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계정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
2 == 2 ok!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마사루는 물을 얼렸을 때 물의 결정체가 각각 다른 모양을 띈다는 것에 착안해 물의 결정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수돗물, 증류수, 오염된 물 등 여러 가지 물의 결정 사진을 찍으면서 그가 발견한 사실은 물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사루는 얼린 물에게 여러 가지 글을 보여주거나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물이 어떤 모양을 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물에게 “망할 놈”이란 글을 보여주었더니 물의 결정이 소용돌이치듯 하는 모양을 했습니다. “바보”라는 말을 보여주었을 때는 물이 붉은 색으로 변했습니다. 화가 난 것일까요? “죽어버릴 꺼야!”라는 글에는 화성의 표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고 가뭄 때의 논바닥처럼 메마른 모습을 했습니다. 악마라는 말을 보여주었더니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습니다. 물이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물에게 천사라는 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결정이 왕관처럼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기도도 해보았습니다. 기도 전에는 물의 모습이 쪼개진 파편 같았는데 기도 후에는 눈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했습니다. 바흐 ․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자 역시 물이 아름다워졌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려주자 무지개의 모습의 모습을 했습니다. 쇼팽의 이별이라는 피아노곡을 들려주었더니 결정이 알갱이처럼 나누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을 틀어주었더니 속에 무엇을 품은 것 같은 모습을 했습니다. 사원이라는 글을 보여주자 입자의 모습이 사원처럼 변했습니다. 물이 부정적인 말을 보여주었을 때의 특징은 일정한 형태가 없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에는 일정한 형태를 했습니다. 물이 부정적인 말은 싫어하고 긍정적인 말은 좋아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저자처럼 물이 의식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에모토 마사루가 이 책에 가장 강력한 말로 꼽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감사”입니다. 물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할 때가 “감사”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입니다. 마사루는 영어, 이태리어, 불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등 여러 나라 언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물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모습이 다 달랐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불어일 때 물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사루는 “세계는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감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감사가 최고라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80프로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들으면 우리 몸 속의 물의 입자가 반응을 합니다. 실제로 욕을 듣기만 해도 우리 혈액이 끈끈해진다고 합니다. 좋은 말을 하며 삽시다. 이왕이면 감사하며 삽시다. 사람에게 감사가 으뜸입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에는 5대 제사가 제사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쉘렘입니다. 쉘렘은 샬롬과 어근이 같습니다. 쉘렘은 평화의 희생, 평안의 제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 후에 공동식사를 하며 교제를 하기 때문에 화목제사를 친교를 위한 제사, 나눔의 제사라고도 합니다. 화목제에는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자원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시간에는 화목제 중에서 감사 제사를 살펴보며 감사제사에 담겨진 감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경이 주는 교훈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감사 제사
감사 제사를 드릴 때는 다섯 가지 제물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기름을 섞은 무교병[無酵餠]입니다.
<12절>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무교병은 누룩으로 발효를 시키지 않고 곡식 가루로만 만든 빵입니다. 다른 것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순수한 빵입니다. 발효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뻣뻣하고 맛이 없습니다. 빵이라고 하지만 쿠키에 가깝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마16:6). 여기서 누룩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잘못된 교훈을 말합니다(마16:12). 불순한 사상입니다. 또 누룩은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은 순수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감사 제물 첫 번째는 아무 것도 넣지 순수한 밀가루로만 만든 빵 과자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의 가장 기본은 순수한 마음입니다. 여기에 다른 것이 끼면 안 됩니다. 감사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칠일 동안 무교절을 지킵니다. 그들은 BC1446년부터 지금까지 3466년 동안 무교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무교절에는 무교병만을 먹습니다. 만약 유교병을 먹으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집니다. 이 기간에는 집에도 누룩이 있으면 안 됩니다. 누룩과 완전히 단절해야 합니다. 외식과 완전히 단절해야 합니다. 무교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신 은혜와 수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니까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 역사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초는 받은 은혜에 대한 고백입니다. 은혜를 처음 받았을 때 가졌던 순수한 신앙을 잊지 마세요. 오늘 교회도 목사도 성도도 순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제의 두 번째 제물은 기름을 바른 무교병입니다. ‘바르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솨흐입니다. 마솨흐는 ‘(기름으로) 바르다, 기름을 붓다’는 뜻입니다. 마솨흐는 ‘기름으로 덮다’는 뜻의 샤만에서 왔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메시야도 샤만에서 온 말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만들고 성막의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이유는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교병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감사는 하나님 앞에 특별히 구별된 감정입니다.
