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세상 고라당에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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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 16:12~14
주일오전예배 | 2020-10-18
설교자 : 서요한 목사

어떤 변호사가 아주 고가의 벤츠 한 대를 구입했습니다. 변호사가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곳에 정차해 차 문을 여는 순간 지나가던 차가 변호사의 차 문을 부수고 그냥 달아나 버렸습니다. 잠시 후에 도착한 경찰관에게 변호사는 자신의 벤츠가 얼마나 비싼 차인지를 설명하며 화를 냈습니다. “경찰관 아저씨, 뺑소니차가 내 비싼 차를 어떻게 했는지 좀 보세요.” 경찰관은 변호사에게 당신은 정말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이군요. 당신은 부서진 차만 생각하는데, 사고로 당신 왼팔이 떨어져나간 것은 왜 모르십니까?”라고 했습니다. 돈만 생각하다가 너무 속이 상해 자신의 팔이 부러진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변호사는 그제야 부상당한 왼쪽 팔을 감싸 쥐면서 신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롤렉스시계가 생각났습니다. “~ 이런 세상에! 내 롤렉스시계 어디 갔지.” 팔이 부러졌는데 팔 걱정이 아니라 돈 걱정을 먼저 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 같지는 않습니다.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일 것입니다.  

유대인은 재물을 모으는 일에 천부적입니다. 어떤 유대인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돈이 뭐예요?” 아버지는 잘 봐라.”하면서 유리 조각을 집어 창문 앞에 놓았습니다. 아이는 유리를 통해서 길이며 행인이며 마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유리가 주변 환경을 더 잘 보게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아버지는 이제 돈을 잘 봐라.”하더니 유리 조각 대신 돈을 여기에 놓겠다. 은화 때문에 거리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돈만 보이지.”라고 말했습니다. 돈 앞에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오직 돈만 보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 밖에 모른다고 합니다. 돈에 눈이 멀었다고 합니다. 돈에 눈이 멀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아 돈 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정, 사랑, 친구, 건강, 명예, 그리고 천국 등등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돈 빼고는 잃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돈 때문에 부모가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자녀가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돈에 눈이 멀어 정말 중요한 것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 고라당에서 벗어나라  

지난 주간 스토리를 잠깐 생각해보겠습니다. 레위 지파의 고라와 르우벤 지파의 다단, 아비람, 온 네 사람이 당을 만들고 이스라엘의 이름 있는 지휘관 250명과 역성혁명을 꾀했습니다. 고라는 제사장이 되고 싶었고 다단, 아비람, 온 세 사람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반역도들에게 누가 하나님께 속한 자로 하나님의 사역에 합당한지 하나님께서 직접 보이시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방법은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250명의 지휘관이 자기 향로에 숯불을 넣고 그 위에 가루 향을 태우며 여호와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향로는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으로 불씨를 옮기는 그릇입니다. 이 향로를 불똥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아론도 자기 불똥 그릇에 숯불을 넣고 향을 태우며 나와야 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의 향을 받으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거룩하지 않은 자의 거룩하지 않은 향은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향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향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영적인 향기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내 기도의 불똥 그릇에 기도의 숯불을 태우십시오. 내 기도의 불똥 그릇이 비어 있게 하지 마십시오. 내 기도의 불똥 그릇을 차갑게 하지 마십시오. 내 기도의 불똥 그릇을 뜨겁게 하십시오. 내 기도의 불똥 그릇 위에 기도의 향을 태우십니다. 그 향이 활활 타올라 하나님 앞에 올라갈 것입니다. 모세가 향로에 숯불을 넣고 가루 향을 태우며 여호와 앞에 나아가자는 말은 누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기도로 대결을 하자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기도 대결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은 기도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혈기로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돈으로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권세로 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의 제안에 고라와 250명의 지휘관은 대답을 했습니다(17). 하지만 다단, 아비람 두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의 집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그랬더니 다단과 아비람은 올라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온이라는 사람이 고라당 무리에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1절에 고라와 당을 짓고 모세를 반역한 사람 중에 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이라는 사람이 1절 이후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온이 갑자기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아마도 온은 반역하다가 뉘우치고 돌아선 것 같습니다. 온은 모세와 아론을 찾아가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고 더 이상 역도들의 무리에 가담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회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다단과 아비람의 집에는 사람을 보냈지만 온의 집에는 사람을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모세는 더 이상 온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온의 잘 못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온에 대해 일체 침묵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이것이 회개의 은혜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온이 지은 죄는 그냥 평범한 죄가 아닙니다. 고라당은 이스라엘 민족을 둘로 쪼갤 수 있을 정도로 큰 역도들이었습니다. 고라당의 반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훈련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21절에 하나님이 온 회중을 멸하시겠다고 한 것을 보면 고라당의 반역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온이 그 역도들의 무리에 가담을 한 것입니다. 온은 민족의 반역자였습니다. 온은 하나님을 크게 반역했습니다. 그럼에도 회개를 하자 하나님은 더 이상 온에게 죄를 묻지 않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못할 수 있습니다. 잘 못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잘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 속에는 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잘 못합니다. 문제는 잘 못한 이후입니다. 잘 못한 후에 돌아서느냐 돌아서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잘 못한 후에 회개하면 어떤 죄를 지었어도 용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가 없습니다. 온이 잘 못한 후에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온이 고라당에게서 벗어난 것입니다. 고라당의 거짓 프레임을 벗은 것입니다. 반역자들에게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고라, 다단, 아비람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회개가 은혜입니다. 회개하면 은혜가 회복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갑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습니다. 회개하세요.  

