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불똥 그릇을 가지고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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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 16:5~11
주일오전예배 | 2020-10-11
설교자 : 서요한 목사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약자로 HWPL이라고 표기합니다. HWPL은 해마다 잠실운동장에서 각국의 정부 대표 및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세계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한 국제법 제정과 종교간 화합을 위한 만국회의를 합니다. HWPL은 문화, 이데올로기, 종교 등을 초월해 지구촌에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는 일들을 보면 정말 좋은 단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HWPL은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가 신천지를 세계적인 종교로 만들려고 조직한 프레임입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초청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신천지가 세계적인 단체인 것처럼 떠드는 전시 행사일 뿐입니다. 신천지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가 목욕봉사를 합니다. 미용, 마사지, 네일 아트 등의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 종전에 가졌던 나쁜 이미지를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회에서 생기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자신들의 기관지인 천지일보에 기사를 내 교회에 나쁜 프레임을 씌우고 있습니다.  

마귀는 틈만 있으면 악한 프레임을 교회에 씌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가 불의한 집단처럼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잘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잘 못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잘 못 때문에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어지럽고 혼란한 상황에서도 교회의 본질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자 되신 예수님께 마음과 눈을 고정하세요. 마귀의 거짓 프레임에 속지 마세요. 마귀의 프레임을 억울해하지도 마세요. 죄악의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우리의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불의의 프레임을 의연하게 쓰고 가세요.  

사탄은 2천 년 전에 예수님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 성전을 사흘 만에 짓는 자, 살인범 바라바 보다 더 잔혹한 자라는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시대 교회가 쓰고 있는 불의한 프레임을 예수님처럼 묵묵히 집시다. 나는 아니라고 변명하지 맙시다. 회개하고 마음을 찢읍시다. 고라는 모세에게 거짓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이 시간 세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불똥 그릇을 가지고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라  

먼저, 모세가 직분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확인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광야 생활의 인도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론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고라는 이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모두가 제사장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올가미였습니다. 이 말 밑바탕에는 아론의 제사장직을 차지하려는 불의한 욕망이 깔려 있었습니다. 고라의 말에 많은 레위인들과 250명의 지휘관들이 동조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지휘관이 612명이니까 250명이면 42프로입니다. 고라는 많은 레위인들과 지휘관 42프로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고라는 자신의 사악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지지하는데 내가 제사장을 못할 게 뭐냐는 것입니다.  

여론은 고라당에게 넘어갔습니다. 나머지 58프로가 모두 모세를 지지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고라당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두 가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는 나라가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위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의 위기입니다. 고라당의 반역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40년 중에 마지막 1-2년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광야생활이 끝날 무렵에 이스라엘에 아주 커다란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마귀는 끝까지 시험합니다. 잘 나가다가 끝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조심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고라처럼 자기에게 유리한 말로 여론을 조성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기도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신에게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5>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기도 후에 모세는 고라와 그에게 속한 무리들에게 여호와께서 직접 누가 여호와께 속했는지, 누가 거룩한 자인지 보이시게 하자고 했습니다. 주어가 여호와입니다. 주어가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와 고라의 방법이 다릅니다. 두 사람의 기준이 다릅니다. 고라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고라는 거룩한 일을 하는데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로 거룩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인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기도가 일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에게 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하는 것입니다. 마귀에 속한 자, 세상에 속한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내가 하나님께 속했는지, 내가 세상에 속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인간적인 힘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고라와 그에게 속한 무리들에게 향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향로에 번제단의 숯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고 했습니다.  

  • <6>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 <7>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향로는 성막에서 사용하는 불을 옮기는 그릇입니다(27:3). 이 불을 옮기는 그릇을 <불똥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루에 두 번씩 아침과 저녁으로 향로에 번제단에 있는 숯을 담아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단에 향을 사르며 향기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 <16:12-13>
  • 12.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 13.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불똥 그릇을 레위인들이 관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사용은 제사장들이 했습니다. 모세는 고라와 그에게 속한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이 향로에 숯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태워 향기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고 했습니다. 아론도 아론 가문을 대표해 향로에 불을 담아 나와야 했습니다. 두 가문 중에 하나님께 속한 자들의 향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7)고 했습니다. 거룩한 사람의 거룩한 향기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거룩하지 않은 사람의 거룩하지 않은 향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향이 무엇일까요? 이 향이 기도입니다.  

