사무소에서 예배 단속을 나왔습니다. 참 이상한 세상이 됐죠? 예배를 단속하고. 그런데 우리 교회는 단속반이 안 나오는 거예요. 이상해서 다른 교회에 물었어요. 그랬더니 주일에도 나오고 평일에도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안 나와요. 끝자락에 3번 나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다른 교회 나올 때 안 나와서 편안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세 건물에 가려져서 교회가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안 나왔던 거예요. 저는 감사했습니다. 참새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 열 일곱 살에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22년이 지납니다. 요셉이 서른아홉 살에, 세상이 흉년이 2년째 들었을 때 형들을 애굽에서 다시 만납니다.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인 요셉 덕에 기근 중에도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삽니다. 하지만 요셉의 형제들 마음 한 편에는 항상 불안한 생각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자신들에게 원수를 갚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17년이 흘러 요셉이 쉰여섯 살이 됐을 때 아버지 야곱이 죽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요셉의 형제들은 더욱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39년 전에 있었던 일을 사과합니다. 본문은 요셉과 그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을 장사한 후에 나눈 대화로 시작합니다. 이 대화 중에 요셉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시간이 고백한 요셉의 신앙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요셉은 지난 39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커다란 하나님의 경륜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은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이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 지난날의 자신들의 잘 못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 <15-18>
  •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형들의 말을 들은 요셉은 지난 날 자신의 삶이 생각이 났는지 가슴이 복받쳐 울음이 폭발했습니다.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켰지만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썼습니다.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룬 밤, 수치스러움으로 고개를 들지 못한 나날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의 외로움과 서러움. 요셉은 자신이 당한 이 모든 일들이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커다란 경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은 나를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려 그 배신감으로 정신적인 큰 충격을 받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형들이 나를 팔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내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보낸 것이었습니다(45:8). 그래서 요셉은 형들 앞에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이었다고 고백합니다.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예루살렘은 BC606, BC598, BC586년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멸망합니다. 수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2차 공격 때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아하와강에서 아주 고된 노역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졌던 의문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나라에 멸망당하는가? 어떻게 선택받은 백성들이 이방인의 종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성도들이 이런 수모를 당할 수 있는가?’이었습니다. 에스겔은 아와하 강에서 노역을 하는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거기서 환상을 봅니다. 환상 중에 하늘의 네 생물과 네 바퀴가 보였습니다. 바퀴 중심에 네 생물이 있는데 네 생물에 따라서 바퀴가 움직였습니다. 생물이 가면 바퀴가 따라갔고 생물이 땅에서 들리면 바퀴도 땅에서 들렸습니다. 그런데 네 생물은 하나님의 성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 <1:15-21>
  • 15.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들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 16.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 17. 그들이 갈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가며
  • 18.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 19. 그 생물들이 갈 때에 바퀴들도 그 곁에서 가고 그 생물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들도 들려서
  • 20.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 21. 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바퀴 중심에 영적인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퀴 중심에는 바퀴의 축이 있습니다. 바퀴는 축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축에 하늘의 영적인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영적인 존재들이 바퀴의 축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영적인 존재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바퀴를 움직이는 주체는 성령님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우연히 굴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세상 권세자들에 의해서 굴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을 빠라서 굴러갑니다. 역사는 사람을 따라 굴러가지 않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역사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목적지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무작정 고향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나 북서쪽으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남서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은 정 서쪽 방향입니다. 그런데 갈대아 우르와 가나안 땅 사이에는 아라비아 사막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서쪽으로 왔다면 사막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아브라함과 그 일행은 사막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서쪽으로 가지 않고 서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남서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까지 간 길은 최단거리입니다. 아브라함은 몰랐을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이 최단거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님께서 서쪽으로 가라, 북쪽으로 가라, 외쪽으로 가라, 아래쪽으로 가라고 세세하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최단거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여정입니다. 우리 삶 속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길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불안해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세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 번째 요셉은 살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과오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울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은 당대 아프리카의 판도를 장악하고 있던 애굽의 두 번째 통치자입니다.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세울 때 자신이 요셉 보다 높은 것은 의자뿐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에게 자신의 인장반지도 빼어주었습니다. 요셉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제가 요셉이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까요? 저는 추악한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벗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원수를 갚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 그렇게 보고 싶은 아버지를 뵙고 형들에게 원수를 갚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추악한 누명을 벗으려고도 그 누구에게 원수를 갚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요?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면 안 됩니다. 내가 원수를 갚는 것은 교만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억울해도 직접 원수 갚지 마세요. 하나님께 맡기세요. 요셉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이 애굽으로 내려올 것을 알고 기다렸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하나뿐인 동생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고향을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데 선하든 악하든 각 사람들의 역할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의 악행까지 사용하셔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셨습니다. 요셉은 그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은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임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죽을 때 형제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애굽에서 나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을 언급했습니다. 그때 나가면서 자신의 해골을 갖고 나가 가나안 땅에 조상들의 묘실에 묻어줄 것을 유언했습니다.  

  •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왜 형제들에게 출애굽할 때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나가라고 맹세하게 했을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요셉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히고 싶어서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영적으로 말하면 천국입니다. 요셉이 바라본 것은 저 하늘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볼 곳은 저 하늘 가나안입니다. 꼭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살게 한 것입니다. 요셉은 죽은 후에 가나안 땅에 묻히고 싶었다면 장사 후에 자신의 몸을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몸을 가나안 땅이 아니라 애굽에 묻게 했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이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나가게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후손들도 자신처럼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살게 한 것입니다. 애굽에 살지만 애굽에 빠져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빠져 살지 마세요. 가나안을 바라보며 사세요.  

요셉이 얼마나 가나안 땅을 사모하며 살았는지 야곱과 형제들이 애굽에 내려왔을 때 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46:33-34>
  •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요셉은 바로가 형들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조상 대대로 목축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고센 땅에 살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목축하는 사람들은 들에서 짐승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짐승들과 함께 자고 함께 먹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은 목축하는 사람들을 가증이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목축은 부끄러운 직업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형들에게 목축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센 땅은 출애굽 할 때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바로의 궁전이 있는 도시 한 중심에서 살고 싶지 않았을까요? 교육여건도 좋고 쇼핑하기도 좋고 구경거리도 많은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을까요? 예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종 목적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땅이기 때문에 애굽에서 나오기 가장 좋은 곳에서 정착한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고센 땅에서 살지 않고 애굽 도시에 살았다면 애굽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센 땅에서 목축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가증이 여겨 가까이 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보존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커다란 경륜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커다란 경륜 속에 자신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그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쓰임받은 존재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장하시고 우리는 그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을 사용하시지만 악인들의 악행까지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세요. 불안해하지 마세요. 인생을 다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저 영원한 가나안 땅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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