여러분! 고라당에서 벗어나세요. 나는 고라당이 아니라고요. 정말 고라당이 아니세요. 세상의 아비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반역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고라당입니다. 마귀가 이 세상 고라당의 대장입니다. 이 세상에 심취하는 것은 영적 고라당에 가입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 동조하는 사람이 고라당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세상 고라당에 속한 우리들을 구하시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고라당 세상에서 나오세요. 고라당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세요. 세상에 너무 빠지지 마세요. 고라당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세상 고라당에 동조하지 마세요. 세상 것들을 끊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세요.  

콩 심은 데에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콩 심은 곳에 팥이 나지 않고 팥 심은 곳에 콩이 나지 않습니다. 사과나무에는 반드시 사과가 열립니다. 사과나무에 배가 열리지 않습니다. 사과나무에 딸기가 열리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납니다. 이것은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러면 죄를 심으면 뭐가 날까요? 죄를 심으면 죄의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는데 그 죄의 열매가 심판입니다. 죄의 열매는 죽음입니다. 형벌, 지옥, 저주, 불행, 고통, 슬픔입니다. 인간은 죄의 나무와 같습니다. 태어날 때 원죄를 갖고 태어납니다. 부모가 죄 중에 나를 잉태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죄를 짓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이 죄의 나무가 계속 자랍니다. 사람은 죄의 나무입니다. 나는 죄의 나무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는 죄의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죄의 나무에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의 나무에 심판의 열매가 맺지 못하게 하는 길이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열리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에게 심판의 열매가 맺지 않습니다. 회개를 심으면 은혜가 열립니다. 나의 삶에 회개를 심으세요. 내 가정에, 내 자녀에게, 내 직장에 회개를 심으세요. 회개를 심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가 맺습니다. 죄의 나무에서 회개의 나무로 돌아서세요. 은혜가 열리는 회개의 나무가 되세요. 죄의 나무가 되지 마세요. 회개를 심으세요. 죄를 심지 마세요. 회개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도 내게서 죄의 저주를 떠나가게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값없는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는 값없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죄로 그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회개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시켜 줍니다. 회개하세요. 회개가 은혜의 회복입니다. 회개가 세상 고라당에서 나오는 방법입니다. 회개로 고라당에서 벗어나세요. 회개하세요. 회개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회복하세요. 온은 회개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회개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영적 눈이 빠진 사람들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가 자기들을 부르러 보낸 사람들에게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기 올라가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알라인데 이 단어가 종교적인 일에 쓰일 때는 성전에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올라가지 않는다는 말은 성전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올라가다는 말 앞에 부정사 가 있습니다. 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부정을 나타나는 부정부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는 말을 원문에 보다 충실하게 번역하면 우리는 결코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또는 우리는 절대로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아주 강한 부정입니다. 본문에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를 아주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아주 완악해졌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앞에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가 참 제사장이냐, 누가 참 지도자냐를 판가름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다단과 아비람 본인들입니다. 그런데 성전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기도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지파의 장로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아주 유명한 장로들입니다.  

<26:9> 엘리압의 아들은 느무엘과 다단과 아비람이라 이 다단과 아비람은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니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여호와께 반역할 때에  