  •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성경은 기도를 향기에 비유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는지 세상에 속했는지 분별하는 척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 아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내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에게 묻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의 조언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드립니다. 기도합니다. 봉사합니다. 저는 말씀을 전합니다. 모두 거룩한 일들입니다. 이 거룩한 일에 사람의 생각이 중요할까요? 하나님의 생각이 중요할까요? 사람 의식하며 기도하지 맙시다. 사람 의식하며 찬양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예배를 드립시다.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섭시다. 고라는 거룩한 일을 하는데 세상적인 자격을 갖추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거룩한 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지 기도로 확인했습니다. 내 불똥 그릇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섭시다.

2. 그리스도인들의 선(line) 의식  

두 번째로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선(경계) 의식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고라와 그에게 속한 레위인들은 제사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함께 봉사하는데 레위인들이 제사장이 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를 드릴 수도 없었고 성소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레위인들은 이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도 제사장이 되겠다며 이스라엘의 이름 있는 지휘관 250명을 대동했습니다. 고라가 모세와 아론에게 자신의 세를 과시하며 제사장직을 내놓으라고 압력을 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 레위 지파에게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다고 했습니다.  

<7>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다는 말을 NIV 성경은 너희가 너무 멀리 갔다.”(You Levites have gone too far)라고 번역했습니다. NIV 성경은 레위 지파가 가다가 멈출 곳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이제 너무 멀리 가서 너희가 돌아올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멈출 곳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선을 넘어가면 안 됩니다. 너무 멀리 가면 안 됩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KJV 성경은 너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갔어!”(ye take too much upon you)라고 번역했습니다. KJV은 레위 사람들이 너무 욕심을 낸다는 의미로 번역을 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너희야말로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지금도 한도에 넘칠 정도로 크고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번역을 했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게 분에 넘치도록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 <8-10>
  • 8.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 9.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 10.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이스라엘 중에 구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가까이 오게 하셔서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12지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레위 지파는 12지파가 내는 십일조로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게 하셨습니다. 레위 지파가 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레위지파의 한도는 여기까지입니다. 이것을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레위 지파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한도를 레위지파가 42프로라는 여론을 등에 업고 넘으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도를 알아야 합니다. 한도를 넘어가면 안 됩니다.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라는 말은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일은 너무 귀하고 큰 일이다. 왜 그것을 모르느냐? 왜 그것을 하찮게 여기느냐?”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찮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하신 한도 내에서 그 안에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시부야 쇼조의 STOP 선을 넘지 마라는 책이 있습니다. 붐비는 전철이나 사람으로 꽉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왜 모두 불쾌한 듯이 입을 꽉 다물고 있을까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이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면 불쾌해지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상사나 편한 동료라도 허락 없이 마음대로 내 선을 넘어오면 불쾌해집니다. 이런 감각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데, 이것을 영역감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영역감각을 심리학에서는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물리적인 선이 있고 심리적 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공중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 볼 일을 보고 있는 사람 바로 옆이 아니라 한 칸 건너서 볼 일을 본다고 합니다. 옆 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싶은 것입니다. 알든 모르든 타인과 바싹 붙어 소변을 보지 않으려는 잠재의식 때문입니다. 이는 커피숍, 레스토랑 등에서 자리를 잡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옆이 아니라 한 칸 정도 띄어서 자리를 잡고 싶어합니다. 시부야 쇼조는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수만 가지 문제들은 상대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부간에 영역이 있습니다. 친구 사이에 영역이 있습니다. 직장 동료 사이에도 영역이 있습니다. 왜 인간 사회에 문제가 생길까요? 함부로 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쇼조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영역, 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선을 넘자고 합니다.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사람의 선이든, 하나님이 만든 선이든 넘지 마세요. 문제가 생깁니다.  

신앙생활은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선과 내 선을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서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내 선에서 벗어났는지 벗어나지 않았는지 보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까? 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왜 실패했습니까? 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일이 있고 선지자의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을 자기가 해버렸습니다. 요셉이 왜 성공했을까요? 목숨 걸고 선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틈만 나면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끝까지 쾌락의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을 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멈추십시오.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넘지 마십시오.  

