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역사의 겨울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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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디모데후서 4:9~13
주일오전예배 | 2020-11-29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제게 가끔 생각나는 집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연말이 되면 더 자주 생각이 분이에요. 제가 개척을 한 이듬해 12월 달에 그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내년 등대교회 달력을 제작해서 택배로 보내겠다는 거예요. 20부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50부를 보냈어요. 그 집사님은 그렇게 4년 동안 연말마다 달력을 제작해서 보내줬습니다. 남은 달력이 저쪽 방에 그대로 있습니다. 제 작년 겨울에도 전화가 왔어요. 집사님이 아들 이야기, 딸 이야기를 한참 해요. 그렇게 오래 말하는 분이 안이거든요. 이야기 중에 대뜸 목사님 고마웠어요.”라고 해요. 그리고 둘째가 중3일 텐데 고등학교 교복을 맞췄냐고 물어요. 안 맞췄다니까 제가 갈게요. 사모님하고 아이들하고 우리 밥 먹으러 가요.”라고 해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며칠 후에 아는 분이 연락이 왔어요. “목사님! ○○가 죽었어요.” “나랑 며칠 전에 통화했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친정집에 갔다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대요.” 친정 식구들에 의하면 누가 밖에서 부른다며 베란다로 뛰어갔다는 거예요. 자살은 아니에요. 함께 밥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가끔 그 집사님이 제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귀에 들리는 거 같아요. 그 집사님에게 우울증이 있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잘 안 먹었어요. 그러다보니 혼자 중얼거리며 의미 없는 소리를 자주 하세요. 사람들에게 입바른 소리도 하세요. 새벽이고 한 밤 중이고 아무 때나 주변 사람들에게 장문의 문자를 수십 통씩 보내기도 해요. 저한테도 수년 동안 많이 보냈어요. 사람들이 그 분을 피했어요.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그 분을 왜 우리 구역에 넣었냐며 저를 원망했어요. 그 분은 늘 혼자였어요. 혼자 앉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녔어요. 언젠가 집사님 구역의 구역 예배를 제가 인도했는데 예배 후에 다른 사람들은 다과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집사님은 다른 쪽을 향해 등을 돌리고 혼자 앉아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피하고 상대를 안 해주는 것을 알고 있었겠죠. 그분은 항상 그랬어요. 집사님이 등을 들리고 쓸쓸하게 혼자 있었던 뒷모습이 생각이 나곤 해요. ‘누군가 그 분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교우가 있었어도 그분이 그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함께 해주는 교우가 교회 안에 없었다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혼자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가족이든 교우이든 친구이든 누군가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신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신약성경 27권 중에 13권을 기록했습니다. 13권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한 때는 AD 50년경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성경 중에서도 가장 먼저 기록된 책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기록한 책이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후서는 AD 66년경에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로마 감옥에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유언과 같은 책입니다. 본문은 마지막에 기록한 책의 끝부분입니다. 이 책을 기록한 계절은 가을인 것 같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자신이 겨울 지난 봄 언제쯤에 순교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인생의 마지막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AD 35년경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믿은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많은 성경을 기록하고, 많은 교회를 세운 백전노장의 노사도가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맞이하면서 그 겨울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살펴보며 영적을 교훈 받으려고 합니다.  

첫째, 바울은 사람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며 신실한 동역자였던 디모데에게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 ‘속히라는 말은 서둘러서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서둘러서 빨리 오라고 하고 있습니다. 21절에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했습니다. 당시 지중해는 겨울이 되면 풍랑이 심해 배가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지금 오지 못하면 봄에나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디모데를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겨울 전에 속히 오라는 말은 빨리 와서 꼭 이번 겨울을 함께 보내자는 말입니다. 바울은 인생을 정리하며 자신의 마지막 겨울을 위해 왜 디모데를 불렀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바울은 감옥에 있는 중에도 그리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지금 바울이 있는 곳은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지하감옥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제자들을 각처에 보내며 복음을 위한 일을 살폈습니다. 바울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떤 형편, 처지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1:20).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다움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바울이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준비하면서 디모데를 부르는 이유는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제자에게 목회를 위한 마지막 당부를 위해서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이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한 이유는 믿음의 교제를 위함입니다. 복음 사역을 위한 당부는 두 번의 편지에서 충분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디모데를 오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 겨울을 믿음의 아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했습니다. 데마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자 그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바울을 떠납니다. 바울만 떠난 것이 아니라 신앙까지 포기했습니다. ‘버리다는 말이 헬라어로 엥카탈레이포입니다. “엥카탈레이포뒤에 남겨두다, 포기하다, 버리다는 뜻입니다. 데마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뒤에 버려두고 떠났을 뿐만 아니라 신앙까지 포기했습니다.  