회중 가운데 부름을 받았다는 말은 유명한 사람들,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았다는 말은 사람들도 인정했지만 하나님도 인정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총회의 70명의 장로가 있었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그 70명의 장로들입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이름이 있는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다 어디에 팔아먹은 것일까요?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는 말이 14절 끝에 한 번 더 나옵니다. 이 말 바로 앞에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라와 250명의 지휘관들입니다. 함께 반역한 무리들입니다. ‘눈을 빼려느냐?’는 말은 우리를 시각장애인 취급을 하는 것이냐?’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눈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들을 사리에 맞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안목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눈을 빼려느냐?’는 말은 우리도 보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보고 올라오라 내려가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말처럼 그들은 분별력이 있는 이스라엘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적인 시각장애인이 됐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영적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육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속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가나안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지만(14) 애굽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두 땅을 동일하게 지칭하고 있습니다. (우유)를 생산하려면 목초지가 많아야 합니다. 꿀을 채취하려면 꽃이 많아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젖과 꿀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때 물질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1112절에는 가나안을 하나님의 맹세가 있는 땅이라고 했습니다(11:12). 신명기 1112절은 가나안을 하나님의 돌보시는 땅이라고 했습니다(11:12).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있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육적인 의미도 있지만 영적인 의미가 훨씬 큽니다. 그런데 다단 아비람은 가나안 땅과 애굽을 동일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은 풍요로움은 있는지 모르지만 약속의 땅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땅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단과 아비람은 두 땅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외적인 풍요로움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것만을 볼 때 사람은 영적 맹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조카 롯이 따라 나왔습니다. 조카 롯은 삼촌 아브라함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면 가나안으로 따라갔고, 애굽으로 가면 애굽으로 따라갔습니다. 시종일관 아브라함을 따라다녔습니다. 최고의 선택입니다. 아브라함을 따라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을 따라 가봤자 좋은 것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 두 사람이 함께 살 수가 없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거부가 됐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너무 많아 두 사람이 함께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분가하기로 했습니다. 분가할 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갈 곳을 먼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합니다. 이때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보았더니 얼마나 좋은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다고 했습니다.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의 눈에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의 동산처럼 보였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다는 말은 에덴동산 같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롯의 눈에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동산처럼 보였습니다. 롯이 무엇을 보고 소돔과 고모라를 에덴동산 같다고 했을까요?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라고 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풍요로움을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겉모습만을 본 것입니다. 속은 보지 않았습니다. 롯은 겉만 보고 여기가 천국이다, 천국이 따로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습니다.  

<13: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외형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지만 내부는 패역한 도성이었습니다. 롯은 겉만 봤습니다. 속은 보지 않았습니다. 육적인 것만을 보고 영적인 것은 보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질의 부요, 도시의 화려함, 번영,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부도덕, 패역, 타락, 죄악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롯은 겉만 보고 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내와, 사위, 그리고 전재산을 잃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어디를 보느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여기로 오기 전에 갈 곳이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볼 때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곳으로 가려고 그곳에 사는 장로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상하게 안돼요. 그날 밤에 꿈을 꾸었어요. 어떤 남자들이 우리 딸들을 희롱하는 거예요. 꿈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이 제가 거기로 가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고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곳이 음란한 도시이고 이곳은 거룩한 곳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고민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곳이냐는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이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정말 중요합니다. 롯은 본다고 했지만 속은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었습니다. 속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볼 때 사람은 영적 맹인이 되는 것입니다. 겉만 보지 마세요. 속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세요. 부요, 화려함, 풍요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믿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세요.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세요. 영적인 사람이 되세요. 내일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세요.  

다단과 아비람은 너희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고 했지만 그들은 이미 마귀에 의해 영적 눈이 빠져 속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영적 맹인들이었습니다. 마귀에게 이미 그들의 눈을 빼앗겼음이 그들의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자신들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 네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모세가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후 38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1세대가 광야에서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이유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모세 때문이 아닙니다. 둘째, 모세가 우리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함이 아니라 모세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왕 노릇하고 싶어서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한 번도 왕 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을 뿐입니다. 셋째, 모세가 자기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가나안 땅 바로 직전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맹인이 됐습니다. 넷째, 밭이나 포도원을 기업으로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얻을 기업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단, 아비람은 철저하게 육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맹인이 되었습니다. 온은 고라당에서 나왔지만 두 사람은 더 강팍한 사람이 되어 멸망당했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에 진격했을 때, 어느 날 러시아 병사 한 명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에게 자기를 황제로 섬기면 후한 대접을 해 주겠다며 전향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포로된 그 러시아의 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러시아 황제 폐하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충성을 맹세하지 않겠소.” 거절하는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화를 내며 부하에게 지시했습니다. “저 놈에게 거룩한 황제의 표시를 새겨 주어라.” 그러자 한 병사가 달려들더니 그 러시아 병사의 팔에 불 인두로 “N”자를 새겼습니다. “. 봐라. 이미 네 팔에는 이 나폴레옹의 인()이 있느니라.” 이 말을 듣자마자 이 러시아 병사는 옆에 서 있던 프랑스 병사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어 자기의 팔을 뚝 잘라 버렸습니다. 피가 튀기며 하얀 눈밭에 떨어진 자기의 팔을 바라보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충성은 오직 한 분, 그 분에게만 바칠 것이오. 나의 황제 짜르여.” 세상 고라당을 끊어버리세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단단히 붙들고 세상 고라당에서 벗어나세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오늘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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