1030KBS 2TV에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특집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날 무대에서 나훈아는 우리는 힘들다. 많이 지쳐 있다. 역사책을 보든,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 없다. 바로 여러분들이 나라를 지켰다. 유관순,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모두 보통 우리 국민이었다. (중략)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 1등 국민이다. 긍지를 가져도 된다. 분명히 코로나 이겨낼 수 있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또 나훈아는 유행가라는 말처럼 가수는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무엇으로 남고 싶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나훈아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2002년도 1월 어떤 잡지사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고 답했다고 합니다. 나훈아는 그러면서 이주일 씨가 국회의원 나갈 때 사실은 당시 여당에서 프러포즈를 받았습니다. 그때가 1월이었는데 애들하고 스키장에 가 있었습니다. 아무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하고 가 있었는데 우리 회사 윤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좀 높은 데서 연락이 왔다는 겁니다. ‘높은 데 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끊어!’ 그러고 열흘 후에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훈아는 돌아와서 들어보니 국회의원 하라는 겁니다. 그때 여당 당직자가 저녁 약속을 하자고 해서 내가 전화로 저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했더니 그쪽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좀 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래요. 그 말 듣고 제가 당장 이랬어요. ‘여보시오, 내가 정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울긴 왜 울어>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울긴 왜 울어>를 더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죠, 그거야 나 선생이 최고로 잘 부르죠.’ ‘그러면 내가 뭘 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 합니까? 노래를 해야 합니까?’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참 미워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 않고, , 저놈 인기 있으니 내보내면 당선되겠다. 그럼 우리 당이 한 석 더 차지한다.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국회가 왜 저 모양입니까? 돈 좀 있으면 국회의원 하려고하기 때문입니다. 저 안에 국회의원 자격이 있어서 앉아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국회의원은 정말 엘리트가 해야 합니다. 잘 배우고, 사고가 똑바르고, 정말 국민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합니다!” 나훈아는 왜 대단한 사람인지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알았습니다. 나훈아의 인기정도라면 국회의원 쉽게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어요. 왜요? 자기는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유행가 가사처럼 그냥 흘러가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우리 선을 지킵시다. 세상은 선을 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선을 지키는 사람이 위대한 거예요.

3. 고라당의 교만  

세 번째로 고라당이 가졌던 교만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레위 지파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차지하기 위해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아론에게 제사장 직분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고라당은 하나님의 정하신 이스라엘 사회의 질서를 뒤집기 위해 지휘관 250명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라를 둘로 나눌 수 있는 큰 세력입니다. 고라의 반역은 아주 심각한 반역입니다. 이것을 모세는 여호와를 거슬리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11>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라는 말을 히브리어 성경 원문대로 직역하면 여호와 위에 (있다)’, ‘여호와를 대항하여라는 의미입니다. 거룩한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사람들을 모아 뒤집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세는 하나님 위에 있는 교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2지파 외에 레위지파가 있습니다. 13개의 지파의 역할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고라당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불만을 품고 그 질서를 바꾸려는 것입니다. 고라당의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위에 앉으려는 것입니다. 고라당의 교만은 하나님 위에 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교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까? 사람들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까? 사람들에게 문안받는 것을 좋아하고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계명성이 왜 하늘에서 쫓겨났습니까?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계명성은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리라”(14:13-14) 높아지려는 마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고라당의 교만은 하나님 위에 서려고 한 것입니다. 겸손합시다. 교만하지 맙시다. 교만은 그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대적입니다.  

모세를 반역했던 고라당은 얼마나 된 조직일까요? 한 달, 두 달 아니면 1, 2! 얼마나됐을까요? 고라당은 적어도 20년 혹은 30년 이상이 된 조직일 것입니다. 고라당에 이스라엘 사회 이름 있는 지휘관 42프로 정도가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레위인도 가담했습니다. 지휘관은 천부장입니다. 천부장이 250명입니다. 그렇다면 그 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조직이 1-2년 만에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한 나라의 여론 40프로가 넘어갈 정도면 10, 20년도 부족합니다. 모세의 지도력이 절대적인 시대에 반 가까운 여론이 고라에게 쏠렸다면 30년 이상이 걸렸을 것입니다. 고라는 아주 오랜 동안 물밑 작업을 하며 여론을 규합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세는 몰랐어도 하나님은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왜 고라가 반역을 도모하도록 그냥 두셨을까요? 나라가 둘로 쪼개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까지 가도록 왜 그냥 방치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고라가 스스로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용납과 허용, 인내의 크기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오랫동안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하심이 우리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라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왜 고라는 그렇게 오랫동안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엎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립시다. 나를 부르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되새기고 그 안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합시다. 하나님이 정하신 선을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 선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가는 것은 교만이고 멸망입니다. 우리는 그 선을 넘어가지 않도록 수 없이 엎드려 우리의 불똥 그릇에 기도를 채우며 주님께 그 부르심을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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