데마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가 떠난 후에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간절히 찾았을까요? 데마는 바울이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했던 동역자입니다. 사람은 어떤 일의 처음에 함께 했던 사람에 대한 각별한 추억이 있습니다. 첫 만남, 첫 사람, 첫 사랑 등등. 골로새서 4:14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데마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와 나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빌레몬서 24절에는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데마를 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데마가 마가복음의 기록자인 마가와 바울과 한결같이 함께 했던 아스리다고와 누가 세 사람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에서 바울에게 데마가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사역 초기부터 함께 했던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환란이 닥쳐오자 바울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바울은 데마를 보내지 않기 위해 바울은 얼마나 애썼을까요? 붙들고 여러 번 권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떠났습니다. 이때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나를 버리고라는 말에서 바울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버림을 받았다고 할 만큼 데마를 의지했습니다. 바울은 데마가 신앙을 포기하고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데마를 자신과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떠난 것입니다. 환란이 올 때 우리 가까이에는 배신을 하고 떠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세요. 데마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누가, 디모데, 마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유익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유크레스토스입니다. 유크레스토스는 쓸모있는, 유용한, 유익한, 소용에 맞는이라는 뜻입니다. 유크레스토스의 유는 좋은이라는 의미입니다. 함께 하면 유익하고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함께 하면 할수록 해가 되고 무익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가는 바울의 사역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바울의 인생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에 유익하고 좋은 사람이 되세요. 복음에 해가 되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그런데 한 때는 마가와 갈라선 적이 있었습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던 마가다락방의 주인의 아들입니다. 교회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집이 컸습니다. 마가는 부잣집 아들입니다. 이 마가가 바울과 함께 첫 번째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초대교회 선교의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하지만 전도여행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데서 자고, 아무데서나 먹고, 아무데서나 볼 일을 봐야하는 아주 힘든 일입니다. 부자로 곱게 자란 마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마가에게 병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가가 중간에 전도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전도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바울 일행은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에 바울 일행이 다시 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 마가의 삼촌이었던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마가가 가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심하게 반대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의 일로 다툽니다. 성경에 두 사람이 심히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심히 다투었다는 말을 KJV은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아주 날카롭게 있었다고 번역을 했습니다(the contention was so sharp between them). 마가의 일로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큰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마가는 부자로 편하게 살아서 선교에 방해되니까 데리고 가지 말자고 했을 것입니다. 힘들다고 중간에 또 돌아오면 일행들의 사기만 떨어진다고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마가가 방해만 되는 사람이라고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다투다가 두 사람이 갈라서서 다른 길로 갑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갑니다. 마가가 정말 민망했을 것입니다. 이 일로 마가가 거듭 낳는지 후에 신실한 사역자가 되어 베드로도 돕고 마가복음도 기록합니다.  

바울이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삶을 정리하는데 그때 있었던 다툼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가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마가에게 미안했습니다.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을 끝내기 전 그 때 생긴 마음 속의 응어리를 풀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목한 상태에서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데마처럼 떠나지 않을 것 같지만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것 같지만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마가처럼 떠났지만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인생 겨울에 함께 보낼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겨울을 위해 함께 할 믿음의 사람들을 준비한 것입니다. 역사의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터놓고 함께 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혼자이면 안 됩니다.  