감사제의 세 번째 제물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구운 과자입니다. 감사제에는 기름을 섞은 무교병이 있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구운 과자가 있습니다. 둘 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습니다. 무교병을 만들 때는 물로 반죽을 한 다음에 기름을 섞습니다. 반면에 기름을 섞어 구운 과자는 물을 넣지 않고 기름으로만 반죽을 합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는다는 말은 기름으로 반죽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무교병 보다 기름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갑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무교병을 만들 때는 섞는다는 말이 한 번만(발랄) 들어가지만 구운 과자에는 섞는다는 말이 두 번 들어갑니다(라바트 - 적시다, 혼합하다, 섞다. 발랄- 쏟아버리다). 실제로 과자를 만들 때는 기름을 두 번 붓습니다. 기름을 섞어 구운 과자는 기름을 많이 넣었습니다. 성령의 기름으로 내 삶이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반죽되도록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세요. 불평, 원망이 나오는 이유는 내 삶이 성령의 기름으로 완전히 반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감사제에는 기름을 섞은 무교병, 기름을 바른 무교병, 기름을 많이 섞어 구운 과자 세 종류의 기름으로 만든 과자가 있습니다. 공통점은 기름입니다. 감사제에 쓰는 과자에는 기름을 속에 넣어 속을 구별했습니다. 기름을 겉에 발라 겉을 구별했습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두 번 부어 기름으로만 반죽을 했습니다. 감사제에 사용하는 과자는 속과 겉을 완전히 구별한 것입니다. 완전히 거룩하게 했습니다. 감사는 완전히 구별된 것입니다. 감사는 온전히 거룩한 것입니다. 감사는 순전한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것입니다. 감사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신앙은 정말 귀한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 겉과 속을 깨끗하게 하세요. 우리 마음을 성령님의 은혜로 완전히 반죽이 되도록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세요.
감사제사의 네 번째 제물은 짐승입니다. 12절 끝에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감사제물은 동물 제사를 가리킵니다. 곡식 가루로 만든 무교병과 과자로 드리는 제사를 소제라고 하는데 이 소제는 단독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소제는 반드시 짐승 제사와 함께 드려야 합니다. 피가 우리의 죄를 씻습니다. 피가 없이는 사람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제는 동물제사와 함께 드려야 합니다. 동물 제사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감사는 죄 용서에서 시작합니다. 감사제사는 무교병, 구운 과자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동물 제사와 함께 드려야 합니다. 동물 제사가 없는 소제는 무효입니다. 즉 죄용서가 없는 감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이 없는 감사는 허무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아야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찬송은 구원을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아무리 찬송가를 불러도 그것은 찬송이 아니라 노래입니다.
가수 조영남 씨가 만든 찬송가 테이프가 있습니다. 청년 때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조영남 씨가 믿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잘 하니까 상업적인 목적으로 찬송가 테이프를 만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하는 것입니다. 조용남 씨는 찬양을 한 것이 아니라 노래를 한 것입니다. 허무한 찬양입니다. 의미가 없는 찬양입니다. 크리스천의 감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시작합니다. 허무한 감사가 아니라 진정한 감사를 합시다. 은혜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제의 다섯 번째 제물은 유교병입니다.
<13절>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유교병은 누룩으로 발효시킨 빵입니다. 유대인들이 평상시에 구어서 먹는 맛있는 빵입니다. 구약 성경 절기에 사용되는 빵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무교병이 쓰였습니다.
<레2: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그런데 화목제에서만은 예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화목제 중에서 감사제사에서는 유교병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화목제가 끝나면 공동식사를 했습니다. 딱딱하고 맛이 없는 빵을 먹으며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맛있는 빵을 먹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에 쓰이는 제물은 모두 수컷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화목제에는 암컷으로 드려도 됩니다. 수컷은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습니다. 수소는 잘 먹지 않습니다. 암소를 먹습니다. 가축은 암컷이 맛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화목제사에 암컷을 쓸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맛 없는 것을 먹으면서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감사절을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름으로만 반죽한 과자를 구원서 먹어봤습니다. 올리브기름이 없어서 해바라기씨유로 반죽을 했습니다. 첫째 느낌은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느낌은 고소하다는 것입니다. 먹을수록 고소했습니다. 3천 년 전의 천연올리브 기름과 자연산 밀가루로 구어서 먹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맛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저는 단맛, 짠맛, 매운맛 등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순수한 입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과자가 별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고기를 먹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감사제를 드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암소를 먹게 하셨습니다. 천연 기름으로 구운 과자를 먹게 하셨습니다. 감사제의 의미는 맛있는 것을 먹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절입니다. 무엇을 먹고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맛있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여러분! 맛있는 것 드시면서 기뻐하고 감사하세요. 짜증내지 마시고 감사하며 사세요. 그런데 사람에게 정말 맛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령이라는 기름으로 완전히 반죽이 되어 만들어진 말씀 쿠키입니다. 이 말씀 쿠키를 먹어야 사람은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때뿐입니다. 세상 좋은 일은 허무합니다. 세상 기쁨, 세상 감사는 허무합니다. 사람은 말씀의 쿠키를 먹고 성령의 기름으로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마르지 않는 기쁨입니다. 샘솟는 기쁨입니다. 허무한 기쁨이 아닙니다. 성령의 기름과 말씀의 쿠키를 먹을 때 영혼에서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 거제
화목제 중 감사 제사를 드릴 때는 다섯 가지 제물이 필요합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은 다섯 종류의 제물에서 각각 하나씩을 골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립니다. 이것을 거제라고 합니다.