두 번째로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위해 바울은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겨울옷을 준비했습니다.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이 선교 여행 도중에 드로아의 가보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와서 찾아가려고 자신의 겨울옷을 맡겨놓은 것 같습니다. 드로아는 자신의 집을 바울이 선교 여행 도중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제공한 것 같습니다. 바울의 여러 가지 짐이 드로아의 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투옥되어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그 옷을 갖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겉옷은 우리가 생각하는 두터운 겨울 코트나 패딩이 아니라 그냥 허름한 모포입니다. 큰 천에 가운데 구멍이 하나 나 있어 목을 내놓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매는 없습니다. 영화에서 이런 비슷한 옷을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낮에는 감싸서 두르고, 밤에는 이불처럼 덮고 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여름에 잡혀 로마 감옥으로 이송됐습니다. 그 사이에 가을이 왔고 겨울이 눈 앞에 있습니다. 겨울옷을 준비할 틈이 없었습니다. 춥고 어두운 감옥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겨울옷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겨울을 준비하며 디모데에게 겨울옷을 가져다달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역사의 겨울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옷을 준비해야 할까요? 지금이 역사의 겨울이라면 우리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우리 인생에 봄이 있다면 겨울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 인생에 겨울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옷을 준비해야 할까요? 그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옷이 필요합니다. 먼저, 믿음의 옷이 필요합니다.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은 역사의 겨울에 임박해 있는 성도들에게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흰 옷은 구원받은 자들이 입는 칭의의 옷입니다. 이 옷을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이 옷은 믿음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에는 천으로 만든 옷이 필요하다면 우리 영혼에는 믿음으로 만든 옷이 필요합니다. 몸에 옷을 입지 않으면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믿음의 흰옷을 입지 않으면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이 믿음의 옷이 역사의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줍니다. 우리 인생의 겨울, 역사의 겨울에 우리가 반드시 입어야 할 옷은 믿음의 흰 옷입니다. 역사의 겨울 앞에서 반드시 믿음의 흰 옷을 준비하세요.  

다음으로 역사의 겨울을 위해서는 기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겉옷을 바울이 기도할 때 뒤집어쓰는 용도로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추운 겨울에 기도하기 위해서는 추위를 막아줄 덮개가 필요합니다. 바울에게는 기도할 때 감옥의 추위를 막아줄 옷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인생 마지막 겨울을 위해 기도의 옷을 준비한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 영혼의 온도를 뜨겁게 보호해줄 방한복입니다. 기도가 차가워진 우리 가슴을 다시 뜨겁게 해줄 난로입니다. 기도가 겨울의 찬바람 속에서도 우리 영혼을 식지 않게 해줄 모닥불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 영혼이 뜨거워집니다. 인생의 겨울, 역사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는 기도의 옷이 필요합니다. 겨울을 위해 기도의 옷을 입으세요.  

요한계시록 22:14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빨다는 말이 현재분사입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자기 두루마기를 빨고 있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빨래는 계속하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의 옷을 어떻게 빨 수 있습니다. 기도로 빠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믿음의 옷을 세탁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믿음의 옷이 더러운 채로 그냥 두는 것입니다. 기도로 믿음의 옷을 계속 세탁하세요. 기도해야 영혼의 옷이 깨끗해집니다. 두루마기라는 말은 예복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이 있어도 깨끗해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로 옷을 깨끗하게 하세요.  

내 삶에 기도의 옷을 입히세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치세요. 일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치세요. 일을 어떻게 할지 모를 때 기도의 옷을 입으세요. 낙심되고 힘이 들 때 기도의 옷을 입으세요. 마음이 흐트러지고 혼란해질 때 기도의 옷을 입으세요. 불안하고 답답할 때 기도의 옷을 입으세요. 기도의 옷이 우리 마음을 붙들어주고 정갈하게 합니다. 기도의 옷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기도의 옷이 보호막입니다. 내 가정에 기도의 옷을 입히세요. 남편, 아내에게 기도의 옷을 입히세요, 자녀에게 기도의 옷을 입히세요. “주님! 제 딸, 제 아들을 지켜주세요.” 기도가 환란의 눈보라를 막아주는 방어막입니다. 기도가 영적 쉴드입니다. 내 힘, 내 능력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내 힘으로 됩니까? 기도해야 안전합니다. 기도는 우리 인생 겨울의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입니다. 엊그제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해요. “청결에 힘써야겠지만 최고의 방역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코로나19의 최고 방역이라는 거예요. 무식한 소리처럼 들리세요. 과학도 모르는 소리인가요? 이 세상의 싸움은 육적 싸움 같지만 영적인 싸움입니다. 기도가 최고의 방역입니다. 기도하세요. 기도하는 것은 옷을 입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것은 옷을 벗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역사의 겨울 앞에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믿음의 옷과 기도의 옷입니다.  

세 번째로 바울은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위해 겨울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그 겨울 양식은 성경입니다.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책을 가져오되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일반적인 책들은 나일강에서 많이 나는 값이 싼 파피루스로 만들었습니다. 가죽 종이는 양이나 염소나 소의 가죽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양피지는 파피루스 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가죽 종이로 만든 책이 무엇일까요? 어떤 학자는 바울이 재판을 받으려면 법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특별한 책은 법전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바울이 로마시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공문서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이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라는 말이 헬라어로 말리스타입니다. 말리스타는 최상급으로서 무엇보다도 가장, 최고로라는 뜻입니다. 바울에게 최고로 특별한 책이 무엇일까요? 법전일까요? 로마 시민이라는 공증서일까요?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3:8). 세상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사도가 법전을 특별한 책이라고 했을까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 최고로 특별한 책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아닙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무슨 책인지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책이라고 할 때 성경 외에 다른 것이 있을까요? 오늘날 성경을 읽은 그리스도인 중에 이 가죽 종이에 쓴 책을 성경 이외의 다른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특별한 책은 성경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위해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 양식은 특별한 양식입니다. 최고의 양식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이기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양식입니다.  

다람쥐의 양식은 도토리입니다. 도토리는 가을에만 납니다. 그러면 다람쥐가 가을에는 도토리를 먹고 겨울에는 굶고 봄에는 풀을 먹을까요? 아닙니다. 다람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항상 도토리를 먹습니다. 다람쥐의 양식은 항상 도토리입니다. 다람쥐는 겨울양식으로 도토리를 준비합니다. 성도의 양식은 항상 말씀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에는 말씀을 먹고 겨울에는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인생의 겨울에도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겨울에는 더 많이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추위가 말씀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에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먹지 않으면 인생의 겨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인생의 겨울, 역사의 겨울을 위해 말씀을 드세요. 많이 드세요.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말씀을 먹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사람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사탄은 성도가 말씀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역사의 겨울에 사람들을 영적 기아에 빠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성도와 교회가 분리되고 있습니다. 성도와 찬양이 분리되고 있습니다. 성도와 기도가 분리되고 있습니다. 성도와 말씀이 분리되고 있습니다. 성도가 역사의 겨울 앞에서 굶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씀을 드세요. ‘나는 말씀을 안 먹어도 괜찮아요. 문제없어요.’라고 생각하십니다. 괜찮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탄의 술책에 넘어가지 마세요. 말씀을 먹어야 우리가 당하는 영적 겨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이 먹어야 할 특별한 겨울 양식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겨울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노역을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성전이 분리되었습니다. 선지자와 백성들이 분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말씀을 먹을 수 없었고 점점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벨론 아하와강가에서 노역을 하는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셔서 말씀을 먹이십니다.  

  • <3:1~3>
  • <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역사의 겨울을 이겼습니까? 말씀을 먹고 이겼습니다. 말씀을 드세요. 더 많이 드세요. 자꾸 드세요. 말씀이 양식입니다. 말씀이 복입니다. 말씀이 힘입니다. 성도의 핵심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겨울을 이길 수 있습니다.  

겨울입니다.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제가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며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겨울철에 장례식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겨울 중에도 갑자기 날씨가 바뀔 때 장례식이 많습니다. 갑자기 변하는 날씨를 늙고 병들고 약해진 몸이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겨울에 사람이 많이 죽습니다. 이 겨울과 앞으로의 겨울을 건강하게 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코로나19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겨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역사의 겨울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교회와 분리되고 있습니다. 신앙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겨울에는 서로 붙들어줄 함께 할 가족, 믿음의 교우들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는 좋지 않습니다. 함께 할 믿음의 교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또 믿음의 옷과 겨울옷을 지어 안전하게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특별한 양식인 말씀을 든든하게 먹어야 합니다. 이 전염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두려워하지 마시고 말씀으로 잘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역사의 겨울을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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