<14절>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거제는 제물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는 제사 방법의 한 형태입니다. 거제를 영어로 “elevation offering”, “lifted offering”, “a heave-offering”이라고 합니다. 거제는 하나님을 향하여 제물을 위를 향하여 높이 들어 올리는 제사입니다. 들어 올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라고 했습니다. 제물이 여러 개입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을 올릴까요? 상, 중, 하 어떤 것을 올릴까요? 가장 좋은 것을 올립니다.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제물 중에 가장 좋은 것을 하나 골라 하늘로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민수기 15장 21절에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처음 열매라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배 과수원을 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배를 땁니다. 아버님이 배를 따기 시작할 때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먼저 따셨습니다. 첫 열매는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첫 열매라는 말은 십일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곡물을 십일조를 드릴 때 곡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십일조 중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께 거제로 드렸습니다. 십일조 중에 십일조는 하늘 높이 들어 거제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최고의 것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거제로 드린다는 것은 으뜸을 말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으뜸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님의 「감사의 기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영훈 목사님은 이 책에서 ‘감사의 습관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특별한 통로이며,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이다. 감사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감사는 모든 미덕의 으뜸일 뿐만 아니라 모든 미덕의 부모다.”라고 했습니다. 물이 많은 말 중에서 감사라는 말을 볼 때 최고 아름다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50:23)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최고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최고의 기도입니다. 감사가 최고의 신앙입니다. 감사가 최고의 미덕입니다.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으뜸입니다. 감사합시다.
3. 너희만 감사하지 말라
감사 제사가 끝나면 공동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감사제로 드리는 제물의 고기는 그 날에 다 먹어야 합니다.
<15절>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두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누아흐입니다. 누아흐는 ‘쉬다’는 뜻입니다. 먹는 것을 쉬면 안 됩니다. 그날 다 먹어야 합니다. 누아흐가 사역형으로 쓰일 때는 ‘저장하다, 비축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고기 먹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다음 먹으려고 비축하면 안 됩니다. 그날 다 먹어야 합니다. 감사제를 위해 암소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그날 다 먹어야 합니다. 조금도 남겨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제사에는 짐승은 수컷, 소제는 무교병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사에는 유교병, 기름으로 반죽해서 구운 과자, 암컷을 허용했습니다. 맛있게 먹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만 기뻐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만 감사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감사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제사의 의미입니다.
서울에서 사역할 때입니다.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심방을 갔습니다. 서울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입니다. 성냥갑처럼 된 월세 방 수십 개가 여러 층으로 언덕에 나란히 있습니다. 들어갔더니 방이 좁아서 대각선으로 누어야합니다. 두 사람이 누울 수 없는 방입니다. 천정이 낮아서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천정이 높이가 1m 조금 넘습니다. 방이 수십 개인데 변소가 하나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유일하게 본 변소입니다. 수도도 화장실 바로 앞에 하나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와서 언덕에서 앞을 보니 고급 호텔이 보입니다. 고급 호텔에 고급 외제 리무진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고 거지는 상 밑에서 굶어 죽고. 오늘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이기주의입니다. 집단 이기주의, 행복한 이기주의, 윤리적 이기주의, 자유로운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를 일컫는 한 마디, 미 제너레이션 – 나 세대. 나 뿐인 세상, 나만 좋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세상. 코로나19로 이기주의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감사제물의 고기를 다음날까지 조금이라도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은 다음 날 아침까지 고기의 어떤 것도 남기지 말라고 번역했습니다. 강한 명령으로 must라는 조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날 다 먹어야 합니다. 암소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결코 혼자서 다 먹을 수 없습니다. 너 혼자 먹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누어 먹으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감사는 너만 감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옆에서는 고통스러워하는데 나 혼자 감사하는 것은 이기주의 감사가 아닐까요? 너무 힘들어 하는데 옆에서 나 혼자 감사하고 그 사람이 화가 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일까요? 내가 감사하면 다른 사람도 감사하도록 감사를 나누어주는 것이 성경의 감사입니다. 옆에서는 울고 있는데 나는 웃는다면 다른 사람을 화가 나게 하는 이기적인 기쁨이 아닐까요? 성경의 기쁨은 너만 기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기뻐하도록 기쁨을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감사이고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감사절입니다. 지들끼리 하는 감사절이 아니라 모두가 감사하는 감사절이 되길 바랍니다.
이전글 | 다른 불은 쏟아버리라 |
---|---|
다음글 |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일어나다 |
코멘트 작성하려면 SNS계정으로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